여덟째 꼭지. 사귀다가 헤어진 남자친구가 결혼한다는 소식을 듣고 썸타는 남자에게 말했더니 반응이 냉랭하다고. 어떻게 내 앞에서 전 남자친구 이야기를 할 수 있느냐고. 철없는 행동이 아니냐고. 이런 때는 어떻게 해야 할지. 저는 정말 철없는 건가요? 이에 대한 강신주 답은 ‘헤어져.’ 오! 세다. 여기까지 좋다. 그런 철없는 남자와는 단박에 헤어지는게 맞다. 근데 다음이 문제다. 진짜로 사랑하면 비밀을 다 이야기하게 된다고. 자신의 약점, 상처, 흉터를 모두 보여주는 거라고. 그것을 숨기게 되면 평생 연기를 해야하니까 그런 거라고. 뭔가 숨기는 것은 사랑이 깨지는 잣대 중의 하나라고. 남녀 사이에는 절대 비밀이 있으면 안 되는 거라고. 사실은 그 남자가 철이 덜 든 것이고 그런 남자 만나는 여자도 철없다고. 참! 기가 막힌다. 강신주는 정말이지 철이 없다. 강신주 말 듣고 이를 행동으로 옮겼다가 깨진 커플이 한둘이 아닐 거다. 강신주는 사랑을 모른다. 사랑은 평생 연기를 하는 거다. 절대 자신의 단점을 공개하면 안 된다. 사랑은 각자 자신의 판타지를 가지고 가는 거다.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떠올리자. 블랑쉬 드부아는 그야말로 환상에 빠져 사는 여자다. 그 환상을 존중해야 한다. 스탠리는 블랑쉬의 위선을 폭로하고 현실을 깨우쳐주려고 한다. 그런 스탠리가 진짜 악당이다. 왜 남의 판타지를 깨느냐고. 니가 뭔데? 인간에게는 환상이 진실이고 사실이 환상이다. 팩트야말로 위험한 흉기다. 팩트폭력이 나쁜 거다. 이명박처럼 현실을 중시하는 자가 악당이다. 모르겠나? 제발 독서 좀 해라. 독서해야 강신주 면한다. 남자는 여자가 신이기를 원한다. 여자는 신을 연기하는게 맞다. 그것은 거짓이지만 오히려 그 안에 진실이 있다. 여자도 남자를 영웅으로 본다. 남자는 영웅을 연기해야 한다. 그게 깨져서 서로 상대를 만만하게 보는 순간 모든게 틀어지고 마는 것이다. 자신의 약점을 들키지 마라. 남의 약점을 지적하지 말라. 약점을 충고하는 자는 친구가 아니다. 모르겠는가? 문제있는 자는 애초에 사귀지 말아야하고, 만약 사귀었는데 잘못을 저지르면 조용히 끊는게 맞고, 그러지 않으면 끝까지 두둔하고 덮어주는게 맞다. 그게 친구다. 충고할 바에 끊는다. 조선시대라면 ‘진사, 오늘부터 끊네.’ 딱 한마디밖에 안 한다. 마지막 헤어질 때 진사대접 해준다. 말이 길어지면 서로 추해지는 것이다. 그것이 글자 배운 사람들의 세계이다. 강신주가 헤어지라고 한 것은 틀리지 않았다. 여자의 발언이 철없는 것은 맞지만 철없는 여자한테 철없다고 솔직하게 말하는건 더 철없다. 철분결핍뿐 아니라 구리, 마그네슘, 칼슘 죄다 부족하다. 기본이 안 되어 있다. 상대의 약점을 절대 말하면 안 된다. 평생 상처를 준다. 모른 체하라. 둘 다 철없는 것은 맞는데, 헤어지는 것도 맞는데 강신주 해석은 정반대다. 어릴 때 어머니에게 들은 이야기다. 아빠 없는 소년이 있었는데 동무들에게 놀림을 받았다. 목도령 이야기와 같은 출발이다. ‘엄마, 엄마, 난 왜 아빠가 없어?’ ‘아빠가 없기는 왜 없어? 어느 고을 사또가 네 아빠란다.’ 고을 원님이 동헌에 앉아 정무를 보는데 장사꾼이 호박씨를 팔고 있다. ‘이 호박을 아침에 심으면 점심에 꽃 피고 저녁에 수박만한 호박이 열리고.’ 혹세무민하는 장사꾼이구나 싶어서 잡아들였다. 아비없는 소년이다. ‘호박씨를 심어서 저녁까지 열리지 않으면 넌 죽었다.’ ‘그러나 이 호박씨는 방귀를 안 뀌는 사람이 심어야 합니다.’ 사또가 이방에게 물었다. ‘너 뀌냐?’ ‘뀌는데요?’ 육방관속 아전들 중에 방귀 안 뀐다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 평생을 방귀라곤 한 번도 뀐 적 없는 부인에게 도움을 요청할 밖에. ‘이 호박씨를 방귀 안 뀌는 당신이 심어보시오.’ ‘뀌는데요?’ 사또가 소년을 불러들였다. ‘무슨 곡절이 있구나. 털어놓거라.’ ‘첫날 밤에 방귀 뀌었다는 이유로 부인을 소박맞혀놓고 잊으셨나요?’ 그리하야 쫓아냈던 부인을 도로 불러들였다고 하는데 재혼한 부인은 후처로 밀렸는지 모르겠다. 하여간 방귀 한 번 잘못 뀌었다고 이혼당하는 세상이다. 조심해야 한다. 방귀 함부로 트지 마라. 방귀 한 방에 깨진 커플이 한둘이 아니다. 얘기했듯이 러시아 젊은이는 보통 19살에 결혼하는데 3년을 못 가고 깨진다고. 왜 깨지겠는가? 방귀 트다가 깨지는 거다. 20대 후반에 재혼하는데 그때는 괜찮다고. 이제는 서로 양해하게 되는 거다. 그건 호르몬 문제라서 익숙해져야 해결이 된다. 천하대장부라도 방귀 한 방에 충격받는다. 과거에 사귀었던 남자 이야기를 함부로 하는 것은 철이 없는게 맞다. 나이가 들고 신뢰가 쌓이면 이야기해도 괜찮다. 자신의 약점을 상대방에게 들키면 상처 입는다. 그 상처 오래 간다. 사소한 트러블이 발전하여 결국 헤어지게 된다. 새로운 파트너를 만났을 때는 조심하여 약점을 들키지 말아야 한다. 그러므로 여자든 남자든 연애를 좀 해봐야 하는 것이다. 평생 이성친구를 사귀지 않다가 처음 사귄 사람과 결혼한다는 낭만적인 생각은 집어치우는게 좋다. 위태롭기 짝이 없다. 처음 사귈 때는 사소한 걸로 상처를 준다. 사소한 걸로 주눅이 들고 그 주눅이 평생 갈 수도 있다. 반대로 한 번 상대를 얕잡아보면 평생 상대를 얕잡아보게 된다. 주눅들지 않고 얕잡아보지 않고 서로 존중하는 최적거리를 만들어야 한다. 최적거리 만들기에는 많은 훈련이 필요하다. 방귀를 트더라도 석달은 사귄 다음에 양해를 구하고 조심스럽게 방귀를 터야 해결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두 명 이상 사귀어보고 세 번째에 제 짝을 찾는게 정상이다. 이건 호르몬 영역이고 인간의 본능이므로 어쩔 수 없다. 좋은 사람인데 왠지 상대에게 압도되는 경우도 있다. 호르몬이 사람을 그렇게 몰아간 거다. 상대의 사소한 말에도 쩔쩔매게 된다. 반대로 상대가 고통을 호소하는데도 웃어넘기게 되는 수도 있다. 어쨌든 그 각도가 안 맞으면 매우 힘들어진다. 평생 얻어맞으면서 사는 사람도 있고 평생 공처가노릇 하는 남자도 있다. 그게 다 처음에 세팅을 잘못해서 각이 틀어진 거다. 서로에게 맞는 최적거리 설정은 매우 어려운 것이며 연애를 좀 해봐야 감이 와준다. 한편으로는 이런걸 상대에게 잘 맞춰주는 사람은 바람둥이니까 조심해야 한다. 방귀도 조심하고, 이벤트도 잘 해주고, 생일날짜도 잘 기억하는 남자는 사실 여러 여자를 사귀어본 것이다. 처음에는 실수를 저지르고 뭔가 서로 잘 안 맞고 그렇지만 조금씩 맞춰가는 것이 진짜다. 처음부터 완벽한 남자는 완벽한 사기꾼이다. 매끄러워도 안 좋고 투박해도 안 좋다. 사랑을 성공시키려면 서로를 어느 정도 속여야 한다. 그렇다고 대놓고 사기결혼을 한다면 곤란하지만 말이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판타지를 안고 가는 것이며 서로의 판타지를 존중해야 한다. 여자가 자신을 공주라고 여기면 공주대접을 해주는게 맞다. 남자가 자신을 왕자라고 믿으면 왕자대접 해주는게 맞다. 파트너가 아니면 누구에게 대접받아 보겠는가? 그러나 현실은 시궁창이다. 현실은 시궁창이라고 강조하는 남자와는 3초 안에 헤어져라. 현실은 시궁창이지만 사랑은 꿈을 먹고 가는 것이다. 시궁창에서 시궁창이라고 소리치는 놈은 개다. 똥거름을 내다가도 점심을 먹을 때는 식탁보를 펼쳐놓고 양반처럼 먹는게 인간이다. 마땅히 그래야 한다. 스스로 자신을 대접하는 훈련을 해야 남에게도 대접받는다. 자기 약점 떠벌이지 말라. 경솔한 자다. 난 양아치야 하고 솔직하게 고백하는 자는 솔직한 자가 아니고 그걸로 상대방을 모욕하는 자다. 양아치를 만나는 사람도 양아치이기 때문이다. '난 나빠' 하는건 '넌 나빠' 하는 말과 같다. 홍준표가 자신이 쓰레기라고 양심고백했지만 그런 놈이 바로 쓰레기다. 그런 쓰레기를 대선후보로 뽑은 경상도 사람은 뭐가 되는가? 사소한 한마디 말이 평생의 짐이 된다. 그거 알아야 한다. 그거 모르면 세 번 틀어지고 네 번째나 다섯 번째에 이루어진다. 사랑이 쉽지 않다. 온달이 평강공주를 찾아가서 ‘저는 장차 장군이 될겁니다.’ 하면 그 말을 믿어야 한다. 현실을 들먹이며 ‘너 같은 바보 온달이 무슨 장군이냐.’ 이러면 동화책 작가는 굶어죽는 거다. 힘들어도 작가는 동화를 써줘야 한다.
사랑은 미래를 가불해서 당겨 쓰는 것입니다. 비록 현실은 거지라 할지라도 미래에는 누구나 왕자가 되고 공주가 됩니다. 그 그림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현실을 강조하는 자는 과거에 얽매여 살게 되고, 미래를 설계하는 자가 현실을 맞춰갈 수 있습니다. 어린이가 신발을 살 때도 한 치수 큰 것을 사듯이 말입니다. |
선의는 기만되기가 너무 쉽소.
악의를 악의하여 선의를 취하는것이 진보요.
사랑과 결혼은 다른 것이죠.
저는 사랑과 결혼 중에서 뭐가 더 중요하냐고 묻는다면, 결혼이 더 중요하다고 말하겠어요.
사랑은 뜬 구름이지만, 결혼은 현실적으로 우리가 직면하는 사실이니까요.
물론 사랑은 보편적입니다. 우리는 누구와도 올바른 관계맺음을 필요로 하고, 그러한 관계를 사랑이라고 하죠.
남녀간의 사랑만을 사랑으로 본다면 사랑이 너무 폭좁은 말이 될 것이고, 오히려 결혼이라는 제도보다도 한정된 의미를 갖을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요즘 사랑에 대해서 연재한 것을 읽고 있노라니 옛날 생각이 나네요.
감상적이지 말자.
아무리 생각해도 명문일세 ㅋㅋ
일이 그렇게 바쁘지 않다보니.. 구조론 켜놓고 글 읽는게 저의 낙이지요..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