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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14136 vote 0 2017.04.29 (16:57:37)


    아홉째다. 30대 여성이고 오래된 커플이다. 스스로 책임질 나이가 되면 준비된 돈이 적더라도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다. 나이가 들면서 현실적인 조건이 보이기 시작한다. 자신의 직장과 상대방 형편과 양가부모 입장을 고려해야 한다. 남자친구는 몇 년만 참자고 끊임없이 이해와 기다림을 요구한다. 이제 결혼을 말하는게 자존심 상한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에 대한 강신주 답변은 사랑에 돈이 중요하냐는 거다. 내담자는 속물이고 유유상종인 법이니 상대편도 속물이라 속물끼리 만났다는 거다. 사랑하면 물불 가리지 말고 바로 결혼해야지 뭐 그렇게 재는게 많은가 이런 거다. 황당하다. 강신주는 확실히 사랑중독자다. 그런데 왜 사랑이 중요한가? 사랑을 위해 모든걸 걸어보라는 식의 말이 독자에게 먹히는 아부이지만 내담자와 상관없다.


    강신주는 이상적인 사랑, 지고지순한 사랑을 설파하고 싶은 거다. 소설 쓰고 있네. 그런게 어딨어? 장난하나? 말했듯이 부족민 세계에 사랑은 없다. 사랑은 현대의 산물이며 개인이 의사결정주체로 등극한 거다. 부족민은 부족단위로 의사결정한다. 봉건시대에도 사랑은 없었다. 중매결혼이기 때문이다. 춘향과 몽룡의 로맨스는 특별한 경우다. 그러다가는 다리몽둥이 부러지기 다반사다.


    구조론으로 보면 존엄, 자유, 사랑, 성취, 행복 순이다. 존엄이 으뜸이고 자유가 다음이며 그것을 추구하다보면 저절로 사랑하게 된다. 사랑은 자신을 높이는 방법인 것이다. 사랑의 본질은 역시 신분상승이다. 결혼하면 어른이다. 결혼하지 않으면 미성년자 취급을 당한다. 심리적인 신분상승을 위해 결혼하는 것이다. 어른대접을 받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옛날에는 16살이면 결혼했다.


    지금은? 상투 안 틀었다고 하대하는 일 없다. 열두어 살 먹은 꼬마신랑이 장가 못간 떠꺼머리 총각에게 반말하는 모습은 볼 수 없게 되었다. 현대사회라면? 결혼에 나이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형편따라 늦출 수도 있다. 강신주가 강조하는 ‘둘만의 경험’과 ‘주인공 되기’는 구조론에서 말하는 존엄, 자유, 사랑, 성취, 행복에서 존엄과 자유를 의미하는 것이다. 주인공은 존엄한 존재이다.


    사랑하면 존엄해질 수 있다. 둘만의 공간에서는 자유롭다.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다. 홍대앞 거리에서 열정적인 키스를 해도 상관없다. 그것은 자유다. 사랑은 존엄과 자유를 주는 것이다. 이 정도는 강신주도 알고 있다. 그런데 말이다. 그게 목적이 되면 안 된다. 사랑하기 위한 사랑이라면 억지가 되는 것이다. 존엄과 자유를 위해 억지로 사랑을 위조한다면 한심하기 이를데 없다.


    사랑의 본질은 운명적인 장소에서 운명적인 순간을 맞이했을 때 목숨을 건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느냐다. 청소년은 부모의 압박과, 학교의 압박과, 취직의 압박으로 늘 억압당하고 있으므로 사랑이라는 탈출구가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서른이 넘어가면 잔소리하는 부모도 없고, 대학입시 앞두고 성적걱정도 없고, 이미 취직했으니 취직걱정도 없다. 그러므로 사랑이 탈출구는 아닌 거다.


    내담자는 서른이 넘었다. 사랑의 모험을 할 나이는 아니다. 춘향과 몽룡의 모험은 열여섯 때다. 열여섯이면 한창 압박받을 나이다. 미래에 대한 불안, 선생님의 갈굼, 가족들의 기대, 친구와의 갈등 이런 걸로 미치고 폴짝 뛸 판이므로 열정적인 사랑으로 도피해도 괜찮은 것이다. 그럴 때는 정말이지 뭔가 수를 내야만 한다. 인생을 통째로 흔들어버릴 모험적인 결단이 필요한 시기다.


    강신주는 억지 사랑을 강요하고 있다. 사랑의 본질은 인생에 한번쯤은 누군가를 위하여 목숨을 걸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걸로 충분하다. 사랑을 무슨 게임에서 만렙 채우는 문제로 여기면 곤란하다. 당신이 만약 지하철에서 위기에 처한 사람을 보고 단 1초의 주저함도 뛰어들어 구할 수 있는 마음가짐이 있다면 당신 내면에는 불같은 에너지가 들어차 있는 것이고 그것이 바로 사랑이다.


    만약 그렇다면 한 사람과 연애를 하든 말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내 안에 그러한 불이 타오르고 있어야 한다. 사랑은 그 불씨가 살아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입증하는 하나의 방법일 뿐 반드시 솔로들 염장지르는 연애질 하며 가로수길 모퉁이에서 끈적한 장면을 연출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진정 중요한 것은 당신의 내면에 그러한 불씨가 여전히 살아서 활활 타오르고 있는가이다.


    본질은 신분상승이다. 한 사람을 사랑하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자기 자신을 어떻게 대접하는가다. 사랑하는 사람은 자신을 주인공 대접한다. 자신을 어른대접 한다. 부모 눈치 보고 돈계산 하면 눈치를 보는 것이다. 사랑은 에너지를 주는 것이며 에너지를 가지면 결단할 수 있다. 그것을 입증하기 위해 무리수를 쓴다면 곤란하다. 강신주의 주장은 사랑을 입증하기 위해 오버하라는 거다.


    필요없다. 결단해야 할 때 결단할 수 있느냐가 중요할 뿐 굳이 결혼해서 그것을 입증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사랑을 증명하려 들지 말라. 자신을 높이는게 중요하다. 둘이 딱 붙어서 한 쌍의 바퀴벌레 되어 알콩달콩 깨를 쏟아야 하는건 아니다. 그것은 바보같은 흉내내기다. 운명적인 순간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걸 수 있는 자세를 갖추고 있으면 충분하다. 부디 내 안의 불을 꺼트리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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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드시 솔로들 염장지르는 연애질을 해야하는 것은 아닙니다. 질풍노도의 시기에는 치열한 그림이 나와주어야 합니다. 그러나 서른이 넘어서 제임스 딘 청춘영화의 한 장면을 만들어 보려고 무리수를 쓴다면 곤란합니다. 운명적인 순간을 만났을 때 목숨을 건 결단을 할 수 있도록 내 안에 에너지를 충전하고 있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그 에너지가 반드시 결혼이라는 형태로 입증되어야 하는건 전혀 아닙니다.  


[레벨:17]눈마

2017.04.30 (12:02:08)

구글뉴스나 다음같은 시덥잖은 뉴스보다가 요즘 동렬님 글 읽으면 정신이 바짝 딘장하오.

삶에 대한 태도가 모든걸 결정합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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