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째 꼭지. 또 시시한 이야기다. 게다가 분량이 짧다. 이 정도 분량이면 하루에 두 편씩 쳐내야 할텐데. 내담자는 아직 연애를 한 번도 안해봤다고. 상대를 정말 사랑하고 있는지 내 마음을 내가 몰라. 연애세포가 없어서 그런 건지. 진짜 사랑인지를 어떻게 알 수 있는지, 어떤 사람을 좋아하고 있다는 징조는 무엇인지? 대략 이런 질문이다. 질문이 이상하다. 그러니까 연애는 안했어도 남자는 있다? 연애를 안 해보고 어떻게 상대방을 사랑하는지 알 수가 있어? 당연히 모르지. 말이 안 되는 질문이다. 이에 대한 강신주의 답은 별게 없다. 징조는 느낌이다. 느낌이 올테니까 기다려봐라. 행복이 충만한 느낌을 기다려보라. 같이 있으면 충만감을 느끼고 떨어져 있으면 결핍감을 느끼는 그런거 있다. 끝. 하나마나한 소리. 사랑은 에너지다. 가슴이 뜨거워져서 밤잠을 못 이룰 정도가 되어야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다. 다른 사람에게 물어볼 정도면 그것은 당연히 사랑이 아니다. 사랑은 전략이다. 전략에는 전술이 따른다. 전술은 계획이 따른다. 사랑은 계획이다. 계획에는 아이디어가 따른다. 백가지 천가지 아이디어가 떠올라 잠을 못 이루게 된다. 사랑은 호르몬을 매우 분비시킨다. 사랑하면 예민해진다. 날씨가 맑아도 축복이 내려진 것 같다. 날씨가 흐려도 촉촉한 감상에 젖어든다. 온 몸의 세포가 깨어난다. 굳이 남녀간의 사랑까지 안 가도 그런 경험을 한다. 부모가 돌아가셔도 고통을 느낀다. 친구와 헤어져도 상처를 받는다. 부모의 자식에 대한 사랑도 같다. 얼굴만 봐도 기운이 난다. 동물을 사랑해도 그렇다. 하루종일 신경이 쓰인다. 사랑하고 있는지 모를 리가 없다. 게임중독자가 게임을 사랑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얼마나 많은 시간을 거기에 허비하고 있는가? 작가가 작품에 집중하는 것도 그렇다. 연주자가 신들린 듯이 연주한다 해도 그렇다. 제 새끼를 구하기 위해 맹수에게 달려드는 사슴이라도 그렇다. 당연히 목숨을 건다. 굳이 사랑까지 안가더라도 인간은 계획할 때 흥분하게 된다. 결론을 내리자. 사랑하느냐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에너지가 있느냐가 중요하다. 전두환이 독재를 해도 아무런 생각이 없는 사람이 사랑을 논한다면 웃긴 거다. 그건 가짜다. 사람을 사랑하기 앞서 내 안에 에너지의 존재를 증명해야 한다. 독재를 미워하지 않으면서 사람을 사랑한다면 거짓말이다. 못생긴 자동차가 거리에 즐비해도 열받지 않는 사람이 많다. 그러면서 예술을 사랑한다면 거짓말이다. 이발소 그림을 보면 부숴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껴야 한다. 등산복 입은 아저씨나 아줌마 파마를 한 사람을 보면 화가 나야 한다. 비뚤어진 것을 보고 분노하지 않는 사람이 미인을 사랑한다면 거짓말이다. 이명박근혜의 추태를 보고 분노하지 않으면서 미인의 아름다움이 와닿는다면 거짓말이다. 미와 추는 정대칭이 된다. 안철수의 추태를 보고 화를 내는 사람이라야 미인의 미를 칭송할 자격이 있다. 자기 안에 에너지가 없는 사람이라면, 불의에 분노하지 않는 사람은, 추악한 장면을 보고도 불쾌해 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그 안에 사랑이 없는 것이며 사랑이 없는 사람이라면 사랑의 징조 따위 없는 거다. 조선왕조 시대 시골 아낙네는 사랑 따위 안 했다. 부족민 세계는 사랑이 없다. 사랑은 근대 하고도 개인주의 산물이다. 개인주의가 발달하지 않은 사람은 사랑이 없다. 집단에 집착하는 애국아저씨들은 사랑이 없다. 그들이 사랑한다고 한다면 거짓말이다. 사랑은 인간이 하는 것이다. 짐승들은 사랑을 안 한다. 발정기에 잠시 얼쩡대다 끝내버린다. 그건 사랑이 아니다. 사랑은 큰 계획을 품는 것이며 큰 계획에서 큰 사랑이 나오는 것이다. 큰 계획은 큰 만남에서 나오는 것이며 신과의 정직한 대면 없이는 사랑이 생성될 리 없는 것이다. 조선왕조 시대라 치자. 누구를 사랑한다고 말하면 비웃었다. 스파르타에 가서 사랑타령 하다간 맞아죽는다. 사랑? 그딴거 없다. 배우자는 국가에서 정해준다. 첫날밤도 밤에 잠시 들르는 것인데 그것도 집단적으로 행사를 치른다. 서른살이 되어야 부인과 생활한다. 사랑은 천하와 대면한 자 만의 특권이다. 천하를 만나고 천하의 계획을 찾아낸 사람의 특권이다. 천하의 계획을 나의 계획으로 삼은 자 만이 사랑할 자격이 있다. 계획을 가진 사람은 운명적인 만남의 현장에서 피가 끓어오른다. 그리고 목숨을 거는 것이다. 그것은 천하의 계획 안에 있는 것이다. 신에 대한 믿음을 입증하기 위해 신을 믿고 일직선으로 가버린다. 사랑해서 무언가를 얻겠다면 가짜다. 사랑 그 자체를 완성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그 만남이 운명적인 만남인지가 중요하다. 사랑은 상대방에 대한 태도가 아니다. 신에 대한 태도이면서 자신에 대한 태도이다. 미식가는 음식을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제 혀를 걱정한다. 미식가가 음식을 두고 까다롭게 구는 것은 제 혀를 아껴서지 음식이 신경쓰여서가 아니다. 상대방은 어떻든 상관없다. 내 안에 가득차 있는지가 중요하다. 사랑이라는 이름의 배터리가 엔꼬되지 않고 가득 충전되어 있어야 한다. 지사가 날이 선 칼을 품고 천하를 도모하듯이 큰 뜻을 품는 것이다. 그리고 동지를 만나고자 하는 것이다. 사랑의 징조같은건 없다. 사랑은 대장장이가 칼을 벼르듯이 스스로 일구는 것이다. 큰 뜻을 품어야 큰 사랑이 영근다.
사랑의 징조를 찾는다면 그것은 사랑이 무의식적으로 찾아온다는 믿음인데 아마 만화책을 너무 많이 봐서 잘못 생각한듯 합니다. 사랑은 자신이 의식적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사랑하겠다는 야심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목숨을 거는 훈련을 하고 이미지 트레이닝을 해야 합니다. 사랑은 위대한 도전이며 봉건시대 부족민은 꿈도 못 꾸던 것이고 현대인만의 특권입니다. 개인에게 의사결정 영역이 주어졌다는 거죠. 모든 것을 국가에 바쳐야만 했던 스파르타인은 꿈도 꾸지 못했습니다. 노예에게는 사랑할 권리가 없었습니다. 각자 자신의 계획을 지닐 수 있게 된 것은 현대의 사정입니다. 꿈이 없는 사람에게 사랑은 없습니다. 사랑을 제조하여 쌓아두지 않은 사람이 어딘가에서 사랑이 찾아오길 기대한다면 동물이 발정기를 기다리는 짓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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