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학으로 갈아타라 아침에 눈 뜨고 보니 지구가 하나 주어져 있다면 좋은 소식이라 하겠다. 웬 떡이냐? 하고 손을 대자 풍선처럼 터져 버렸다면 낭패다. 그 지구 속이 꽉 들어찬 알짜배기 지구라야 한다. 쭉정이 지구라면 좋지 않다. 그런데 장님이라면 슬픈 거다. 좋은 지구 하나 챙기고도 알짜인지 쭉정이인지 분간할 방법이 없다. 누구나 자기 지구를 하나씩 받아쥐고 태어나는 것이다. 여러분이 받은 지구는 알짜 지구인가, 허접 지구인가? 누가 내게 포르쉐를 한 대 선물로 사줬는데 운전면허가 없다면 낭패가 아니겠는가? 탈 수 없는 포르쉐보다 싸구려라도 탈 수 있는 자전거가 나을 것이다. 당신에게 지구는 그다지 운전할 수 있는 별인가? 인간은 의미를 추구한다. 반응이 있어야 한다. 응답함이 있어야 한다. 누가 나를 불러준다면 좋겠다. 내 프로포즈를 받아주었으면 좋겠다. 내가 외치는 주장에 누가 맞장구쳐주면 좋겠고 내가 무료할 때 누가 부르러 와주면 좋겠다. 그런데 말이다. 당신은 부름에 의해 이 별에 초대받은 존재임을 깨닫고 있는가? 허락된 잔치를 즐길 준비가 되어 있는가? 타인과 경쟁하려는 사회적 본능과 자기만족을 추구하는 생존본능을 극복하고 미학의 완전성으로 갈아탈 일이다. 본능은 남의 게임이고 미학은 자기 게임이다. 인간이 살아가며 '난 이게 싫어.' 하고 깐깐한 규칙을 정하는 데는 자기 주도권을 조직해 보려는 의도가 있다. 가난한 사람은 대충 속 편하게 산다. 돈을 벌면 결벽증 환자가 된다. 왜? 가난할 때는 남의 게임에 박수부대로 동원되지만 돈을 벌면 이제 자기 게임을 할 수 있으므로 갑자기 깐깐한 심사위원장의 태도가 되는 것이다. 변기공주 박근혜가 그냥 되는게 아니다. 주도권을 잡으려고 일단 대립각을 세우고 보는 거다. 잘못되면 강박증이나 망상장애로 발전한다. 예술로 승화되면 이상주의가 되고 완벽주의가 된다. 예술가들은 고도의 집중력이 있다. 엉뚱한 것에 집중하면 편집증이 된다. 연주자라면 음악에만 집중해야 한다. 객석의 청중 속에 나를 해치려는 자객이 숨어있지 않을까? 이런 엉뚱한 생각을 한다면 곤란한 거다. 운전면허가 없는 증거다. 화가든 연주자든 작가든 예술가는 자격이 있어야 한다. 대표성을 획득해야 한다. 그게 없으면 집착과 망상에 빠진다. 결벽증이든 편집증이든 사소한 것에 의미를 부여하려는 태도가 공통점이다. 의미를 찾는데 의미가 보이지 않으니 엉뚱한 것에다 억지로 의미를 부여하곤 하는 것이다. 문 앞에 휴지가 떨어져 있는데 나를 해치려는 빨갱이가 다녀간 증거다 하고 집착하는 게 정신병자의 특징이다. 자신을 피해자 포지션으로 놓고 도움을 호소하는 자는 일단 문제가 있다. 미성숙한 태도다. 그들은 '나'에 잡혀 있다. 그들의 모든 주장은 '나'로 시작해서 '나'로 끝난다. 남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는 거다. 운전수가 자동차에 관심이 없고 무사가 칼에 관심이 없고 교사가 학생에 관심이 없고 정치인이 국민에 관심이 없다면 무면허다. 작가는 원고에 관심이 있어야 하고 연주자는 곡에 관심이 있어야 한다. 관객과 공유되고 독자와 공유되는 대상을 제시하지 않고 내가 어쨌네 하며 '나'를 주장한다면 유아틱한 태도다. 음악가는 곡 안에서 기승전결을 찾고, 화가는 그림 안에서 기승전결을 찾아야 한다. 그것이 눈에 보이지 않으니 박근혜처럼 변기에서 무언가를 찾는다. 독재자 차우세스쿠는 영국 여왕과 악수를 하고 그 자리에서 바로 알콜로 손을 소독했다고 한다. 김정은 패션을 봐도 다양한 강박장애를 앓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들은 무언가를 찾으려고 한다. 찾아서 연결하려고 한다. 찾아도 보이지 않으니 더욱 집착한다. 자신이 무엇을 찾고 있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자신이 찾고 있는 대상을 모르니 대신 방해자를 발굴한다. 누군가 음모를 꾸며서 나를 해치려 한다고 우긴다. 세균이 묻었다고 말한다. 빨갱이가 나타났다고 소리를 지른다. 진짜로 찾는 것은 구중궁궐에 갇힌 공주인 자신을 외부세계와 연결해 줄 사람인데 그 내막을 모르니 세균이다. 빨갱이다. 간첩이다. 음모다. 하고 방해자를 발굴하는 것이다. 소통하고 싶은 것이다. 진정으로 찾아야 할 것은 미학적 완전성이다. 기승전결로 이어가는 사건의 맥락이다. 미학이 널리 소통하도록 한다. 음악이든 미술이든 드라마든 미의 본질은 소통에 있다. 소통하려면 기승전결의 기에 서야 한다. 소통하게 하는 것은 만남이며 그 만남의 완전성이다. 오지게 만나야 한다. 인간이 꽃을 좋아하는 것은 꽃은 연결이고 소통이기 때문이다. 자연의 완전성을 암시한다. 인간은 아름다운 것에서 본능적으로 그것을 느낀다. 만남과 소통의 완전성을 포착하기다. 그 내막을 알아야 사건의 기에 설 수 있고 주도권을 잡을 수 있고 비로소 자기 게임을 설계할 수 있다. 게임에 이길 수 있다. 만남은 위태로운 것이며 완전하면 통하고 불완전하면 막힌다. 완전한 것 하나가 불완전한 것 백 개보다 낫다. 존재는 사건이며 사건은 부름과 응답이다. 눈 뜨자 지구가 하나 떠억하니 내게 주어져 있다면 당신은 부름받은 것이며 초대받은 것이며 그러므로 응답해야 한다. 당신은 충분히 반응하고 있는가? 인간은 라디오와 같다. 당신에게 좋은 라디오가 있어봤자 나오는 건 평양방송이다. 개인의 성공에서 의미를 찾는다면 라디오가 좋다는 말과 같아서 허무한 거다. 방송국이 좋아야 한다. 그 방송국에 시청자가 넉넉하게 있어야 한다. 당신이 그 방송의 시청자가 되어야 한다. 축구를 이겨봤자 동네축구라면 곤란하다. 월드컵은 시청자가 있어야 한다. 좋은 방송국에 좋은 콘텐츠라야 의미가 있다. 좋은 지구를 한대 받았으면 마땅히 운전면허를 갖추어야 한다. 작동시켜야 한다. 우리는 독점되는 라디오를 받은게 아니라 공유되는 방송국을 받은 것이다. 개인의 사회적 성공과 불로장수와 쾌락과 행복에서 의미를 찾는 태도는 라디오를 닦고 광내는 것과 같다. 그래봤자 고장난다. 공유되는 방송국이 좋고 방송하는 콘텐츠가 좋아야 한다. 우리가 공유하는 것은 천하다. 의미는 천하에 있다. 천하가 좋아야 한다. 개인이 좋아봤자 의미없다. 방송국이 좋다는 것은 이 지구가 제대로 동작하는 지구이고, 이 우주가 제대로 작동하는 우주인가다. 콘텐츠가 좋다는 것은 인류문명이 시청자가 참여하는 좋은 방송이냐다. 일방적으로 떠들어대는 평양방송 좋지 않다. 내가 직간접으로 참여해야 좋은 방송이 된다. 내가 반응해야 좋은 것이다. 내가 직접 출연하지 않더라도 내편에 서는 방송이어야 한다. 미학의 의미는 그러한 소통의 완전성에 있다. 우주가 온통 번쩍거리는 황금으로 되어 있다고 해도 좋지 않다. 내가 백 살까지 살고 천 살까지 살고 만 살까지 산다고 해도 좋지 않다. 내가 성공하고 출세하고 돈 벌어도 좋지 않다. 그것은 저급한 생존본능과 사회적 본능의 충족일 뿐이다. 혹은 콤플렉스의 보상이다. 그것은 사회의 설계한 게임이지 내가 설계한 게임은 아니다. 성공, 출세, 행복, 쾌락은 사회가 인간을 길들이고 통제하는 수단인 것이다. 부족민은 신체를 훼손하고 문신을 새겨 소속감을 느끼고 현대인은 돈으로 소속감을 느낀다. 북한은 군중집회나 집체예술로 소속감을 느낀다. 좋지 않다. 자신의 게임을 일으켜야 한다. 미학적 감각을 일깨워야 한다. 완전한 것이 좋은 것이다. 통하는 것이 좋은 것이다. 반응하고 응답하는 것이 좋은 것이다. 서로 손을 내밀고 불러주는 것이 좋은 것이다. 멀쩡한 지구 하나를 챙겨 받은 것이 좋은 것이다. 그렇다면 이 지구를 연주할 수 있어야 한다. 운전할 수 있어야 한다. 포르쉐가 있어도 운전할 줄 모르고 바이얼린이 있어도 연주할 줄 모르면 의미가 없다. 남을 이겨봤자 소용없고 자신을 이겨봤자 소용없다. 라디오는 아무리 좋아도 한계가 있다. 방송에 출연해야 좋은 것이다. 천하에 출두하지 않으면 안 된다. |
감솨요~
"미학적 감각을 일깨워야 한다. 완전한 것이 좋은 것이다. 통하는 것이 좋은 것이다. 반응하고 응답하는 것이 좋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