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록
read 4956 vote 0 2006.10.27 (16:55:47)


언어를 깨달음

깨달음을 말하는 사람은 많다. 그러나 진정 무엇을 깨달았다는건지 모르겠다. 생산이 있어야 한다. 토해놓은 것이 있어야 한다. 낳음이 있어야 한다.

예수는 기독교를 낳았고 석가는 불교를 낳았다. 불교건 기독교건 나름대로 꾸려진 소통의 체계다. 그 중심에 이상주의가 있다.

불교는 불교식 이상주의가 있고 기독교는 기독교식 이상주의가 있고 유교는 유교식 이상주의가 있고 사회주의는 사회주의식 이상주의가 있다.

이상주의가 심이면 미학이 날이다. 불교에는 불교미학이 있고 기독교에는 기독교 미학이 있고 유교는 유교미학이 있고 사회주의는 사회주의 미학이 있다.

모든 형태의 이상주의는 신의 완전성으로부터 연역되는 것이다. 종교든 사상이든 신의 방송국에서 넘겨받아 중계하는 지방방송에 불과하다.

종교도 학계도 불완전하다. 종교는 참여자 숫자가 늘어날수록 소통의 질이 낮아진다. 학계는 질의 깊이에 다다를수록 소통의 폭이 협소해진다.

가족은 작은 소통의 단위다. 종교는 가족 보다 약간 더 큰 규모의 공동체를 이루고 소집단 안에서 내부적인 소통에 성공할 뿐이다. 그것은 교회다.

국가나 세계 단위로 나아가면 종교가 도리어 소통의 장벽이 되곤 한다. 종교가 오히려 모든 불화의 원인이 된다. 허다한 전쟁이 종교 때문에 일어난다.

반면 학계의 소통은 국경을 초월한다. 민족도 초월하고 성별도 초월하고 계급도 초월한다. 학계는 기본적으로 세계 단위로 소통한다.

학계의 폐단은 분야가 세밀하게 나누어져 있다는데 있다. 한 분야의 정상에 다다를수록 소통의 폭은 점차 좁아지고 만다.

이론물리학의 정상이라면 전 세계를 통털어 몇 명이 알고있을 뿐이다. 학계는 전공에 따라 장벽을 세우고 좁은 범위 안에서 각기 따로놀고 있다.

한국에서 한의학과 양의학은 소통하지 않는다. 서로 상대방이 존재를 인정하지 않으려 든다. 같은 양의학 안에서 의사와 약사가 충돌하기도 한다.

종교도 학계도 불완전하다. 가족도 국가도 민족도 불완전하다. 완전한 공동체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가난한 개인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나의 계획은 종교와 학계를 넘어 온전한 소통의 체계를 세우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공동체와 집단이 아닌 개인이 재발견되지 않으면 안 된다.

종교는 교회가 수단이고 학계는 강단이 수단이다. 개인에게 있어서 소통의 수단은 언어다. 인간에게 있어 소통의 1차적인 수단은 언어다.

나는 언어를 발굴하고 그 언어의 새로운 쓰임새를 찾아낸다. 나는 언어를 가공하는 장인이다. 나의 작업에 의해 언어가 더 많은 쓰임새를 가지기 원한다.

이 기록은 나의 언어를 간추려 묶고 있다. 나의 언어가 온전한 소통의 체계를 확립해 나아감에 있어 기여가 있기 바란다.

언어 이전에 마음이 있다. 언어는 마음을 기호에 실어 운반하는 수단에 불과하다. 결국 참된 진리의 승부는 마음에서 난다.

교회도 아니고 강단도 아니고 국가도 아니고 조직도 아니고 집단도 아니고 시스템도 아니고 강령도 아니고 교리도 아닌 마음에서 진실이 이루어진다.

그 마음에 자유를 주고자 한다. 마음이 헤엄칠 수 있는 바다를 알려주고자 한다. 그 마음이 또다른 마음과 만나 사랑하기 바란다.

영웅은 이름을 남기고 호랑이는 가죽을 넘기고 철학자는 언어를 남기고 개인은 사랑을 남긴다. 인간은 소통하고자 하고 그 소통의 결실은 사랑이다.

깨닫고자 하는 이유는 자유를 위해서다. 자유는 사랑할 자유다. 이것이 본질이다. 이 근본이 바르게 설 때 종교와 강단과 국가의 불완전은 극복된다.


나는 무엇을 깨달았는가?

나의 이야기는 인생으로부터 시작된다. 두어 살 꼬마다. 어느 순간 눈을 떠 보니 엄마가 시야에서 사라졌다. 문득 두려움이 엄습해 왔다.

나는 그만 울음을 터뜨렸다. 두려워서 울었다. 그런데 내가 무엇을 두려워 했지? 문득 내가 덩그렇게 내던져진 존재임을 알았다.

그때부터 줄곧 머리 속을 떠나지 않는 의문이 하나. ‘엄마가 보이지 않는다.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이제부터 어떻게 해야 하지?’

그렇다. 내 앞에는 인생이 한 뭉텅이 던져져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 길을 가야한다. 그렇다. 내가 울었던 것은 인생이 두려워서였다.  

엄마가 사라져 버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내 존재가 사라져 버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전략을 세워야 했다. 대비해야 했다.

왜 사는가 하는 의문. 나는 누구인가 하는 의문. 지금 당장 무엇을 해야하는가 하는 의문. 돌발상황에 대비한 마음의 준비를 위한 방어논리는?.

인생은 지금 이 순간들의 집합이다. 이 순간이 있고 그 다음이 있고 또 그 다음이 있다. 그렇게 끝없이 이어져 있다.

지금 무언가를 만난다. 상황에 맞닥드린다. 그 만남들의 모임. 접촉과 대면으로 된 점들의 집합. 점들이 이어져 선을 이루고 선은 이어져 각으로 꺾인다.

만나고 만나고 또 만나면서 점차 상황에 맞물려들고 그렇게 누군가와 짝을 짓고 그 짝과 함께 서고 그러다가 하나되고 그렇게 소통한다.

처음은 신경질이지만 점차 정이 들고 점차 서로의 존재를 공유하게 되고 그렇게 소통의 깊이를 더해가는 것이다.

석가는 인생이 고(苦)라고 했지만 나는 인생이 허무임을 알았다. 고는 집착에서 나오고 집착은 멸(滅)해야 하며 그 방법은 도(道)다.

나는 인생이 허무임을 알았고 허무는 고립에서 나오며 그 고립을 끊어내는 것은 의미라는 것을 알았다. 의미는 만나고 맞물리고 함께 서기다.

의미의 끝에 완전이 있다. 인생은 허무이며 허무의 원인은 단절과 고립이고 허무의 결과는 비참이다. 그 비참의 극복은 소통이다. 관계맺기다.

인생은 허무, 허무는 고립, 고립은 단절, 단절을 끊는 것은 의미, 의미는 만남, 만남의 소통, 소통을 가능케 하는 것은 완성이다.

나는 세상이 크게 맞물려 있음을 보았고 그것이 구원의 동아줄임을 알았다. 그 줄 끝에서 신의 완전성을 보았다. 존재는 그 완성으로부터 연역된다.

인간 존재는 신의 완전성을 재현한다. 집단과 사회와 공동체의 조직화 이전에 종교와 학계의 시스템 이전에 각자가 제 자리에서 스스로 완성되어야 한다.

어떻게 스스로를 완성할 것인가? 그 완성은 미학적 완성이다. 미학은 만나기, 맞물리기, 함께 서기, 하나되기, 소통하기의 완성으로 이루어진다.

미학의 내면화는 자유다. 호연지기는 자유의 미학이다. 호연지기는 세상을 통째로 품어안는 기상이다. 가장 넓은 시야에 도달하기다.

종교의 미학은 선(善)이고 학계의 미학은 진(眞)이고 자연의 미학은 미(美)고 개인의 미학은 자유이고 존재의 미학은 성(聖)이다.

사랑은 개인의 완성인 자유에서 세계의 완성인 이상주의로 나아가는 징검다리다. 깨달음은 자유를 얻음이며 자유는 자신에게 사랑할 기회를 주는 것이다.

나는 일찍이 세상이 크게 맞물려 있음을 알았고 그것이 구원이 동아줄임을 알았다. 그 줄의 끝에서 신의 완전성을 보았다. 그리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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