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록
read 5146 vote 0 2007.06.26 (22:52:08)

이런 때
인간이 그립다

내가 바래는 사람은
진리 앞에서 당당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러나 보라..!
막상 눈앞에 닥치면 모두들 회피한다.

아름다운 사람 전태일이 그랬듯이
누구 한 사람 용기있게 나서서 진리의 길을 가면

처음 한 동안은 머뭇머뭇 하다가
결국은 모두들 슬금슬금 그 뒤를 따라가게 된다.

남이 개척한 길을 따르기 쉬우나
자기 스스로는 조금도 헤쳐나가지 못한다.

지금 우리 앞에 놓인 상황..
'1+1=2' 만큼이나 단순하다.

선관위의 결정이 헌법과 합치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초등학교 1학년도 알 수 있다.

민주화 투쟁 50년의 역사
대단한 진리를 새롭게 밝혀낸 것이 아니라

누구나 아는 것을
그냥 실천하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그게 그렇게 힘든 거다.
인간이란 그런 존재이다.

내가 먼저 그 길을 가면
다들 내 뒤를 따를 것이라는 확신이 없기 때문에

신은 언제라도 동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에
그만 약해지고 마는 거다.

왜 인간은 약해지는가?
소통의 단절 때문이다.  

소통하게 하는
'언어의 부재' 때문이다.

기독교인들은 성경이 있기 때문에
신대륙을 찾아나선 청교도의 용기를 낼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언어를 만든다.
자기 자신을 납득시키고

앎과 행동 사이를 연결할 수 있는 언어를.
아는 것을 그냥 실천하게 할 수 있는 언어를.

언어 이상의 언어가 있다.
인간의 언어로는 결코 담아낼 수 없는

그것은 ‘이야기’다.
내 안에서 토해져 나온 삶의 동그라미다.

내가 원하는 것은
작고 동그란 이야기 하나 남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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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건
이야기를 완성하는 능력이다.

인간의 삶은 결국 마디마디 이야기들의 집합이니까.
보통은 선(善)과 악(惡)에 대한 가치판단

반성과 다짐 따위의 정해진 패턴을 따르려 하므로
이야기를 완성시키지 못한다.

권위나 도덕이나 규범이나 신분이나 따위의
쓸데없는 것들을 자꾸만 배치하는 거다.

그것은 롤플레잉 게임에서
쓸데없는 캐릭터와 아이템을 양산하는 것과 같다.

그것들이 대신하여
이야기를 만들어 줄 수는 없다.

진리란 언제라도
자신의 이야기를 완성시킬 수 있는 능력이다.

선과 악, 사건과 교훈, 반성과 다짐의
판에 박힌 레파토리가 아니라

자기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어야 한다.
자기 내부에서 결을 찾을 때 가능하다.

그것은 완성과 재현이다.
제멋대로 흐드러진 자연에서

신의 완전성을 찾고
자기 안에서 그 신의 완전성과 공명하는

내 안의 이야기를 찾아
드러내어 재현해 보이는 것이다.

신의 완성된 모습과 공명할 수 있는 사람이
자기 자신의 이야기를 잉태할 수 있다.

아이들은 언제라도 할 수 있는 것.
어른들은 절대로 못 하는 것.

별도 달도 해도 산도 들도 바람도
다들 자기만의 이야기를 하나씩 품고 있다.

그 자연의 흐드러진 모습에 온전히 나를 맡길때
내 안의 이야기가 술술 풀려나온다.

나의 삶의 완성이 곧 나의 이야기가 된다.
지금 내가 내딛는 걸음걸음이 모여 내 삶의 이야기를 완성시킨다.

별은 언제라도 별 자신을 완성시키려 한다.
그것이 별의 이야기다.

희끄무레한 구름 속에서 조곤조곤 이야기하고
까만 어둠 속에서도 초롱초롱 이야기한다.

초생달을 만나서도 살금살금 이야기 하고
보름달을 만나서도 방긋방긋 이야기 한다.

선과 악, 사건과 교훈, 반성과 다짐이라는
사회에서 먹어주는 걸로 되어 있는 규칙을 벗어나야

별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감추어진 내 안의 진짜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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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하나의 작은 동그라미다.

처음과 끝이 헤어졌다 다시 만나는 것이다.
그렇게 만나서 마침내 완전해지는 것이다.

한강둔치 넓은 밀밭에 누워
파란 하늘 바라볼 때

초록 밀밭은 작은 알 하나 품는다.
파란 하늘 아래 고즈넉히 흐르는 강물 옆에서

그것은 내가 만들고 싶은 동그라미.
내가 기어코 완성하려는 이야기.

서해안 따라 끝없이 펼쳐진
시화호의 너른 풀밭은 내가 좋아하는 곳.

산에서 내려온 고라니 가족이
풀밭을 접수하고 있다.

절로 새로운 생태환경이 만들어진다.
처음은 소금기에 강한 갈대가 오고 그 다음엔 억새가 오고

고라니가 오고 멧새가 오고 황조롱이도 오고
차례차례 손님이 방문하여 하나씩 둘씩 터를 잡는다.

그것은 시화호 습지가 만들어 가는 동그라미.
그렇게 시화호는 작은 이야기 하나 품고 있다.

한강둔치 밀밭이 작은 이야기 하나 품었던 것처럼.
고즈넉히 흐르는 한강이 모른 체 하며 지켜주었던 것처럼

세상 어디를 가도 각자 제 기준에 맞는
미학적 완성의 동그라미가 있다.

한국인은 한국식으로 조그많게 동글동글
중국인은 중국식으로 넓적하게 둥글둥글.

한국인은 작은 계곡에서 안성맞춤으로 빼꼭하게
중국인은 끝없이 펼쳐진 수수밭에서 여유롭게

그렇게 각자 자기 안의 동그라미를 키워 나가다가
더 큰 세상의 동그라미와 만나게 되고

진리의 동그라미를 만나게 되고
하느님의 동그라미를 만나게 되고

큰 동그라미 속에 작은 동그라미가 들어가고
작은 동그라미 속에 더 작은 동그라미가 들어가고

시화호 습지의 넉넉한 동그라미 속에
조그만 멧새의 동그라미와 고라니의 동그라미가 들어가고

신의 넉넉한 동그라미 속에
너의 조그만 동그라미와 나의 동그라미가 둥지를 틀고

세상 모든 동그라미가 각기 제 자리를 찾아가고
세상 모든 동그라미와 마찰없이 공존하고

어미 닭이 스무개나 되는 많은 알을 품어내듯이
세상 모든 동그라미를 품어안고

그 무수한 동그라미들 속에서 나를 찾고 너를 찾고
그렇게 마음으로 먼저 만나고 먼저 통하고

처음 보아도 천년 전부터 보아온듯
어미닭이 제 알을 품듯이 포근하게 감싸 안으면서

자신의 전부를 펼쳐내어 상대의 전부를 초대하는
그런 작은 이야기 하나 완성하고 싶은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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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 인간에게 허용한
자유의 최대한의 지점을 찍고 오지 않은 사람은

신의 진정한 친구가 될 수 없다.
신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알아챌 수 없다.

신의 입장에서는
인간이라는 존재 하나하나가

다 예술작품이니까.
자기 존재를 아슬아슬함의 극한까지

쉬지 않고 밀어붙일 수 있는
진짜 인간 하나를 신은 그리워한다.  

존재의 모든 국면들에서
밸런스와 리듬감의 대결을 탐색하는 방법으로

가장 큰 동그라미를 완성하는 것이
신의 목적이니까.

1만 마리 양떼를 넓은 초원에 풀어놓고
그 양떼가 사방으로 흩어져도

한 사람의 무심한 목자에 의해
완벽하게 통제되는 최대한의 경계를

신은 확보하고 싶은 것이다.
그 목자가 부지런해서 그 통제가 완벽한 것이 아니다.

그 초원이 충분히 넓기 때문에
신의 동그라미는 완벽한 것이다.

양떼들이 목자의 주변을 서성거리며
반복하여 충성다짐이나 하고 있다면  

신은 자신의 위대함을 증명할 기회를 잃는다.
그 광야의 넓음을 증명하지 못한다.

목자로부터 최대한 멀리 벗어나
온전히 독립해 있으면서도

마음으로의 연결을 잃지 않는 것이
신이 증명하고 싶어하는 진정한 완성의 모습이다.

피조물의 위대함이
창조자의 위대함을 증명하는 법이니까.

우리가 스스로 위대해지지 않으면
신은 그만 슬퍼지고 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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