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록
인간의 삶이 숙명도 운명도 아닌 개인의 주체적인 자유의지에 의해 결정되는 것은 모든 가치판단의 궁극적인 척도가 되는 '의미' 때문입니다.

의미는 주어진 특정 주제에 의해 성립하고 그 주제의 성립은 특정한 구성요건의 충족에 의해 결정되는 바 곧 시스템입니다. 그것을 우리는 실존이라 부릅니다.

고로 의미없는 것, 가치없는 것, 일없는 것은 일단 배제되고 일, 의미, 가치의 전제로 삶이, 삶의 질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한 인간은 60조개의 세포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 각각의 세포는 하나의 독립한 생명체들입니다. 곧 인간은 60조개의 바퀴벌레들이 모여 세운 하나의 독립정부라고 할 수 있지요.

의미(일)를 만드는 것은 시스템, 그 시스템이 바로 인간 안에 내재한 독립정부, 곧 60조개의 바퀴벌레(세포)들이 세운 하나의 독립국인 것입니다.

숙명은 그 독립정부의 건설과정에서 정한 규칙(헌법)들로서 이 규칙이 깨질 때는 정부가 해체됩니다. 곧 축 사망이지요.

운명은 그 독립정부의 외교관계로 독립정부의 관할구역을 한정합니다. 곧 외적인 조건의 소극적인 개입이죠. 그 개입한계가 분명한.

자유의지는 그 독립정부의 내부적인 의결사항으로서 곧 진보입니다. 인격적으로 성숙하고 발전하는 것이지요.

숙명론은 그 독립정부의 건설과 해체, 곧 탄생과 죽음에 대하여만 한정적으로 쓰여지는 말이며 헌법이 한번 정해지면 되도록 수정해서 안되듯이 숙명은 한번 탄생과 한번 죽음으로 역할이 끝납니다.

운명론은 그 독립정부가 밖으로 영토를 팽창하고 타 국가과 마찰하는 경우입니다. 즉 전쟁에 한하며 그것은 인생에서의 수많은 다툼들로 표상합니다.

귀하는 오늘 몇번의 싸움을 하였죠. 그 싸움 범위만큼 그대 운명의 관할구역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생의 대부분, 특히 가치있는 것들 거의 전부는 숙명 - 태어나거나 죽거나 하지 않으며(가끔은 그런 일도 있으나) 운명 - 누구와 다투지 않으며(그런 일 많지만 가치없는 것을 제외하고) 스스로 자각하고 성숙하여 가는 것입니다. 곧 자유의지죠.

한 인간은 60조개의 바퀴벌레(세포)가 건설한 하나의 독립국입니다. 숙명이라는 헌법으로 탄생하였고 또 멸망할 것이며 운명이라는 외교, 혹은 전쟁으로 싸워나갈 것이며 자유의지라는 성숙으로 진보할 것입니다.

그대가 진정 관심가져야 할 부분은 인격적 성숙과 진보입니다. 그것만이 의미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살면서 무수히 죽으려 하지만, 죽음을 의식하지만 실로 한번 밖에 죽지 않듯이 숙명은 그대 삶의 언저리에서 지속적으로 그대를 감시하지만 단 한번 밖에 개입하지 않으며

우리 살면서 무수히 충돌하고 투쟁하지만 오늘 하루를 살기 위해 타방에 침투하고 약탈하고 침략하며 잡아먹은 한마리의 닭과 한됫박의 쌀에 묵념하고 휴전조약을 체결할 필요 없듯이 대개 의미없습니다.

소박한 감상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일생 죽음을 의식하고 죽음을 피해가려 애쓰지만 죽음은 단 한번밖에 일어나지 않는 사건입니다.

그대 일생 외부의 적과 투쟁하고 경쟁하고 쓰러뜨리고 이겨내곤 하지만 결코 비분강개할만한 일이 못되는 값싼 눈물, 어리석은 연민일 뿐 의미없습니다.

그대가 원하는 가장 핵심적인 가치 곧 의미는 숙명도 운명도 아닌 그대의 내적인 성숙 곧 인격성의 정도에 의해 측정되는 만큼 그대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숙명이나 운명은 그대의 삶의 질을 결정하는데 실로 영향을 미치는 바가 없다할 것입니다.

숙명을 탓하는 것은 마치 마라톤선수가 '나는 10초에 끝나는 단거리가 편한데 왜 두시간이나 조빠지게 마라톤을 해야되는가?' 하고 투덜되는 것과 같습니다.

운명을 탓하는 것은 마치 단거리 주자가 '조 빨간빤쭈는 내가 싫어하는 선수인데 하필 나와 한조가 되었는가?'하고 탓하는 것과 같아서 의미없습니다.

그대가 탓해야 할 것은 그대 자신의 실력입니다. 부질없는 탄식을 버리세요. 신경쓰지 마세요.

숙명은 겨우 두번 그대 인생과 맞닥뜨릴 뿐이며 이미 한번은 맞닥드렸으니 한번 뿐이 남지 않았고 운명은 일생 그대를 괴롭히며 신경쓰이게 할 것이나 역시 부질없는 신경과민일 뿐 진정 그대의 삶의 가치를 결정하는 것은 그대 자신의 자유의지입니다.

그대의 성적을 결정하는 가장 핵심적인 변수는 그대의 노력여하이지 선택된 종목 여하나 추첨된 조별리그 따위가 아닙니다.

고로 숙명이나 운명은 논의가치가 없는 것이며 하나의 빤쭈에 불과한 것이며 빤쭈 가지고 툴툴거리는 선수 치고 잘하는 선수가 없습니다.

그대는 단지 최선을 다하기만 하면 되며 그 경쟁은 외부의 적들과의 경쟁이 아니라 그대 자신의 인격성의 진보와의 경쟁입니다.

그대 관심가지는 숙명, 혹은 운명이란 선수가 경주하며 행여 우승이라도 하게되면 금메달을 목에 걸고 카메라 앞에서 어떤 포즈를 취하는 것이 적당한가 하는 불필요한 고민에 빠진 것과 같아서 매우 한가한 잡념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그대가 최선을 다한다면 자연스러운 포즈가 연출될 것이며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면 사정없이 어색한 포즈가 연출될 것입니다.

그대의 삶의 평가는 그 포즈에 의해 결정되며 그대가 포즈를 얻거나 잃거나 간에 그대의 자유의지가 결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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