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이야기
read 1403 vote 0 2020.10.10 (23:09:34)

   갈대일까 억새일까?

   가을은 흔들리는 갈대의 계절이다. 언제부터인가 아는 척 하기 좋아하는 바보들이 갈대냐 억새냐 하고 논쟁하기 시작했다. 때로는 갈대, 억새 싸움에 부들이 끼어들어 삼파전을 벌이기도 한다. 꼬맹이들이 억새를 보고 '와! 갈대다.' 하고 감탄사를 내뱉으면 머리가 굵은 형들은 심각한 얼굴로 '아냐! 저건 억새야. 임마.' 하고 핀잔을 준다.


    분위기 깨잖아. 그 풍경이 씁쓸하다. 아무래도 갈대가 더 가을 느낌인데 말이다. 갈대와 가을. 라임이 맞아. 압운이 있어. 자동으로 시가 되잖아. 가을 남자는 누구나 시인이지. 좋잖아. 그런데 왜 억세게 기분 나쁜 억새냐고? 억새는 악을 쓰고 있어. 분위기 죽어. 그런데 알고보면 억새는 갈대다. 모르는 사람들이 헛된 논쟁을 일삼는 거다.


    요즘은 억새와 갈대를 식물 종으로 구분하지만 옛날에는 품종 개념이라는게 없었다. 뭘 따져? 따지긴. 전국에 많은 갈재, 갈고개, 갈뫼에 갈대는 없고 억새밭이 있을 뿐이다. 그런데 억새재, 억새고개, 억새뫼는 없을까? 억새가 갈대이기 때문이다. 옛날부터 그 풀을 갈대로 불렀으면 갈대가 맞다. 억지 쓰지 말고 인정할 것은 인정하자. 


    원래 인간의 관심은 쓸모에 있다. 부족민들은 대개 쓸모있는 것과 쓸모없는 것으로 구분한다. 그것을 어디에 쓰지? 갈대를 갈대라고 부르는 이유는 갈대가 여러모로 쓸모가 있기 때문이다. 필자의 고향 마을에서는 억새를 '쌔'라고 불렀다. 주로 노인들이 하는 말이다. 억새가 쌔로 불린 이유는 억새에 맨살이 닿으면 상처나기 때문이다. 


    잎의 측면이 톱니처럼 되어서 스치면 피부를 베인다. 벌에 쏘이듯한 그 느낌이 쌔하다. 피부를 쏘이기 때문에 쌔다. 갈대는 왜 갈대라고 부를까? 안다 하는 식자들은 가느다란 대라고 말한다. 대는 대나무가 아니라 막대와 같이 곧게 뻗은 것을 말한다. 막대, 작대, 살대, 쫄대, 펜대, 낚시대, 돛대 등 꽤 많다. 과연 갈대는 가느다란 대일까?


    아니라고 본다. 이는 필자가 오랫동안 어원을 연구하여 알아낸 것이다. 갈은 가랑잎이다. 나뭇잎 뿐 아니라 풀잎도 갈이다. 가을, 갈색, 가랑잎, 갈옷, 갈비(솔잎) 등 갈이 들어가는 단어는 매우 많다. 옛날 사람들은 그냥 갈이라고 했다. 봄이면 농부들이 갈을 해서 논에 비료삼아 넣는다. 갈을 한 논과 갈을 하지 않는 논의 수확 차이는 크다.


    갈의 속대를 뽑아 자리를 짜고 발을 짠다. 갈은 쓸모가 많다. 갈을 베어 와서 속대를 뽑아 여러가지 생활도구를 만들었다. 갈대는 죽은 식물의 속대다. 그러므로 억새도 갈대다. 부들도 갈대로 쓸 수 있다. 식자들의 가느다란 대 주장은 허튼 소리다. 만약 그 말이 맞다면 갈뫼, 갈고개, 갈재는 가느다란 뫼, 가느다란 고개, 가느다란 재인가? 


    그런게 어딨어? 갈이 가느다란 것이라면 이상하다. 가느다란 뫼는 본 적이 없다. 완전 억지잖아? 말이 돼? 옛날에는 갈대도 아니고 그냥 갈이라고 했다. 따져보자. 갈과 갈대는 다르다. 풀 이름은 갈이고 갈대는 갈의 속대다. 흔들리는 것은 갈의 대다. 피부가 스치면 쓸려서 피가 나는 풀은? 쌔다. 혹은 억새다. 대를 뽑아서 발 짜는 풀은? 


    갈이다. 갈대는? 갈의 속대다. 그렇다면 지금은 왜 갈대라고 할까? 처음 번역한 사람 마음이다. 학자가 reed를 우리말로 어떻게 번역할까 고민하다가 갈대? 완전 멋지잖아. 좋아좋아. 갈대로 가보자고. 갈이라고 외자로 쓰면 헷갈리잖아. 갈 길, 갈 사람, 갈갈이, 갈 옷, 갈 까마귀, 갈 대? 헷갈려 헷갈린다구. 두 글자가 안 헷갈리고 좋네.


    사물의 이름은 되도록 두 글자로 가보자고. 근대화 이후 한 글자로 된 우리말은 대거 퇴출되었다. '헷갈림 방지 위원회에서 나왔습니다.' 이 말 한마디면 퇴출확정. 원래는 갈대도 억새도 아니고 그냥 갈이고 쌔였는데. 근데 무는 무우에서 도로 빠꾸 먹었다.


    이건 뭐냐고? 한 글자를 두 글자로 늘여서 헷갈림을 방지한다매? 무를 무라고 하면 없을 무와 헷갈리잖아. 배추는 있는데 무는 없음. 무무. 환장할 일이다. 문자정책이 앞뒤가 맞지 않다. 많은 좋고 짧은 우리말이 단지 헷갈림을 유발한다는 이유만으로 억울하게 퇴출되었던 것이었다. 한 글자 우리말은 많다. 가. 와. 서. 해. 달. 별. 물. 소. 말.


    개. 닭. 자. 패. 줘. 써. 잘 생각해보면 우리말은 원래 죄다 한 글자로 되어 있고 두 글자 말은 나중에 만들어진 단어임을 알 수 있다. 돛이 돼지로 되는 식이다. 학자들의 삽질 때문에 모든 단어가 길어져서 종이와 잉크를 낭비하게 되었다. 억새는 갈대다. 가을에 은빛으로 흔들리는 식물은 종과 상관없이 죄다 갈대다. 갈대 억새 종류는 많다. 


    산에도 갈대가 있고 물에도 억새가 있어 물억새라고 한다. 억새와 갈대를 구분하지 말자. 갈대나 부들이나 억새나 흔들리면 다 갈대다. 쑥대든 갈대든 흔들리는 것은 대가 흔들리는 것이다. 가을에는 갈이다. 가을도 아니고 갈이 맞다. 갈이 가을이면 봄은 보옴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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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나무 낙엽을 갈비라고 하는데 갈은 낙엽을 뜻하고 비는 빗질할 때의 빗처럼 혹은 빛처럼 가느다란 것을 의미한다. 빗금도 같다. 빗자루도 원래는 비다. 그냥 비라고 하면 비오는 날의 비와 혼동되므로 빗자루라고 하는 것이다. 빗자루는 비의 자루다. 여기서 갈비와 갈대의 조어원리가 정확히 같음을 알 수 있다. 패턴분석으로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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