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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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8590 vote 0 2013.01.11 (13:53:41)

 아래는 네이버에서 펌

 

http://movie.naver.com/movie/bi/mi/reviewread.nhn?nid=1150102&code=66751

 

이 영화는 매우 엄밀하게 봐야 하고 그냥 대충봐서 알 수 있는 그런 종류의 영화가 아니다.

독자들은 필자에게 불만을 터트릴 수 있겠다.

"당신은 무엇때문에 영화 하나를 가지고 그렇게 엄격한 것을 요구한다는 말인가?"

 

그 이유는 이 영화가 단지 한편의 영화가 아니라 한국의 영화계, 문화계가 도달해야 할 거대한 산꼭대기의 정상같은 지향점을 내포하고 있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분석은 등장인물과 몇가지 장면의 의미를 풀이하고 종국에는 영화전체의 맥을 짚어내는 형식이 될 것이고 거듭 영화를 보면서 내용을 이해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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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스

 

모스는 죽어버린 마약밀매단들의 돈 2백만 달러를 착복하면서 이야기의 중심을 형성하게 되는 인물이다.

그는 자존심, 자신감, 욕망, 의지에 대한 메타포이다.

지극히 현실적이며 세상에 대한 어떠한 의문을 지니지 않으며 승부의식이 강하고 어렵게 살아온 인생을 상징하듯이 트레일러에서 거주하며 우직하고 말없고 거칠다.

그러나 그의 자부심과 승부의식은 욕망에 기초하기 때문에 영화가 진행될수록 그가 처음부터 이길 수 없는 게임에 뛰어들었음을 보안관이나 등장인물을 통해 암시된다.

욕망으로 점철되어 자신은 자격이 있고 그 자부심은 돈으로 채워져야 한다고 믿는다.

무엇이든 해야 하고 어떤 일이든 벌어질 수 밖에 없다는 사고를 지니고 있다.

고생하고 역전의 희망을 품고 몸부림치지만 결국 허무하게 죽는다.

그가 사슴을 사냥하는 모습에서 숨겨진 폭력성과 욕망을 살펴볼 수 있다.

소시민의 욕망을 상징한다.

 

- 안톤시거

 

안톤은 2백만달러의 가방을 찾는 살인마로 등장하는데 실제로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거의 모든 것이 투영된 캐릭터이다.

모스와는 달리 안톤은 "철학"이 있다.

무질서하게 보이는 그의 살인극은 상대를 가리지 않는다.

그가 이렇게 행동하는 이면에는 절대적이고 확고한 신념으로 굳어진 "철학"이 존재한다.

철학의 정체는 그의 대사처럼 인간은 그저 동전과 같은 운명이라는 것이다.

동전은 생겨나고 어디론가 흘러가고 또 사라진다.

인간은 우연하게 나왔고 우연하게 사라진다는 결정론적인 "우연성"의 화신이다.

동전의 앞뒷면은 이분법을 나타낸다.

인간의 실존형태는 삶과 죽음, 무엇을 한다 또는 하지 않는다라는 식으로 나눠지는 이원화를 결코 벗어날 수 없다는 절대적 "이분법"을 믿고 있다.

사물의 모든 것은 기원을 알 수 없는 우연성으로 나타나고 이분법으로 규정된다는 믿음이다.

안톤이 다리를 건너다가 새를 총으로 쏘는 장면은 '우연성'과 '이분법'의 간단한 정리이다.

 

결국 안톤은 그 자신이 우연성 그 자체가 되어버린 것이고 그는 그냥 차를 운전하거나 도움을 준 사람 또는 마주친 사람 등을 살해한다.

이유는 없다. 그는 우연성의 화신이고 돌처럼 굳어진 단 하나의 철학, 자신이 끝없는 생각끝에 도달한 정점이라고 여기는 인간은 그저 우연함의 모든 것일뿐이라는 신념에 의해 움직인다.

안톤은 불평하지 않는다. 누구에게도 의존하지 않는다. 기대도 하지 않는다. 욕망보다 신념이 우선이다.

그는 보통 인간을 살리는 역할을 하는 산소통으로 문을 따고 살인을 하며 직접 개조한 총기를 사용할 정도로 창의적이다.

영화의 끝부분에 그는 "우연"하게 교통사고를 당한다.

뼈가 튀어나올 정도로 부상을 입었지만 안톤은 냉정함을 유지하며 애원하거나 불평하지 않는다.

"우연"은 그에게 일상이고 "고통"도 그에게는 일상이기 때문이다.

사고로 부상당한 후에 아이들에게 돈을 주고 옷을 사서 팔을 고정시키고 천천히 떠나는 장면이 안톤의 마지막 모습이다.

그가 돈을 필요로 하는 이유는 사치를 부리는 등의 세속적인 욕심을 위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생명연장을 위해서임을 알 수 있다.

이 장면에서 아이들이 돈을 가지고 다투는 장면은 안톤이 아이들에게 도움을 구하거나 의존하지 않는 이유를 말해준다.

또한 자신의 총상을 치료하기 위한 약품도 스스로 구하는 모습은 "절대 의존하지 않는다"라는 원칙으로 인해 독립적이고 창의적임을 뜻한다.

역설적으로 시거는 모든 것에 의존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데 그것은 믿음과 신념이 만들어낸 망상의 기준에 의지하여 행위하기 때문이고 이 지점에서 오류가 발생한다.

안톤은 인간에 대한 평가를 이미 끝낸 상태이다.

또 하나의 유니크한 장면은 주유소에서 벌어지는 생과 사의 헤프닝이다.

주유소 주인은 아무 생각없이 "어디서 왔냐?"는 질문을 안톤에게 던지고 만다.

안톤에게 이런 질문을 한다는 것은 자신을 제발 죽여달라는 부탁 이상이 아니다.

안톤의 철학으로 본다면 한마디로 아무 생각없이 세상을 살고 있는 죽어도 되는 사람이라고 결론 내려지기 때문이다.

또한 안톤은 주유소 주인이 돈때문에 결혼한 것으로 단정짓고 지극히 쓸모없는 인간임을 확신한다.

결국 동전던지기로 "어디서 왔냐'"는 바보스런 질문에 대답을 해주기로 결정한다.

 

- 칼슨

 

우디해리슨이 분한 칼슨은 카우보이 모자를 쓴 해결사 역할이다.

그는 헛똑똑을 의미한다.

아는 체를 하고 능숙하고 과시적이며 세상만사에 능통한 듯 하고 말이 많다.

자신의 고용인에게 건물층수가 빠졌다고 지적하고, 주차권에 도장을 찍어달라는 등의 허세를 부린다.

그러나 안톤에게 거래를 제시하는 등 위기를 모면하려고 시도하지만 허무하게 죽임을 당한다.

현대인을 상징한다.

 

- 에드

 

보안관인 에드는 무엇을 해야 하고 말아야 하는 것은 이미 정통한 경험많은 노인이다.

노련하고 현명하여 계속되는 살인극을 벌이는 범인이 단순한 미치광이가 아님을 알아챈다.

자신의 아버지도 보안관이었는데 그때는 총을 가지고 다니지 않을만한 세상이었다고 믿거나 말거나를 말하는 그는 혼란에 빠져있다.

그의 친구는 세상이 돈에 미쳐간다고 한탄하고 에드는 그 이야기를 듣지만 좀더 근원적인 의문을 가지고 있다.

신앙을 지니고 있는 엘리스를 찾아가 해답을 들으려고 하지만 "신이 어떤 생각인지 아무도 모른다" "세월은 막을 수 없다"라는 지극히 체념적인 대답만 듣는다.

세상에서 도피하여 새들과 함께 홀로 살고 있는 엘리스는 혼란스러운 방관자의 모습이다.

안톤같은 확고한 신념의 살인자나 돈을 갖고 도망치는 모스같은 사람들에게 세상이 그들을 이성적으로 설득시킬 답을 해줄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꿈을 꾼다.

 

- 칼라

 

모스의 아내로 안톤에게 죽임을 당한다.

일견 다정다감하고 남편을 사랑하는 평범한 아내의 모습이지만 남편의 잘못된 선택을 방관하였고 욕망에 편승했다.

거액의 돈을 원했고 보안관의 도움을 거절하였다.

안톤이 죽음을 받아들이라고 말하자 그녀는 묻는다.

"이럴 필요는 없잖아요"

꼭 그렇게 안할 필요는 무엇인가?

안톤은 이렇게 되묻고 있는 것이다.

 

 

=총평=

 

이 영화는 거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는 영화이다.

이 영화와 더불어 한국영화를 거론하지 않을 수가 없는데 그 이유는 똑같은 필름을 사용하고 영화를 창작하는 동일한 조건임에도 한국영화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깊은 사유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음악을 사용치 않음으로서 더욱 강렬하게 의미를 전달하고자 하는 고독이 느껴질 정도로 정교하며 치열하게 사색한 창작자가 있었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라는 제목은 함축적이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노인에게 시간을 연장하여 육체적 삶을 지속시키는 영원성의 1차적인 의미가 있다.

2차적인 의미는 죽음이 다가오는 것을 아는 노인이 품은 인간의 삶의 방식에 대한 모순 그리고 실존의 허무함과 무력함을 풀어주는 모범답안을 나타낸다.

 

이 모든 것에 대한 답은 없다는 것이고 답은 결정된 것을 의미하는데 결정은 믿음이다.

어떤 믿음이 아닌 진리를 찾아나가는 진행형으로서 인간은 존재한다는 의미다.

 

즉 노인들은 육체적인 기능이 저하되면서 죽음이 다가옴을 직감하는데 그 상황에 처한 노인들만이 더욱 절실하게 품을 수 밖에 없지만 실제로 인간세계에 가장 중요한 질문들이 있으나 세상은 그런 것에 무관심하며 다시 새생명은 태어나고 젊은이들은 다람쥐 쳇바퀴돌듯이 돈을 쫏으면서 살며 범죄, 속임수, 기만, 살인은 계속되고 다시 그들도 노인이 되어서 어떤 의문을 품지만 해답은 없는 무한루프가 진행된다.

 

살인자 안톤은 응징받지 않으며 보안관은 안톤을 처벌하지도 제거하지도 못한다.

안톤이나 모스나 그 밖의 모든 사람들은 나름대로 "신념"과 "확신"을 지니고 있다.

그것은 "믿음"이 되고 믿음이 발생하는 이유는 "진리"를 모르기 때문이다.

"진리"를 안다면 안톤이나 모스나 모든 인물들에게 진리를 가르쳐주고 그들은 잘못된 믿음을 가지지 않았을 것이다.

이 영화는 세상이 믿음으로 움직이고 이것이 얼마나 치명적인가를 말하고 있다.

왜냐면 믿음은 정지를 의미하고 발전하고 탐구할 필요가 없는 마지막인 끝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안톤은 "나도 동전하고 똑같은 식으로 여기 온거야"라고 말하는데 단지 우연함으로 생겨났고 언제든지 우연함으로 사라질 수 있는 인간의 비참한 존재론을 나타낸 것이다.

 

포스터에는 안톤이 마치 신처럼 하늘과 땅을 점령한 것처럼 지켜보고 있는 모습이다.

그에게 무엇도 벗어날 수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는 인간의 근원적인 모순을 나타내고 필연적인 악의 발현을 의미하며 인간의 "숙명"이다.

여기서 숙명은 우연하게 왔다가 살고 우연하게 가고 죽는 해답이 없는 존재의 미약함이다.

 

보안관의 꿈이야기가 등장하는 라스트씬은 극전체를 관통하고 있다.

 

첫번째 꿈은 죽은 아버지가 시내에서 보안관을 만나서 돈을 주었는데 그것을 잃어버렸다는 내용이다.

꿈이 잘 기억이 안난다는 대사는 중요성을 나타낸다.

"돈은 잊어버려라. 그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라는 의미이다.

두번째 꿈은 춥고 눈이 쌓인 산을 보안관이 말을 타고 가는데 아버지가 자신을 지나쳐서 계속 과거를 지나쳐서 앞으로 달려가는데 담요로 둘러싸고 고개를 숙인채로 옛날 사람들이 하는 식으로 뿔속의 불로 달같은 색깔의 불빛을 만들었고 어둡고 추운 저쪽에 불을 지피고 있다라는 내용이다.

해석은 보안관은 과거를 나타내고 아버지는 미래를 나타낸다. 춥고 눈이 쌓인 산은 혼란한 인간세계이다. 이 속에서 모든 것에 무관하고 고독하게 담요를 쓰고 고개를 숙이고 주위의 어떤 것도 신경쓰지 않고 뿔처럼 튀어나오게 즉 남다르게 앞을 향해 전진하여 달이 상징하는 우주적인 피안의 진리에 불을 밝히는 뜻으로 풀이된다.

 

영화는 단 마디의 대사도 그냥 쓰여지지 않았고 모든 장면이 철저히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모든 장면은 이유가 내포되어 있고 매체에 능통한 작가들임을 알 수 있다.

이 모든 대사와 구도 등에 대한 설명을 하려면 책한권 분량의 글이 필요할 것이다.

영화라는 형식을 빌어서 인간의 길을 말하고 있다.

욕망과 의지만으로 인간이 이룰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고 그것이 도달할 길의 마지막은 안톤시거의 행위에 대한 배경이 되는 인간관과 세계관, 신념과 믿음 이상이 될 수 없다는 성찰이다.

각성하는 것, 깨어나는 것, 벗어나는 것, 넘어서는 것에 관하여 사람에게 소리없이 외치는 창작가들은 주저없이 "희망"을 이야기하고 있지 않은가?

 

누구나 품을 수 밖에 없지만 아무도 묻지 않고 아무나 표현할 수도 없는 이러한 사유를 담아낸 창작자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왠만한 문화권에서는 몰이해로 인해 아예 만들어지기는 커녕 시나리오의 원작조차도 세상에 나오지 못할 이러한 작품을 시도하고 또한 여지없이 가치를 발견하고 알아보며 합당한 대우를 하는 저변에 뿌리내린 문화적, 철학적 생산자와 대중들의 저력이 존재하는 풍토는 놀라움이다.

 

글이 길고 지루할 수도 있으나 이보다 더 간단하고 쉽게 설명하는 방법을 찾지 못했음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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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의 리플

  • 마지막 네줄 빼고는 전형적인 ㄸㄸㅇ 해석
  •  

    과시욕이 느껴집니다. 어느 문장 하나도 쉬이 읽히는 게 없네요.

     

    이 사람이 만약 현학적인 표현 쓰면서 지적 허영심 느끼는 사람이라고 치자. 그럼 지는 긴글로 남 비판하면서 욕구 채우는 사람임? 아니 대체 왜 영화 뜻 개인이 분석해본거 가져다가 현학적 표현으로 지적 허영심이네 뭐네... 이해가 안감

     

    누가 하나 잘난척 해놓으니까 뒤따라서 열폭하는 사람들 엄청 많네 좀겸손하게 쓰시징 이밑에 댓글들 전부 열폭임

     

    난 이 영화보면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라는 것 만으로도 찬사를 주고 싶다. 물론 이해 못했다. 이해하지 못했더라도 이런 많은 생각을 할 기회를 준다는 것에서 단번에 이해하지 못한게 오히려 다행이라고 느낀다. 요즘 애들은 자신이 느끼기에 재미없으면 영화가 쓰레기라고들 하는데 '취향'으로 평가하는 것과 '작품성'으로 평가하는것은 엄연히 다르다. 에휴

     

    이게 무슨 평론가 리뷰도 아니고 개인이니까 그냥 써볼수도 있는거고 나름 잘 쓴것 같은데 진짜 조선놈들 쓰레기 마인드는 어쩔 수가 없네 그냥 이유도 없이 자기 마음에 안나오면 비꼬고 시비걸고 보이는 거는 체면치레 할려고 목숨걸고 안보이는데서는 비굴하고 더럽고 추잡하고 이러니 반만년 역사동안 어디 꼭 옆나라한테 치여가면서 반 꼬봉 노릇하면서 살고있지 불쌍한 족속들 진짜

  • 한마디 더 해서 미안ㅋ 그냥 좋은거 하나 알려줄려고 ㅋ 영화는 느낌이 중요하다고 했잖아ㅋ 너무 세부적으로 볼려고 하지말고 보기 전에 주제같은거만 찾아보고(스포없는걸로ㅋ) 그 주제에 맞춰 큰 틀에서 영화를 감상하면 더 재밌고 의미있게 영화를 볼수있을거임 ㅋ(이영화뿐만 아니라 모든영화)와인 마실때 전문가처럼 이거 저거 따지는게 아니라 이 와인은 이런 느낌이고 저 와인은 약간 다르게 맛있군ㅋ 하고 마시는것처럼ㅋ 난 와인안마셔서 잘모르겠지만ㅋ 영화는 좌뇌가 아니라 우뇌로 봐야지 ㅋ
  •  

    대중이 이 영화가 재밌다고 느끼는 이유는 시나리오보다 긴장감과 캐릭터때문이지 대사때문이라고 생각은안함. 그렇기때문에 대사를 100프로 받아들이지 못해도 여전히 재미는 느낄수있는거지 너무 한가지 측면으로 보는건 옳지 못함. 영화는 종합적이니까

     

  • 이 영화를 보고 받은 느낌은 명작이다! 라는 것이었다. 근데 이 리뷰는 전혀 공감이 가질 않는다.
  • 이영화는 해석하는맛도 그렇지만 걍받아들이는게 답입니다. 상식선이 아니라 힘들지만서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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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론가들은 그들의 영화를 지나치다시피 분석하지만, 정작 그들은 별 의미 없이 "단지 재미였을 뿐"이라며 심드렁하게 말한다.] -네이버 커버스토리 코엔형제 A to Z 발췌

     

    뭘 질문하는지 대충 감잡았으리라 봅니다.

    뭐 영화를 안 봐도 이 정도 질문은 답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세상 모든 영화는 다 같은 영화니까.

     

     

    모나리~2.JPG 

     

    영화평이 모나리자의 지워진 빈 칸을 채우는 거라면

    비교적 잘 채운 것이나 자기가 다 채우려고 하는게 에러입니다.

     

    질문은 글쓴이는 쓸데없이 의미를 탐색하는데 - 재미로 하는 것이면 괜찮으나

    이 영화의 진짜 맥락(의미가 아니고)은 무엇입니까?

     

    영화는 정교한 퍼즐이 아니고 또 아니어야 합니다.

    그럴듯하게 설명될 수 있는 의미가 있으면 실패지요.

     

    영화를 안 봐도 답할 수 있는 수준에서 답해보시오. (주관식)

     

    1) 사냥꾼은 사냥당한다.

    2) 미국의 몰락을 예언한다.

    3) 텍사스는 맥시코 마약상 때문에 망했다.

    4) 노인들은 미래가 없다.

    5) 우연은 우연에 당한다.

    6) 죽음은 안톤 쉬거(살인마)같이 인간을 쫓아온다.

    7) 누구도 죽음을 피할 수는 없다.

    8) 산소통으로 살인할 수 있다.

    9) 미래는 젊은이에게 맡겨야 한다.

    10) 인생은 동전던지기다.

    11) 영화는 임팩트다.

    12) 잘 나가다가 주접떨며 인생설교한다.

    13) 병맛이다.

     

    이상은 질문과 관계없는 태그들임.

    힌트는 다 나왔음.


    프로필 이미지 [레벨:20]아란도

    2013.01.11 (14:14:57)

    일단 영화보고...
    [레벨:9]길옆

    2013.01.11 (14:41:22)

    영화평이 너무 길어서 지침

    뭔 말인지도 모르겠고..

     

    소설의 첫 두페이지

    아니 영화의 처음에 나오지 않는가?

     

    전혀 새로운 종자가 나타났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6]id: 15門15門

    2013.01.11 (15:29:34)

    모든 영화는 스토리를 갖습니다.

    스토리란 간단하게 말해 크게는 사건과 사건의 관계의 연속이고

    작게는 인물과 인물의 관계의 연속입니다.

    요즘 흔히 이야기되는 디테일이란 것도 제품설명서와 같이

    번잡한 개념이 아니라 영화 속 인물, 사건과 관계되어 복잡한

    관객들의 생각을 간소화시켜 한방에 이해시키는 일종에 관객들이

    당기는 방아쇠같은 거라고 볼 수 있을 겁니다.

    반전이라는 것도 디테일의 일부로 볼 수 있죠. 단지 우리가

    알고 있던 관계를 변주시키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캐스터 어웨이를 예로 든다면 무인도에서 가장 쓸모없었던

    배구공이 후에 윌슨이라는 가장 소중한 친구로 바뀌는 것과 같다고

    볼 수 있을 겁니다.


    여기까지가 아마도 모든 영화들이 갖고 고민하는 공통된 사항들일

    겁니다. 하지만 이 부분에서 명작과 범작이 갈리는 포인트가 생깁니다.


    범작의 경우 영화 내에서 사건과 사건, 인물과 인물, 인물과 사건에

    관계된 디테일, 혹은 영화 내의 디테일의 변주를 통한 반전을 찾습니다.

    하지만 명작의 경우 감독의 시선은 영화 외부로 향합니다. 즉 관객과

    관계를 맺는 거죠.

    영화의 사건과 관객의 사건, 영화 속 인물과 관객의 기억 속 인물, 영화와

    관객에 관계된 디테일, 혹은 관객의 머릿속에 박아넣은 디테일의 변주를

    통한 반전등으로 영화 속에서 영화 밖으로 관객을 참여시키는 놀이의 장을

    펼치며 영화의 공간을 확장시킵니다. 


    이는 아마도 내부에서 심을 형성하는 보수와 외부세계와의 관계를 통해

    심을 형성하는 진보와의 원리와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대다수 이런 영화는 절제하거나 보여주지 않음으로써 관객들을 참여

    시킵니다. 이를테면 건축학개론에서 수지와 선배가 집에 들어간 장면만 

    보여주고 그 다음을 보여주지 않아 관객들의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식이죠. 

    마치 알몸으로 다니는 여자의 몸매는 노골적으로 바라보지 못하지만

    비키니로 가린 여자의 몸매는 노골적으로 바라보는 남자의 심리와 같다고

    할까요?



    여기까지가 일반적인 영화에 대한 맥락이라면 이 소설과 영화를 본 입장에서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라는 개별적인 작품에 대해 털어놓아보겠습니다.

    여기서는 스포가 있으니 영화나 책을 보실분은 보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라는 제목은 어느 시에서 따온 것인데 그런 것과

    상관없이 이 이야기의 출발점을 엿볼 수 있습니다. 즉 없는 것에 대한

    이야기죠. 이 소설이 재미있는 것은 이 구조를 쭉 가져간다는 것입니다.

    비참하고 무력한 현실 속에서 어느덧 노인이 된 보안관은 지금은 사라진 

    시대의 옛 영광을 말하려 합니다. 

    따라서 이 영화의 제목을 다른 것으로 생각해본다면 노인과 함께 사라지다 

    라는 식으로도 만들 수 있을 겁니다.


    이렇게 본다면 모스나 안톤 시거같은 굵직한 등장인물등은 디테일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겁니다. 나이가 든 세대로서 현실의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을 

    독자나 관객에게도 심어주기 위한 디테일말이죠. 

    따라서 그들의 사상이나 욕망은 대개 이해하기 힘듭니다. 

    왜냐하면 이해하기 힘들라고 작가가 그렇게 만든 것이니까요. 

    그러니까 왜 이해하기 힘드냐고 불평않으셔도 될것 같습니다. 

    그냥 이해하기 힘든 그자체를 통짜로 납득하시는 게 작가가

    바란 점이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작가가 어렵고도 고독하게 도달하는 결말도 흥미롭습니다.

    보수적인데다 어쩌면 허무하고 무기력하게 느껴지는 일련의 사건 속에서

    역설적으로 진보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보안관은 자신의 아버지에 대해 말을 합니다. 그러나

    자신의 아버지이지만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 이제는 노인이 된 자신보다

    나이가 어린 젊은이에 대한 추억입니다.


    보안관은 아버지의 꿈을 꿉니다. 그 꿈 속에서 아버지는 아무 말없이

    자신을 지나쳐갑니다. 그것은 자신보다 먼저 나아가 춥고 어두운 세상에

    불을 피우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보안관은 깨닫습니다. 언제든

    자신이 닿는 곳은 아버지가 있던 곳이라는 것을. 결국 젊은이가

    닦아놓은 길을 노인이 따라가는 셈입니다. 누구나 노인이 되겠죠.

    하지만 누구나 젊은 시절 또한 있는 거니까요. 이를테면 작가는 

    꼴통이 되어 젊음을 시기하는 우리네 노인들과 달리 현 세대에게 

    이렇게 일갈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나에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지. 하지만 부럽진 않네. 이제부턴 너희들의 

    시대일 뿐이니까."

    노인을 통해 인생의 방향성을 꿰뚫어본 인간의 완전성을 말하고자 함이 

    아닐까 합니다. 아마 그 지점에서 작가가 바라보는 희망 즉 진보가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위 본문에 인용된 리뷰에 다 동감할 순 없겠지만 이것 하나만은 

    공감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나오기 힘든 작품이라는 사실말입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13.01.11 (17:01:36)

    영화에 관한 이야기

    제 질문과는 그다지 관련이 없소.

    프로필 이미지 [레벨:10]id: 최호석최호석

    2013.01.11 (16:04:06)

    상황이 영화를 끌고 간다.


    우연히 수상한 수백억 돈가방을 발견했다면?


    '당연히 들고 튀어야지...' ,  


    올커니! 걸렸다... 그리고 관객은 보는 내내 계속 킬러에게 쫒긴다.


    독자는 돈을 들고 도망가면서 이리저리 머리를 굴리고, 


    무자비한 킬러가 아슬아슬하게 쫒고, 


    법은 늙은 보안관 같다. 무기력하고, 때론 개그도 하고...


    다시 당신이 그 돈가방을 발견한다면?


    심박수가 빨라질 것이다. 


    살고 싶냐? 그럼 뛰어! (싸이 콘서트에 가도 된다)


    킬러는 남녀노소 안 가린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13.01.11 (17:02:33)

    영화 안의 이야기가 아니고

    영화 바깥의 이야기가 필요하오.

    모나리자의 지워진 부분에 관한 이야기 말이오. 

    [레벨:15]오세

    2013.01.11 (16:50:12)

    전송됨 : 트위터

    영화 안 봤고, 

    제목만 들었는데. 

    듣는 순간 오!


    영화 해석이야 하는 사람 맘인거고, 

    거기에서 의미를 찾건, 미장센을 찾건, 한 장면을 찾건 그건 그 사람들의 몫이고

    중요한 건 내가 감독이라면 이런 상황을 속으로 낄낄대며 즐길 거라는 거. 


    뭐, 구조론에서 말하는 '좋은' 영화가 무슨 메시지가 담긴 아카데미시상식감 영화일리는 없고

    뭐든 트래픽을 이끌어내고,

    기름냄새 가득한 주유소에서 라이터 하나 들고 있는 일촉즉발의 긴장감을 만들어내고, 

    우왕좌왕하는 사람들 앞에 영화로 벽하나 떡 세우고 한 방향을 바라보게 하면 그게 진짜 아니겠소?


    영화의 진짜 맥락은, 

    저렇게 감독이 영화로 한 마디 툭 던지면 평론가가 바통을 이어받고, 그 다음엔 네티즌이 또 이어받고, 그렇게 일파만파 상호작용의 장을 확대시키는 것이 진짜 맥락이라고 보오. 


    김기덕 감독의 나쁜 여자도 영화의 메시지보다 그것이 드러낸 맥락이 더 큰 의미가 있었던 것이고. 


    결국 영화는 소재에, 이야기거리에 불과하고 진짜 중요한 것은 우리가 계속 공을 주고받으면서 게임을 이어나가고 있으며 그 게임은 더욱 많은 입을, 머리를, 가슴을 끌어들일 수록 성공이라는 점이오. 


    감동은, 메시지는, 교훈은 삼키면 그만이고 소화해서 방구끼면 그걸로 끝이오. 

    하지만 진짜 영화는 눈만 남긴 모나리자처럼 가득 채워선 안되고 최대한 비워야 하오. 그리고 그 빈잔을 사람들의 상호작용으로 채울 수 있어야 하오. 


    마치 선문답처럼 스승이 화두 하나 던지면 제자가 받고, 제자의 제자가 받고, 제자의 제자의 제자가 받아 법맥이 드러나는 식으로 영화도 그렇게 연쇄적으로 다른 영화를 낳고 또 낳고 또 낳을 수 있어야 한다고 보오. 


    그러려면 영화는 스타일이어야 하고, 의미와 메시지로 가득찬 잔이 아니라 스타일로만 이루어진 빈 그릇이어야 하는 거고. 아마 그래서 동렬님이 홍콩영화를 높이 평가하는 것 같은데. 


    [레벨:15]오세

    2013.01.11 (16:53:04)

    전송됨 : 트위터

    이 영화를 아직 안봤는데, 

    이게 만약 진짜 영화라면

    아마 제 1의 안톤 쉬거 또라이가 

    제 2의 안톤 쉬거 또라이를 낳을 것이고

    제 3의 안톤 쉬거 또라이가 또 나올 것이고 

    그렇게 21세기형 또라이 계보가 계속 이어지지 않을까 싶소. 


    근데 대충 내용보니 안톤 쉬거라는 넘은 까뮈 이방인의 21세기판 변주곡같은데 아닌감?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13.01.11 (16:57:34)

    오세님은 바깥의 맥락을 보는 훈련을 더 해야 하오.


    중요한건 이 영화가 미국에서 흥행했다는 거.

    그것은 영화의 내용이 미국인의 감성에 어필했다는 거.

    그것은 미국인이 일상적으로 저런 섬뜩한 느낌을 느꼈다는 거.

    즉 자신이 실제 현장에서 느낀 느낌을 영화가 재현하고 그랬기에 반응했다는 거.

    영화에는 줄거리가 있지만 사실 그건 상관없는 것이오.

    영화 중에 인생설교 하는듯한 내용은 감독이 뻘짓이오.

    병맛은 리얼리즘이고 리얼리즘은 사실이고 영화의 줄거리는 거짓이나

    그 영화가 만들어내는 섬뜩함은 일상에서 미국인들이 느끼는 사실이오.


    살인마 안톤 쉬거는 자기 논리가 있는데

    그게 박근혜 또라이들 논리를 닮았지 않소.

    그들과의 합리적인 대화 혹은 소통은 불능이오.

    이는 불시에 찾아오는 죽음과의 대화가 불능이듯이.. 

    당신의 죽음은 이미 결정되어 있다!



    [레벨:15]오세

    2013.01.11 (17:19:52)

    전송됨 : 트위터

    결국 동렬님이 계속 던지는 질문이 닮은 것을 바깥에서 찾는, 패턴을 발견하는 훈련이었구려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13.01.11 (17:37:15)

    선문답이라고 치면

    스승이 어떤 질문을 할때 대답을 하면 당연히 아웃.

    누가 차를 마시랬느냐고라고라고라고라고라고라고라고라?

    그 질문을 복제해서 같은 구조의 질문으로 되받으면 50점.

    그러려면 이미 그와 같은 사유의 경험을 가지고 있어야 하오.

    즉 아무 생각이 없는 갑자기 사람이 질문을 받고 맞게 대답한다는 것은 불능이오.

    이미 생각해놓은 자기만의 이야기 보따리 안에서 꺼내야 하오.


    스승의 질문은 부조리 그 자체를 들이대는 거.

    질문이 부조리이므로 합리적인 대답 따위는 원래 없소.

    부조리가 부조리임을 정면으로 꿰뚫어볼 때 극복할 비전이 얻어지는 거.


    살인마 안톤 쉬거의 추적은 

    암환자가 암의 방문을 받는 것과 같소.

    암은 결국 그 사람을 죽일 것이며 살아날 방법은 없소.

    이때 스승은 제자에게 질문을 하오.

    암환자가 암의 방문을 받고 살아나는 방법은?

    자신이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열심히 살 밖에. 


    문제는 부조리. 문제의 해결은 없소. 

    그 상황의 완결은 있소.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13.01.11 (17:09:26)

    인생은 어떤 목표를 쫓다가(주인공이 사슴을 쫓듯이)

    죽음에 쫓기는 것(안톤 쉬거) 아니겠소. 그 죽음이라는 추적자는 

    합리적인 이유가 없소. 걍 죽이오. 때로는 암으로, 때로는 사고로, 때로는 지병으로.

    그래서 우리는 자다가도 악몽을 꾸게 되오. 악몽은 그다지 합리적이지 않소. 

    그런데 그 비합리적인 추적자는 나름대로 자기 논리를 가지고 있소.

    그리고 일방적으로 그 논리를 들이대오.


    그런데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그런 경험 혹은 상상 혹은 목격들을 하게 되는데

    그 섬찟한 느낌을 영화가 끌어내는데 성공했소. 

    예컨대 내가 화장실에서 똥 싸다가 똥파리를 보고 느낀 어떤 섬뜩한 느낌을  

    영화가 안톤 쉬거의 살인장면으로 재현했다면 둘은 전혀 다른 거지만 어쨌든 통하는 것이오. 


    인생의 부조리, 비합리성, 그 내밀한 본얼굴을 대면할 때

    우리는 도리어 거기서 어떤 희망을 발견하게 되오.

    우리는 박근혜 또라이들의 비합리적인 행동에 분노하지만

    그들이 정해놓은 게임의 법칙을 알아챌 때 비전을 얻게 되는 것과 같소.

    걔네들은 걍 김정은 개새끼가 필요했던 것이오.

    그것은 그들이 상처받은 존재임을 입증하는 것 뿐이오.

    그것은 비합리적인 모습이지만 우리는 그 본모습을 포착하고

    저 새끼들도 별수 없구만 하고 알아채게 되오.


    무엇인가? 김지하 개새끼가 원하는 것은 

    스톡홀름 신드롬이 원하는 것은 발언권의 획득이오.

    인질은 납치된 상태에서 그 때려죽일 놈의 테러범들을 짓밟고 싶소.

    그러나 아차! 아나운서가 먼저 그 때려죽일 놈이 테러범 때문에 고생했죠 하고 물어버렸소?

    이건 뭐 사건 터진거 아니오?


    때려죽일 권리는 인질에게 있는데 왜 아나운서가 가로채느냐요.

    분노폭발! 참을 수 없다. 아뇨! 인질범은 나에게 담요를 줬소. 그는 착한 사람이었소.

    김지하가 박독재를 두둔하는 것은 박독재를 때려죽일 권리가 오직 김지하 자신에게 있는데

    진보가 가로챘기 때문이오. 김지하 입장에서는 졸라리 억울하오.


    박독재를 용서할(징벌할) 권리는 자신에게만 있다. 김지하 선언

    니들은 건들지 말라. 이건 내거야. 


    근데 기자가 묻소. 박독재를 용서할 것이오? 

    이때 김지하의 대답은? 용서할 수 없다..라고 하면 용서할 수 있는 권한이 사라지오.

    용서할 수 있는 권한은 자기에게만 있다는 것을 인정받으려면?

    용서해야 하오. 김지하 딜레마요.


    인질이 테러범을 두둔하는 것은 테러범에 동화되어서가 아니오.

    자기 권리에 집착하기 때문이오. 그 경우 비합리적인 판단을 하게 되오.

    남편에게 얻어맏는 여자가 

    나만이 개망나니 남편을 사람 만들 권리와 능력이 있다는 것을 인정받기 위해

    계속 남편에게 얻어맞는 것과 같소.


    참 이건 구조칼럼에 써야겠소.

    [레벨:15]오세

    2013.01.11 (17:16:09)

    전송됨 : 트위터

    아!

    [레벨:30]솔숲길

    2013.01.11 (18:01:23)

    g9011-aprileyed-kksobg.jpg


    이 그림이 생각나는구려. 

    영화포스터도 그렇고..

    첨부
    프로필 이미지 [레벨:20]아란도

    2013.01.11 (19:05:33)

    황량한 벌판위의 서부극 리바이벌.
    좋은놈 나쁜놈 이상한놈...
    좋은넘은 없소. 이 영화에서...
    일상에서도 좋은 넘은 없소. 평범한게 좋은넘이라면 그렇겠지만...
    나쁜넘은 공포요.
    이상한 넘은 이 영화에서 등장하는 주인공 모두...
    보완관...그다지 보완관 같지 않고 생명이 빠져나가는 노년의 긴 한숨을 잘 보여주지만 좋은 넘과는 거리가 머오.
    보완관은 자기 일에 대해서 지극히 사무적으로 대하고 있으며 자기 삶에 대해서는 지극히 주관적으로 대하고 있소. 어떤 거리감 같은 것이 보이는데 익숙하지만 낯선 풍경들을 관찰하는 시선 같은...

    모스... 그냥 우연하게 개입 했는데 물 달라는 이를 방치하고 온 것이 걸려서 다시 갔다가 개입되었는데... 돈의 주인이 누구인지 ? 자신이 될 수 있는지...확인해보고자 한 것이 계속 게임속으로 빠져든것. 여기서 누구나 만약 자신이라면....? 하는 생각을 개입하게 되는 지점.

    안톤... 공포... 불쑥 끼어든 불운 같은 거...
    대체로 사회는 이런 불쑥 끼어든 불운을 제거하는 방향으로 가려고 하지만, 이런 불운은 오히려 사람들이 더 키워감. 미국 사회에서 사람들은 이런 불운의 공포를 실제로 체험한다는 것이고, 이런 불운이 자신들을 피해 가기를 바라지만 정작 더 가까이 다가오게 되는 것 같은... 저승사자 같은 느낌의 안톤... 대뜸 들이대고 들이 닥치는 황당함 그리고 그 안에서 풍기는 공포 ...쇼크를 주는 형태. 그러나 그냥은 모른다. 개입되어야만 안다. 안톤이 옆에 있어도 개입되지 않으면 안톤의 공포는 아무 상관이 없다라는 거. 그 개입의 범위의 최대한 바깥에 있으면... 그러나 그 개입의 범위의 어디쯤에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는거... 우연하게 가장 중심에 뛰어들게 되는 수도 있다는거... 안톤 같은 킬러들은 어디에나 있다. 그 사회가 안톤 같은 킬러를 사육하고 있다라는 거...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그리고 점차로 의지를 갖고 자체적으로 움직인다는 거...
    사건의 발단은 크든작든 중요치 않다는거... 이미 시작되면 끝을 보는데... 보완관은 무력함. 인생을 돌아보고 있음... 이미 감당이 안되고 있음. 안톤은 누군가 퇴치하지 않아도 우연한 교통사고나 질병으로 죽을 수 있음. 반드시 누군가 심판해야 되는 것도 아니고 누군가의 친절한 도움을 받을 수도 있음. 지인생 살다 감. 그런데 지인생 살면 되는데 굳이 엮이지 말아도 될 이들이 굴비처럼 엮어짐. 이것이 큰 문제라면 문제. 지인생 사는 것이 다수에겐 시련이 되고 공포가 됨.

    통제와 제어가 안되는 괴물을 가두는 것이 사회 시스템인데... 자신이 그 안에 들어가 있지 않은 이상 괴물을 쉽사리 구별할 수 없음. 미국사회나 한국사회는 그런 괴물들이 대놓고 너무 설친다는 것. 이러한 무차별적 공포를 사람들이 경험한다는 그 자체가 더 공포스러운 것.
    공포영화를 보는 이유는 공포를 정면으로 마주하며 공포를 실제 경험 한다는 것이지만 사실은 안도의 한숨을 쉬고 있음. 영화잖아.....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13.01.11 (19:57:00)

    보안관이지만 좋소.

    중요한 것은 미국사회에 그런 공포가 실제로 존재하고

    미국인들은 그 공포를 충분히 체험했으며 그래서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것.

    그러나 한국인들은 그런 공포를 현실에서 체험한 적이 없으므로 전혀 반응하지 않는다는 것.

    그래서 극장이 텅텅 비었다는 것.

    그러나 아는 사람은 맥락을 알기에 이미 체험하고 있다는 거.

    텍사스의 사막이 아니라도 우리는 일상적으로 상실과 질병과 죽음이라는 공포에 쫓기고 있소.

    박근혜 찍는 또라이들은 안톤 쉬거 그 자체라 하겠소.

    그것이 미국인만의 특수한 체험일리야 없는 거.

    그러므로 보편성이 있다는 거.

    프로필 이미지 [레벨:20]아란도

    2013.01.11 (20:01:50)

    ㅋㅋ 그러네요. 보안관....
    프로필 이미지 [레벨:20]아란도

    2013.01.11 (20:20:03)

    상실과 절망 죽음 무기력 ... 영화는 얼핏보면 전혀 상관없는 내용들이 연결되어 있는듯 한데... 보안관의 시선속에서 하나로 모임. 쫒기는자와 쫒는자...그리고 다시 이들을 한발짝 거리감을 두고 쫒게 되는자..그래서 보안관의 한발짝 늦음은 보안관의 생각이 가는 방향으로 생각이 할애됨.
    전체 하나의 사건을 두고 두 개의 얘기가 펼쳐지는데 이 두 개의 이야기 구성은 관객으로 인하여 하나로 모아짐.

    보안관의 연기는 그런 상실감 무력감을 너무 잘 표현...
    보안관 뒷통수로 생명력이 스멀스멀 빠져나가는게 보임. 뭔가에 대한 상실감이 잘 표현됨.

    보안관의 대사에서....
    '그들은 자연사 했다..'
    ???
    '원래 그들 세계의 생리다.'

    그런데 모스는 휘말리지 말았어야 했는데.... 라는 말이 생략된 느낌....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13.01.11 (20:32:24)

    대략 멀리서 본다면

    모스는 어리석은 보통 미국인들

    안톤 쉬거는 미국의 보수꼴통 기독교계, 월가의 도둑놈들, 전쟁광들, 테러범들

    노인은 미국사회

     

    보통 미국인들은 어리석고

    말 안 통하는 꼴통들은 계속 자기 방식의 사고를 치고

    미국의 좀 아는 지식인들은 한숨을 쉬고

     

    그런 모습은 사실

    한 인간의 삶 안에도 있고 어느 나라에나 다 있소.

     

    모스 - 젊은이의 대책없는 행보

    쉬거 - 한국 사회의 노령화로 인한 준비된 좌절

    보안관 - 한국의 좀 아는 지식인들

     

    모스 - 5060의 부동산 투기

    쉬거 - 5060의 무대책 노후설계

    보안관 - 양심적인 노인

    프로필 이미지 [레벨:20]아란도

    2013.01.11 (21:45:24)

    영화에서 안톤 쉬거가 내뿜어 내는 섬뜩한 공포가 실제 우리 사회에 존재한다는 것. 이러한 공포는 여러 모습이나 사람의 마음에서 두려움이라는 것 하나로 귀결됨.

    흠... 이번에 박그네가 되니 어떤 공포감을 느껴졌는데...섬뜩한 느낌.
    이명박이 됐을 때는 엄청난 분노였다면 박그네는 섬뜩함에 가까웠음.
    이명박은 느낌으로 치자면 조금 멀리 있는 공포라면 박그네는 가까운데서 느껴지는 섬찟함이랄까...?

    이는 그 개인이 직접적으로 무서운게 아니라 어떤 피부에 소름이 돋아나는 형태. 잠재적 불안감과도 같은거....
    그냥 이런 느낌을 받았음.

    아마도 박그네를 찍은 51.6 %에 대해서도 공포감이 느껴졌다고 생각되지만... 이 51.6%도 어떤 공포감에서 박그네를 찍은듯. 두려우니 오히려 두려운 사회를 만들어 내는 방향에 투표한것.

    그런데 이명박때도 돌때까지는 기다려봐야 한다는 사람들 많았는데...박그네는 말할줄 알게 될때 까지 기다려봐야 한다고 할 것 같음....
    이러한 것들이 서로가 서로에게 공포를 전달하는 물귀신 수법 같음.
    [레벨:9]길옆

    2013.01.11 (21:55:26)

    떼굴떼굴, 부조리속의 희망 이런 것이야 말로 코엔형제가 경계하던 지나친 의미부여가 아닌가요?

    부조리에서 희망을 발견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신포도의 비유처럼 자기 합리화 해버리지 않을까요?

     

    배우들이 총을 들고 다니는데 한국에서는 총기소지가 금지이므로 이해가 안갈지 모르지만

    총이 아니라 식칼이었더라면?

    안톤 쉬거 같은 사이코패스는 한국에도 있고(유영철류)

    오히려 총기난사 사건

    그러니까 오히려 단순히 총기규제와 같은 걸 생각했을지도...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가 나온 건 2007년

    2008년 기준으로 봤을 때 미국 극장 관람료는 7.2달러

    7000만불 수익(미국기준)이라면 972만명이 관람했다는 건데

    미국 인구 3억명 즉 한국의 6배이상

    한국의 기준으로 따지자면 162만명

    (김기덕의 피에타에 비하면 3배에 가깝지만...)

    제작비가 얼마인지는 모르겠으나

    미국 영화의 평균 제작비가 400억정도

    그리고 이 영화의 출연진 중에서 유명한 사람은

    토미 리 존스(보안관), 하비에르 바르뎀(안톤 쉬거) 정도인데

    참고로 토미 리 존스의 출연료는 맨인블랙2에서 2000만불이었음.

    고로 이 영화는 독립영화도 아니고 메이저에서 제작된 것이므로 흥행한 영화라고 할 수 없음.

    (영화 홍보비등을 고려했을 때 김기덕의 피에타도 제작비는 1억 홍보비가 6억인가?)

     

    미국에서 코엔형제의 영화도 김기덕처럼 마니아의 영화일 뿐.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13.01.11 (22:08:10)

    부조리 속의 희망이 아니고

    부조리를 정면으로 인식하는 그 자체에 희망이 있는 것입니다.

    부조리에 무슨 희망이 있겠소.

    이건 성의없는 긁읽기요.

     

    부조리를 정면으로 인식할 때

    우리가 대응전략을 획득하게 되는데서 진정한 희망이 시작되는 것이며

    그것이 우리가 절망적인 영화를 보고 도리어 쾌감을 느끼는 이유입니다.

    물론 밥통들은 대응전략이 없으므로 쾌감을 못 느끼지만.

    이렇게 친절한 설명이 필요한지?

     

    프로필 이미지 [레벨:20]아란도

    2013.01.12 (04:21:11)

    한국의 예를 들자면...
    일제 식민지, 6.25 , IMF 사태가 가장 큰 집단적 공포체험일듯...
    일제식민지 공포는 식민지 직후 친일청산이 안되므로 인해서 더 증폭됨.
    6.25는 전쟁 직후가 어쩌면 더 공포의 상태. 빨갱이 청산한다며 엄청난 양민을 학살. IMF는 이 시기를 통과하면서 산업경제 구조가 바뀌었는데...정작 그 바뀌는 구조에 맞는 사회경제 체제에 적응하기 어려움으로 인한 공포와 미처 사회가 변화를 준비하기 전에 닥친 거라서 후유증이 큰 그 자체가 공포가 됨.
    이후로 사회적 불안정에 대비한 복지론이 서서히 부상하기 시작하나 그 뒷받침을 할 사회적 인식이 부족해서 공감대 형성이 안됨. 그러다 보니 노동유연성을 기업이 악용해도 그것에 대한 대응기반을 갖출 사회안전망을 갖추기가 어려워짐. 그러다보니 고용불안에 대한 공포가 계속해서 유령처럼 떠돌아 다님. 노동유연성은 직장이동이 수월한 사회를 의미한다고 보는데 실상은 그렇지 못했음. 숙련된 기술은 오랜 시간이 필요하고 직장 이동에 대한 부담감이 큰데 직장이동이 쉽게 인부어질려면 사회안전망이 작동해야 하는데... 사회적 공론화가 덜 성숙해서 미미하게 부분적으로만 적용되고 큰틀에서는 좌절됨. 이러다보니 고용불안에 대한 공포는 더 커져감.

    이명박 정부 들어서는 아예 낙인을 찍어버림. 한번 찍힌 낙인 때문에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들이 죽어나감. 이 낙인찍는 방법을 국가가 나서서 시행했음. 국가를 운용하는 정권이 사회안전망을 확보해주고 나서 해고를 하던지 말던지, 직업 이동에 대한 시간적 여유와 복지에 대해서 먼저 해결해야 하는데 일을 거꾸로 진행함. 그리고 수수방관하고 있음. 공포에 정면으로 직면한 이들과 그 공포를 구경하는 이들중에서... 실제로 누가 더 공포스러울까? 후자라고 생각한다. 그 상황에 직면하기 싫기 때문에.... 이것이 51.6% 가 나온 이유라고 생각됨.

    조금만 더 생각을 바꾸면 사회안전망을 확보하는 것이 자신들과 사회에 장기적으로 이롭고 그런 공포에 덜 직면할 수 있는 길이란 것을 알텐데... 너무 쉽게 공포에 손을 들어 버린것 같다고 생각됨.

    삼성은 노조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 문제고, 현대는 비정규직을 예비군처럼 유비무환격으로 이용하는 것이 문제라고 보임. 또한 중공업 분야의 노동자들은 그 기술을 활용해서 이동할 직장이 그리 녹록치 않다고 여겨짐. 이들이 직장을 이동하고 계통을 살려 자기사업을 할 수 있으려면 사회안전망이 시급하다고 보임. 중공업 위주의 산업정책에서 갑자기 해외에 매각되거나 해외에 팔아버리면 이들은 갈곳이 없다. 중공업 위주의 경제를 운영하려면 그 정도 방책을 갖고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됨. 대체로 중공업 기능인들로 육성하였고, 상관없는 분야의 사람들도 그곳에 가서 일을 하게 불러 들였으면 대책이 있었어야 한다고 보임. 국가에서 수수방관만 하지말고 그정도 역량을 갖고 움직여야 한다고 보임. 현재 이러한 문제는 국가가 풀어야 하고 국가만이 풀 수 있는 문제이기에 국가에 요구하는 것이라고 보임. 개인들에게 떠넘길 문제도 어느 한 지역 노조에게만 떠넘길 문제가 아니라고 보임.

    현재 한국은 공포가 지배하고 있다고 보임. 그런데 그 공포를 보는 사람만, 느끼는 사람만의 몫으로 떠넘기기 하고 있다고 보임. 우리의 문제로 정면으로 인식해야 한다고 보임.
    프로필 이미지 [레벨:20]아란도

    2013.01.12 (04:25:31)

    폰으로 쓰니 문맥이 다소 매끄럽지 않더라도 오타 보이나...양해를...
    지금 컴 켜서 수정하기 상당히 귀차니즘...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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