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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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6405 vote 0 2013.01.08 (11:28:02)

http://blogs.wsj.com/indiarealtime/2013/01/05/delhi-rape-why-did-no-one-help/

 

    집단 성폭행을 당한 후 후유증으로 사망한 인도 여성과 사건 당일 함께 있었던 친구가 힌디어 뉴스 채널 지(zee)와 가진 독점 인터뷰에서 사건 당일 상황을 자세하게 털어놨다. 이 남성도 이달 3일(목) 기소된 가해자들로부터 사건 당일 흠씬 두들겨 맞았다.

 

    올해 스물여덟 살인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알려진 이 남성은 끔찍한 일을 당하고도 살아남았다. 필자는 힌디어로 진행된 피해 남성의 인터뷰를 시청했다.

 

    피해 남성은 행인들과 사법당국이 얼마나 무관심했는지 모른다고 여러 번 강조했다. 그 말을 듣고 필자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은 충격을 받았다. 그는 자신과 친구가 잔인하게 구타를 당하고, 옷가지와 소지품까지 빼앗긴 채 버스 밖으로 던져졌고, 친구는 출혈이 심했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자세하게 묘사했다.

 

    피해 남성의 발언 일부를 소개한다.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도와달라고 했다. 오토릭샤(인도에서 저렴한 택시로 이용되는, 엔진을 장착한 삼륜차)와 자동차, 자전거를 멈추게 하려고 25분이나 기다렸다. 그러다가 순찰 중이던 사람이 우리를 발견하고 경찰에 신고했다.”

 

    “지나가던 시민들 중 누구도 우리를 도와주지 않았다.”

 

    그는 씁쓸하게 말을 이었다. “그날 밤 우리에게 도움의 손길을 뻗은 사람이 딱 한 명만 있었어도 결과가 이처럼 처참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충분히 예상가능한 수순대로, 유명 방송인을 비롯한 많은 인도 인사들이 자성의 발언을 쏟아놓기 시작했다.

 

    가장 대표적인 예를 두 가지만 소개하겠다. 먼저 방송인 사가리카 고스(Sagarika Ghose)는 트위터에 이런 글을 올렸다. “법은 개정한다고 치자. 지나가던 사람 중에 추위 속에서 옷이 벗겨진 채 피를 흘리고 있는 피해 여성의 몸을 가려주거나 도와주려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는 이 충격적인 무관심의 세태는 어떻게 달라질 수 있을까.”

 

    경찰 국장이었다가 현재는 사회운동가로 활동하고 있는 키란 베디(Kiran Bedi)는 “피해 여성의 남자친구가 방송에 출연해 고백한 발언을 들어보면 인도 사회가 전반적으로 인간성이 상실됐음을 뚜렷하게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인도인들이 타인의 비극을 보고도 얼마나 무관심하고 무신경한지 성토하는 신문 사설과 TV 논평은 앞으로도 더 나올 것이다. 사람들이 왜 선뜻 도우려고 하는지 심리학적으로 원인을 분석하면서 ‘방관자 효과’라는 단어도 분명히 언급될 것이다.

 

    가장 최근에 일어난 비극과 그 비극에 대해서 나올 수밖에 없는 반응들을 보면서, 필자는 이 모든 장면이 이미 어디선가 본 것 같지는 않은지 묻고 싶다.

 

    2011년 후반 뭄바이에서 키난 산토스와 루벤 페르난데스라는 청년 두 명이 거리에 쓰러져 죽어가고 있었는데도 행인들은 도와주지 않았다. 두 사람은 결국 숨졌다. 비극이 발생한 이후 키난 산토스의 친구이자 사건 현장에 있었던 피르얀카 페르난데스는 이렇게 말했다.

 

    “친구들이 잔인하게 여러 번 칼에 찔리고 있을 때 주위에 목격자가 적어도 50명은 있었다. 우리는 도와달라고 소리 쳤지만 다들 무신경한 눈빛으로 가만히 있었다. 극악무도한 범죄에 맞서 싸우며 우리를 도우려고 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이 사건이 발생하고 난 이후에도 타인의 불행에 무관심한 것이 현대 인도의 문화가 돼버렸다며 전통적인 도덕과 가치가 무너진 것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뭄바이 사건에서나 델리 참사를 이렇게 문화적으로 분석하는 것이 과연 타당할까?

 

    필자는 그렇지 않다고 본다.

 

    비벡 데헤자(Vivek Dehejia) 경제학 교수와 필자는 최근 발간된 ‘인디아노믹스: 현대 인도를 이해하는 방법(Indianomix: Making Sense of Modern India)’에서 뭄바이 사건을 심층 분석했다. 최근 중국에서 어린 아이가 길에서 죽어가고 있는데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던 사건도 탐구했다. 이 책에서 필자와 데헤자 교수가 시도한 분석은 델리 사건에도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필자와 데헤자 교수는 이런 무관심이 나타나는 원인을 문화적 현상에서 찾지 않고, 기본적인 경제학적 개념인 ‘보상(incentive)’과 진화생물학의 이타적 행동을 통해 해석했다.

 

    생물학적 관점에서 보면 인간 사회에서든 동물의 왕국에서든 이타주의란 언제든 깨질 수 있는 몹시 취약한 개념이다. 인간의 DNA에 아무리 이타적 경향이 강하게 잠재돼 있더라도, 자기자신을 보호하려는 본능 또한 이타심 못지않게 강력하다. 이타주의와 자기보호 본능은 이처럼 강하게 대립하고 있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불의를 본 ‘영웅’이 이타적 충동에 이끌리더라도, 자신이 앞으로 치러야할 ‘비용’과 타인을 돕는 것 중 어떤 것이 더 이득인지 저울질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비용’은 엄밀한 의미에서 경제적인 비용이 아니라, 시간에 대한 기회비용이라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사건에 휘말린 사람이 경찰서에 출석해서 진술하고 조사를 받으면서 보낼, 몇 시간, 며칠, 어쩌면 몇 주가 될지도 모를 시간을 가리킨다. 필자와 데헤자 교수는 책에서 인도 사건과 중국 사건에서 ‘선한 사마리아인’으로 나선 사람이 경찰 조사에 시달리고 가해자로 잘못 기소되거나 심지어는 도와주려고 했던 피해자로부터 비난을 받을 수도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 기술했다. 한마디로 사람들은 대부분 사법당국을 신뢰하지 않으며 앞에서 말한 결과에 휘말릴까 두려워 사건에 연루되려고 하지 않는다. 도와주기 싫어서도 아니고, 인도 문화에 무관심이 아로새겨진 것도 아니다. 도와주고 싶은 마음보다, 도와주다가 경험하지 않아도 될 괴로움을 겪고 싶지 않은, 인간이라면 당연한 마음이 더 크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서구 여러 나라와 인도 사이에 중요한 차이점이 하나 존재한다. 바로 이른바 ‘선한 사마리아인 법(위험에 처한 사람을 구조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위험에 빠지지 않는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구조를 이행하지 않는 사람을 처벌하는 법, 구조거부죄 또는 불구조죄라고 함)’의 부재다. 위험에 처한 사람을 구조한 사람은 (중과실이 아닐 경우) 민사소송이나 형사소송에 휘말리지 않도록 법적으로 보호하는 조항이다. 유럽과 캐나다 퀘벡의 민사법 영역에도 ‘구조의 의무’를 명시한 법 조항이 있다.

 

    필자와 데헤자 교수는 책을 집필하는 과정에서 ‘세이브 라이프 파운데이션’을 만든 피유시 테와리(Piyush Tewari)를 취재했다. ‘세이브 라이프 파운데이션’은 사건에 휘말리고 싶지 않은 마음을 떨치고, 길거리에서 사고를 당한 피해자들을 돕자는 취지로 델리에 설립한 비정부기구(NGO)다.

 

    테와리는 어린 조카가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동안 행인들이 아무도 돕지 않는 사건을 겪은 후 이 단체를 설립하게 됐다. 테와리의 접근법에서 핵심은 ‘세이브 라이프 파운데이션’과 지역 정부에서 사전 심사를 통해 선발된 자원봉사자들을 동원하자는 것이다. 테와리는 이 방법을 활용한 프로젝트를 델리와 마하라슈트라에서 시범적으로 실시해봤다.

 

    테와리가 이끄는 팀은 자원봉사자들에게 응급처치와 구조의 기본을 훈련시키고 이들이 남을 도울 선의가 있는지도 면밀히 확인했다. (이는 전문적인 훈련을 받지 않은 자원봉사자 명단을 작성하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개념이다. 필자는 이런 방법을 이전에도 비판한 바 있다.) 이렇게 했더니 자원봉사자들이 구조에 나서더라도 사법당국으로부터 불필요한 괴롭힘에 시달릴 가능성이 크게 줄어들었다.

 

    테와리는 사람들이 선뜻 남을 돕지 않는 분위기를 바꾸려면, 인도에도 ‘선한 사마리아인 법’과 같은 조항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테와리는 델리 사건에서 행인들이 무관심한 모습을 보인 것은 “인도인들의 머릿속에 사건에 휘말리면 경찰과 사법당국에 시달릴 것이라는 두려움이 뿌리 깊게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테와리는 델리 사건 현장에서 피해자를 발견한 어떤 사람이 피해자를 가까운 응급실로 긴급 후송했더라면 결과는 달라졌을지도 모른다고 비탄에 잠긴 어조로 말했다. 그는 이렇게 결론 내렸다.

 

    “도움을 망설이게 하는 요소를 당장 없애지 않으면, 델리 집단 성폭행 사건이나 뭄바이 청년 사망 사건에서 보는 것처럼, 남을 돕고자 하는 마음을 두려움이 압도하게 될 것이다.”

 

    피해 남성이 인터뷰에서 밝힌 내용을 경청해보면, 이 남성은 현재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심한 충격에 빠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돕지 않는 이유를 상투적인 방식으로 설명하지 않고 냉철하게 이해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사람들은 우리를 도왔다가 사건의 증인이 돼서 경찰서나 법원에 출두하는 것이 두려웠을 것이다.”

 

    델리 참사 이후 인도 정부는 성폭행 관련 법을 강화하고 가해자를 법에 따라 처벌하고 이 같은 참사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미연에 방지하는 법적 조항을 만들기 위해 위원회를 설립했다. 이 사실을 예측한 독자들은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대법원이 델리고등법원 판사였던 V.S. 아가르왈이 이끄는 전문가 집단을 만들어, 인도에도 ‘선한 사마리안인 법’이 필요한지 조사해보라고 시킨 사실을 아는 독자들은 별로 없을 것이다. 테와리도 이 전문가 그룹의 일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16일 델리에서는 두 가지 비극이 발생했다. 첫 번째 비극은 버스에 탔던 젊은 연인들에게 일어났던, 우리가 모두 다 아는 그 사건이다. 두 번째 비극은 피해 여성의 목숨이 촌각에 달린 시점에서 빨리 병원으로 후송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피해 여성의 남자친구도 지금 인도인들에게 필요한 것은 촛불을 밝힐 시간이 아니라, 사고방식을 뜯어고칠 때라고 강조하고 있다.

 

    “길에서 누군가 도움을 요청하면 도와야 한다.”

 

    촛불시위를 하고 무관심을 성토하는 것으로는 사고방식은 변하지 않는다.

 

    도움을 주고 싶어도 두려운 마음이 드는 사회 구조에 대해 깊게 고민하고, ‘선한 사마리아인 법’을 제정함으로써 눈앞에서 범죄가 벌어져도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는 사회 분위기를 바꾸는 것이 절실한 때다.

 

    글쓴이 루파 수브라마냐는 ‘인도 리얼 타임’에 경제 기사를 기고하고 있다. ‘인디아노믹스: 현대 인도를 이해하는 방법(랜덤하우스 인도)’를 공동 집필했다.

 


 

    ###

 

    이와 유사한 일은 중국에서도 많습니다. 중국 공산당에 반대하고 있는 해외의 중국인들은 그 이유가 공산주의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모택동의 등장 이전에는 중국인들이 남을 잘 도왔는데 공산주의자들이 나타난 이후 남을 돕지 않게 되었다는 거죠.

 

    구조론적인 관점에서 볼 때 인도인 혹은 중국인들이, 박근혜들이 남을 돕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1) 공산당 때문이다.

    2) 악하기 때문이다.

    3) 계몽이 부족하다.

    4) 이명박 때문이다.

 

    물론 주관식입니다.

 

    참고.. 위 칼럼은 대략 맞는 말이기는 하나 문제의 본질에서 벗어나 있습니다. 법을 제정하고 계몽을 하는 것이 동원가능한 방법들 중의 하나이나 대증요법이며 본질에서 문제는 해결되지 않습니다. 타자를 돕는 것이 자기에게 손해라서가 아니라, 자신이 불이익을 당할 우려 때문이 아니라, 근본 피해자를 적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명백히 피아구분을 한다는 거죠.

 

    누구도 도살장에서 죽어가는 돼지를 돕지는 않습니다. 피아구분의 결과 돼지는 살려야 할 우리편이 아니라고 판명하기 때문입니다. 타블로를 괴롭히는 사람들이나, 최진실을 죽이고 최진영을 죽이고 조성민을 죽인 사람이나, 노무현을 죽인 사람들이 그렇게 한 이유는 피해자를 적이라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적은 그렇게 죽도록 놔두는게 맞지요. 적이 아니라고 교육시키는 방법은 제한적인 성공밖에 이루지 못합니다. 적이 어딘가에 존재하는 한 문제는 결코 해결되지 않습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10]id: 최호석최호석

2013.01.08 (12:46:13)

자존감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자신을 포함한 인간의 값어치를 아주 낮게 보기 때문에...


이렇게나 사람이 많은데... 사람이나 짐승이나 별 차이 있나...

그저 얼마짜리냐가 더 중요하고...


그래서 인간이 하찮으니까 값어치를 올려야 하고, 경쟁하고... 

모르는 이 죽어 나가는 만큼 내게도 기회가 올거고...


초라하고 약한 인간이라는 것을 들키기 싫어서 

가족, 친구, 학교, 고향, 등 가능한 연줄을 찾아서 믿을만한 집단을 형성합니다.


힘으로 위계를 만들고 의자 뺏기 게임을 시킵니다.

게임에서 진 건 네 잘못이라고 말해야 하니까요.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13.01.08 (13:12:43)

좋은 말씀이기는 하나 여기서 문제는 구조론적인 접근입니다.

의사결정의 어려움을 말하는 거지요.

인구가 적으면 쉽게 결정할 수 있습니다.

지켜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면 의외로 잘 돕습니다.

지켜보는 사람이 있으면 일의 우선순위 결정을 못합니다.

 

1) 사람을 불러와야 한다.

2) 경찰서로 뛰어가야 한다.

3) 지도자를 선출해야 한다.

4) 옷을 벗어서 가려줘야 한다.

5) 앰뷸런스를 불러야 한다.

 

여기서 우선순위는 무엇이오?

이걸 못 정하기 때문이오.

 

왜 우선순위를 못 정할까요?

 

프로필 이미지 [레벨:20]아란도

2013.01.08 (13:34:08)

훈련이 안되어 있어서...
신과의 접촉점을 찾지 몸해서...
그순간 자신이 대표자라는 생각을 못하기 때문에...
인도 귀족사회와 하층민 사이의 연결고리가 약하기 때문에...
그래서 사회의 고리를 눈뜨고도 보호하지 못함.
프로필 이미지 [레벨:20]아란도

2013.01.08 (13:36:34)

몸->못
사회의 고리-> 사회의 약한 고리

ㅠㅠ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13.01.08 (13:53:20)

다 맞는 말씀이나

구조론적으로 보는 시선은 좀 다르잖소.

자기집이 아니고 남의 집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섣불리 나서지 못하는 것이오.

남의 집에 와서 그 집안 식구의 부부싸움에 제 3자가 선뜻 나서지 못하는 것처럼.

프로필 이미지 [레벨:20]아란도

2013.01.08 (13:57:58)

주인이 아닌 객의 포지션을 취하고 있다라는 말씀이시지요?
자신들을 손님취급하고 있다는 것은 인도안에서 존엄이 없다는 뜻.
존엄을 장착할 필요가 없는 사회여서 그런것인가..?
프로필 이미지 [레벨:20]아란도

2013.01.08 (14:00:37)

인도는 아직도 카스트제도가 존속하고 있고...중국은 공산주의..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13.01.08 (14:03:00)

그렇습니다.

본질은 의사결정의 장애입니다.

손님은 마음대로 결정하지 못합니다.

그 공간에서 주인은 다수입니다.

자신은 소수이므로 손님이지요.

네티즌이 악플을 다는 것도 손님이기 때문입니다.

손님은 자신의 의사를 관철하려면 먼저 지렛대를 확보해야 하므로

일단 악플을 달아서 주인의 관심을 끌고 그 방법으로

지렛대를 획득하려고 합니다.

일종의 어리광이지요.

그 방법은 그 집을 불질러 버리는 것입니다.

 

[레벨:10]다원이

2013.01.08 (13:28:40)

일단은, 도와주는 사람을 보호하거나 불이익을 안받게 하는 장치(상위구조)가 없기 때문입니다.

가장 근본적인 차원의 문제가 해결이 안되니 진도를 못나간다고 생각합니다. 선한 사마리아법이 하나의 보조수단이 되겠죠. 그러나 인간의 상호작용을 방해하는 것은;

너와 내가 적이라는 생각, 피해자는 '적'이라기 보다는, 돕는 것이 내게 도움이 안된다는 생각.

이것은 다시 너와 나를 구분하는 마음이 원인입니다.

만일 너와 내가 적이 아니고, 하나의 뿌리에서 나온 형제라는 인식을 공유할 수 있다면 해결이 나겠습니다.

너와 나의 피아 구분을 넘어 '너와 나 공동의 적'이 있어야 합니다.

여기서 '적'이란 반드시 악당이나 독재자, 사회의 부조리와 같은 '거악'일 필요는 없습니다. 이것들은 사실 하나의 뿌리에서 나온 동류들일 뿐이고, 더 큰 차원에서 보면 하찮은 것들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겨우 '원한'이나 '금전적 손해', '불려가는 귀찮음' 따위의 하찮은 데 에너지를 낭비할 게 아니라, 예를 들면 '화성인 침공'과 같은, 아예 재론의 여지가 없이 인류를 한 방향으로 몰아갈 수 있는 거대 울트라 '비전'입니다.

그런 비전을 제시하여 커다란 보르텍스를 형성한다 해도, 자기 호주머니를 걱정하는 찌질이들은 있게 마련이겠지만요.

그러나 그런 큰 흐름을 만들어 놓으면 작은 소용돌이들은 자연스레 흡수가 되겠죠.

정리하면:

이기심(?)을 통합할 수 있는(속에 품을 수 있는) 더 큰 차원의 제도,

그 제도를 넘어서서 모두가 한 방향을 바라볼 수 있는 비전,

온 세상 온 우주를 잡아먹자는 거대한 비전,

그것이 이 실현 가능하다는 증거,

증거에서 나오는 희망,

그 희망에 따르면 내 모든 것을 던져도 괜찮겠다는 확신으로 뭉친 사람들의 연합,

그 연합으로 실제 적용 가능한 흐름을 만들어 내는 것,

이런 것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13.01.08 (13:56:41)

구조론은 구조를 바꿔서 문제를 해결합니다.

다 좋은 말씀이나 근본은 인식을 바꾸어 해결되지 않습니다.

훈련으로도 해결되지 않습니다.(물론 상당한 성과가 있겠으나.)

구조적인 의사결정의 장애물이 있습니다.

방해하는 요소가 있다는 거죠.

마이너스를 행하여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구조론의 방법입니다.

계몽과 훈련은 플러스 요법이지요.

 

그 공간이 자기 집이 아니라 남의 집이기 때문에 문제가 됩니다.

개도 남의 집 앞에서는 한 수 접어주는데 인간도 남의 집에서는 무의식적으로 꿇립니다.

인도사람이나 중국사람에게 그 공간은 남의 공간이었던 것입니다.

이는 본능의 영역이므로 어쩔 수 없습니다.

 

계몽과 훈련의 플러스 요법이 약간 도움이 되겠으나 완치는 안 됩니다. 

구조론의 정답은 언제나 마이너스를 행하는 것입니다.

 

무엇을 어떻게 마이너스 하면

그 공간을 자기집으로 인식하게 만들 수 있겠느냐가 질문의 요지입니다.

자기집 안방에 보기 흉한 피해자의 모습을

마이너스 시켜버리고자 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이타심도 아니고 선의도 아닙니다.

 

[레벨:15]오세

2013.01.08 (14:31:19)

전송됨 : 트위터

우선순위를 못 정하는 이유는,


1) 훈련이 안되어있다. 

누구나 저런 상황에 부딪힐 수 있다. 하지만 지하철이나 거리처럼 사람이 많으면 다들 서로 눈치보다가 상황이 다 끝난다. 누구나 저런 상황에서 문제해결자로 뛰어들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선 평소에 훈련이 되어 있어야 한다. 일의 우선순위와 접근경로에 대한 훈련이 되어 있어야 한다. 심장마비라면 심폐소생술이, 지하철 조난이면 구출요령이, 미친넘의 난동이면 제압하는 방법이 훈련되어 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런 걸 학교에서도, 가정에서도, 사회에서도, 그 어디에서도 가르칠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근데 이런 건 사람들이 한 번 훈련받으면 곧잘하기 마련이다. 심폐소생술이 그러했다. 그 덕분에 수 많은 심장마비 환자들을 구했다. 그 전에는? 다들 눈만 멀뚱멀뚱뜨고 서로 얼굴 쳐다보기 바빴다. 이제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기 때문에 아는 놈이 먼저 뛰어든다. 


2) 매뉴얼이 없다. 

훈련을 위해서는 매뉴얼이 필요하다. 무엇을 먼저할 것인지, 그리고 어떻게 상황에 접근할 것인지에 대한 매뉴얼. 

상담분야의 경우 성폭력 발생시, 학교폭력 발생시, 자살사고 발생시 각 주체들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기술해 놓은 매뉴얼이 있고 그 매뉴얼만 잘 지켜도 일이 악화되는 것을 막을 수 있고 문제 해결과정을 침착하게 밟을 수 있소. 그리고 이 매뉴얼은 반드시 훈련되어야 하오. 


3) 서로 눈치보다가 상황이 끝난다. 

훈련, 매뉴얼도 중요하지만, 사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의사결정의 바운더리의 문제이오. 

의사결정의 바운더리를 좁혀야, 울타리에 가두어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소. 

달리 말하자면, 하나의 상황이 발생했을 때, 주변 사람들을 그 상황의 바운더리 안으로, 울타리 안으로 가둘 수 있어야 하오. 


사람들은 보통 저런 상황에서 서로 눈치보다가 상황이 종료되오. 왜? 책임을 회피할 수 있고, 의사결정의 바운더리 바깥으로 빠져나갈 수 있고, 상황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기 때문에 굳이 책임을 지고, 의사결정을 하고, 상황 속으로 뛰어들 위험을 감수하려 들지 않는 것이오. 


하지만 만약 책임을 회피할 수 없고, 의사결정의 바운더리 바깥으로 빠져나갈 수 없고, 상황에서 벗어날 수 없다면? 

누구나 개입을 할 수 밖에 없고, 상황을 바로잡으려 들 수밖에 없소. 왜? 빠져나갈 구멍이 없으니까. 스트레스를 왕창 받으니까. 


그럼 그렇게 인간들을 상황 안에, 의사결정의 바운더리 안에 가두는 방법은 무엇이겠소?

방법은 몇 가지가 있소. 


1) 소집하기(역할을 주기)

이건 좀 아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오. 예를 들어 지하철에서 미친놈이 난동을 부린다면, 누군가 나서서 사람들에게 구체적인 역할을 주면 되오. 아줌마, 아줌마는 지하철 기관사한테 연락하고, 어이 거기 청년 둘, 너는 팔, 너는 다리 붙잡고, 어이 아가씨, 아가씨는 얼른 112 전화하고..


2) 공간으로 가두기

교황을 뽑을 땐 주교들을 결정할 때까지 한 공간에 가둬두고 못빠져나오게 한다고 하오. 

이번 성남시 새누리 시의원들의 경우에도 일단 시민들이 나서서 의사당에 가둬두니까 새해 예산안처리를 했소

이렇게 한 공간 안에 가둬두면 누구라도 의사결정을 할 수 밖에 없소. 

학교 폭력의 문제도 그냥 가해자나 피해자를 전학보내자로 결정을 내리면 문제는 결코 해결되지 않소. 일단 가둬둘 수 있어야 하오.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고 그 안에서 결정을 내려야 하오. 


3) 시간으로 압박하기

시간을 촉박하게 하면 인간은 결정을 내릴 수 밖에 없소. 

심장마비, 뇌출혈 같은 응급상황에 대한 대비책이 잘 마련되어 있는 것은 이것들이 분초에 따라 생사가 갈리는 일이기 때문이오.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13.01.08 (15:16:38)

오세님의 방법은

다 맞는 말씀이나 그다지 구조론적이지 않소.

그 방법으로는 제한적인 효과만이 있소. 

저의 질문은 왜 하필 그게 인도와 중국이냐이오.

프로필 이미지 [레벨:6]id: 15門15門

2013.01.08 (15:08:11)

위 댓글에도 언급되었다시피 중국은 폐쇄적인 공산주의라는 체제를

인도는 카스트제도와 종교갈등으로 인한 분열이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게다가 두 나라는 공통적으로 영토가 큰 대국이어서 

자체 시장내에서 모든 경제활동을 해결할 수 있는 잇점이 있는데 이 부분이

이 문제에서는 단점으로 부각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앞서 동렬님의 말씀처럼 공산주의와 종교, 카스트제도가 구조적인

의사결정의 장애가 됨은 물론이고 게다가 자체 시장내에서 자급자족이

가능한 잇점은 반대로 외부세계와 소통을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게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는 결국 사회자체를 보수화로 만들어버린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보수화란

어제 언급하신 것처럼 외부가 아닌 내부에 심을 만들어 밀도를 균일하게 만드는 

것이죠. 


하지만 중국의 경우 그 폐쇄적인 시스템에다 문화대혁명이라는 단절까지 겪었기 때문에 

무언가를 창의하고 진보할 수 있는 질 자체가 시간적인 단절로 인해 크게 좁아진 상태이고 

인도의 경우 역사는 유구하지만 카스트 제도라는 소통의 단절과 종교로 인한 소통의 단절로 

그들의 역사와 문화가 주는 질이 중국과는 반대로 공간적으로 단절되어 있어 무언가를 창의하고 

진보하기에는 좁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아이러니컬 하게도 두 대국이 갖는 질은 영토에 비해 형편없이 좁다는 말이죠.


이에 따라 생각해보면 인도와 중국에서 벌어지는 인간소외로 비추어지는 이러한 문제는 

사회 전반의 보수화에 대한 징후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현 부조리한 상황 내에서 

이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그리고 새롭게 창의할 수 있는 질 즉 문화자체가 형성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보수화된 그들은 그들 내부에서 그 방법을 찾으려고 애를 쓰게 된다고 봅니다.


하지만 형편없는 질을 갖춘 내부에서는 결코 그 방법을 찾을 수 없을테고 결국 

희망을 잃고 좌절한 그들은 합리화를 선택하게 되는 것이죠. 

이른바 광주사태의 진실을 듣고도 빨갱이들이라서 그렇게 죽은 것이고, 여자들이 

성폭행 당하면 요즈음 여자들의 행실이 문란하니까 저렇게 당해도 싸지란 식으로 

좌절한 자신들이 평소 사회에 갖고 있던 불만을 그들에게 투영해 이를 합리화시키게 됩니다. 

결국 합리화란 보수가 내부에 심을 심고 밀도를 균일하게 하려는 노력 아니 악순환인 셈입니다.


때문에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외부세계와의 관계가 필수적이라고 봅니다. 

관계가 마이너스가 될 수 있는 이유는 어제 설명하신 수조의 예가 이를 설명한다고 봅니다. 


즉 어느 한 세계가 외부의 다른 세계와 관계를 맺음으로써 마치 수조의 물이 구멍으로 빠져나가듯 

정체되어 있던 밀도들이 쏟아져 나가거나 들어오며 불균등한 밀도를 형성하게 되면 와류가 생기듯 

심이 생겨 그 심을 통해 그 질이 모이게 되고 그것이 마치 우주 먼지가 별을 생성하듯 새로운 것을 

창의하는 일종의 자궁이 된다고 본다면


중국과 인도가 외부세계와 관계하고 이어짐으로써 종교와 파벌 혹은 계급으로 국가 안에 

부분적으로 심을 심어놓았던 것들을 사라지게 하고 외부와 관계하고 소통하기 위해 

더욱더 큰 심 즉 인도 혹은 중국이란 국가 자체를 국민들이 스스로의 심으로 여기게 되고

그렇게 된다면 국가를 부분적 개별적으로 인식하던 국민들의 시선이 국가란 더 큰

시선으로 바뀌게 됨으로써 결국 공간자체가 확장되는 효과를 낳을 수 있다고 봅니다.

이는 일본과 한국이 아무리 싸우고 싫어해도 외계인이 쳐들어오면 힘을 합쳐야 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도와 중국의 중화문명과 자국내에 한정하는 시야에서 벗어나 경제적이든

문화적이든 외부와 적극적인 교류를 위한 법적 구조적인 장애물을 없애고 외부세계와 교류를

더욱 확장해나가려는 노력이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13.01.08 (15:13:48)

정답이오.

국경을 허물어야 하오.

그러나 국경을 허물 수는 없소.

그러므로 내부에 국경을 만들어야 하오.

인도를 쪼개는 방법 밖에 없소.

 

인도, 중국은 내부에 국경이 없으므로

(그들은 국경을 구경한 적이 없소.)

 

국경을 마음 속에서 만들어내게 되어 있소.

그들은 마음 속에 국경을 만들었기 때문에 적국에 와 있소.

 

피해자는 죄(?)를 지어 처단된 적이고

적을 도우면 자신도 적이 되므로 돕지 않는 것이오.

 

즉 인도인들은 나름대로 합리적인(?) 판단을 한 것이오.

피해자들은 빨갱이(?)들이므로 죽어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에 걍 죽도록 놔둔 것이오.

[레벨:15]오세

2013.01.08 (15:22:24)

전송됨 : 트위터

내부에 국경을 만든다는 것에 대해 조금 더 구체적인 사례가 들어간 설명을 듣고 싶소. 


프로필 이미지 [레벨:9]텡그리

2013.01.09 (10:55:47)

북한, 빨갱이, 전라도, 친노... -.-;;

[레벨:15]오세

2013.01.08 (15:17:06)

전송됨 : 트위터

무엇을 어떻게 마이너스 하면

그 공간을 자기집으로 인식하게 만들 수 있겠느냐가 질문의 요지입니다.

자기집 안방에 보기 흉한 피해자의 모습을

마이너스 시켜버리고자 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


위의 말씀에 비추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았소. 


구조론적으로 인도, 중국, 박근혜들이 남을 돕지 않고 타인의 위기상황을 강건너불구경하듯이 하는 이유는, 

우리와 타자를 가르는 장벽이 세워져 있고 그 장벽이 두텁기 때문이오. 


인도=카스트 장벽, 남녀차별 장벽, 기타 관습적 봉건적 장벽들 다수

중국=공산주의 장벽(공산주의 체제는 기본으로 타인에 대한 불신, 감시, 고발을 장려하여 유지되는 체제임)

박근혜=독재 장벽(독재 체제 역시 공산주의와 마찬가지로 타인에 대한 불신, 감시, 고발을 조장하여 공동체의 본드인 신뢰를 녹여버려 구성원들을 파편화시킴)


이 장벽들을 허물어야 하오. 

특히 인도는 카스트 장벽이 있어 신분 내에서 벌어지는 일들에는 민감한데 그 바깥에서 벌어지는 일에는 무관심하오. 특히 카스트 제도가 악질인 것은 직군과 결합되어 있기 때문에, 특정 카스트에 속하지 않으면 생존이 어렵다는 사실. 

이 카스트 제도는 카스트 내에서의 의사결정과 소통은 원활하나, 카스트 간의 의사결정이 어렵고, 소통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점이 문제. 결과적으로 의사결정의 속도는 빠르나 방향이 제각각이라 결국 카스트보다 더 큰 공동체 단위의, 국가 단위의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는 문제를 낳소. 


미국에 흑백차별이 엄혹하던 시절에도 비슷한 사건이 많았소. 예를 들어 흑인이 백인집단에 의해 린치당해 죽어가는데 주변의 선량한 백인 시민들이 강건너 불구경하고 아무도 말리지 않았다는 점.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바깥에 존재하는 타자에게 저질러지는 폭력에 대해 사람들은 놀랄만큼 무감각하고 때로는 매우 잔혹해질 수 있다는 사실. 


이것들이 다 인간을 통짜 덩어리로 인식하지 못하게 하는 온갖 차별, 특히 인종차별, 남녀차별, 계급차별 등 인간을 파편화시키는 차별들 때문이오. 


근데 이건 거시적인 관점이고, 맞는 말이긴 하지만 막상 그 상황에서는 쓸 수 없는 방법이고

만약 그 상황에 닥쳤을 때 쓸 수 있는 방법을 말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소?

당장 그 상황에 닥쳤을 때 쓸 수 있는 미시적인 접근법들도 논할 수 있어야 하오. 

구조론적 원리에 따라, 그 방법들을 살펴보면,


1) 할 수 있는 일을 시킨다

그냥 구해달라고 하면 아무도 구해주지 않소. 인간은 개와 같아서 명령을 하려면 제대로 해야 하오. 그냥 "이거 물어!" 해야지 저기 가서 저것도 물고, 이것도 물고..... 이렇게 명령하면 개가 듣겠소? 

구해주세요~ 살려주세요~ 이런 명령을 내리면 아무도 못알아듣소. 당장 결정해야 할 것이 너무 많아 아무것도 못하는 것이오. 

이럴 땐 딱 두 문장만 써야 하오. 


<부르기> + <명령하기> 

거기 녹색옷입은 아줌마 + 물좀 갖다 주세요

거기 노란머리 청년 + 경찰에 신고좀 해줘요

거기 아리따운 처자 + 구급차좀 불러줘요


이렇게 각자에게 구체적인 미션을 할당해서 줘야 인간은 말을 듣게 되어있소. 

구체적인 역할을 줄 수 있어야 하오. 


2) 문제를 더 키우기

버스 안에서 당하고 있었다면 버스 핸들을 붙잡고 고의로라도 버스 사고를 내버리는 것이오. 그러면 승객들이 이 문제에 개입을 안 할 수가 없소. 기차 안에서 당한다면 아예 소화기를 들고 유리창을 깨고 난동을 부려야 하오. 그렇게라도 문제를 키워서 다들 개입을 안 할 수가 없게 만들어야 하오. 이 문제가 지금 저 사람만의 문제가 아니라 <나>의 문제가 되게 만들려면 이렇게 문제를 더 키워야 하오. 조금산의 만화 <우리 동네 왜 왔니?>를 보면 이렇게 해서 동네 주민들이 조폭을 퇴치하는 장면이 나오오. 


3) 물귀신 작전

이건 예전에 어디서 본 건데, 지하철에서 추행을 당하고 있던 여자가 주변에 있던 사람을 붙들고 아는 척을 해서 그 상황을 벗어났다는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있소. 버스에서의 폭행을 당한 경우 하다못해 옆에 있던 사람이라도 붙들고 삼촌타령을 하면서 물귀신 작전을 써서라도 강제로 개입을 시키는 방법이 있을 수 있소. 



[레벨:15]오세

2013.01.08 (15:19:12)

전송됨 : 트위터

워매, 이미 정답이 나왔네요. --;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13.01.08 (15:23:13)

이런 문제를 이해하려면

그 사람들이 나름대로 '합리적인' 선택을 했다는걸 인정해야 하오.

그들이 틀렸다고 생각해 버리면 답이 없소.

그들이 옳았소.(제한된 범위 안에서)

즉 죽어가는 사람들은 죽어야 한다고 그들은 생각한 것이며

그게 옳기 때문에 고의로 그렇게 한 것이오. 그들 역시 가해자이오.

그들은 적극적으로 조성민을 때려죽인 것이오.

왜? 죽어야 할 놈이니까.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13.01.08 (15:32:40)

오세/

인간은 상호작용을 통해서만 행동할 수 있는 존재이오. 

상호작용을 하려면 반드시 벽을 등지고 서서 전체가 하나의 방향을 바라보아야 하오.

 

XMxyUZx9Fb.jpg

 

중국 대학생 기숙사가 지저분한 이유가 무엇이겠소? 

이게 옳기 때문에 중국에서는 이렇게 하는게 맞는 것이오.

 

왜냐하면 기숙사는 남의 공간이고

남의 공간을 손대는 것은 실례이기 때문이오.

 

나의 공간과 남의 공간을 구분하는 국경을 그어주지 않으면

결국 전 세계는 필연적으로 중국대학생기숙사가 되고 마는 것이오.

 

그 결과는 인류의 멸망.

중국인들이 게을러서 저렇게 된게 아니오.

 

 

첨부
[레벨:15]오세

2013.01.08 (15:41:55)

전송됨 : 트위터

중국의 만만디나, 인도기차의 터무니없는 시간개념도(옛날에 그랬다는데 지금도 그런지는 모르겠음) 마찬가지 선상에서 볼 수 있는 것이겠구려. 


나의 공간과 남의 공간을 구분하는 것이 국경. 

그것을 구분해야 비로서 타인과 제대로 상호작용할 수 있는 것이었구려.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13.01.08 (16:05:46)

국경을 허물어가는게 진보이오.

근데 국경이 있어야 허물 것이 아니겠소?

이미 국경을 허물어버린 사람이 아직 허물지 않은 사람보다 이득보는 사회가 되어야 하오.

국경없는 사회는 아무도 국경을 허물지 않기 때문에 의사결정을 할 수 없소.

모든 의사결정은 국경을 허무는 것이오.

 

길바닥에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과 나 사이에 보이지 않는 국경선이 그어져 있소.

그 국경을 허물어야 하오.

 

그러나 국경이 없는 나라의 사람은 그 순간에  없는 국경을 새로 만드오.

쓰러진 피해자와 나 사이에 순간적으로 국경선을 만들기 때문에 돕지 않소.

이는 본능이므로 이성으로 어찌할 방법이 없소.

물론 계몽과 훈련이 약간의 방법은 되오.

 

중국 대학생 기숙사에서 어떤 생각있는 대학생이 나서서

'우리 오늘부터 깨끗하게 살자'.. 이런 의사결정을 하는게 가능하겠소?

물리적으로 불가능하오.

일단 소집권이 없고.

 

그러므로 각자 자기 방을 사유화 하고

방을 깨끗하게 치워놓은 사람이 더 빨리 애인을 사귀고

이런게 경쟁되어야 비로소 기숙사가 깨끗해지오.

 

[레벨:10]다원이

2013.01.08 (21:19:47)

중국 인도는 땅이 넓어 어디로든 달아날 수 있지만, 그게 단점. 한곳에 가둬서 밀도를 걸어줘야 상호작용이 될텐데, 아마 이들은 두사람씩 다리를 묶어 2인3각을 만들어 줘야만 '아하 우린 공동운명체구나. 달아날 길이 없어. 함께 죽고 살게 되었네. ' 이럴거요. 걔들은 1 m 도 너무 멀어요. 아무리 가까이 있어도 남남. 원자핵 융합이 일어나기 위해선. 초고압을 가해 초근접이 되어야 하듯...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13.01.08 (21:33:28)

이태리인도 얼마전

바로 옆에서 집시 두 명이 죽었는데도 거적으로 덮어놓고

태연하게 일광욕을 즐기는 사진이 인터넷에 떠서 난리가 난 적이 있는데

국경이 없어도 국경을 허물지 못하고

국경이 너무 강해도 국경을 허물지 못하오.

한국에도 계급의 국경, 성별의 국경, 지역주의 국경이 있습니다.

 

[레벨:10]다원이

2013.01.08 (21:50:18)

불러서(소집) 역할 주기.
프로필 이미지 [레벨:12]wisemo

2013.01.09 (00:47:27)

각자의 수준에서 자연스런 반응인 것 아닌가요?

각자는 개인 조직 공동체 부락 국가 세계 우주까지를 말함이고

생각하는 만큼 발전한 수준을 가지고 반응하는 것 아닌가 이거지요.

생각하는 만큼의 범위를 정한 것도 그 각자의 수준.


결론은 한 사회의 지도부의 누적된 정의로운 역사가

사회에 고루 펼쳐졌을 때 나의 구원의 손길이 즉각반응으로 나올 것이다로 봅니다.

그것은 다른  말로 "신뢰"라는 사회적 자본 형성이 되었는가가 제 1 요소이겠지요.

이 신뢰를 잡아먹는 모든 것은 인류 역사 일만년간의 악이라 보여지고요,

이 신뢰를 키우는 것은 선이될 것입니다(아 혈액형인가^^).


신뢰가 50%+1이 나오는 사회는 살고

그 이하는 확율적으로 무한세월을 노예로 보내게 되어있다.

이렇게 봅니다. 

그 고리를 끊어낸 우리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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