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약자는 게임의 정의상 약자이기 때문에 약자인 겁니다. 그러니깐 지죠. 하나의 인자는 일차방정식의 그래프처럼 선형적으로 그려집니다. 꾸준히 변하는 거죠. 근데 약자는 실제로 선형적으로 꾸준히 지는게 아니라 비선형적으로 급격하게 몰락합니다. 1차식이 아니라 2차식, 3차식..으로 몰락하거든요. 약자들은 희안하게 자학을 저질러 사건을 가속화 합니다. 왜 그럴까요?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입니다. 약자건 강자건 상관없이 인간이 원하는 것은 권력이라기 보다는 질서입니다. 인간은 사회의 혼란에서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약자는 자신이 약자라는 걸 인지했을 때부터 알아서 깁니다. 왜냐하면 그래야 사회의 질서를 흩뜨리지 않기 때문이죠. 침팬지 다큐를 보면 자주 나오는 겁니다. 인간은 자신이 약자라서 스트레스 받는 게 아니라 집단의 질서가 깨지는 것을 극도로 두려워 하는 거죠.
권력이라는 말이 틀렸다는 게 아닙니다. 다만 인간이 단순히 강한 것을 원한다고 하면 좀 이상하다는 것을 보아야 한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강한 것은 스스로 강하다고 정의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강하려면 약한 게 있어야 하고, 강과 약이 있으려면 그 전에 게임의 정의가 있어야 합니다. 강 하나만으로는 강을 정의할 수 없다는 겁니다. 힘이 세다라고 말하더라도 힘이라는 정의가 있고 그 이후에 세다/약하다가 있는 거죠.
미의 기준이 시대에 따라 변하는 것도 이런 맥락입니다. 미인과 추인이 있다면 그 이전에 미가 있습니다. 실력의 의미도 시대에 따라 국가에 따라 때와 장소에 따라 달리 적용하는 겁니다. 이른바 맥락입니다. 의미는 언제나 맥락에 따라서 상대적으로 정해지는 겁니다.
약자는 강자를 추종합니다. 넘사벽의 강한 사람을 보면 왠지 따르고 싶잖아요. 우리는 약자라는 말에 감정을 싣지만,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때에 따라서는 자발적으로 약자의 포지션에 들어가는 것도 필요합니다. 우리는 진리 그 자체 앞에서는 언제나 약자입니다. 이 말은 약자가 되라는 말이 아니라, 그 게임을 수긍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낯선 사람과 한 장소에 있으면 불편한 이유는 둘 사이에 질서를 발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어떻게든 질서를 발견하고, 그 구조에서 에너지를 성립합니다. 최상위 구조가 분명해야 인간은 비로소 생각하고 움직일 수 있습니다. 당신의 자연스러운 어떤 손짓은 사실 최상위 구조부터 차례대로 연역된 것입니다. 최상위 구조가 불안하면 인간은 움직일 수 없습니다. 꼼짝 못하는 거죠. 움직일 수 없으므로 인간은 불편해합니다. 이때 고향이?라고 묻고 남원이..라고 답하면 그때부터 인간은 신이 납니다.
질서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때부터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되는 거죠. 물론 요즘 세대들한테 꼰대처럼 군대 어디 나왔냐고 물으면 안 됩니다. 아재가 자신이 무조건 이길 수 있는 게임을 제시하니깐, 젊은 세대는 당연히 싫어합니다. 인간은 언제나 첫만남에서는 상대와 내가 평등해질 수 있는 구조를 먼저 제시해야 합니다. 일단 질을 형성하여 친구가 된 이후에 질서를 논해야 하는데, 아재들은 질서부터 만들고 친구가 되려고 하므로 실패합니다. 순서가 뒤집힌 겁니다.
일단 약자가 되 본 경험에 의하면 인간은 스스로를 비하합니다. 저도 그렇더라고요. 내가 틀렸고 내가 잘못한 것이라고 스스로 암시합니다. 미친 짓 같지만 실제로 이래요. 그러므로 고스톱을 칠 때는 반드시 나보다 하수와 붙어서 종잣돈을 모아야 합니다. 인간은 호주머니가 부족하면 약자가 되고 약자의 심리는 언제나 지려고 하므로 개털되기 십상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상대적으로 강자가 될 수 있는 판에서 시작해야 하는 겁니다.
물론 영원히 호구 판에서 놀 수는 없습니다. 레벨업 해야죠. 물론 이 방법은 한계가 있습니다. 어쨌거나 게임의 룰을 따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진보잖아요. 그러므로 판을 갈아 엎어야 합니다. 게임을 수긍하여 그 안에서 살아남는 방법을 택하기 보다는 판 자체를 새로 설계하자는 거죠. 그것이 진보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나의 기준이 분명해야 방황하지 않고, 떨지 않고 의연하게 움직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