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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18437 vote 0 2017.12.10 (22:36:39)

     

    http://v.media.daum.net/v/20171209150140395?d=y


    마호멧은 말했다. 내 평생에 돼지가 새끼를 치는 것은 봤어도 돈이 새끼를 치는 것은 못 봤다고. 이 말 때문인지 아랍지역에는 제대로 된 은행이 없다고 한다. 이슬람은행이 있다지만, 이자를 받지도 않고 주지도 않는다고. 투자수익의 분배는 하는데 그 경우도 이자 몇 퍼센트처럼 미리 확정된 이익은 없다고.


    기독교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이자라는 것이 도무지 무엇인가? 봉건시대에는 시간에 가격을 매긴 것이라고 봤다. 봄에 빌려준 돈을 가을에 이자 쳐서 돌려받으니 이자는 그 시간에 매겨진 가격인 셈이다. 금융업은 시간의 주인이라 할 하느님의 소유를 훔쳐서 팔아먹는 얌체 짓이니 괘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악질적인 유태인만 금융업을 했다고. 그러다가 17세기 들어 슬그머니 이자에 대한 이론을 만들어낸다. 스콜라학파는 이자가 노동에 대한 대가일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기회손실에 대한 비용이라는 말도 나왔고, 리스크에 대한 대가라는 견해도 있다. 틀렸다. 이자는 자연의 에너지 효율성에 근거한다.


    세상은 에너지에 의한 구조의 무한복제다. 구조론은 복제이론이다. 복제한다는 것이 새끼를 친다는 말이다. 생각해보자. 돌멩이는 새끼를 치지 않는다. 그런데 왜 돼지는 새끼를 치는가? 하여간 기특한 놈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말이다. 돼지도 새끼를 치는데 돈은 왜 새끼를 못 치나? 돼지에게 배울 일이다.


    돈을 돼지구조로 조직하면 된다. 그렇다면 돼지는 어떤 방법을 쓰는가? 복제를 쓴다. 물건을 하나씩 제작하기보다 틀에 부어 대량으로 찍어내는 것이 효율적이다. 마르크스가 틀렸다. 노동은 가치가 없다. 자본의 복제원리에 가치가 있다. 냉정하게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 물론 노동이 가치를 생성할 수도 있다.


    정선 카지노에서 열 시간 노동하면 몇 푼의 이익이 생기는가? 마이너스다. 되레 시간당 천만 원씩 빠져나간다. 노동에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라 가치있는 노동이 가치있는 것이며, 가치있는 노동은 복제노동이다. 우리가 책상을 만들든 의자를 만들든 자동차를 만들든 대개 동일한 물건을 대거 복제하고 있다.


    예술가는 복제의 원본을 만든다. 하나의 작품을 많은 사람이 감상하고 마음 속에서 공유한다. 그러므로 예술은 가치있다. 복제가치설이다. 1이 2가 되는 게 가치가 있고 반대로 2가 1이 되는 건 가치없다. 죽으면 흙 1로 되돌아간다. 그러므로 죽는 것은 가치가 없고 탄생하고 널리 번성하는 것은 가치가 있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하면 다들 싫어한다. 나의 노동이 왜 가치가 없느냐 하고 화를 낸다. 근데 가치가 없다. 인정할 건 인정하자. 노동은 가치를 생성하는 여러 방법 중의 하나일 뿐, 세상에는 무의미한 노동이 많다. 전쟁이 그러하다. 이명박근혜의 9년 노동은 아무런 가치가 없다. 복제의 원본을 훼손한 거다.


    민주주의야말로 복제의 원본이 된다. 마을에도 가정에도 민주주의를 복제해서 한 대씩 들여놔야 한다. 아버님 댁에도 민주주의 한 대 들여놔야겠어요. 분별하자. 가치있는 것만 가치있다. 이자를 주고받는 근본은 자연의 에너지 효율성에 있으며 자연은 언제나 복제한다. 돈이 새끼를 치는 방법은 간단하다.


    은행이 백만 원의 예금을 받는다. 그 백만 원을 대출해준다. 돈을 빌려 간 사람은 그 돈을 쓸 때까지 일단 은행에 넣어둔다. 즉 백만 원은 여전히 은행에 그대로 있는 것이다. 우리가 월급을 받아도 돈은 통장에 그냥 들어있다. 우리는 월급명세표라는 종잇조각을 한 장 받을 뿐이다. 돈은 언제나 그냥 은행에 있다.


    은행은 그 돈을 또 다른 사람에게 빌려준다. 그 사람 역시 빌린 돈을 일단 그대로 예치한다. 로또복권에 당첨되어도 결국 은행의 것이 은행에 그대로 머무르는 것이며 잠시 현찰의 형태로 지갑에서 기어 나와 햇볕을 쬐곤 하지만, 곧 은행으로 되돌아간다. 은행은 이론적으로 무한정 돈을 새끼치도록 할 수가 있다.


    그러므로 은행이 돈을 버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다가 고객들이 일제히 돈을 인출하면 은행이 파산하게 된다. 뱅크런이다. 이에 대비하여 은행은 일정한 비율의 지불준비금을 금고에 넣어두어야 하는데 이 돈이 빵꾸가 나면 한국은행에 가서 빌려오면 된다. 한국은행은 발권력을 동원하여 무진장 찍어내면 된다.


    문제는 이것이 은행의 특별한 꼼수가 아니라 우주의 근본적인 작동원리라는 점이다. 그게 구조론이다. 노동가치설이 맞다면 농부의 근육에 저장된 에너지가 쌀이나 보리의 낱알 속으로 침투하여 들어간다는 건데 그럴 일 없다. 에너지는 태양에서 왔다. 노동가치설이 아니라 태양가치설이라 해야 맞을 거다.


    인간이 쓰는 에너지는 거의 대부분 태양에서 온 것이며 화석연료도 고대의 햇볕이 저장된 거다. 핵발전에 쓰는 우라늄은 태양에서 온 것이 아니지만, 원래 지구는 태양의 부스러기다. 벼나 보리나 콩이나 유전자를 쓴다. 유전자는 복제된다. 대량복제를 통해 효율을 달성하는 것이다. 효율은 원래 자연에 있다.


    어디에 있는가? 에너지에 있다. 문제는 에너지가 관측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에너지의 어원은 안en에서 일ergy한다는 뜻이다. 인간은 겉을 본다. 안에는 에너지가 있고 겉에는 입자가 있다. 구조론으로 말하면 질과 입자다. 혹은 양자와 물질이다. 세상은 입자가 아닌 양자 곧 물질이 아닌 에너지로 되어 있다.


    뉴턴은 물질을 두고 관통되지 않으며 나눌 수 없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입자로 보는 관점이다. 곤란하다. 돼지가 새끼를 칠 수 없다. 복제되지 않는다. 우주는 동력원을 잃고 망한다. 하늘이 무너지는 셈이다. 우주가 이렇듯 멀쩡하게 작동하는 것은 동력이 있기 때문인데 그것은 물질 밖에 있는가 안에 있는가?


    안에 있으면 관통되고 밖에 있으면 설명되지 않는다. 밖에 있다면 물질이 아닌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 뉴턴에게 그것은 신이겠다. 물질 위에 신이 있고 물질의 설명되지 않는 부분은 신의 소관이니 신경 쓸 일이 없다. 이건 포기한 것이다. 왜 포기하는가? 물질 안에 다 있으니 그것이 에너지다. 동력원이 있다.


    에너지의 성질은 복제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변환경을 에너지를 닮도록 조직하면 이익이 발생한다. 그 방법 중의 하나가 돈이다. 인간이 자연을 보다 효율적으로 조직하면 이익이 발생한다. 이자를 내고 돈을 빌리는 게 더 이익이다. 고리대금업은 그 효율보다 더 많은 이자를 받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이다.


    적당한 이자라면 돈을 빌려 투자하는 것이 언제나 이익이다. 은행이 백만 원의 예금을 여러 사람에게 빌려주어 돈으로 새끼를 치듯이 은행에서 빌린 돈으로 새끼를 칠 수 있다. 가게주인에게 현찰을 보여줘서 신용을 얻은 다음 외상을 긋는게 대표적인 방법이다. 동시에 여러 건의 거래를 추진할 수도 있는 거다.


    무엇인가? 사건의 기승전결에서 기에 서는 것이다. 새로 사건을 일으키는 자의 포지션에 설 수 있다. 기승전결에서 포지션이 앞서는 기가 승을 지배하고 승이 전을 전이 결을 지배하는 것이 가치다. 즉 돈은 가치가 있는 것이다. 돈이 아니면 현물인데 현물은 그 현물의 고유한 특성에 지배되어 기에 설 수 없다.


    돈 대신 감자를 받았다고 치자. 감자는 3개월 안에 부패한다. 3개월이라는 시한에 쫓긴다. 기에 서지 못하고 결에 서게 되므로 가만 앉아서 손해를 본다. 가치가 없다. 소금은 썩지 않지만 비를 맞으면 녹아서 없어지므로 소금창고 임대료가 빠져 나간다. 현물은 대부분 유통과정에 상당한 감가상각이 발생한다.  


    금이 좋다고 하나 금방에 가져가면 30퍼센트를 떼 간다. 완전 도둑놈들이다. 백금은 일단 가공하는 과정에 깨져서 20퍼센트나 떨어져 나간다. 금은 부스러기를 녹여서 되돌릴 수 있지만 백금은 그게 안 되니 되팔면 반값이다. 다이아몬드가 변치 않는다고? 천만에. 다이아몬드 회사의 광고수법에 속은 것이다.


    다이아몬드를 되팔면 대략 50퍼센트가 빠져나간다. 루비나 사파이어는 거의 똥값이라 하겠다. 대부분의 보석은 가치가 보존되지 않는다. 그렇다. 우리가 가난한 것은 돈이 없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화폐는 언제나 부족했다. 봉건시대에는 쌀이나 비단 따위 현물로 세금을 냈다. 절반은 운반과정에 사라진다. 


    면포를 군포로 바칠 때 농부는 성글게 짠 하급품을 바친다. 쌀을 바칠 때는 왕겨와 돌을 섞는다. 혹은 좋은 쌀을 바치더라도 중간에서 아전들이 백미를 빼돌리고 왕겨를 섞는다. 게다가 운반비과 보관비가 추가로 들어간다. 쥐가 먹는다. 이래저래 농부의 세금은 임금의 대궐에 도착하기 전에 대체로 사라진다.


    일본이 발전한 이유는 무엇인가? 연산군 때 개발된 단천연은술이 일본이 전해졌기 때문이다. 금광도 크게 일어났다. 아쉽게도 조선에는 그만한 금은광이 없었다. 일본이 근면성실로 돈을 벌었다는 건 새빨간 거짓말이고 사실은 금은을 캐서 돈을 벌었다. 명청교체기에 도자기 수출도 있었지만 핵심은 금은이다.


    한때는 일본의 금은이 세계를 흔들었다. 서구가 발전한 것도 아메리카의 은을 들여와서 은 부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교과서에서 배운 상업혁명이다. 아말감법을 개발한 것이 컸다. 아메리카의 은을 수은으로 녹여 대량생산했고 그 은이 청나라로 흘러들어 뜻밖에 청나라가 부자가 되어 조선의 인삼을 사들였다.


    덕분 인삼장사 영조와 담배장사 정조가 대접받았다. 금은 먹을 수도 없고 입을 수도 없는데 가치가 있다. 왜? 역사적으로 언제나 화폐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은행에 화폐가 잔뜩 있는데 왜 돈이 부족하냐고? 마피아는 마음대로 은행에 갈 수 없다. 인류의 지하경제 규모로 보더라도 화폐는 여전히 부족한 것이다.


    4차산업혁명의 실체가 없다고 떠들던 기사가 한경오 중심으로 한동안 나돌았는데 아마 그 사람들 아직도 그러고 있겠지. 무뇌한 자들이다. 사차산업혁명은 블록체인과 인공지능과 로봇이다. 실체가 있다. 블록체인을 폰지사기라고 떠벌이는 자들은 환경변화에 적응을 못 하는 자들이다. 창의력이 없는 자들이다.


    여전히 네티즌 댓글은 폰지사기설이 대세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자. 인류가 비트코인에 의해 움직이게 된다면 거기에 먼저 올라탄 일본과 중국만 이득을 보고 한국은 앉아서 손해를 보잖아. IT시대에 한국이 재빨리 편승했듯이 이런 기회 놓쳐봤자 자기만 손해다. 배가 아파서 그러는가 본데 기회는 또 있다.


    90년대는 개나 소나 소프트웨어에 매달렸다. 잡다한 소프트웨어가 만들어졌지만, 실상 소프트웨어로 돈 번 넘은 빌 게이츠뿐이다. 안철수도 그 시절 돈을 벌었다. 나머지는 그냥 손가락 빨았다. 물론 리니지는 억만금을 벌었다. 게임과 워드프로세서 외에 돈 되는 소프트웨어 잘 없다. 열풍은 빠르게 식어갔다.


    2천 년대는 개나 소나 인터넷에 매달렸다. 그때 그 시절 김어준도 딴지일보로 800억 불러봤다. 2010년대는 개나 소나 스마트폰 앱에 매달렸지만 금세 한물갔다. 아직도 포켓몬고 하는 사람 있나? 2020년대도 뭐가 터질 흐름이 된 거다. 당장 떼돈 벌 생각은 말고 새로운 혁신의 기운에 의미부여 하는 게 맞다.


    왜? 이런 건 당근빠따 한경오가 싫어하는 소식이니까 우리는 그 반대로 가주는 게 맞잖아. 한경오들은 우리를 가둬놓고 통제하고 지배하려고 한다. 우리는 탈주를 꿈꾼다. 우리는 그들이 쳐놓은 덫을 피하고 올가미를 벗기고 자유로운 세상 속으로 나아가야 한다. AI와 로봇과 블록체인이 답이다. 늘 그래왔다.


    증기기관 시절에도 그랬고, 에디슨이 전구를 팔 때도 그랬고, 일본이 트랜지스터를 만들 때도 그랬다. 우리는 후발주자여서 기회를 날려 먹었다. 개화기에는 등신 정조 때문에 청나라에 속국으로 잡혀서 힘을 못 썼고, 그 이후로 식민지에 전쟁에 독재로 힘을 못 썼다. 일본이 뜰 때 우리는 손가락만 빨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 우리에게도 기회가 왔다. 등신인지 천재인지는 본인의 선택이다. 간단하다. PC통신이 중앙집중형 장부라면 인터넷은 분산형 장부다. 비트코인 채굴은 장부검증 참여자에게 보상하는 시스템이다. 구조론의 질 개념과 입자 개념의 차이와도 같다. 이게 블록체인만의 특별한 현상은 아니라는 말이다. 


    우주가 본래 입자가 아닌 양자적으로 곧 블록체인 방식으로 세팅되어 있다. 생물의 유전자 방식과도 같다. 생명체 내의 모든 세포가 하나의 DNA를 공유하는 것과 같다. 이는 확률방식이자 게임방식이다. 공산주의와 독재정권이 망해가는 이유는 구조론의 질 개념을 의사결정구조로 세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는 리스크의 집중이다. 그러다가 일점을 타격당해 망한다. 우주방어가 안 되는 구조다. 의사결정의 병목현상이 생긴다. 반면 민주주의가 흥하는 이유는 예비병력의 존재 때문이다. 리스크의 분산이다. 비트코인이 블록을 여러 컴퓨터에 분산해 저장하는 것과 같다. 예비자원이 있으므로 방어에 능하다.


    장기전이 가능해진다. 일점타격이 불가능하다. 뇌가 분산되어 있다. 사람은 심장을 찔리면 죽고 북한은 김정은 죽으면 망하지만, 민주주의는 정권을 교체해서 언제라도 흥한다. 심장이 여러 개라서 죽지 않는다. 인간이 쓸만한 로봇을 못 만드는 이유도 생명체는 동력원이 여러 근육에 분산되어 있기 때문이다.


    자동차나 로봇은 엔진이 하나고 모터가 하나다. 동력원을 분산해야 흥한다. 그런데 분산은 비효율적으로 보인다. 의사결정을 어렵게 한다. 왕이 독재하면 의사결정이 쉽다. 왕은 5분 만에 결정하는데 민주주의는 석 달을 토론해도 답을 내지 못한다. 그러나 한번 완벽한 의사결정구조를 만들어두면 막강해진다.


    세팅하기가 어렵지 어떻게든 성공해내면 막강해지는 시스템이 민주주의다. 우리는 입자적 사고에 잡혀 있기 때문에 본능적으로 이런 것을 싫어한다. 예수도 마호멧도 고리대금업자를 싫어했다. 은행이 왜 돈을 버는지 이해를 못 했기 때문이다. 복제를 해서 돈을 버는 것이다. 이 원리를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


    왜 우리는 학교에 가는가? 공부를 하기 위해서? 천만에. 복제를 하기 위해서 학교에 간다. 지식은 도서관에 있는데 왜 그걸 머리에 집어넣고 다니냐? 바보냐? 학교를 가야 서로 코드가 맞고 코드가 맞아야 지식이 복제된다. 대학을 나온 사람과 대학을 안 다닌 사람의 차이는 지식이 있고 없고의 차이가 아니다.


    대학 나온 사람은 바른말을 하면 곧 받아들이고 전파하는데 대학 안 나온 사람은 의심하고 대항하고 거부한다. 대학 안 나온 사람은 반드시 남 탓을 한다. 내가 열심히 했는데 동업자가 나를 속였다고 말한다. 천만에. 동업자와 코드가 안 맞아서 지식의 복제가 안 된 것이다. 남에게 사기 잘 당하는 사람이 있다.


    대화가 잘 안 되는 꽉 막힌 사람이다. 처음에는 대화로 정보를 넘기다가 어느 때부터 이 사람에게는 정보를 주면 안 되겠구나 하고 판단한다. 이미 사기가 되어 있다. 정보가 복제하고 전달하는 경로에서 이탈해 있으면 이미 구조는 망해있다. 왜 코드가 안 맞을까? 대학을 안 나왔으니 당연히 코드가 안 맞지.


    친구가 바른말을 하면 아 그렇구나 하고 그 지식을 복제하여 자기 지식으로 만들어 써먹어야 대학을 나온 거다. 일베충들은 아무리 좋은 말을 해줘도 어떻게든 대항하려고 한다. 배운 게 없는 거다. 진짜 배움은 책 속의 것을 머리에 집어넣는 게 아니고 의젓하게 사람 되는 것이며 사람이 된다는 것은 특별하다.


    누가 바른말을 하면 그 지식을 복제하여 자기 것으로 삼아야 한다. 그러려면 먼저 자신이 세상과 같은 편에 서야 한다. 아는가? 세상에는 결이 있다. 세상은 진보하므로 진보의 결이 있다. 세상은 정적균형이 아니라 동적균형을 쓰므로 움직임에 따른 결이 있다. 결에 올라타야 지식의 복제와 전파가 가능하다.


    사회를 적대하는 포지션에 서면 뭐든 의심하고 비틀려고 한다. 망한다. 사실관계가 중요한 게 아니라 이면의 포지션이 중요하고 그 배후의 프레임이 중요하다. 피아구분 들어가 줘야 한다. 세상의 편, 진보의 편, 역사의 편, 문명의 편, 인류의 편에 서야지만, 지식의 복제와 호환이 가능하고 코드가 맞아 발전한다.


    비트코인을 폰지사기라고 말하는 사람은 증기기관이 나왔을 때도 화를 냈고, 에디슨이 전구를 만들었을 때도 주술사가 마법을 부렸다며 화를 냈고, 바보 김용옥처럼 인터넷이 등장하자 비난했고, 언제나 퇴행적 행동을 해왔다. 왜 그러한가? 인간이 안 되어서 그런 거다. 김용옥은 하버드 나왔지만 배운 게 없다.


    우리를 모르고 나에 사로잡혀 있는 소인배다. 나를 앞세우므로 흐름과 충돌한다. 복제가 안 된다. 인류는 언제나 진보하고 있다. 결이 있다. 나를 앞세우므로 결을 타지 못한다. 결맞음이 아니라 결어긋남이 된다. 보수는 그러한 인류와 자연의 진보를 복제하지 않는다. 진보의 결을 타지 않으므로 당연히 망한다.


    진보는 복제이며 복제에 가담하는 자가 흥한다. 증기기관, 전구, 자동차, 트랜지스터, 컴퓨터, 인터넷, 블록체인, 스마트폰, AI가 다 무엇인가? 이들은 복제원본 혹은 복제수단이다. 인터넷은 널리 복제한다. 컴퓨터는 컨트롤 C로 복사하여 컨트롤 V로 복제한다. 인류의 역사는 복제효율을 높여온 역사라 하겠다.


    여러분이 가난한 이유는 하나다. 돈이 없기 때문이다. 왜 돈이 없을까? 여러분에게 돈을 주면 돈이 어떻게든 없어진다. 그러므로 돈은 돈 자신을 지키기 위해 되도록 여러분 근처에 가지 않으려고 한다. 돈이 여러분을 기피하므로 여러분에게 돈이 없는 것이다. 그것은 돈의 전략이다. 돈은 생명성이 있는 거다.


    돈을 금고에 넣어두거나 은행에 돌려주는 것은 미련한 일이다. 금고에 갇힌 돈은 거의 죽은 돈이다. 어차피 은행에 돈을 돌려줄 바에 돈이 구태여 여러분의 주머니를 거쳐 갈 이유가 없다. 그러므로 여러분도 각자 자신의 블록체인을 만들어내야 한다. 부자와 빈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부자는 친구들이 부자다.


    빈자는 친구가 빈자다. 부자는 주변에 좋은 블록체인을 깔아놓고 있는 것이다. 어렵지 않다. 여러분은 나는 부자가 될 것이다 하고 큰소리를 쳐놔야 한다. 그 정보가 블록체인을 타고 여러분의 친구나 이웃 100명의 귀에 들어가면 여러분은 부자가 된다. 복제는 표준을 쓴다. 어떤 소통의 기준에 맞추게 된다.


    부자기준에 맞추면 부자가 된다. 여러분은 주변에 큰소리쳐 놓은 사실 때문에 그 기준에 맞추다가 부자가 되는 것이다. 강남의 부자들이 여의도 순복음교회나 명성교회와 같은 대형교회에 가는 이유는 나름대로 인맥의 블록체인을 깔아두려는 것이다. 돈 많은 사람을 쉽게 만날 수 있는 공간 중의 하나가 교회다.


    진리의 블록체인은 따로 있다. 자연의 편, 역사의 편, 인류의 편, 진보의 편, 신의 편에 서는 것이 답이다. 자신을 우주와 진리와 역사와 진보와 자연과 널리 소통되는 존재로 세팅해 두어야 한다. 세상을 실제로 이끌어가는 창의적이고 똑똑한 사람들과 영혼이 호환되어야만 한다. 완전성을 깨닫지 않으면 안 된다.


   보수는 개인이 각자 인맥을 동원해 소규모 블록체인을 만드는 것이고 진보는 국가가 블록체인의 리스크 분산 역할을 대신해주는 것이다. 보수는 보통 게으름을 논한다. 국가에서 복지라는 형태로 블록체인을 공급하면 도덕적 해이에 빠져서 인간이 게을러진다는 말이다. 틀렸다. 게으름이라는 말은 관념어다.


    막연한 말이다. 리얼리즘으로 보자. 인간이 게으른 것은 블록체인이 깨져서 고립되었기 때문이다. 노숙자는 게으른 사람이 아니라 가족과 틀어진 사람이다. 가족이 기초적인 블록체인이다. 의사결정의 연쇄구조에서 체인이 끊어졌다. 게으른 인간은 없다. 고리가 끊어져서 흐름에서 이탈한 사람이 있을 뿐이다.


    국가가 개인의 빚을 탕감해주면 누가 부지런히 일해서 빚을 갚겠느냐고 말한다. 무식하기 짝이 없는 소리다. 보수는 개인이 돈을 벌어 집을 사는 시스템이고 진보는 국가에서 공짜로 집을 나눠주고 평생 돈을 뜯어가는 시스템이다. 그게 더 무섭고 집요한 블록체인이 된다. 저축은 플러스고 할부는 마이너스다.


    구조론은 마이너스다. 플러스는 통제되지 않고 마이너스는 통제된다. 저축예금은 불확실하지만 마이너스 통장은 확실하다. 적금은 붓다가 깨서 쓰는 수가 있지만 마이너스 통장은 황급히 메꿔놓는 게 보통이다. 요즘은 은행이 사회주의다. 저금리로 낚아서 집을 공짜로 주고 대신 평생동안 통장에서 빼간다. 


    거기에 낚여 다들 은행의 노예가 되어 있다. 공짜로 주고 평생을 통제하는 게 더 무섭다. 부채탕감은 고립되어 인맥이 깨지고 가족이 찢어지고 블록체인이 붕괴된 사람을 국가가 시스템 안으로 끌어와서 일하지 않을 수 없는 에너지 순환 구조 속으로 밀어 넣는 것이다. 부지런을 강제하는 시스템이 복지제도다.


    에너지의 순환구조 안에서 흐름을 탄 사람은 의사결정의 연쇄구조 안에서 필연적으로 부지런할 수밖에 없다. 명동에서는 누구나 빠르게 걷는다. 부지런한 사람이 특별히 명동에 모인 것이 아니고 도시의 에너지 흐름이 그런 것이다. 누구라도 신도림역 지하철 구내에서는 느긋하게 팔자걸음으로 걸을 수 없다. 


    의사결정의 블록체인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한 사람이 빠르게 걸으면 모두가 빠르게 걸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열차가 계속 들어오면서 의사결정을 강제하기 때문이다. 노빠들은 다들 노무현을 복제하지 않을 수 없는 의사결정의 연쇄구조에 갇혀버린 거다. 탈출하지 못한다. 보이지 않게 노무현이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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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5]김미욱

2017.12.11 (00:26:34)

50연의 글이 전하는 눈부신 통찰과 긍정 에너지에 그림자를 그리지 않는 고흐의 작품을 보는 듯 하다. 구조론은 빛이다 !
[레벨:5]거침없이

2017.12.11 (00:47:22)

비슷한 느낌으로 시작했는데 제가 가는 길이 이런 길이구나 싶습니다. 연초에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네요.
[레벨:10]다원이

2017.12.11 (03:19:36)

회사의 내년도 계획에 의사결정구조를 중요시 해서 반영해 보려 하는데, 이게 쉽지 않네요. 구조론에서의 개념과 현실적으로 회사에서는 어떤 회의라든가 하는걸 통해서 의사결정 하는걸 어찌 통합해야 할지 어렵습니다.
이게 중요한 포인트라는건 충분히 인식을 했지만요.
프로필 이미지 [레벨:10]systema

2017.12.11 (11:14:33)

지식의 복제가 되는 사람이 있고 결이 안맞으면 지식의 복제가 안되는 사람이 있는 것이군요. 이럴수가~

[레벨:8]scofield

2017.12.11 (14:12:08)

블록체인이 구조론과 이런 관계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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