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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8102 vote 0 2016.09.13 (21:08:25)

     

    질문하지 말고 반격하라


    돌이켜보면 나는 죽어보자고 질문을 안 했는데, 질문을 하려다가도 언어가 꼬여서 그만두곤 했다. 질문하려니까 언어가 제대로 문장으로 조직되어주지를 않더라. 말솜씨가 없어서 그렇기도 하다. 뭐라고 질문할까? 새는 왜 한쪽 다리를 들고 서 있지? 이런 질문이라면 멍청한 것이다.


    그러는 너는 미쳤다고 두 다리로 서 있냐? 이런 반격이 들어올까 겁난다. 그런데 어? 이게 정답이다. 생각하면 편한 한 다리 놔두고 복잡하게 두 다리로 서는 넘이 더 이상하지 않은가? 맞네. 새 한테는 신체구조상 한 다리로 서는게 더 편해서 한 다리로 서는구나. 답 나왔고 질문은 실패.


    "번지가 농사에 대해 묻자 공자 가로되 "나는 늙은 농사꾼만 못하다." 번지가 나가자 공자가 말하기를. "번지는 소인이다. 윗사람이 예를 좋아하면 백성이 공경하지 않을 수 없고, 의를 좋아하면 백성이 따르지 않을 수 없고, 믿음을 좋아하면 백성이 진정으로 하지 않을 수 없으니, 무릇 이렇게 하면 사방의 백성이 자식을 업고 몰려올 것인데 어찌 농사일에나 힘을 쓰겠는가." - 논어"


    공자만 해도 그렇다. 안회는 질문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칭찬받고 어린 나이에도 수제자가 되었다. 반면 자로는 질문을 해서 제대로 본전을 건진 적이 없다. 염화미소의 마하가섭도 그러하다. 질문하는 대신 슬쩍 웃어준다. 석가와 쿵짝이 맞다. 질문은 다문제일 아난다가 많이 했다.


    아난다는 석가의 열반 때까지도 깨닫지 못해서 고심하다가 1차결집에 끼기 위해 속성코스로 깨달음을 선언하고 겨우 말석에 들었는데 그것 때문에 말이 많았다고 한다. 질문 잘 하는 사람 치고 제대로 깨닫는 사람이 없더라. 예수 형님도 그렇다. 베드로가 질문했다가 본전도 못 건졌다.


    베드로 자신뿐만 아니라 주의 사랑하시는 제자도 예수를 따르는 것을 보고는 이에 베드로가 예수께 여짜오되 주님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사옵나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더라 - 요한복음 21:22-22


    창의적 사유는 질문하지 않는 것이다. 왜? 하고 묻는 자는 영원히 답을 찾지 못하니 죽을때까지 왜?를 반복하게 된다. 포지션이 고착되기 때문이다. 구조론은 자연의 패턴을 그대로 복제해서 가져온다. 오직 Ctrl+C와 Ctrl+V가 소용될 뿐이다. 화가는 자연의 모습을 그대로 복제해온다.


    복제에 성공하면 답을 찾은 것이다. 겉모습만 복제하는게 아니라 속뜻까지 복제하려면 물론 기술이 필요하다. 굳이 뭔가를 질문하려거든 언제? 어디서? 누가? 무엇을? 어떤? 어떻게? 하여지게? 하였나? 되었나?를 질문해주고 마지막에 왜?도 한 번쯤 끼워줄 수 있다. 왜는 부분이다.


    부분이 전체를 가두면 곤란하다. 왜가 언어를 구속한다. 전제를 숨긴다. 구조는 메커니즘이고 메커니즘은 시스템에 자리잡으니 시스템을 파헤쳐야 한다. 왜는 핑퐁과 같은 떠넘기기라 시스템을 보지 못하게 한다. 말대꾸와 같다. 언어를 상대방에게 의지하니 진실의 절반만 보게 된다.


    그렇다면 구조론의 정답은? 이야기다. 이야기하다 보면 절로 답을 알게 된다. 답하는 자의 포지션에 서야 답을 할 수 있다. 내 경우로 말하면 죽어보자고 질문을 안 했는데 이야기는 많이 했다. 설명충이라고 보면 된다. 뭐든 설명하는 것을 좋아했다. 나의 설명을 쉽게 이해하면 안된다.


    아 그렇구나 하고 맞장구치면 안 된다. 다음 단계로 올라서야 하는 것이다. 결과에 대해 원인이 나오면 사람들은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떡인다. 천만에. 원인의 원인까지 진도를 나가줘야만 한다. 메커니즘이 받쳐줄때까지 파고들어야 한다. 질문해서 답을 들었다면 아직 안게 아니다.


    그것은 하나의 단서일 뿐 반드시 다음 단계가 있다. 궁금한 것이 있으면 남에게 묻는 대신 나 자신에게 설명했다. 설명하려고 노력하다보면 답을 찾게 된다. 예컨대 이런 식이다. 하늘은 왜 푸르지? 이런 질문을 던져보자. 나라면 이렇게 대꾸한다. 도대체 누가 하늘이 푸르다고 그래?


    그거 어디서 주워들은 엉터리 지식이야? 당연한 것을 친다. 그래야 대화를 이어갈 수 있으니까. 우주 정거장에서 보면 하늘은 검다. 질문이 틀렸다. 제대로 질문하자. 하늘은 왜 사람의 눈에 파랗게 보여지는 거지? 그렇다. 이건 제대로 된 질문이다. 당연히 푸르다고 전제깔면 안 된다.


    사람 눈이 원래 파란빛을 잘 본다. 하늘이 푸른게 아니고 반대로 사람의 눈이 특이한 거다. 반드시 반대편을 봐야 한다. 하늘의 문제라고 전제를 까는 순간 왜곡되고 만다. 이 쯤 되면 질문할 수 없다. 질문은 무의미하다. 묻고 답하는 차원을 넘어섰다. 메커니즘을 드러내는게 중요하다.


    과연 하늘은 푸를까? 하늘은 희다. 사람 눈에 보이지는 않아도 하늘에는 온갖 빛들이 넘쳐나고 있다. 과학자들은 우주의 온도인 절대온도 3K에 해당하는 광자의 숫자를 셀 수 있다. 우주 정거장에서 검게 보이는 것은 햇볕의 방해 때문이다. 어쨌든 대기는 푸른 색이라고 할 수 있다.


    대기 속의 미립자가 가시광선 중에 파장이 짧은 푸른 빛에 잘 반응한다. 그러나 대기 속의 미립자 색깔이 곧 하늘 색깔인가?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이런 식으로 혼자 자문자답한다. 스스로 묻고 답하다보면 질문과 답의 대칭으로 되어 있다는 전제부터가 틀렸음을 알게 된다.


    ◎ 틀린 질문 - 자석은 왜 쇠를 잡아당기지?


    이런 식의 질문으로는 백년이 가도 답을 못 찾는다. 자석만 쳐다보게 되기 때문이다. 자석이 쇠를 잡아당긴다는 전제가 틀렸다. 사실은 자석과 쇠의 상호작용이다. 양쪽을 봐야 한다. 사실은 쇠도 자석을 당긴다. 틀렸다. 사실은 쇠와 자석을 통일하는 제 3자가 있다. 메커니즘이다.


    ◎ 바른 이야기 – 자석과 쇠 사이에 힘의 방향성이 있다.


    이미 자기장의 발견에 성공하고 있다. 문제에 답을 한다는 태도 자체가 틀려먹었다. 모든 질문과 답에 공통되는 메커니즘을 대입하여 풀어내야 한다. 그것은 우선 문제의 반대편을 보는 것이며 문제편과 답편을 통일하는 제 3의 존재인 사건이 돌아가는 메커니즘을 돌아보는 것이다.


    또 이런 거다. ‘사람이 죽은 다음에는 어떻게 됩니까?’ 이런 질문을 하고 싶다. 그런데 질문을 하려고 막 입을 떼는 찰나 이런 생각이 든다. ‘바보냐? 너는 왜 죽음 이후를 걱정하냐? 그렇다면 탄생하기 이전은 어쩔 건데? 죽음의 반대는 탄생이다. 나는 본능적으로 반대편을 바라본다. 


    사실이지 당신이 태어나기 전에도 수십억 아니 수백억년의 세월이 흘렀을 건데 왜 탄생 이전은 걱정하지 않느냐 말이다. 탄생 이전도 걱정해줘야 공평한 것이 아니냐 말이다. 결국 나는 질문할 수 없게 된다. 탄생 이전이 더 궁금하지만 그것을 언어로 표현하여 나타낼 방법이 없다.


    내가 태어나기 전에 대해서는 어떻게 대응해야 되는거죠? 이렇게 질문할 수는 없잖은가 말이다. 바보같잖아 말이다. 항상 반대편을 보는 훈련이 되어있으면 쉽게 질문을 할 수 없다. 묻지 말고 이야기하라. 그래야 답이 나온다. 소크라테스의 산파법은 스승이 제자에게 질문하는 거다. 


    선문답도 마찬가지다. 상대방의 대답에서 허점을 찾는다. 질문으로 답을 찾을 수는 없지만 질문으로 상대의 무지를 일깨울 수는 있다. 그런데 이것이 과연 질문일까? 소크라테스는 질문한 것일까? 아니다. 그는 대화하고 토론했다. 상호작용한 것이다. 산파법은 질문하는 기술이 아니다.


    질문을 많이 하면 창의력이 좋아진다는 식의 이야기는 흔하다. 과연 그럴까? 아기들은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이거 뭐야? 이거 뭐야? 이거 뭐야? 이거 뭐야? 답해줘봤자 듣지도 않는다. 아기가 단순질문을 반복한다는 것은 지능이 떨어진다는 증거일 뿐이다. 사실은 말하기 훈련이다.


    아이는 대화를 시도하는 것이며 왜? 하고 질문하는건 아는 단어가 그것 뿐이라서다. 성의없이 건성으로 대화를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대화는 하고싶은데 생각하기가 싫은 것이다. 5why기법이라고 또 교묘한 속임수를 개발해낸 모양이다. 얼핏 구조론과 통하는 부분도 있기는 하다만.


    http://1boon.kakao.com/awake/bookdigest112


    사실이지 되도 않은 3류들이 질문타령을 늘어놓는 것은 질문이 상대방을 엿먹이는 쉬운 수단이기 때문일 터이다. 왜냐하면 제대로 질문하기가 정말 어렵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제일 하기가 쉬운게 질문이다. 여기에 함정이 있다. 사람들은 쉬운 목표를 던져주면 일단 좋아한다.


    질문이 제일 쉬웠어요. 그러나 가짜다. 사실은 질문이 가장 어렵다. 답을 아는 자만이 옳게 질문할 수 있다. 소크라테스처럼 말이다. 어차피 질문하라고 하면 아무도 제대로 된 질문을 못할 것이니까 빠져나가는 수법이 된다. 즉 질문하기 방법이 틀렸다는 반대근거를 제출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질문을 못하니까. 왜냐하면 질문이 제일 어려우니까. 그러므로 위의 5why기법이 틀렸다는 증거는 절대로 제출되지 않는다. 어차피 아무도 5why기법은 실천을 못하니까. 교활한 속임수다. 제일 쉬운 목표를 던져주는 척 위장하여 독자를 낚지만 사실은 그게 제일 어려운 방법이다.


    같은거 1만번 반복하기나 영어공부 절대로 하지 마라처럼 제일 실천하기가 쉬워 보이는데 사실은 그게 제일 실천하기 어렵다. 어쨌든 영절하 덕분에 테이프 장사는 돈을 벌었다. 한국사람들이 하는 질문은 사실은 질문이 아니라 보충설명을 원하는 것이다. 자기가 뭘 질문하는지 모른다.


    나는 제대로 질문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국회 대정부 질문은 질문을 빙자한 대국민 연설이다. 어차피 되지도 않는 질문은 할 필요가 없다. 필자가 쓰는 방법은 질문이 아니라 반격하는 것이다. 반격하면 상대방이 상처를 입기 때문에 요즘은 잘 쓰지 않지만 왕년에는 심하게 반격했다.


    24시간 체제로 게시판에서 다투었는데 상대방이 울려고 할때까지 몰아붙인다. 그 방법은 전제를 치는 것이다. 나는 당연한 사실을 정면으로 친다. 검은 것은 희고 흰 것은 검다는 식이다. 색깔이 검다는 것은 많은 빛을 흡수하고 있다는 의미가 된다. 그 안에 빛이 많이 들었으니 희다.


    희다는 것은 빛을 배척했다는 뜻이니 그 안에 빛이 없어 시커멓다. 백로는 검고 까마귀는 희다. 언어에는 숨은 전제가 있다. 그것은 관점이다. 그 관점을 틀어버려야 한다. 게임의 규칙을 바꿔버려야 한다. 해가 동쪽에서 뜬다는 말처럼 당연한 사실을 친다. 사실은 지구가 서쪽에서 돈다.


    보통은 어떻게 하면 성공할 수 있지? 하고 묻는다. 나는 왜 성공하려고 하지? 하고 반격한다. 강신주들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것인지를 말한다. 그런데 왜 당신은 인생을 잘 살아야만 한다고 믿는 거지? 잘 사는 것 보다는 풍운아처럼 드라마틱하게 사는 것이 더 멋지지 않은가?


    이건 질문이 아니다. 치고 받는 것이다. 유태인이 질문을 잘 한다고 하던데 질문을 빙자한 공격행동이 아닐까? 선문답은 의도적으로 답이 없는 문제를 던져 상대방을 곤경에 빠뜨린다. 몰아붙이는 것이다. 질문을 당한 사람은 깨닫지 못한다. 오히려 질문을 하는 소크라테스가 깨닫는다.


    사실은 질문한게 아니다. 상대방을 이용한 소크라테스의 자문자답이다. 소크라테스가 묻고 소크라테스가 답한다. 상대방은 그저 말을 받아줄 뿐이다. 일본 만담의 보케와 츳코미처럼 말이다. 혼자서 1인 2역을 하면 미국식 스탠딩 개그다. 사실은 소크레테스 혼자서 개그를 한 것이다.


    반격해야 한다. 전제를 쳐서 숨은 전제를 들춘다. 관점을 흔들어 버린다. 우리는 지구가 돈다고 생각하지만 돌려면 돌리는 것이 있어야 한다. ‘돈다.’고 하면 돌리는건 누군데 하고 캐묻는다. 반드시 대칭되는 반대편이 있다. 그 반대편을 캐서 은폐된 대칭구조를 드러내면 깨달음에 이른다.


    ◎ 질문하기보다는 이야기하기 방법이 낫다.
    ◎ 모든 질문은 잘못된 질문이며 바르게 질문하면 답은 이미 나와 있다.
    ◎ 잘못된 질문에 역으로 질문하여 치는 것이 스승의 가르침이다.
    ◎ 공격하고 방어하는 상호작용 과정에서 인간은 발전한다.
    ◎ 질문하는 형태로 공격하는 것이 깨닫는 방법이다.


    선문답은 스승의 질문과 제자의 대답으로 조직되지만 제자 중에는 깨달은 사람이 없다. 제자에게 질문하다가 스승이 깨닫는다. 제자는 질문해도 깨닫지 못한다. 제자 포지션에 있으므로 깨닫지 못한다. 제자에게 질문하는 스승이 깨닫는다. 제자도 후배가 들어오면 스승 포지션이 된다.


    자신을 골탕먹인 스승을 흉내내어 새로 들어온 신참을 엿먹이려고 함정을 파놓고 구렁텅이에 빠뜨리다가 깨닫는다. 왜? 사실은 세상 모든 문제가 그런 구조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문제에 관점이라는 함정이 있다. 스승은 제자를 엿먹이려고 함정을 판다. 관점을 틀다가 관점을 깨닫는다. 


    이야기하기 역시 이중의 반전으로 독자들을 엿먹이기 위해 미리 복선을 깔고 반전을 준비한다. 이때 구조를 틀어야 한다. 독자들이 저쪽을 보도록 유도해놓고 이쪽에서 터뜨려야 한다. 그러다가 깨닫는다. 특정한 사실을 알아채는 것이 아니라 메커니즘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노무현 대통령이 잘 쓰는 수법이 있다. 누군가를 비난하는 말처럼 보였는데 알고보니 칭찬이었다던가 하는 식이다. 이해찬은 미쳤다. 이렇게 말하면 청중들이 긴장한다. 이해찬은 일에 미쳤다. 박수 나온다. 이런 구조를 훈련하면 깨달음과 가깝다.



   555.jpg


    왜?라는 말은 인간의 사유를 왜곡하고 한정시키는 나쁜 말입니다. 물론 왜도 쓰지 않고 가만있는 것 보다는 낫겠지만. 왜 보다는 어쩌다가를 쓰는게 낫습니다. 너 왜 그랬니? 하고 추궁하면 아이가 트라우마를 입습니다. 어쩌다가 그렇게 되었니 하고 설명하게 유도하는게 낫습니다. 급해서 그랬구나 하고 슬쩍 힌트를 찔러주면서 말이지요. 이게 누구 때문이다 하는 식의 대칭적 사유는 위험하고 악질적이며 인종차별주의적입니다. 벡퍼센트 여자니까 남자니까 하는 식의 차별주의로 갑니다. 단선적 대칭구조를 극복하게 하는 입체적 메커니즘을 찾아내야 합니다. 문답의 선형적 사고에 매몰되면 입체적 메커니즘을 놓칩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18]챠우

2016.09.13 (22:36:43)

프로필 이미지 [레벨:13]kilian

2016.09.14 (03:13:00)

소원한 인간 관계를 만들어주는데도 매우 효과적인 단어들 중에 하나가 "왜"라는 단어인 것 같습니다.

[레벨:4]신영

2016.09.16 (14:07:46)

왜는 '위해서'이니 당사자에게 책임을 한정시키는 것이며

어쩌다가는 '의해서'이니 당사자(나)의 당사자(타자)의 당사자(환경)의 쭉 올라가서 책임의 폭을 넓혀나가는 것이군요.

생각해보니 문제가 일어나서 "너 왜 그랬니?"라고 하면 자신도 모르는게 함정이군요.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16.09.16 (16:23:51)

맞습니다.

왜는 공격하는 말로 비쳐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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