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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7174 vote 0 2016.08.30 (21:09:04)

     

    포스트모더니즘은 없다


    ‘사회주의’와 ‘사회주의적인 것’은 다르다. 종신고용을 위주의 일본식 기업문화를 ‘사회주의적’이라고 말할 수 있으나 그게 사회주의는 아니다. 포스트모더니즘적인 경향들은 있으나 포스트모더니즘은 없다. 그런 주의가 없고 그런 철학이 없고 실체가 없다. 그런걸 말하는 사람은 있으나 개소리다.


    맥락을 봐야 한다. 구조론은 어깨와 팔과 손목과 손과 손가락이 결국 하나라는 거다. 어깨주의, 팔주의, 손목주의, 손주의, 손가락주의 하고 주의를 자꾸만 만들어내는 등신짓 하지 말자는 거다. 같은 것에 다른 이름을 붙이지 말라. 굳이 말하면 포스트모더니즘은 모더니즘의 발전적 형태라 하겠다.


    모더니즘 안에 포스트모더니즘이 들어 있다. 그것은 팔에 손이 붙은 것과 같다. 둘을 분리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리얼리즘과 모더니즘을 분리할 수도 없다. 모든 사상의 뿌리가 리얼리즘이다. 그 이전에는 종교가 있다. 종교는 기도를 해서 영빨을 받아서 신통력으로 뭘 어째보겠다는 개수작이다.


    종교는 과학이 아니다. 그러므로 종교를 극복하는 단계에서 본론이 시작되는 것이다. 종교를 부정하면 그것이 리얼리즘이다. 그런데 서양놈들은 별 수 없는 기독교도들이기 때문에 사실 섞여 있다. 칸트나 헤겔이나 이런 사람들이 하는 소리들은 종교반에 철학반이다. 제대로 된 넘이 하나도 없다.


    과학은 자연에서 출발한다. 그런데 종교의 하던 버릇이 남아서 자연의 진리를 하느님처럼 숭배하면서 경배하라 인간들아 여기에 자연의 진리가 있도다. 쑤그리! 하고 외치는 자들이 있다. 아직도 그런 분위기가 일부 있다. 사회주의 리얼리즘이라는게 살펴보면 기독교 문학의 변주임을 알 수 있다.


    하느님 대신에 과학이요 예수 대신에 마르크스다. 조정래 태백산맥을 몇 페이지 읽다가 던져버렸는데 종교인의 경건한 태도로 쓴 것이 불쾌했기 때문이다. 원래 문학은 세르반트스 시절 돈 키호테의 삐딱한 태도로 가야 한다. 경건하게 가면 기본 문학인의 자격이 없다. 과학자라면 몰라도 말이다.


    품성론 떠드는 주사파 애들 하는 짓이 교회 목사들 하는 짓과 진배없다. 개네들은 인생을 참 경건하게 산다. 무엇인가? 과학은 종교를 극복하는 리얼리즘으로 시작되나 상당히 종교의 버릇이 남아 있다. 모더니즘은 진리를 신에게서 인간에게로 가져온다. 인간중심이다. 뭐 꼭 그런 것은 아니다.


    리얼리즘 속에 모더니즘이 있고 도 모더니즘 뿌리가 리얼리즘이므로 갖다 붙이기 나름이라 모더니즘을 표방할 뿐 하는 짓은 종교인의 태도로 밀어붙이는 자들이 많다. 다만 모더니즘 시대에 인간들이 우쭐해서 잘난척을 하기 때문에 조금 다르다. 설치는게 교만하고 방자한 것이 인간의 냄새가 난다.


    여기서 오버하여 매우 잘난척 하다가 쿠사리 먹고 성질 내는 자들이 있다. 열 뻗쳐서 증말 하고 덤비는 자들이 있는데 걔네들이 주장하는게 자칭 포스트모더니즘이다. 말이 그렇고 알고보면 그냥 유인촌 하는 짓이다. 19세기만 해도 인종주의가 주류여서 야만인, 미개인, 하층민들과 차별화했다.


    귀족인양 폼잡는 분위기가 있었던 거다. 그런게 꼴보기 싫어서 겸손하게 그래 나 양아치다 어쩔래? 하고 들이대는 족속들이 나타났는데 포스트모더니즘이라고 떠들지만 개뿔 그런거 없다. 걍 말을 지어내서 떠드는 거다. 왜? 까분다고 욕하는 자들이 있으니까 대항하는 거다. 그게 역할행동이다.


    구조론에서 하지 말라고 하는 자기소개를 열심히 하는 자들이 있다. 그게 포스트모더니즘이다. 대칭행동, 역할행동, 자기소개 행동 요런거 말이다. 구조론 게시판에 와서 쓸데없는 시비하는 자들도 포스트모더니스트다. 그 자들이 보기에는 필자가 어깨에 힘 들어가서 모더니즘을 주장하는 것이다.


    구조론으로 말하면 질≫입자≫힘이다. 질은 결합하고 입자는 독립하고 힘은 교섭하니 인간들을 결합시키려고 하면 리얼리즘이다. 뭐든 첨에는 그렇다. 뭐든 어떤 유행의 선두그룹은 리얼리즘적 성격을 드러낸다. 그러나 그것이 어느 정도 정착단계에 이르면 모더니즘적인 성격이 강하게 드러난다.


    여의도 국회의사당 돔지붕에 그리스식 열주가 상당히 교만한 디자인이다. 교만했으므로 모더니즘이다. 뭐 둘이 딱 구분되지 않을 수도 있다. 사실 그놈이 그놈이다. 낚시터에 처음 오면 다들 조심스럽다. 첨엔 리얼리즘적 태도로 포인트 찾아 낚시대 펴는데 날씨나 수심이나 리얼을 살펴야 한다.


    그러다가 고기가 좀 잡힌다 싶으면 인간이 교만해져서 낚시대 열두대를 국회의사당 기둥처럼 쫙 펼쳐놓고 파라솔을 국회의사당 돔지붕처럼 올려놓고 라면을 매우 끓여대면서 아주 진을 치는데 웅장하기가 군대 열병식 같다. 그러면 모더니즘이다. 까부는 거다. 소주병 까고 심하게 까불면 욕을 먹는다.


    ◎ 리얼리즘 - 처음 낚시터 와서 조심스레 수심 잰다.
    ◎ 모더니즘 – 고기 좀 잡히니까 교만해져서 아주 진을 친다.
    ◎ 포스트모더니즘 – 소주병 까고 오줌 갈기고 뻗었다.


    그걸 정당화 한답시고 핑계대면 그게 포스트모더니즘이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의 경향일 뿐 본질에서 가짜다. 리얼리즘이냐 모더니즘이냐는 겸손하냐 교만하냐의 차이 뿐이다. 박정희가 국회의사당 지은 연대가 75년인데 이때부터 교만해졌다. 모더니즘 건축을 시도했을 때 그러한 본질을 들켰다.


    질은 결합하고 입자는 독립하고 힘은 교섭한다. 처음에는 자연과 결합하고 나중에는 자연을 무시하고 인간이 독립한다. 처음에는 자연을 보호하며 물고기 잡다가 나중에는 자연을 파괴하고 아주 이명박 사대강 짓을 한다. 이명박의 교만한 행동이 모더니즘이다. 그러다가 욕을 태배기로 먹게 된다.


    술취해서 그랬다고 변명하는게 포스트모더니즘이다. 세 번째 힘의 교섭은 환경과 교섭하는 것이니 다양한 변주가 있다. 환경이라면 날씨다. 날씨는 아침저녁으로 다르다. 그러므로 이랬다 저랬다 한다. 이는 모더니즘의 발전상일 뿐 별도의 가치는 아닌데 별도라고 우기는 자는 음흉한 저의가 있다.


    뻘짓을 정당화하는 논리를 꾸며대면 꼴이 우습게 된다. 이차대전 후 지식인이 집단 우울증에 걸려 자학풍조가 생겼는데 모더니즘의 교만을 반성한다면서 하는 짓이 사실은 퇴행하는 거다. 철학을 파괴하고 예술을 조롱하고 건축을 등신같이 하고 음악을 해체하며 핑계가 걸작인게 포스트모더니즘 타령.


    그런데 인간들이 원래 그렇게 한다. 무엇인가? 철학 다음에 미학이 있다. 철학은 자연의 진리를 인간에게로 가져오고 미학은 그것을 환경에 맞게 변용하여 연주한다. 그런데 미학과 철학을 헷갈리는 자들이 미학의 논리로 철학을 하려고 들면 개소리가 되는데 그게 빌어먹을 포스트모더니즘 타령.


    미학은 미학의 논리로 별도로 가져가야 한다. 철학과 미학을 섞어서 뒤죽박죽 만들면 안 된다. 철학은 보편진리를 찾고 미학은 개별적인 완전성을 찾아나선다. 철학은 하나의 고속도로를 닦고 미학은 그 길이 끝나는 지점에 각자의 집을 짓는다. 미친 넘이 고속도로에다 집 짓겠다며 개소리를 하는 거다.


    무엇인가? 원래 질≫입자≫힘으로 가므로 리얼리즘과 모더니즘 그리고 그 모더니즘의 다양한 미학적 변용은 필연적으로 나타나며 힘≫운동≫량은 철학이 아니라 미학이므로 별도의 관점을 들이대야 하는데 그걸 철학이라고 우기므로 개똥된다. 즉 별개인 철학과 미학 사이에서 언어가 헷갈린 거다.


    예술은 원래 리얼리즘에 뿌리를 두고 모더니즘의 깨달음으로 올라서서 다시 그것을 환경에 맞게 다양하게 변용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러므로 모든 예술은 본질에서 포스트모더니즘적인 성격을 가진다. 그러나 그것이 리얼리즘과 모더니즘을 부정하는 것이라면 곤란하다. 그것을 변주하는 것이다.


   ###


- 리얼리즘.. 진리는 있다. 인간은 진리에 복종하라. 

     자연을 본받아 배우려고 하는 태도이나 권위적.


입자 - 모더니즘.. 인간이 진리의 주인이다. 너희는 깨달아라. 

      인간적이나 자연을 통제, 지배하려는 교만한 태도.


- 포스트 모더니즘 .. 凸 집어쳐 씹선비야. 凸

     예술의 다양한 변주를 철학의 보편성과 헷갈린 개소리.


    학자들이 각자 자기 입맛에 맞게 유리하게 해석하므로 필자와 다르게 말할 것이나 구조론으로 보면 이렇다. 근본적 속성이 그러하다는 말이다. 실제로는 섞여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인간적인게 어떻게 보면 교만하고 자연 앞에서 겸허한게 어떻게 보면 권위적이다. 자연의 섭리로 인간을 누른다.




555.jpg


    인간의 행동이 변하는 것은 일의 단계가 변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편리한대로 행동에 맞추어서 억지 논리를 꾸며댄다면 곤란합니다. 인간이 점점 망가지는 것은 구조론의 마이너스 원리 때문인데 그걸 포스트모더니즘이라고 우기면 한심한 거지요. 구조론적으로 볼 때 원래 약빨이 다하면 망가지게 되어 있습니다. 디자인도 처음에는 아이폰 초기모델처럼 표준적인 것이 나오다가 나중에는 점차 괴상한 것이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원래 그런 거죠. 처음에는 학습을 해야하니까 표준에 맞추고 나중에는 다들 학습되어 있으니까 일부러 표준에서 이탈합니다. 


[레벨:11]큰바위

2016.08.31 (07:40:49)

하나의 경향일  → 하나의 경향일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16.08.31 (10:04:17)

고쳤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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