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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 10968 vote 0 2007.06.21 (01:19:18)

이해찬이냐 유시민이냐
나도 커밍아웃이라는 것을 해보자.

나도 커밍아웃이라는 것을 해보자. 나는 노무현의 지지자도 아니고 이해찬의 지지자도 아니고 유시민의 지지자도 아니다. 나는 나다.

9년 전에 ‘DJ광신도’라는 딱지를 붙이던 사람들이 4년 전부터는 ‘노빠’라는 딱지를 붙이더라. 요즘은 ‘빠~시리즈’가 정착된 분위기다. 조금 있으면 찬빠가 되든 강빠가 되든 유빠가 되든 하나는 되어야하지 않겠나 싶다.

누구를 지지하느냐고? 나는 나를 지지한다. 내가 대통령이 되어서 세상을 확 뒤집어 엎어버렸으면 속이 시원하겠지만 내게 그럴 능력이 없으므로 되도록 나의 정치적 스탠스와 가까운 사람을 돕는다. 나는 나를 돕는 이를 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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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세상과 나의 승부다. 여섯 살 아니면 일곱 살 때 남산 중턱 게눈바위에 올라 처음 도시를 바라보고 형에게 물었다. 저기 보이는 저 도시가 서울이냐고. 형은 대답했다. ‘저건 서울이 아니라 시내야.’ ‘그럼 서울은 어디에 있어?’ ‘서울은 저 산 너머 너머 너머 너머 백번 천번도 더 너머에 있어.’ 세상이 생각보다 크다는 사실을 그때 알았다.

아기였을 때.. 집을 떠나 동구밖으로 나오며 지나쳐 온 길을 잊지 않기 위해 노력했던 기억이 있다. 길 모퉁이를 돌아설 때 마다 뒤돌아보며 위치를 확인한다. 4살 때 처음으로 냇가에 갔던 기억, 다섯 살 때는 5리 떨어진 이웃마을 근처까지 가보았던 기억이 생생하다.

지금 내가 서 있는 위치를 알 수 없다는 것이 커다란 공포가 된다. 서울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다는 것은 내가 어느 구석에 파묻혀 있는지를 알 수 없다는 의미다. 아기가 고샅길로 나왔다가 되돌아가는 길을 잊어버린 기분이 된다. 세상의 끝을 보고 오기 전에는 내가 있는 곳을 알 수 없다. 문득 두려움이 엄습한다.

지금 나는 서울에 있지만 내 마음 속의 서울은 여전히 먼 곳에 있다. 세상의 끝, 진리의 끝, 가치의 끝, 완성의 끝.. 끝을 보아야 한다. 경계선을 확인해야 한다. 세상의 전모를 보지 못하면 아직 서울을 보지 못한 것이다.

서울은 중심이다. 우주의 중심, 진리의 중심, 세계의 중심, 삶의 중심이 있다. 내 마음 속의 서울은 그곳에 있다. 여섯 살, 일곱 살 때 찾으려 했던 서울을 나는 아직 찾지 못하고 있다.

나의 이념, 나의 사상, 나의 지지하는 바는 그 곳에 있다. 나는 단지 나의 서울을 찾고자 할 뿐이다. 그것이 나의 사상이라면 사상이고 철학이라면 철학이고 삶이고 전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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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람을 믿지 않는다. 사람을 믿되 그 사람의 입에서 나온 언어를 믿지 않는다. 그 사람이 처한 상황을 믿고, 포지션을 믿고, 확률을 믿고, 공학을 믿고, 역사를 믿고, 하늘을 믿는다. 좋은 포지션을 차지한 사람이 믿을만 하다. 가장 좋은 포지션을 차지한 사람은 가장 크게 세상과 각을 세우고 세상 전부와의 진검승부를 걸어가는 사람이다. 세상의 중심, 진리의 중심, 우주의 중심을 찾아가는 이가 있다면 나는 기꺼이 쫓아가서 그의 동행자가 되기를 청할 것이다.

인내천이라 했다. 땅 위에 하늘 있고 하늘 위에 사람이 있다. 그 하늘사람은 사람이되 땅바닥 위에 납작하게 붙어서 살금살금 기어다니는 그 사람이 아니다. 최수운이 ‘인간이 곧 하늘’이라 말했을 때의 사람은 우리 모두가 가진 지혜의 총합으로서의 사람이다. 진정 내가 도달하고자 하는 서울은 그곳에 있다. 이 하늘 아래 땅 우에서 사람 같은 사람 하나 만나 그의 동행자 되는 것이 나의 꿈이다.

개인적으로 유시민이나 노무현 스타일을 좋아하지 않는다. 노무현, 유시민 지지하다가 제 명에 못 죽겠다는 생각이 든다. 위산과다에 식도역류에 신경성 위염이다. 되도록 정치에 대한 관심을 줄이려 한다.

내가 꿈 꾸는 것은 드라마다. 이 나라 50년 민주화 대장정의 드라마에 이름 없는 한 명의 엑스트라로 나는 참여해 왔다. 거기에 자부심을 느낀다. 기어이 그 드라마가 완성될 때 내 삶의 드라마도 완성에 가까워지는 것이다.  

내게 있어서 민주화는 인간선언이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는데 인간을 모욕하면.. 치받는다. 독재는 인간을 모욕했다. 독재는 내게 자살을 강요했다. ‘백이 숙제는 당당하게 굶어죽었는데 너는 왜 아직도 살아있니?’ 독재는 끊임없이 내 귀에다 대고 이렇게 속삭였다. 굴종하여 짐승이 되느냐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지키느냐다. 사는게 죽기보다 힘들었던 시절이 있었다. 공기 입자 하나하나가 유리파편처럼 살을 찔러와서 숨쉬기 조차 힘들던 시절 있었다. 다행히 한 줄기 희망의 빛 있어서 몇 번의 자살연습에도 불구하고 용케 살아내기에 성공했다.

노무현, 유시민 스타일은 사실이지 사람 피말려 죽이는 거다. 김대중 스타일을 좋아한다. 그의 연설회마다 따라다녔던 피끓던 시절이 있었다. 두 김씨의 단일화 문제가 불거졌다. 둘 사이에서 1초도 고민하지 않았다. 박정희라는 인물에 각을 세우는 김영삼과 분단이라는 민족의 운명에 각을 세우는 김대중은 그 격이 다르다. 차원이 다르고 수준이 다르다. 비교대상이 아니다. 분단이 없었다면 독재도 없는 거다. 독재의 질곡은 식민지와 분단의 부산물에 불과하다. 우리의 진짜 적은 박정희나 전두환 따위 인물이 아니라 조선왕조의 비참한 몰락 그리고 식민지와 분단, 외세의 개입이라는 우리의 민족사적 운명이다. 그 지점을 바라보고 스탠스를 잡는 것이 산 너머 너머 너머에 있는 서울을 바라보는 것이다. 더 크게 내다보지 않으면 안 된다. 민주화 다음 단계까지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된다.

김대중은 말을 신중하게 한다. 단어 하나도 고심해서 선택한다. 그러니 바로 ‘음흉하다’는 마타도어가 날아온다. 노무현은 말을 대놓고 한다. 그러다 탄핵당했다. 말이란 것이 그렇다. 이렇게 해도 욕을 먹고 저렇게 해도 욕 먹는다. 조심해서 말하면 음흉하다고 욕을 먹고 솔직하게 말하면 싸가지 없다고 욕을 먹는다.

결국은 ‘일’이다. 일로 성과를 내서 적들을 굴복시키는 수 밖에 없다. 말만 앞세우는 정치인은 수명이 짧을 수 밖에 없다. 말로 적의 주의를 분산시켜놓고 그 틈에 잽싸게 일을 해치우는 정치인이 뭔가를 아는 사람이다. 일 잘하는 정치인이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말을 사용하는 것이다. 일은 못하는 주제에 말만 번드레한 정치인은 금방 그 본질이 탄로나고 만다.

상대가 어떤 그럴듯한 말을 해도 반박할 수 있다. 반박 할 수 없는 것은 하나 뿐이다. 예언을 한 다음 일정한 시간이 지난 후 그 예언이 맞았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이다. 유능한 사람만이 이 방법을 쓸 수 있다. 홈런 타자가 홈런 30개를 친다고 예언한 다음 실력으로 30개를 쳐내면 된다. 결국 말솜씨는 일솜씨에서 나오는 것이다. 자기가 한 말이 옳다는 사실을 자기가 증명시켜야 한다.

바른 말은 성공적인 일에서 나온다. 그리고 일은 결국 현장에서 나온다. 그 현장에서 30미터 정도 떠서 공중부양을 하고 있는 민노당류 먹물들은 정치를 말할 자격이 없다. 왜냐하면 그 현장은 변화의 현장이기 때문이다.

경제의 현장, 경쟁의 현장, 생산의 현장, 혁신의 현장에서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변화를 거부하고 눈을 감고 귀를 막으며.. 변화를 모르고 변화를 두려워 하는 자는 결국 도태될 수 밖에 없다. 말과 행동이 일치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말과 행동을 일치시키는 방법은 성공적인 일 밖에 없고 그 일은 오직 현장에서 얻어지며 그 현장은 변화의 현장이고, 경쟁의 현장이고, 낳음의 현장이기 때문이다. 낳음만이 희망이다. 무수히 낳아내지 않으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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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졸업할 때 까지 박정희정권에 속고 살았는데 대학교 가서 선배들 말 듣고 실상을 깨우쳤다는 사람들 많다. 나는 그런 사람을 신뢰하지 않는다. 고작 선배말이나 듣고와서 사상을 바꾼 사람이 그새 또 어디서 누구말 듣고 와서 사상을 바꾸고 입장을 바꾸지 않으란 법 있나?

나는 사상을 바꾼 일이 없다. 내게 사상이 있다면 그것은 일곱살 때 해목령 게눈바위 위에서 시내쪽을 바라보며 언젠가는 서울을 보겠다고 꿈을 품은 그것 밖에 없다. 그것은 하나의 포지셔닝이다. 나는 그 지점에서 세상과 각을 세운 것이다.

세상과의 관계맺기다.. 세상 앞에서의 단독자로.. 세상이 이렇게 나오면 나는 이렇게 대응을 하겠다는 원칙을 정하는 거다. 투수가 되든, 포수가 되든, 내야수가 되든, 외야수가 되든 그 지점에서 세상과 맞서는 나의 포지션을 정한 것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반 박정희였다. 박정희는 내가 서울을 가기 위해 넘어가야 할 무수한 봉우리들 중의 하나다. 어떻게 초, 중, 고등학교에서 착실히 수업을 듣고도 그리고 그 수업 중에 교과서에 나오는 민주주의를 다 배우고도 독재자 박정희를 섬길 수가 있지? 교과서에 민주주의 다 나온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다. 고등학생이나 되어서 그걸 모를 수 있다는 것이 말이나 되나?

나는 진보주의자고 -공동체적 의미에서의- 사회주의자다. 그 이전에 과학주의자였다. 과학이 우선이며 더 상위의 가치이며 진보주의나 사회주의는 내가 그 과학의 수단으로 세상과 접속할 때 거쳐가는 정거장들일 뿐이다. 사회주의가 뭔지 자본주의가 뭔지 몰랐을 때 사회의 모든 분야가 과학화 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그리고 사회주의를 알게 되었을 때 사회주의가 과학을 강조한다는 사실에 매력을 느꼈다. 그 뿐이다. 어떤 이념이든 과학을 무시하고는 성립될 수 없다.

마르크스들의 이론이라는 것을 신뢰할 수 없다는 사실은 진작에 알았다. 원래 이론이라는 것은 어떤 이론이든 당연히 의심되어야 한다. 목 위에 머리통이라는 것을 올려놓고도 이론을 의심하지 않는다는건 말이 안 된다. 중요한 것은 이론이 아니라 포지션이다. 세상을 향한 나의 스탠스다. 어느 지점에서 세상과 각을 세우는가다. 이론 따위는 수정할 수 있지만 그 자세는 절대로 바꿀 수 없다. 사상은 이론이 아니라 그 삶의 자세에서 나오는 것이다.

왜 진보가 옳은가? 진보가 변화를 낳고 그 변화가 내게 기회를 줄 것이기 때문이다. 진보하지 않으면 우선 변화가 일어나지 않고 변화가 없으면 내가 할 일이 없다. ‘도무지 나는 이 세상에 왜 왔느냐?’ 이 물음에 답하기 위해서 진보를 선택할 수 밖에 없다. ‘왜 사느냐?’고 물으면 뭐라고 답할래?

왜 공동체적 의미에서의 사회주의가 옳은가? 내가 얻은 것을 함께 나눌 친구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공동체가 없다면? 가족이 없고, 친족이 없고, 마을이 없고, 국가가 없고, 민족도 없고, 아무 것도 없다면? 동기부여가 없다. 이렇게 되면 설령 그 어떤 것이 옳다한들 그 옳음을 실천해야 할 이유조차 없는 것이다. 모든 일은 동기부여로부터 촉발된다. 동기부여는 어떤 식이든 결국 공동체적 의미를 가질 수 밖에 없다. 복지를 우선하든 성장을 우선하든 결국은 공동체의 공동선이라는 공동목표로 가기 위한 중간 과정에서의 일시적인 방법론에 지나지 않는다. 공동체의 공동선이라는 본질은 절대로 부정할 수 없다.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나는 나의 이익이 너의 이익과 합치된다는 전제 하에서의 최대 이익을 추구할 뿐이다.

진보는 참여의 기회를 보장하고 공동체적 가치는 동기를 부여한다. 동기가 없으면 일어설 수 없고 참여의 기회가 없으면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를 추구하는 것이다. 이미 내가 가야할 서울을 보았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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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지향하는 노선은 우리당도 아니고 민노당도 아니다. 내가 원하는 것은 현장의 정치다. 밀도높은 정치는 현장에서 나온다. 그것은 아슬아슬한 긴장상태에서 최대한 운용의 묘를 발휘하여 정밀항해를 하는 것이다.

민노당 주장에 맞는 말도 있고 틀리는 말도 있겠지만 그들은 지금 당장 다중이 참여할 기회를 제공하지 않는다. 그들은 아슬아슬한 긴장상태에서 얻어지는 밀도높은 정치를 원하지 않는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단순하게 가는 것이다. 정밀항해를 하지 않는 것이다. 대통령이 신통력을 발휘해서 ‘부시 이놈 항복해!’ 한 마디로 외교문제 해결하고 ‘김정일 협상테이블로 나와!’하고 다그쳐서 남북문제 해결짓고 ‘부자들 네 이놈 세금 더 내!’ 하고 혼줄내서 양극화 문제 해결하는 거다. 세상 일이 이렇게 쉽다면 얼마나 좋겠냐만 이건 아슬아슬한 긴장상태를 회피하는 것이고 현장에서의 밀도높은 정치를 기피하는 것이다. 자신감이 없는 태도이다. 어차피 안될 것이니까 목청이나 높여서 체면이나 세우자는 수작이다. 끝까지 희망을 버리지 말아야 한다. 운용의 묘를 발휘해야 하고 정밀항해 해야한다.

눈앞의 불을 끌 생각은 아니하고 ‘진작에 소화기를 갖다놨어야지!’하고 고래고래 호통만 치고 있는 사람 있다. 나는 그들의 방식이 맘에 들지 않는다. 진작에 소화기 갖다놨어야 한다는 노회찬 말도 맞는 말이긴 하지만.. 그런 말할 여유가 있거든 먼저 눈앞의 조중동 불부터 끄는 것이 맞다고 본다.

나는 사회의 진보가 어떤 뛰어난 자가 골방에서 혼자 생각해 낸 아름다운 설계도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인터넷과 같이 실제로 존재하는, 직접 손으로 만질 수 있는 물질적인 것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예컨대 지금 당장 실용적인 저온핵융합로가 발명되어 인류의 에너지난이 해소된다면 마르크스가 꿈 꾸었던 하루에 4시간만 일해도 되는 좋은 세상이 당장 실현될 것이다. 별도로 에너지를 투입하지 않고도 바닷물에서 소금을 제거할 수 있는 방법을 누군가가 발명해 낸다면 사하라사막은 대번에 옥토로 바뀔 것이다. 인류의 식량난은 단박에 해결될 것이다. 사회주의 낙원은 당장 실현될 것이다. 문제는 인류가 아직 그걸 발명해내지 못했다는 거다. 그러므로 아슬아슬한 긴장상태에서의 정밀항해를 추구하는 밀도높은 현장정치를 지금은 해야만 한다. 밀고 당기고 하며 우여곡절 끝에 조금씩 진도 나가주는 것이다. 그것이 현재 가능한 우리의 유일한 대안이기에.

지금 당장 다중이 참여할 거리를 던져 주는 것. 이것이 진짜다. 내가 그 투박함에도 불구하고 노무현을 좋아하는 것은 그가 끊임없이 우리에게 참여할 거리를 던져주기 때문이다. 당장 언론과의 싸움만 해도 그렇다. 그는 확실히 우리의 피를 끓게 하는데 성공하고 있다. 이런 식의 밀고당기기 방식이 피곤하고 성가시다고 여기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들은 애초에 작은 목표를 가졌거나 이미 목표를 달성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강남에 부동산을 가졌거나 먹고 살만한 작은 가게라도 얻어놓고 있는 사람들이다. 지금 형편에 만족하고 사는 사람들이다. 나는 만족하고 사는 그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김수현 드라마나 쳐보며 헬렐레 하고 사는 사람들하고는 대화하지 않는다.

우리 더 높은 가치를 바라보기를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 내가 김영삼이 아니라 김대중이 절대로 옳다고 믿은 이유는 박정희 극복의 민주화로 게임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분단 극복의 다음 단계가 또 남아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더 멀리 내다보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 모델의 완성을 통한 인류문명에의 기여라는 그 다음 단계도 예비되어 있다. 진도 나가야 한다.

글을 맺으면서 필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밀도높은 현장정치를 하는 것, 아슬아슬한 긴장상태를 유지하는 것, 운용의 묘를 발휘하여 정밀항해를 하는 것이다.

이해찬이냐 유시민이냐 논란이 있다. 강금실도 있다. 그 중 하나를 미리 선택하고 다른 것을 배척하여 조기에 마무리지으려는 태도가 있다면 이는 아슬아슬한 긴장상태에서의 정밀항해를 두려워 하는 심리 때문일 수 있다. 누가 되든 유시민과 강금실을 최대한 이용해야 한다. 서둘러 결정하려다가 강금실이 서울표와 여성표를 흔들어놓을 기회를 빼앗고 유시민이 젊은표와 영남표를 들쑤셔놓을 기회를 날려버린다면 아슬아슬한 긴장상태를 두려워 하는 어리석은 선택일 수 있다. 우리는 딴나라나 궁물파와 달리 고도의 정밀항해가 가능한 특별한 세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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