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보다 빠른 물질이 있다는데. 아인슈타인이 틀렸다고 한다. 논란이 있지만 만약 사실이라면 과학은 겸허해야 한다. 구조론이 기존의 과학이론을 가볍게 웃어넘긴다고 해서 놀란 눈으로 쳐다보는 일은 없어야 한다. 구조론은 수학이다. 과학은 수학을 이길 수 없다. 그건 하극상이다. 수학은 과학의 전제다. 구조론은 과학의 전제다. 진술이 전제를 부정할 수는 없다. 후건이 전건을 결정할 일은 없다. 원인이 결과를 칠 수는 있어도, 결과는 원인을 칠 수 없다. 부모는 자식을 버릴 수 있지만 자식은 부모를 부정할 수 없다. 그건 이미 결정된 일이기 때문이다. 필자는 오래전부터 빛보다 빠른 것의 존재에 대해서 말해왔다. 물론 이런 말은 누구나 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빠르다, 혹은 느리다가 아니라 속도가 뭐냐다. 그런데 속도가 뭐지? 구조론은 기존의 속도 개념을 해체한다. 이중슬릿 실험에 의해 정보가 빛보다 빠르다는 사실은 입증되었다. 이중슬릿 실험은 빛보다 앞서가면서 빛에게 길을 알려주는 무언가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했다. 제트기가 지나가면 충격파가 생기는데 충격파는 제트기보다 약간 빨리 간다. 구조론으로 보면 광속은 상대광속이고 절대광속은 빛보다 빠르다. 아인슈타인의 견해는 질량에 대한 것이고 물질이 질량의 형태로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질량은 물질을 파악하는 한 가지 방법에 불과하다. 그것은 어떤 대상에 작용시켜 반작용을 체크하는 것이다. 그 외에도 다양한 세계가 존재한다. 필자는 종교를 신앙하지 않지만 무신론자도 아니다. 구조론으로 보면 우리가 보는 세상은 하부구다. 상부구조가 있다. 그 세계는 질량을 넘어서는 세계다. 우리는 넓은 세상에서 지극히 좁은 부분만을 관측하고 있다. 구조론으로 보면 더 넓은 세계의 존재가 포착된다. 흔적이 있는 것이다. 빛보다 빠른 것이 있다고 해서 곧 시간여행 운운한다면 그 또한 바보같은 소리다. 시간은 실체가 존재하지 않으므로 여행할 수 없다. 체(體)와 용(用)으로 설명할 수 있다. 공간은 체고 시간은 용이다. 더 엄밀히 말하면 물질이 체고 시공간은 모두 용에 해당한다. 체는 있고 용은 없으므로 시간은 없고 따라서 시간여행은 없다. 시간은 물질의 변화를 파악하기 위해 고안해낸 인간의 관념일 뿐이다. 시간이 있다면 인간의 마음 속에 있으므로 시간여행은 없는 것이다. 여행은 travel이다. travel은 세 발이다. 세 발 달린 것은 삼지창이다. 순례자의 여행은 삼지창으로 발바닥을 찌르는 중세의 발바닥고문만큼 힘들었기로 travel이라 하는 것이다. 여행은 발바닥의 사정이다. 발바닥이 닿는 부분은 공간의 물질이다. 시간은 발바닥이 없고 그 발바닥을 찌르는 삼지창이 없으므로 여행할 수 없다. 광속을 넘어서면 시간이 마이너스로 간다는게 웃긴 소리다. 지구에서 느끼는 자신의 시간과 비교했을 때 마이너스일 뿐 절대적인 마이너스는 없다. 구조론으로 보면 세상은 마이너스로 간다. 플러스는 없다. 세상은 한 방향으로만 풀리는 실뭉치다. 그러므로 지금 시간이 진행하는 방향의 역방향 진행은 없다. 단지 나란히 달리던 사람이 한참 뒤쳐져 있으면 앞서가는 사람이 - 저넘이 나의 과거지점에 머물러 있군>과거로 갔군 - 이렇게 된 것인데 이는 관측자의 시점이동에 따른 언어의 실패다. 말이 틀린 거지 사실과는 무관하다. 구조론은 모형으로 판단하므로 윤곽을 포착할 뿐 세부적인 것은 알 수 없다. 이게 이렇게 되면 저건 저렇게 되어야 한다는 당위를 말할 뿐이다. 과학이 몇 가지 확실한 것을 말해주면 구조론은 거기에 연동시켜 내부의 모순을 지적해내는 정도다. 구조론은 대략적인 바운더리를 구획해 줄 뿐이다. 그 안에 각론을 채워넣는 것은 과학의 몫이다. 세상은 마이너스다. 그러므로 세상에 마이너스는 없다. 이렇게 말하면 헷갈리겠으나 정확히 말하면 관점의 이동이다. 기준점이 옮겨졌을 때의 상대적인 위치를 마이너스라고 말하는 것이다. 관측자의 위치를 고정시켰을 때 세상은 마이너스로만 가며 따라서 플러스는 없으므로 그 없는 플러스의 반대인 마이너스 또한 없으며 따라서 마이너스 시간은 없고 그러므로 과거로 여행한다는 따위는 없는 것이다.
더 엄밀히 표현하면 세상은 탑 포지션에서 바텀 포지션으로 가는 한 방향으로만 진행한다. 엄밀히 나타내려면 플러스 마이너스라는 용어도 버려야 한다. 헷갈리게 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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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가 현상에 우선한다.
정보에 의해서 현상이 발현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태초에 실존하는 것은 정보다.
그것은 구조의 정보다.
속도라는게 단위 시간당 이동한 공간인데, 이건 뉴튼이야기고, 아인슈타인에게 속도는 이동한 공간과 이동한 시간이고, 상대성 이론은 힘이 운동을 제한한다는 점이 각별. 광속이상으로 가속시킬 힘이 안된다는거. 빛보다 빠른건 힘이 운동보다 고차원이라고고 보면 됨. 동시에 일어나는 일이 다 빛보다 빠름. 시소만 봐도, 한쪽이 내려가면 다른한쪽이 그거 보고 광속으로 반응하는건 아니고 그냥 같이 올라가는거.
구조론으로 말하면 이동은 존재하지 않소.
예컨대 내가 부하지하님에게 전화를 해서
야 우리 서로 바꾸자 해서 오늘부터 니가 김동렬 해라 이래돼서
위치는 그대로 둔 채 서로 인격을 바꾸기로 하고
명의이전만 덜컥 해놓고 이동했다고 우기는 것이오.
이때 하나가 저쪽으로 갈때 반드시 저쪽에서도 하나가 이쪽으로 와야 하오.
그러므로 무한속도는 없고 절대속도가 생길 수 밖에 없소.
근데 실제로 자리를 바꾼 사람은 둘인데 외부로는 하나가 바뀐것처럼 대표되므로
겉으로 드러나는 속도는 절반이라는 것이오.
우주가 생긴 이래 이동은 없었소.
단지 이동으로 보여지는 배후에서의 연출이 있었던 것이오.
질이나 입자의 상위차원이라면 이야기가 다를수 있지만, 관측된 양과 운동을 논하는 하위차운에서는
하나가 있다면 배후에 둘이 있다기 보다는, 하나를 인식하는 과정에서 둘이 되는게 일반적인데요,
구조론에 운동이 있는데, 이동이 없다면 그도 어려움. 이동이 없다고 보는 지점은 시간이동과 공간이동의 합(곱이거나 특정함수)이 항상 같다정도일듯.
시간의 속성은 주기성이죠. 그런데 주기성이라는 것은 주기적인 변화를 내포하는데, 여기에서 변화하는 주체가 무엇이냐가 중요할 것 입니다. 물리학의 관점에서는 대략적으로 이 주체가 공간, 물질, 궁극적으로는 에너지의 변화가 될텐데, 아직은 이와 관련된 가장 깊은 단계에서의 정답을 물리학에서 못찾고 있는 실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상대론에 의하면 시간과 공간을 같은 가격(?)으로 매기고 있고 양자장론이 이 방법을 따르고 있는데, 그런데, 여기서 예를 들어, 공간의 주기적 변화를 시간으로 본다면 시간(time)과 공간(space)을 같이 뭉뚱그려서 '시공(spacetime)'이라는 같은 가격으로 평가하는 체계는 손 볼 여지가 다분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동렬님께서 구조강론 칼럼에서 말씀하신 내용과는 직접적으로 연관된 내용의 댓글은 아니지만, 시간과 공간을 말씀하시면서 언급하신 체(體)와 용(用)의 관계에 눈길이 가서, 물리를 공부하는 입장에서 제가 앞으로 연구해보고 싶은 내용이라서 살짝 적어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