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조선일보는 딴지 전문에서 이간질 전문으로 업종을 변경하고 있다. 국참연과 참정연을
이간질한다며 삽질하더니 이번에는 또 전대협을 제멋대로 둘로 나누어서 자유파니 개혁파니 하며 이간질하고 있다.
안되니까 수구좌파니 수구진보니 하는 웃기지도 않은 신조어를 만들어내고 있다. 참으로 구차스럽기 짝이 없는 짓이다. 불쌍하다.
우리당만 이간질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한나라당 이간질에도 열심이다. 물론 이명박 밀어서 박근혜를 떨어뜨려 보자는 흉계다. 참고로 조선일보의 홍준호 칼럼을 인용하면.
대략 맞는 말이다. 문제는 홍준호가 지적하고 있는 ‘하지 말자만 있지 하자가 없는’ 신문이 바로 조선일보가 아닌가 하는 점이다. 요즘 조선일보가 뭐 하나 해 보자고 비전을 제시한 것이 있나?
옛날에는 조선일보가 횡포를 휘두르면 딴지일보가 딴지를 걸곤 했다. 근데 이제는 입장이 바뀌어서 조선일보가 딴지일보가 되었다.(최근에는 대략 딴지신공보다 이간질신공이 두드러진듯.)
홍준호는 제목을 잘못 뽑았다. ‘야당은 없다’가 아니라 ‘조선일보는 없다’가 대략 맞는 제목이 아니겠는가?
하자가 없어진 조선일보
두 선수가 대결을 벌이는데 한 쪽은 입으로만 싸우고 다른 쪽은 온몸을 다 사용해서 싸운다고 치자. 누가 이기겠는가? 당연히 온몸을 다 사용하는 쪽이 승리하게 되어 있다.
우리가 조선일보에 수구꼴통이라는 본질을 확인시켜주자 과연 그들은 수구꼴통을 자신의 주력업종으로 선정하였다. 그들은 우리의 명령에 충실한 것이다. 지금 저들이 역으로 우리에게 수구좌파라는 딱지를 붙이려 하고 있다. 성공할 것인가?
조선일보가 수구꼴통으로 역할이 좁혀진 이유는 ‘하지 말자만 있지 하자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과거 여당지 할 때는 그렇지 않았다. 그 시절에는 조선일보에도 ‘하자’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 조선일보에서 ‘하자’를 찾아보기는 불능이다.
딱지란 것이 붙인다고 해서 붙여지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움직이지 않고 있으면 딱지가 붙여진다. 그러나 우리가 움직인다면 그 딱지는 결코 붙지 않는다. 우리에게 '하지말자가 아닌 하자가 있는 한', 우리가 현장에서 실천하며 점차 보폭을 넓히고 동선을 넓혀가는 한 그러한 딱지붙이기는 실패하게 되어 있다.
왜인가? 수구가 수구인 이유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 들기 때문이다. 우리가 무엇인가에 부단히 도전하는 한 수구로 머물러 있기란 불능이다. 모든 하여지는 것은 반드시 새로움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입으로만 싸우는 조선일보
요즘 조선일보는 입으로만 싸우고 있다. ‘하자’가 있다면 손과 발을 모두 사용하게 된다. 그러나 ‘하지말자’만 있다면 입 외에는 쓸 것이 없다. 아무것도 하지 않을 바에 손과 발이 무슨 소용이겠는가?
그러다 보니 이간질과 딴지걸기가 그들의 주특기가 되었다. 입만 사용해서 할 수 있는 일이 이간질과 딴지걸기 외에 더 있겠는가?
반면 서프라이즈는? 온몸으로 싸우고 있다. 노짱방의 텍스트 전문에서 라이브이즈와 디알에브리바디의 이미지로 점차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대통령은?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하고 있다. 적들은 한사코 입으로, 텍스트로만 싸우려드는데 반해 우리는 소리로, 향기로, 이미지로, 동영상으로 전방위적으로 싸우고 있다. 누가 이기겠는가?
대통령이 아르빌을 방문하고 있다. 대통령의 엘에이 발언이 ‘말’로 한방을 먹인 경우라면 아르빌 방문은 ‘이미지’로, ‘동영상'으로 한 방을 먹인 셈이다. 소총으로 한방을 때려놓고 적이 기관총으로 반격하려들 때 공군을 동원하여 융단폭격으로 퍼부어버린 셈이다.
보안법 철폐를 뒷받침하기 위한 대통령의 환경조성 작전은 착실히 진행되고 있다. 위에서 이렇게 밀어주는 데도 못한다면 느려터진 천정배는.. 어휴! 천정배는 삭발이라도 해서 결의를 다지고 다시 시작하기 바란다.
안되니까 수구좌파니 수구진보니 하는 웃기지도 않은 신조어를 만들어내고 있다. 참으로 구차스럽기 짝이 없는 짓이다. 불쌍하다.
우리당만 이간질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한나라당 이간질에도 열심이다. 물론 이명박 밀어서 박근혜를 떨어뜨려 보자는 흉계다. 참고로 조선일보의 홍준호 칼럼을 인용하면.
야당은 없다 (홍준호 논설위원) 한나라당은 알 수 없는 야당이다.(중략) 한나라당이 과거 야당과 결정적으로 다른 건 ‘하지 말자’만 있지, ‘하자’가 없다는 점이다. ‘하자’가 없다는 건 내놓을 상품이, 남다른 상품을 만들 생각과 철학이 없다는 말이다.(중략) 수비전담팀은 역습 기회가 와도 좀처럼 하프라인을 넘지 않는다. 야당 대표부터 “국민은 싸우는 걸 싫어한다”고 여당이 할 말을 먼저 한다.(중략) 과거 야당은 한나라당보다 훨씬 적은 의석으로도 힘이 있었다. 국민과 더불어 해야할 ‘무엇’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에는 바로 그것이 없다. 지금 국민들은 야당의 존재를 느끼지 못하고 있다. 당명(黨名)을 바꾼다고 될 일이 아니다. |
대략 맞는 말이다. 문제는 홍준호가 지적하고 있는 ‘하지 말자만 있지 하자가 없는’ 신문이 바로 조선일보가 아닌가 하는 점이다. 요즘 조선일보가 뭐 하나 해 보자고 비전을 제시한 것이 있나?
옛날에는 조선일보가 횡포를 휘두르면 딴지일보가 딴지를 걸곤 했다. 근데 이제는 입장이 바뀌어서 조선일보가 딴지일보가 되었다.(최근에는 대략 딴지신공보다 이간질신공이 두드러진듯.)
홍준호는 제목을 잘못 뽑았다. ‘야당은 없다’가 아니라 ‘조선일보는 없다’가 대략 맞는 제목이 아니겠는가?
하자가 없어진 조선일보
두 선수가 대결을 벌이는데 한 쪽은 입으로만 싸우고 다른 쪽은 온몸을 다 사용해서 싸운다고 치자. 누가 이기겠는가? 당연히 온몸을 다 사용하는 쪽이 승리하게 되어 있다.
우리가 조선일보에 수구꼴통이라는 본질을 확인시켜주자 과연 그들은 수구꼴통을 자신의 주력업종으로 선정하였다. 그들은 우리의 명령에 충실한 것이다. 지금 저들이 역으로 우리에게 수구좌파라는 딱지를 붙이려 하고 있다. 성공할 것인가?
조선일보가 수구꼴통으로 역할이 좁혀진 이유는 ‘하지 말자만 있지 하자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과거 여당지 할 때는 그렇지 않았다. 그 시절에는 조선일보에도 ‘하자’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 조선일보에서 ‘하자’를 찾아보기는 불능이다.
딱지란 것이 붙인다고 해서 붙여지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움직이지 않고 있으면 딱지가 붙여진다. 그러나 우리가 움직인다면 그 딱지는 결코 붙지 않는다. 우리에게 '하지말자가 아닌 하자가 있는 한', 우리가 현장에서 실천하며 점차 보폭을 넓히고 동선을 넓혀가는 한 그러한 딱지붙이기는 실패하게 되어 있다.
왜인가? 수구가 수구인 이유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 들기 때문이다. 우리가 무엇인가에 부단히 도전하는 한 수구로 머물러 있기란 불능이다. 모든 하여지는 것은 반드시 새로움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입으로만 싸우는 조선일보
요즘 조선일보는 입으로만 싸우고 있다. ‘하자’가 있다면 손과 발을 모두 사용하게 된다. 그러나 ‘하지말자’만 있다면 입 외에는 쓸 것이 없다. 아무것도 하지 않을 바에 손과 발이 무슨 소용이겠는가?
그러다 보니 이간질과 딴지걸기가 그들의 주특기가 되었다. 입만 사용해서 할 수 있는 일이 이간질과 딴지걸기 외에 더 있겠는가?
반면 서프라이즈는? 온몸으로 싸우고 있다. 노짱방의 텍스트 전문에서 라이브이즈와 디알에브리바디의 이미지로 점차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대통령은?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하고 있다. 적들은 한사코 입으로, 텍스트로만 싸우려드는데 반해 우리는 소리로, 향기로, 이미지로, 동영상으로 전방위적으로 싸우고 있다. 누가 이기겠는가?
대통령이 아르빌을 방문하고 있다. 대통령의 엘에이 발언이 ‘말’로 한방을 먹인 경우라면 아르빌 방문은 ‘이미지’로, ‘동영상'으로 한 방을 먹인 셈이다. 소총으로 한방을 때려놓고 적이 기관총으로 반격하려들 때 공군을 동원하여 융단폭격으로 퍼부어버린 셈이다.
보안법 철폐를 뒷받침하기 위한 대통령의 환경조성 작전은 착실히 진행되고 있다. 위에서 이렇게 밀어주는 데도 못한다면 느려터진 천정배는.. 어휴! 천정배는 삭발이라도 해서 결의를 다지고 다시 시작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