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적설계와 자연선택의 공통점은 어떤 하나가 결정한다는 점이다. 그런데 방향이 다르다. 지적설계는 사건의 원인 측을 보고 자연선택은 결과 측을 본다. 원인이 결정하는가, 결과가 결정하는가? 사실은 권력문제를 돌려서 말한다. 권력은 군주의 것인가, 국민의 것인가? 지적설계는 왕권을 상징하고 자연선택은 민권을 상징한다. 답정너에 아전인수. 권력은 절대 양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대화는 무의미하다. 사실에는 관심이 없다. 권력은 부모 자식 간에도 나누지 않는다. 그런데 왜 보수적인 판사는 민권의 손을 들어줘야만 했는가? 원래 왕을 따르는게 민이다. 엘리트가 왕권에 도전한다. 왕과 민의 대결로 보이지만 사실은 왕과 엘리트의 대결에 민은 심판자다. 보통 민은 왕당파에 가담하여 엘리트와 싸운다. 엘리트는 왕과 싸우며 민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지만 말이 그렇고 전선은 하나 더 있다. 왕과 엘리트의 대결, 엘리트의 민의 대결로 복잡하다. 판사는 왕(신)과 엘리트(과학자)의 대결로 알고 왕의 편을 들려고 했는데 사실은 엘리트 기득권와 무개념 민중의 대결이라는 사실을 알아채고 엘리트 기득권 편을 든 것이다. 정의당 노선이 오락가락 하는 이유다. 구조론으로 돌아가자. 구조론은 양쪽을 본다. 원인이 결정한다는 지적설계와 결과가 결정한다는 자연선택을 부정하고 둘의 상호작용을 본다. 그것은 메커니즘이다. 원인과 결과는 한 줄에 꿰어진다. 구조는 물레방아로 설명할 수 있다. 물, 물레, 연결, 공이와 확이 있다. 하나의 사건에는 다섯 개의 의사결정 지점이 있다. 복잡을 해체하며 단계적으로 차원을 높여간다. 그러므로 우주 안에 T보다 복잡한 것은 없다. T는 수직과 수평의 방향전환을 의미한다. 그냥 방향전환이 있는 것이다. 그게 구조다. 단 붙잡아야 방향을 전환할 수 있다. 물레는 물을 붙잡고 있다. 확은 공이를 붙잡고 있다. 두 곳에서 붙잡는다. 요리사는 칼을 붙잡고 도마는 생선을 붙잡는다. 모든 사건은 원인과 결과 두 곳에서 붙잡아서 결정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양쪽을 동시에 관측해야 한다. 하나가 다 결정한다는 생각은 틀렸다. 지적설계가 틀렸다는 것은 너무나 명백해서 설명할 필요가 없다. 문제는 권력이다. 인간들이 포기하지 않는 이유는 권력을 내놓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지적설계는 핑계고 목적은 권력획득이다. 과학자들 역시 권력에 집착한다. 왜 대륙이동설이 외면되었나? 권력문제다. 지적설계는 권력문제로 그냥 해본소리지만 중대한 함의가 있다. 결과가 결정하는가? 천만에. 결과는 결정하지 않는다. 결과는 결정된 것이다. 능동이 아니라 수동이다. 수동으로 설명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자연선택이 틀렸기 때문에 납득을 못하고 의심하는 것이다. 지적선택이 밀고 있는 환원불가능한 복잡성은 없다. 우주 안에 T자보다 복잡한 것은 없다. 시계가 복잡해 보이지만 장사꾼들이 돈 벌려고 분과 초와 요일과 날짜까지 서비스 해서 복잡해진 것이다. 핵심은 단순하다. 초간단 라디오 키트라면 트랜지스터가 핵심 부품이다. 복잡을 이해하지 못하는 인류는 우연이라는 말 뒤에 숨는다. 모르겠다는 말과 같다. 모르면 닥쳐야지. 연구를 하든가. 우연은 없으며 반드시 원인이 있다. 우연은 장소와 시간의 우연일 뿐 본질은 필연이다. 입이 있으면 항문의 존재는 필연이다. 항문 위치는 우연이다. 부분적 우연을 가지고 전부 우연이라고 말하면 안 된다. 머리와 꼬리는 필연이지만 꼬리의 길이는 우연이다. 우연은 필연 안에서 세부를 확정할 뿐이다. 본질은 메커니즘이고 메커니즘은 연결이다. 연결되지 않고 탄생하는 존재는 없다. 빅뱅 때 생명은 결정된 것이다. 우주 이전에 대해서는 모르므로 엑스라고 하자. 엑스-우주-생명-문명-권력의 탄생은 필연의 메커니즘이다. 인간은 권력을 추구한다. 권력이 의미다. 문제는 권력 앞에 나를 붙이는 것이다. 내 권력이라고 좁히므로 망하게 된다. 아전인수에 답정너 게임이 되는 것이다. 보수가 자유주의를 떠들지만 사기다. 자유주의는 급진주의와 통한다. 무정부주의가 된다. 진보와 보수 양쪽을 장악하고 가운데를 협공하는 전략이다. 이준석이 윤석열에게 영혼을 팔아먹은 것과 같다. 원래 자유주의와 보수주의는 상극이다. 그런데 속임수가 들어가준다. 자유를 외치면 노예해방부터 해야하는데 노예주의 자유를 주장한다. 엥? 보수 판사가 지적설계를 과학으로 인정했다면? 그게 무정부주의다. 극단적 자유는 극단적 진보가 된다. 인터넷 초창기에는 무정부주의라도 별 문제가 없었다. 일베가 등장하면서 자유가 망했다. 자유를 억압하는 전체주의 세력이 자유를 주장하는 이유는 이준석의 세대포위 전략과 같은 속임수 전술에 불과하다. 정의당의 멸망이 그런 박쥐 행동들 때문이다. 인간이 대부분 이런 식으로 정치적 기동을 하고 있다. 있는 그대로의 진실을 보려고 하는 사람은 없다. 권력욕을 버리고 객관적으로 보면 우주는 권력의 디자인이다. 권력은 사건의 원인 측에 있다. 인간은 권력을 원하며, 권력은 문명에서 나오고, 문명은 생명에서 나오고, 생명은 우주에서 나오고, 우주는 우리가 모르는 미지수에서 나온다. 사실이 그러하므로 인정해야 한다. 미지수 엑스는 있다. 그것이 인간을 설계한 것은 아니다. 설계할 필요가 없다. 에너지만 결정되면 나머지는 자동진행이다. 세상은 전혀 복잡하지 않다. 복잡하다는 말은 쫄았다는 의미다. 쫄지 말자.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인간이 추구하는 의미는 결국 권력이라는 거다. 신이라는 말도 곰곰이 생각해보면 권력을 의미하는게 보통이다. ‘나의 권력은 정당하다구.’ ‘어째서 정당한데?’ ‘신에게 물어봐.’ 많은 경우 신은 정당하지 않은 권력을 정당화 하는 레토릭에 불과하다. 그런데 그것은 있다. 권력은 존재한다. 당신의 인권과 그 출처는 있다. 권력의 메커니즘을 이해 못한다는 이유로 부정하면 안 된다. 총알이 있으면 총도 있다. 어디서 쐈는지 모르지만 분명히 있다. 미지수 엑스를 부정하는 것은 자신의 권력을 부정하는 것과 같다. 나의 인권을 부정하는 것과 같다. 회의주의를 극단적으로 밀면 그렇게 된다. 결론 1. 나는 있다. 우주 이전의 존재에서 우주-생명-문명을 거쳐 내게 권력이 주어진 것이며 인간이 추구하는 의미는 권력이다. 의미가 없으면 허무다. 허무한 이유는 죽으면 권력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나의 권력을 찾지 말고 권력 그 자체의 존재를 기뻐하는 마음이 있으면 해결된다.
신 - 우주 - 생명 - 문명 - 권력 신은 권력의 근거다. 신은 우주를 낳고 우주는 생명을 낳고 생명은 문명을 낳고 문명은 권력을 낳는다. 권력 앞에서 인간은 흥분한다. 당장 권력을 장악하려고 하지 말고 우리가 권력의 디자인을 잘해야 한다. 자동차 운전석에 앉기 전에 좋은 자동차를 만들어야 한다. 인간은 막연히 잘 먹고, 잘 살고, 행복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대략 길들여진 것이고 가스라이팅 된 것이다. 화가는 좋은 그림을 그리고 음악가는 좋은 연주를 하고 국민은 좋은 권력을 디자인 한다. 개는 짖고 말은 달린다. 사유화를 포기하면 좋은 권력이 만들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