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지고 보면 인류의 모든 사상이 무엇을 '하지마라'는 거다. 무엇을 하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시피 하다. 부족민의 터부와 같다. 노자의 무위라는게 터부다. 터부는 하와이어다. 요즘 유행하는 생태주의니 유기농이니 신토불이니 하는 것도 무엇을 하지마라는 거다. 새로운 터부를 만들어내고 있다. 성찰이니, 진정성이니 하지만 곰곰이 따져보면 그것도 무엇을 하지마라는 말이다. 그런데 우리가 안 하면 윤석열이 한다. 독일이 원전을 하지 않으니 러시아가 가스를 잠근다. 독일은 러시아에 약점 잡혔다. 신자유주의도 마찬가지다. 규제하지 마라. 세금 올리지 마라. 하지마라는 거다. 문제는 이게 동물의 본능이라는 점이다. 고양이는 박스를 좋아한다. 소는 벽을 좋아한다. 히키코모리는 방을 좋아한다. 자신을 좁은 공간에 가두면 예민해진다. 자기 내부로부터 반응에 귀를 기울이게 되는 것이다. 그게 자신을 자극하고 자신을 공격하는 퇴행행동이다. 자신을 쥐어짜는 행동이다. 종교도 그렇다. 개는 좁은 개굴 속에 커다란 대형견이 무려 일곱 마리가 들어가 있다. 좁은 예배당에 빼곡히 들어앉아 동료의 방귀를 먹는다. 그게 사실은 호르몬을 먹으려는 행동이다. 인간은 동료의 땀냄새를 맡을 때 마음이 편안해진다. 축제든 클럽이든 스포츠든 그렇다. 그게 좁은 공간에 모여 있으려는 행동이다. 무의식의 명령을 따르고 있다. 그게 나쁜 것은 아니다. 문제는 동물의 본능이라는 거다. 인간들의 각종 개소리는 동물의 본능이다. 인간은 좁은 공간에 들어가서 긴밀한 관계를 맺기를 원한다. 원시인의 움집은 작다. 동물의 본능을 극복하고 인간의 모습을 찾아가는 것이 군자의 도리다. 그게 공자의 극기복례다. 우리가 안 하면 윤석열이 한다. 민주당이 안 하면 국힘당이 한다. 무언가를 해야 한다. 무언가를 하지 않는 방법으로는 2등까지 갈 수 있을 뿐 우승은 할 수 없다. 인류를 구하는 것은 수소경제와 핵융합이다. 지열발전 같은 걸로 뜻밖의 활로가 개척될지도 모른다. 어쨌든 요즘은 인터넷 덕에 산다. 인류는 끝없이 무언가를 해서 그 힘으로 전진한 것이다. 생태가 아니라 기술이 인류를 구한다. 생태라는 말은 아무것도 하지 말자는 말이다. 생산력이 인류를 구한다. 지구에 처음 생명체가 탄생했을 때 일은 저질러진 것이며 생태는 그때 이미 끝장났다. 진화하는 방법으로 생태는 유지될 수 있다. 그게 본래의 모습이다. 균형은 균형이 아니다. 균형 위에 더 큰 단위의 균형이 있기 때문이다. 진정한 균형은 하나의 균형을 발판으로 삼아 더 높은 단위의 균형으로 올라가는 것이다. 그리하여 우주를 모두 연결시키는 것이다. 좁은 공간에 숨어 균형에 도달하기 쉽다. 그게 사실은 퇴행이다.
하지 않는 방법으로 인류는 구원될 수 없고 무언가를 하는 방법으로만 가능하며 하는 과정에 시행착오는 어쩔 수 없이 거쳐야 한다. 실패와 좌절을 두려워 말고 미래를 향해 전진해야 한다. 자연은 더 많은 연결로 상호작용을 증대시키는 일방향으로 작동하게 되어 있다. 구조론은 의미주의, 긍정주의, 연결주의, 행동주의, 낙관주의다. 허무주의, 부정주의, 고립주의, 무위주의, 비관주의를 경계한다. 때로는 하지 말아야 할 일도 있지만 일단 하는게 먼저다. 엑셀레이터 페달을 먼저 밟고 브레이크는 나중 밟는다. 일단 해보는게 먼저다. 해야한다. 하다보면 잘못되기도 하지만 큰 행위로 작은 행위를 이긴다. 잘못된 행위도 더 큰 행위를 끌어내는데 쓰인다. 생각과 언어는 변명에 쓰이며 답은 언제나 행동이 낸다. 에너지는 언제나 균형을 따르고 자연의 숨은 균형이야말로 우리가 도달해야 할 해답이다. 부단한 연결과 상호작용을 통해 랠리를 이어가며 자연의 균형을 끌어내는게 우리의 일이다. 균형에 머무르면 안 된다. 진정한 균형은 동적균형이다. 멈추는 균형이 아니라 움직이는 균형이라야 한다. 파도를 타든 자전거를 타든 보드를 타든 움직이며 균형을 잡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