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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2909 vote 0 2022.03.09 (18:21:48)

    인간학과 인류학은 다르다. 인간학은 내가 지어낸 말이다. 여기서 인간은 문명적 인간이다. 인류학이 문화를 중심으로 외부에서 관찰하는 타자성의 학문이라면 인간학은 문명을 중심으로 인간 내부의 의사결정구조를 파고드는 주체성의 학문이다. 문화는 확산되어 다양성이 강조되지만 문명은 수렴되어 한 방향으로 나아간다. 문명이 선행하고 문화가 따르는 것이다. 큰 나무와 같다. 가지는 여럿이라도 줄기는 하나다. 주류를 이루는 하나의 문명에서 다양한 문화가 뻗어나가는 것이다.


    인류학 - 문화의 다양성을 강조
    인간학 - 문명의 일원성을 강조


    인류학이 다양한 문화를 비교한다면 인간학은 문명이 야만과 차별하며 하나의 중심으로 수렴되는 점을 탐구한다. 문명은 중심이 있다. 그 중심은 중국에 있지 않고, 영국에 있지 않으며, 미국에 있지도 않다. 문명은 인구의 증가, 산업의 발전, 상호작용의 증대에 맞게 끊임없이 중심을 이동해 왔다. 나무의 가지 끝에 생장점이 있듯이 문명은 상호작용의 중심이 있다. 분명한 방향성이 있다. 문명은 상호작용의 증대방향으로 나아간다. 움직이는 물체는 무게중심이 있고 움직이는 문명은 상호작용의 중심이 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그러나 인간의 유전자에 새겨진 사회의 규모는 원시인의 동굴 하나를 공유하는 20여 명의 무리다. 그 숫자를 넘으면 낯을 가리고 해코지를 한다. 이지메를 하고 왕따를 하고 츤데레를 하고 신고식을 한다. 인간은 교육에 의한 사회화 과정을 거쳐서 비로소 인간이 된다.


    문제는 문명중독이다. 세계 도처에서 많은 문제가 일어나는 이유는 우리가 훈련받은 사실을 잊어먹기 때문이다. 1만 년 전의 인류나 지금의 인류나 유전자는 똑같다. 우리는 상당히 훈련되어 있다. 우리에게는 자연스럽게 되는 것이 아프리카에는 잘 안 된다. 중심에서는 되는 것이 변방에서는 잘 안 된다. 젊은이는 되는데 노인은 잘 안 된다. 빈자는 되는데 부자는 잘 안 된다. 반대로 부자는 되는데 빈자가 안 되는 경우도 있다. 거기에는 구조적인 이유가 있다. 환경과 맞물려 있다는 말이다. 액션과 맞물려 있다. 인간의 의사결정이 분별을 따라가야 하지만 실제로는 행위를 따라가고 흐름을 따라간다. 그러다가 수렁에 빠지기도 한다. 자력으로는 탈출할 수 없다. 인간이 잘못을 저지르는 이유는 나쁜 생각 때문이 아니라 거기가 수렁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계몽주의 방법은 실패한다. 말로 설득해서는 안 되고 물리적인 경험으로는 된다.


    수렁에 빠진 사람에게 '너는 왜 그곳에서 그러고 사니?' 하고 묻는 것은 빈자에게 '너는 빵이 없다면서 왜 고기를 먹지 않니?' 하고 묻는 것과 같다. 변방사람은, 약자는, 부자는, 엘리트는, 강자는, 노인은, 보수는 각자 자기만의 수렁에 빠져 있다. 물에 떠내려가는 사람에게 '너는 왜 하류로 가니? 상류가 더 살기가 좋은데.' 이런다. 늑대에게 쫓기는 사슴에게 '너는 왜 직진만 고집하니? 90도로 꺾으면 늑대를 따돌릴 수 있잖아? 이런다. 직진만 고집한 사슴은 스피드를 발달시켜 살아남았고 생각을 한 사슴은 생각하느라 한눈을 파는 바람에 습격당해 멸종했다. 변방에서는, 약자는, 노인은, 물에 빠진 사람은, 에너지가 없는 사람은 차라리 잘못된 행동을 하는게 생존확률을 약간 높인다.


    아기는 독립적으로 판단하고 결정하는 것보다 울면서 어른을 끌어들여 의사결정을 집단에 떠넘기는게 낫다. 고아가 되거나 너무 일찍 독립한 애어른이 되면 어른을 불신하고 사회를 거부한다. 함부로 어른을 믿다가 유괴범을 따라가는 수도 있지만 전체적인 생존확률로 보면 어른을 믿고 의사결정을 집단에 떠넘기는게 더 낫다. 이성적인 판단보다 감성적인 판단의 생존확률이 높다. 문제는 이게 원시사회에만 적용된다는 점이다. 문명사회에서는 막연히 생존확률을 높이는 확률적 기동보다는 합리적으로 판단하는게 더 낫다. 왜냐하면 경쟁자가 있기 때문이다. 원시사회는 생존확률을 높이는 감성적인 판단을 해야하지만 문명사회는 경쟁자를 이기는 합리적 판단을 해야 한다.


    원시사회 - 집단에 판단을 떠넘기는 감성적 기동이 생존확률을 높인다.
    문명사회 - 이성적인 판단이 경쟁자를 이긴다.


    원시사회는 자연을 이겨야 하지만 문명사회는 이웃을 이겨야 한다. 원시사회의 사슴은 아무 생각없이 달리기를 열심히 하여 지친 늑대를 따돌리는게 낫지만 문명사회의 인간은 90도로 꺾어서 슬기롭게 늑대를 따돌려야 한다. 왜냐하면 인간의 슬기는 복제되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에게 기술을 가르쳐줄 수 있다. 집단 전체의 생존확률을 높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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