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자를 남기기 위하여는 거짓이다 과학자는 과학적 언술을 구사해야 한다. 답은 상호작용 메커니즘에 있다. 메커니즘은 어떤 둘의 동시적인 변화다. 어떤 A의 변화에 연동되어 B가 나란히 변할 때 그것이 메커니즘이다. 종이 변하면 환경이 변한다. 환경이 변하면 종이 변한다. 어디까지 변하는가? 조절 메커니즘이 있다. 과학은 변화를 조절하는 상호작용 메커니즘 중심으로 기술되어야 한다. 위하여가 아니라 의하여다. 진화 생물학자들은 걸핏하면 ‘유전자를 남기기 위하여’라고 하는데 '위하여'는 언어적으로 불성립이다. 이 작자들은 국어 시간에 졸았다. 인과율에 따라 원인이 결과에 앞선다. 과거가 미래를 결정한다. 위하여는 미래다. 미래가 어떻게 과거를 결정하는가? 돌았냐? 초딩도 안 속아 넘어갈 뻔뻔한 거짓말을 하고 있다. 유전자를 남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지속가능한 생태계 균형 메커니즘에 의해서다. 균형이 깨지면 상호작용이 끊어져서 지속불가능해지고 생태계는 파괴된다. 종은 멸종한다. 멸종했다면 지금 포유류들이 존재해 있을 리가 없다. 존재한다는 것의 전제는 멸종을 피했다는 것이다. 멸종을 피했다는 것의 전제는 적절한 균형이 유지되는 것이다. 균형의 유지는 조절 메커니즘이 작동했다는 의미다. 탁구를 하든 배구를 하든 랠리가 길게 이어져야 한다. 한쪽이 죽어버리면 경기를 진행할 수 없다. 생태계는 멈춰버린다. 종과 환경은 구기 선수가 네트 너머로 공을 넘기듯 상호작용의 메커니즘을 작동시킨다. 위하여는 메커니즘이 없다. 무슨 사건이든 원인이 결과보다 커야 한다. 원인은 짝수고 결과는 홀수다. 망치와 모루 전술과 같다. 공격하면 방어하므로 교착된다. 승부가 나지 않는다. 원인이 작동하려면 반드시 결과에 없는 무언가가 하나 더 플러스 되어야 한다. 늑대와 발톱 둘이서 사슴을 공격한다. 총과 포수 둘이서 사냥한다. 반드시 하나가 더 있다. 그 둘을 묶어주는 것이 메커니즘이다. 주로 사람과 도구다. 공격주체와 힘이다. 자연에서는 종과 환경이다. 위하여는 둘이 아니고 결과가 원인보다 크므로 말이 안 되는 거다. 의하여는 반드시 둘이다. 보통은 포지셔닝이다. 준비된 도구, 더 강한 힘, 더 높은 포지션을 잡고 공격하는 것이다. 바이러스만으로 안 되고 접촉이든 비말이든 거기에 하나가 추가되어야 한다. 보통은 유전자를 남기기 위해서라고 하는데 참으로 황당한 언술이다. 동물은 무식해서 유전자를 모른다. 과학의 기술은 생태계의 조절 메커니즘으로 보는 것이어야 한다. 모든 존재는 반드시 조절장치가 있다. 대부분 그것은 전자기력이다. 외력의 작용에 깨지거나 버티거나 결정하는 것이 전자기력이다. 모든 종은 조절에 성공했다. 살아남은 종은 생태계 환경과의 상호작용 끝에 적절히 조절해 왔다. 균형을 찾아온 것이다. 인간만 폭주하고 있다. 문제는 조절이 되느냐다. 수컷 사자는 다른 수컷을 죽여서 사바나의 균형을 유지한다. 그런데 암컷은 어쩌지? 모두 죽일 것인가? 선별할 수 없다. 대장 숫사자는 수컷은 조절하나 암컷은 조절을 못한다. 조절할 수 있는 부분을 조절하는 것이다. 조절하는 이유는 스트레스 때문이다. 환경부터 장악해야 하는데 환경을 장악하려면 방해자를 제거해야 한다. 사냥터의 영역획득 과정에서 방해자를 죽이는 것이다.
틀린 가설 – 수컷이 자기 유전자를 남기려고 다른 수컷을 죽였다. 왜 영역을 확보하는가? 영역은 먹이와 같기 때문이다. 더 넓은 면적이 더 확실한 먹이다. 영역확보는 먹이조달의 전제다. 살려면 먹어야 하고 먹으려면 영역을 장악해야 한다. 장악하려면 방해자를 제거해야 한다. 방해자가 있으면 동물은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짚신벌레 시절부터 종은 그래왔다. 자극에 반응한다. 처음 신경세포가 생길 때부터 있어왔다. 외부자극에 공격으로 반응한다. 그러한 조절 메커니즘이 발전되어 생태계는 진화했다. 성선택설은 개소리다. 그런 점이 일부 있지만 본질에서 어긋나 있다. 성조절이다. 동물이 구애행동을 하는 것은 성행위가 위험을 수반하는 행동이며 조절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원숭이에게 자위행위를 가르쳐주면 밥도 안 먹고 하루종일 그 짓만 하다가 죽는다는 말이 있다. 조절 안 된다. 동물은 다른 종과 교미하는 실패를 저지르면 안 된다. 암컷이 건강한 수컷과 짝짓기를 하려는게 아니라 노새나 버새를 낳는 실패를 저지르지 않으려는 것이다. 건강한 수컷이라는 것은 조절장치에 불과한 것이며 구조론은 원래 한 방향으로 작동하므로 조절을 하다 보면 점점 커지는 경향이 있다. 양의 피드백이다. 수컷은 더 현란한 몸짓. 더 멋진 벼슬, 더 화려한 색깔, 더 우람한 뿔로 암컷을 유인한다. 암컷은 건강한 개체라고 판단하는게 아니라 사슴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소였다는 실패를 저지르지 않으려고 명확한 표지를 요구한다. 암컷은 표지가 없고 보호색이 있다. 건강해야 표지가 명확하다. 뿔이 잘려 나간 코뿔소는 암컷이 기피한다. 그게 소가 아닐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멋진 뿔로 조절해야 조절이 잘 된다는 점이다. 어지간한 뿔로 결정하면 미성숙 개체와 교미하는 실패를 저지르거나 동성결합이 일어난다. 수컷인 줄 알았는데 암컷이었어. 암컷끼리 교미하니 새끼가 나와주지 않는다. 더 좋은 유전자라는 것은 인간의 억지해석이고 조절장치가 죄다 이런 식이다. 극단적으로 조절된다. 더 큰 뿔, 더 긴 꼬리, 더 화려한 색깔로 조절해야 한다. 의사결정 어려움이다. 남녀가 만나려고 해도 서울역 앞에서 만나는게 쉽지 제천역에서 만나는게 쉽냐? 서울역이 크다. 큰 곳에서 만나자고. 그런데 조절실패다. 조절장치를 극단화 할수록 수컷 하나가 독식해 근친이 되고 유전적 다양성을 잃는다. 조절이 워낙 쉽지 않기 때문이다. 더 건강한 유전자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그게 조절의 실패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사슴은 뿔이 너무 커져서 가지에 뿔이 걸려 죽는다. 사슴들끼리 싸우다가 뿔이 걸려서 죽기도 한다. 너무 나갔다. 조절실패의 이유는 의사결정의 어려움 때문이다. 조절의 표지는 극단적으로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고 극단화하면 뿔이 휘어져 살을 파고들어서 상처를 낸다. 죽는다. 섹스를 적당히 해라. 술을 적당히 먹어라. 대마초를 필요할 때만 쓰면 좋잖아. 담배는 폐암에 걸리지 않을 정도로 피워라. 조절하기가 어렵다. 동물은 미친 듯이 하거나 갑자기 뚝 멈춘다. 인간은 그나마 조절할 수 있지만 동물은 조절할 수 없다. 조절 메커니즘의 진화가 그렇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