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10강 한국 https://news.v.daum.net/v/20210315062106990 물 들어올 때 노 저어라 했다. 분위기 띄워야 한다. 5천 년 만에 한 번 온 기회를 살려야 한다. 패배주의나 전파하고 서구에 대한 사대주의를 부추기는 우리 안의 중궈니즘이 문제다. 식민지와 전쟁의 트라우마에 빠져 미일사대를 고집하는 보수꼴통들도 문제다. 인간이든 국가든 한 번 크게 다치면 소심해진다. 자라 보고 놀라서 솥뚜껑을 못 만진다. 찬스가 와도 과감한 베팅을 못한다. 원자탄 두 방 맞고 후쿠시마에 한 방 더 맞은 일본이 그렇다. 3차대전 일으켜 보려고 껍죽대다 미국의 융단폭격 얻어맞은 북한이 그렇다. 마음을 다치면 자학을 하게 된다. 동물원에 갇힌 짐승처럼 정형행동을 하는 것이다. 외부정보를 불신하고 내부정보를 생산하는게 동물의 정형행동이다. 상처를 핥아 덧나게 하는 방법으로 내부에서 정보를 생산한다. 히키코모리는 왜 방안에다 쓰레기를 모을까? 청소하기가 싫어서? 아니다. 게을러서? 아니다. 히키코모리가 곰팡이를 기르고 바퀴벌레를 기르고 쥐를 기르는 이유는 내부에 생태계를 조성하려는 것이다. 외부정보를 불신하므로 내부정보를 생산한다. 썩히고 쌓고 벌레를 길러 내부 생태계의 다양성을 높인다. 지금 중국이 그렇다. 달팽이처럼 껍질에 머리를 박고 숨는다. 아편전쟁 이후 서구열강의 반 식민지 지배를 받고 쫄아서 민주화의 대로에 나오지 못한다. 죽의 장막 안에서 내부정보를 생산하려고 위구르 괴롭히고, 홍콩 짓밟고, 대만 비웃고, 동북공정을 시도한다. 외부세계에 대한 관심을 끊고 내부 상호작용에만 골몰하는게 국가 단위의 히키코모리 현상이다. 중국은 원나라에 얻어맞고, 청나라에 줘터지고, 서구열강에 얻어맞고 3연짱으로 쳐맞은 것이다. 사실이지 이 정도로 당하면 국가전체가 트라우마에 걸릴 만도 하다. 역사적으로 독일과 러시아에 몰매 맞은 폴란드도 마찬가지다. 폴란드 버전 환빠가 생겨서 난리라고 하는데. 하여간 한국의 환빠들도 상처 입은 짐승들이 정신줄 놓아버린 비극이다. 우리가 트라우마 극복하고 환빠일탈에 히키코모리 내부정보 생산을 멈춰야 한다. 히키코모리는 곰팡이를 길러 방안에 자연 생태계를 만든다. 환빠는 한국 안에 세계가 있다고 우긴다. 일본인들도 마찬가지다. 어떤 일본인이 외국여행을 한다고 하니 할머니가 말렸다고 한다. 좋은건 우리 일본 안에 다 있는데 뭐하러 범죄천국 유럽에 여행 가지? 그 말이 맞다. 중국 안에 다 있다. 중국에 작은 나이아가라 폭포도 있고 작은 그랜드 캐년도 있다. 100대 중국명소를 죽기 전에 다 방문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심지어 지금도 명승지가 계속 발굴되고 있다. 운남성, 귀주성 가보면 별게 다 있다. 중국인도 모른다. 세계에 대한 관심을 잃고 퇴행하는 것이다. 방향성의 문제다. 외부 생태계에 도전할까, 아니면 내부 생태계를 건설할까? 자연인처럼 산골에 나만의 이상향을 만들고 그것을 천하라고 선포하면 된다. 길잡이 개들이 있다. SBS 동물농장에 여러 번 나온 이야기다. 개가 부둣가에서 여행자를 반긴다. 손님들을 산 정상으로 안내한다. 왜 개는 길을 안내하고 싶어 할까? 자기가 통제하는 나와바리를 자랑하려는 것이다. 관광객에게 길을 안내하는게 아니라 실은 이곳은 내 구역이라는 선포다. 우리가 개의 마음을 오해한 것이다. 인간은 자기만의 이상향을 만들고 손님을 초대하고 싶어 한다. 그러려면 일단 자기 구역을 확보해야 한다. 그게 진보다. 이미 구역을 확보했고 이제 지키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면 그게 보수다. 퇴행하게 된다. 진보냐 보수냐, 전진이냐 후퇴냐의 방향판단이다. 한중일 중에 땅이 너무 넓어서 스스로 감당못하겠다며 독재를 하는 중국과 섬으로 고립된 일본은 한계가 분명하고 우리라도 잘해야 한다. 왜? 이 기회가 오래가지는 않기 때문이다. 한국의 좋은 시절도 얼마 남지 않았다. 추락하기 전에 1등 한 번 찍어야 한다. 인류는 미일중독한 다섯 나라가 이끌어가고 있는게 현실이다. 지식 장사꾼들이 이런 기사를 싫어하지만. 한국이 열등해야 가르칠 맛이 나는데 말이다. 요즘 애들은 한국이 잘난 줄 알고 국뽕에 빠져서 통 배우려 들지 않는다고 한탄하는게 비뚤어진 중궈니즘이다. 세계는 한국에서 배워야 한다는게 진실이다. 경쟁은 누가 더 좋은 의사결정 모형을 만드는가다. 각자 인종적 특성과 지정학적 특성에 맞는 독자적인 모형을 추구하기 마련이다. 종교와 문화도 관련이 있다. 유럽모형을 그대로 베끼면 그게 표절이라 의미가 없다. 홍세화, 박노자 등 서구 사대주의자들 주장은 유럽을 표절하자는 건데 그건 죽자는 것과 같다. 인간이 양심이 있지 어떻게 표절하냐? 이제는 세계가 유교주의 + 북방 유목민 문화에 기반을 둔 한국 특유의 의사결정능력을 배워야 한다. 문제는 우리 안의 오해다. 한국인의 의사결정구조는 북방 유목민 문화이지 한족 농경민 문화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삼한의 한은 돌궐어 칸에서 온 말인데 중국의 왕보다 북방민족의 가한과 가깝다. 우리의 문화적 뿌리는 몽골이나 돌궐과 가깝지 중국 한족 문화는 거리가 멀다. 언어로 봐도 그렇다. 우리말 어순이 돌궐어와 가깝고 중국어와 다르다. 중국사가 배신의 역사라면 한국사는 의리의 역사다. 중국인은 인구가 많고 사투리가 심하니 언어가 지역별로 달라 의리를 지킬 수 없다. 구조적으로 가능하지 않다. 일단 서로 말이 안 통한다. 한국문화는 약육강식하는 서구문화와도 다르다. 서구문명은 남의 말은 일단 안 듣는다는 타자성에 기반을 두고 건설된 것이다. 유교문화 + 한국의 북방 유목민 문화 + 중국의 친족문화 + 일본의 와和 사상은 타자성이 아니라 주체성에 기반을 둔 다는 점이 다르다. 한중일 유교권이 강한게 주체성이 타자성을 이기기 때문이다. 타자성은 남이 무언가를 결정하면 우리는 일단 상대방과 반대로 가면서 뒤통수 칠 기회를 엿본다는 것이다. 국가에서 백신을 맞으라고 하면 일단 안 맞고 버틴다. 마스크 쓰라고 하면 일단 개겨본다. 모든 문화가 타자에 대한 불신과 적대행위에 기반을 두었다. 중국인들이 물건을 살 때는 일단 흥정을 하는 것과 같다. 조선시대에 중국 사신단을 따라간 연암 박지원이 그런 중국문화를 보고 충격을 받은 것이다. 관리도 소매 속에 저울을 갖고 다니며 흥정한다. 어떻게 양반의 소매 속에서 저울이 나올 수가 있다는 말인가? 소인배냐? 서구의 역사는 그러한 타자성의 절묘한 균형에 의해 유지된 역사이며 그 결과는 전쟁과 전쟁의 악순환이지만 그 전쟁 덕분에 발전한 것도 사실이다. 전쟁기술이야말로 최고의 기술이니까. 일본도 전국시대에 전쟁하다가 발전한 것이 사실이다. 주체성은 진시황의 도량형 통일처럼 선의를 가지고 주도적으로 의사결정하는 것이다. 내가 가장이고, 내가 대표자이고, 형님이므로 가족을 돌보고, 아우를 챙기고, 후배를 도와야 한다고 여기는게 주체성이다. 그러므로 한중일이 코로나에 대응을 잘하게 되었다. 일단 남들은 어쩌는지 지켜보는 서구와 다르다. 그러나 상호작용이 부족하고 고립되면 주체든 타자든 멸망은 피할 수 없다. 답은 상호작용이다. 타자성을 대전제로 하고 그러면서도 주체적 판단이어야 한다. 피아간에 공방을 벌이며 상호작용을 증대시켜 가는 것이다. 더 많은 상호작용을 감당할 수 있는 시스템이 건설되면 성공이다. 서구의 타자성과 동양의 주체성 중에 어느 쪽이 낫다고 말할 수 없다. 그러나 주체성만 있거나 타자성만 있으면 망하는건 확실하다. 왜? 둘 다 가진 쪽이 있기 때문이다. 일본의 와는 주체적인 사상이다. 좁은 열도에서 서로 죽이기 시작하면 이스터섬 꼴 난다. 이스터섬은 거석상 때문에 망한게 아니고 망하니까 살아보려고 거석상을 만든 것이다. 좁은 섬에 인구가 늘어나면 서로 죽이게 된다. 살려면 뭉쳐야 한다. 뭉치려면 거석상을 세워야 한다. 결국 전멸했다. 그렇다면 공존할밖에. 그게 와 사상의 장점이다. 그래서 일본인은 문제를 드러내어 악화시키지 않는다. 미투를 하면 와를 깬다. 너희가 참아. 전쟁 나면 일본이 이스터섬 된다고. 납득한다. 여자가 참는다. 위안부 문제에 일본이 뻔뻔스럽게 나오는 이유다. 약자가 참아야 한다는 사상이 있다. 맥아더 덴노가 지배하던 시절이 좋았던 이유다. 일본이 약자였고 그래서 참았더니 평화가 왔다. 이제는 강해졌으므로 더 참지 말자는게 아베의 개헌노력이다. 중국은 친족들끼리 패방을 세우고 뭉친다. 친족끼리는 의리를 지킨다. 한국의 계모임은 낯선 사람을 끼워주기 때문에 계주가 돈을 들고 튀어서 망하는데 중국인들은 같은 가문의 친족끼리 계를 들므로 안전하다. 차이나타운 바닥이 좁기 때문에 야반도주 못한다. 중국인이 돈을 잘 버는 이유는 계를 잘해서다. 한중일이 모두 주체성에 강점이 있는 대신 타자성에 약점이 있다. 모르는 남들을 어떻게 대접해야 할지 모른다. 어느 정도 의심하고 어느 정도 불신해야 하는지를 모른다. 민주주의는 계약원리가 불신의 시스템이다. 함부로 믿기 때문에 부패하는 것이다. 한국 공무원은 조선시대 과거 급제자처럼 떠받들어 주니 윤석열이 기고만장해서 행패를 부린다. 불신해야 한다. 공무원을 누가 믿냐? 안이한 믿음이 위험하다. 믿음이 부패의 원인이다. 공무원 교수 전문가를 절대 믿지마라. 그들은 절대 부패한다. 이탈리아 마피아도 원래 사촌끼리 한다. 외부인은 마피아가 될 수 없다. 그래서 부패한다. 믿고 결속하다 보면 이미 부패에 찌들어 있다. 주체성과 타자성의 균형이 필요하다. 그래서 한국이 이긴다. 한국은 불신과 믿음을 동시에 가진다. 서구는 불신만 가지고 있다. 민주주의는 불신을 제도화한 것이다. 그러한 본질을 알아야 한다. 일본은 철저히 믿거나 아니면 아예 상종하지 않는다. 중국은 친족들만 믿는다. 불신하면서 거래를 해야 한다. 유태인의 장점이다. 사람은 못 믿지만 이자는 정직하다. 우리는 못 믿는 외국인, 소수자, 이방인, 다문화, 낯선 사람과도 사귀어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문명의 진보이니까. 믿을 사람만 챙기면 옹졸해지고 협량해진다. 못 믿을 사람들과 거래하면서 각종 안전장치를 강구하다가 흥한 것이 주식회사 제도와 보험제도다. 어느 나라든 장단점이 있다. 세계가 한국의 모형을 배워야 하는 이유는 새로운 모형이기 때문이다. 한때 각광받던 영국모델, 프랑스모델, 독일모델, 북유럽모델, 일본모델은 유행 지났다. 언젠가는 인구멸종 한국이 가고 다른 나라가 뜬다. 지금은 한국이 답이다. |
한국은 드라마도 의사결정과정을 보여주며
그 의사결정과정에 노비도 들어가고 여자들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미국영화같이 무슨일이 생기면 주인공 혼자만
문제해결하려 이리뛰고 저리뛰고
시민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 지 모르는 그런 영화는 많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