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어떤 원리로 돌아가는가? 기계적 판단과 정치적 판단이 있다. 우리는 이 사이에서 길을 잃는다. 법원은 명백히 이중잣대를 들이댄다. 그리고 대중은 분노한다. 보수꼴통은 기계적 판단을 좋아한다. 조지 플로이드의 사망에 항의하는 시위자는 폭도다. 쏴버려야 한다. 광주시민도 폭도다. 쏴버려야 한다. 이것이 보수꼴통의 판단이다. 왜 보수꼴통들은 기계적 판단을 선호할까? 단순하기 때문이다. 이해하기가 쉽잖아. 그런데 역사를 살펴보면 알 수 있는게 그런 폭도짓을 일삼는 자가 대개 보수꼴통이다. 그러므로 보수꼴통은 뚜렷한 이념이 있는게 아니라 그냥 쉬운 길로 가는 거다. 정치적 판단은 어렵다. 그러므로 지능이 낮을수록 기계적 판단을 선호하는 것이다. 민주당은 무죄추정의 원칙에 따라 조국과 윤미향에 대해서는 법원의 판결을 기다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진중권은 조국과 윤미향에게 도덕적 책임과 윤리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어떻게 보면 민주당이 보수의 전매특허인 기계적 판단을 하고 진중권이 진보답게 정치적 판단을 하고 있다. 생각해보자. 조국과 윤미향에 대해서는 법원판결이 먼저라면 이재용도 그러한가? 이재용도 법원의 판단이 나오기 전에는 무죄로 간주해야 하는가? 박근혜는 어떻고? 이런 문제는 대중이 옳게 판단할 수 없다. 복잡한 방정식이다. 기레기와 자칭 전문가들은 자의적으로 사실을 왜곡한다. 정답은 있다. 큰 사건은 정치적 판단이 먼저다. 광주의 항쟁이 폭도라고 규정한다면 작은 사건으로 보는 관점이다. 인종차별에 항의하는 시민이 폭도인가? 그렇다면 조국과 윤미향의 구설수는 큰 사건인가, 작은 사건인가? 진실을 말하자. 그것은 민주당이 선거에 이기는가, 지는가에 달려 있다. 조국 때문에 민주당이 참패하고 윤미향 때문에 지지율이 폭락했다면 큰 사건이다. 그 경우는 진중권 말이 맞다. 그런데 과연 그랬는가다. 필자의 판단에 의하면 조국 때문에 민주당이 선거에 참패하는 일은 없었고 윤미향 때문에 문재인이 곤욕을 치르지는 않았다. 의외로 작은 사건이다. 그러므로 법대로 하는게 맞다. 진중권 말은 물이 반 컵밖에 없네. 아니 반 컵이나 있구만. 이런 거다. 상대주의적 해석의 오류다. 절대주의적인 답을 찾아야 한다. 그것이 구조론이다. 조국과 윤미향의 잘못을 대수롭지 않다고 보는 사람이 있고 진중권처럼 호들갑을 떠는 사람도 있다. 어느 쪽이 진실일까? 어느 쪽도 진실이 아니다. 물은 얼마나 있는가? 컵의 물은 적지도 않고 많지도 않다. 애초에 상관없다. 그것은 운전사의 기량에 달려 있다. 우리가 잘 대응하면 조국과 윤미향의 구설수를 전화위복으로 삼을 수도 있고 반대로 대응을 잘못해서 큰 사달이 벌어질 수도 있다. 그렇다면 정답은 무엇일까? 정답은 우리가 역량을 보여주는가에 있다. 사건은 때로 미래가 과거를 결정한다. 진중권들은 뒤에서 궁시렁거리는 역할을 맡았을 뿐 역량을 보여주지 못했다. 그냥 호들갑을 떨면서 컵의 물이 많다고 외쳤을 뿐이다. 과연 컵의 물은 많을까? 그런거 없다. 등신아. 바보에게는 많은 물이고 천재에게는 적은 물이다. 우리의 대응에 달려 있다. 어떻게 대응하지? 국민에게 신뢰를 주어야 한다. 조국 변호는 정답이 아니고 공수처를 만들어 검찰 마피아를 때려잡는게 정답이다. 구조론은 마이너스다. 조국을 변호한다면 그게 플러스다. 플러스 기동이 일시적인 기교가 될 수는 있으나 길게 갈 전략이 못 된다. 언제나 마이너스가 세상을 구한다. 조국을 계기로 검찰 마피아를 얼마나 마이너스시키는가에 달려 있다. 그렇다. 사건은 진행 중이다. 우리는 마이너스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 필자는 조국과 윤미향을 변호하지 않는다. 조국은 장단점이 있고 윤미향은 30년간 투쟁했다. 객관적 판단이 필요할 뿐이다. 답은 하나다. 제초작업이다. 솎아내기다. 아닌 것을 솎아내면 남는 것이 정답이다. 나는 이낙연을 높이 평가하지 않는다. 잡초들이 제초 되고 이낙연 하나 남았을 뿐이다. 그냥 이낙연이 유일하게 남은 거다. 그때 그 시절 그랬다. 이런저런 이유로 다들 망가지고 김대중, 노무현이 유일했다. 문재인이 유일했다. 세상이 어떤 원리로 돌아가는가? 어떤 경우는 정치적 판단을 하고 어떤 경우는 기계적 판단을 한다. 대중은 기계적 판단을 선호한다. 그리고 법원은 이중잣대를 들이댄다. 대중이 지식인을 불신하고 현기증을 느낄 만하다. 그래서 음모론이 피어나는 것이다. 진중권의 정치적 판단이 만능이 아니며, 무죄추정의 원칙을 들이대는 민주당의 기계적 판단도 만능이 아니며, 중간에서 절충하면 당연히 망하는 것이며, 그것은 우리가 역량을 보여주기에 달려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알 수 있다. 많은 경우 과거는 미래가 결정한다는 사실을. 백선엽은 친일파인가? 박정희는? 그들의 미래가 결정했다. 그들의 모의가 긴밀하고 준동이 활발하여 크게 세력을 이루고 국가의 근간을 흔들었다면 친일파다. 조용히 찌그러졌으면 그들도 애국자다. 이런 것은 정치적 판단이다. 전두환이 대통령을 욕심내지 않으면 책임도 없다. 박빠들이 난동을 부리므로 박근혜는 구속이다. 이빠가 조용하므로 이재용은 불구속이다. 어렵지 않다. 원리가 있다. 모르겠는가? 에너지의 통제가능성을 따른다. 우리가 정권 잡았으면 모든게 사소한 문제가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법대로를 외치는 거다. 핸들을 내가 잡았거든. 이해찬이 이회창으로 되었나, 왜 보수처럼 법대로를 외치지? 대중은 현기증을 느낀다. 간단하다. 핸들을 쥐면 다 돌파할 수 있으니깐. 정리하자. 컵에 물은 얼마나 있는가? 그것은 핸들을 쥔 자가 결정한다. 외부인은 닥쳐! 세상은 절대로 에너지의 법칙에 지배된다. 곧 절대주의다. 사건이 격발되고 닫힌계가 확정되면 마이너스로 치닫는다. 그리고 사건을 크게 혹은 작게 규정하는 힘은 핸들을 쥔 자의 역량에 달려 있다. 트럼프는 핸들을 쥐었지만 역량이 없다. 보수는 자기들이 핸들을 쥐었다고 믿고 작게 규정한다. 누가 핸들을 쥐었는지를 잘 살펴야 한다. 그 자에게 역량이 있는지 살펴봐야 한다. 세상이 어떤 원리에 의해 작동하는지 알아낼 수 있다. 사건을 크게 만들려면 외부의 힘을 끌어들이면 된다. 윤미향이 그런 일을 했다. 사건을 국제사회로 끌고 간 것이다. 윤미향은 정치적 기동을 하고 친일파는 기계적 판단을 주장했다. 닫힌계를 판단하고 외부세력의 개입가능성을 판단하고 핸들을 쥔 자의 역량을 판단해야 한다. 이것이 진실이다. 그리고 대중은 이러한 진실에 상심한다. 어렵잖아! 진리는 명백히 이중잣대를 가지고 있다. 잘 살펴보면 에너지 일원론으로 돌아간다. 에너지를 모르니 착각된다. |
"사건은 때로 미래가 과거를 결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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