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읽기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4629 vote 0 2019.09.27 (10:35:48)


    프로와 아마추어


    질문할 때는 먼저 배경을 설명하고 거기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개진한 다음 상대의 의견을 물어야 한다. 프로가 뭐고 아마가 뭔지는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된다. 조금 더 깊이 들어가 보자면 단행본 한 권을 쓰게 된다. 어디까지 말해줘야 하나? 질문자는 열 단어 정도를 투척하는데 답변자는 책 한 권을 써야 한다면? 너무 골때리잖아. 


    그냥 건성으로 대충 답해달라고? 그건 아니지. 내 체질에 안 맞지. 이곳은 진지한 공간이다. 심심풀이로 연못에 돌 던지듯 하면 안 된다. 어원으로 보면 Professional의 pro는 앞이고 fess는 말하다인데 그냥 말하는 talk가 아니고 여러 사람 앞에서 말하는 것이다. 아마는 엄마인데 엄마처럼 사랑하므로 애호가를 의미하게 되었다. 


    이런 게 궁금한 게 아닐 테고 하여간 구조론으로 보면 상부구조를 다스리는 게 프로고 하부구조를 해결하는 게 아마다. 질 입자 힘은 프로, 힘 운동 량은 아마다. 위치에너지는 프로, 운동에너지는 아마다. 배후에 숨은 에너지를 통제하는 게 프로고 눈앞의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게 아마다. 도구가 있으면 프로고 연장이 없으면 아마다. 


    시스템이 있으면 프로고 시스템이 없으면 아마다. 동료가 있으면 프로고 혼자 나대면 아마다. 자기 계획이 있으면 프로고 계획 없이 덤비면 아마다. 물리학으로 접근하면 프로고 심리학으로 덤비면 아마다. 돈으로 해결하면 프로고 정성으로 해결하면 아마다. 관객의 관점에서 감동, 눈물, 신파, 재미 이런 개소리 하면 아마추어다. 


    감독의 관점에서 각본, 미장센, 편집, 내러티브 이런 말 하면 프로다. 바깥에서 겉돌면 아마고 내부구조를 논하면 프로다. 음모론 떠들면 아마고 괴력난신을 거부하면 프로다. 단계를 건너뛰는 이야기를 하면 아마고 단계를 줄이면 프로다. 상대의 반응을 보고 대응하면 아마고 상대와 상관없이 자기 스케줄대로 일관되게 가면 프로다.


    환경변화에 따라 이랬다저랬다 하면 아마고 환경부터 장악하고 일관되게 한 방향으로 몰아가면 프로다. 단기전을 하면 아마고 장기전을 하면 프로다. 이렇게 말해주면 이거 다시 하나하나 다 설명해달라고 할 것 같은데 그렇게 하면 책이 한 권 만들어진다. 구조를 아는 사람이라면 이런 것은 낱낱이 설명을 안 해도 다 아는 것이다. 


    구조론이 바로 프로다. 구조론연구소에 와서 구조가 뭐냐 이런 질문을 하면 오백 방을 맞아야 한다. 하여간 프로와 아마의 실력 차이는 크다. 연장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의 차이는 하늘과 땅 차이다. 연장이 의사의 왕진가방에만 들어있는 건 아니다. 프로와 아마의 차이는 프로는 인맥이 있다는 거다. 개인적으로 대결하자면 비슷하다.


    실전 들어가면 프로는 자기 인맥을 동원해서 문제를 해결하므로 압도적으로 된다. 그러므로 아마가 개인적으로 프로를 만나보고 이 자슥 별것 아니네 하다가 큰코다치게 되는 것이다. 귀족이 왜 귀족인가 하면 귀족은 친구도 귀족이고 가족도 귀족이고 주변이 다 귀족이기 때문에 귀족이다. 부자가 부자인 이유도 같은 것이다. 


    주변이 다 부자이기 때문에 부자다. 당신이 돈을 벌었다 해도 주변이 가난하면 당신은 아직 부자가 아닌 것이다. 부자는 망해도 주변의 도움으로 다시 일어선다. 그러므로 계급이 나눠지는 것이다. 그 힘은 막강한 것이다. 그것이 시스템이다. 지식인과 일반인이 술집에서 대화하면 비슷하지만 진지하게 붙으면 백 대 빵으로 깨진다.


    지식인은 동료를 이용하기 때문이다. 그게 연장이다. 문제가 있고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면 아마추어다. 에너지원을 통제하려고 해야 프로다. 한 수를 두면 한 수를 보는 사람은 아마고 한 수를 두면서 바둑이 끝나는 순간을 내다보면 프로다. 프로는 바둑알이 놓인 모든 위치와 수순을 머릿속에 담고 있다. 복기할 수 있어야 프로다.


    이건 기억력 문제가 아니다. 전술이 없고 정석이 없기 때문에 복기가 안 되는 것이다. 하부구조를 보느냐 상부구조를 보느냐는 천지차이다. 기본적으로 눈빛이 다르다. 하수는 상대를 보지만 고수는 상대의 신체 밸런스를 본다. 주먹이 날아온다. 주먹을 보고 피하면 하수다. 고수는 눈을 가늘게 뜨고 상대의 신체밸런스를 읽는다.


    다음 동작을 내다본다. 내가 우리나라 액션영화를 똥으로 보는 이유는 이런 것을 묘사한 영화가 없었기 때문이다. 주먹 보고 주먹 피하는 수준이하 액션이다. 장난하나? 초딩이냐? 바보냐? 상대의 발만 보고도 주먹의 위치를 가늠할 수 있어야 쌈 좀 했구나 하는 것이다. 무사가 칼싸움을 한다해도 고수는 칼날을 부딪히지 않는다. 


    칼날을 부딪치면 이가 나가서 칼이 톱이 된다. 좋은 일본도라도 이가 나가는 데는 도리가 없다. 칼 쳐내기는 목검으로 하는 것이다. 펜싱칼과 일본도가 붙으면 백대빵으로 펜싱이 이긴다. 미래를 보지 못하면 하수다. 하수는 공을 보고 프로는 궤적을 본다. 그건 다른 것이다. 하수는 소리를 듣고 고수는 프레이즈의 밸런스를 듣는다.


    소리가 난다고 소리를 듣고 그림이 보인다고 그림을 보는 자와는 어른들 사이의 대화를 할 수 없다. 보이는 것을 보는 사람과 무슨 말을 하겠는가? 마술사의 손을 보면 속는 것은 당연하다. 자신이 마술사라고 생각하지 않으면 절대 진실을 알아낼 수 없다. 고수는 무대를 장악하려고 한다. 무대 뒤쪽을 꿰뚫어 봐야 속임수가 보인다.


    바둑을 두면 수순이 보이고 그림을 보면 소실점이 보이고 음악을 들으면 고저장단이 들려야 한다. 싸움을 하면 상대의 신체 밸런스가 보이고 축구를 하면 수비수의 위치가 머릿속에 자동으로 그려지고 그런 게 있어야 한다. 영화 보고 감동 받았다니 재미가 있다니 이런 말 하는 사람과 어떻게 대화를 하겠는가? 창피하게 말이다.


    미장센이 어떻고 편집이 어떻고 각본이 어떻고 내러티브가 어떻고 이런 단어가 나와야 대화가 가능한 것이다. 하여간 강조하고 싶은 말은 아마와 프로의 간극은 허벌나게 크기 때문에 촌넘이 멋모르고 덤비다가는 존나게 깨지는 수가 있다는 거다. 손자병법 같은 아마추어로 오자병법의 프로를 상대하면 안 된다. 박살나고 만다.


    손자병법 심리학으로 오자병법 물리학을 이길 수 없다. 심리학은 상대를 보고 기술을 걸지만 물리학은 판을 엎는다. 두 사람이 서 있는 토대를 폭파한다. 외부 에너지를 끌어들이므로 애초에 게임이 안 되는 것이다. 심리학은 링 안에서 답을 찾지만 물리학은 링 밑에 폭탄을 설치해놨다. 외부에 있는 국민을 끌어들여 판을 깬다.


    이는 노무현의 방법이다. 전술은 아마고 전략은 프로다. 맨손은 아마고 연장은 프로다. 개인은 아마고 시스템은 프로다. 대상을 건드리면 아마고 이면의 에너지 흐름을 장악하면 프로다. 사물을 다루면 아마고 사건을 다루면 프로다. 음모론과 같은 최소작용원리와 안 맞는 것은 보나마나 아마추어다. 프로는 간결하고 효율적이다. 


    어떤 대상이 있다면 그 대상을 움직이는 에너지가 있고 그 에너지를 세팅하는 계가 있는 것이다. 하수는 대상을 보고 중수는 에너지를 보고 고수는 계를 본다. 이중의 역설이다. 배후의 배후까지 봐야 답을 알게 된다. 문제는 이런 고수의 세계를 혐오하는 자기소개족이다. 자기를 개입시켜 쓸데없이 감정이입을 하려는 바보들이 있다.  


    그들은 고수의 세계가 있다는 사실 자체가 싫다. 귀족들의 세계, 부자들의 세계, 이너서클, 인맥으로 돌아가는 세계, 계급에 따른 차별, 이런 게 있다는 사실 자체가 싫은 거다. 그건 공부 못하는 사람이 모범생을 싫어하는 것과 같다. 나는 시스템이 싫어. 독꼬다이가 좋아. 이런 개소리 하는 바보들 흔하다. 하지말라는 자기소개다.


    그냥 싫어하고 있으면 당한다. 약자가 강자를 싫어하면 당한다. 강자를 이기려면 싫어도 강자가 되어야 한다. 시스템을 장악해야 한다. 진영논리를 존중해야 한다. 진중권처럼 개인플레이 하면 안 된다. 그게 만화책에나 나오는 패배주의다. 80년대 한국만화는 일정한 패턴이 있다. 일본의 시스템과 한국의 개인기가 대결하는 거다.


    물론 일본이 이긴다. 그러나 어쩌다가 일대일로 붙으면 한국이 이긴다. 개인의 자질은 한국인이 우수한데 일본이 얍삽하게 시스템으로 나오는 바람에 졌다는 스토리다. 일종의 자위행위다. 개인자질 필요 없고 시스템으로 이겨야 진짜 이긴 것이다. 배후에서 판을 짜는 사람이 되어야지 링 위에서 몸으로 때우는 선수가 되면 안 된다. 




[레벨:3]우리보리깜디쪽

2019.09.27 (17:28:12)

판을 짜는 사람이 되어야지 링 위에서 몸으로 때우는 선수가 되면 안 된다 - 어설픈 질문에 답변해주셔서 고맙습니다^^ 

List of Articles
No.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4588 직류와 교류 1 김동렬 2019-10-17 4043
4587 방향성 찾기 1 김동렬 2019-10-16 3690
4586 죽음과 삶 2 김동렬 2019-10-16 4157
4585 내부의 내부를 만들어야 한다 1 김동렬 2019-10-15 3982
4584 심리학에서 물리학으로 1 김동렬 2019-10-14 4071
4583 커쇼와 돌버츠 1 김동렬 2019-10-13 4220
4582 이상적인 제도는 없다 4 김동렬 2019-10-11 4417
4581 헷갈리는 이유 1 김동렬 2019-10-10 4060
4580 쿨하고 시크하게 1 김동렬 2019-10-09 4345
4579 이념의 종언 - 평판의 노예가 되지마라. 2 김동렬 2019-10-08 4638
4578 필연의 통제가능성 1 김동렬 2019-10-05 4308
4577 공간에서의 이동 1 김동렬 2019-10-04 3554
4576 목적론과 결정론의 오류 1 김동렬 2019-10-02 4414
4575 통제가능성이 답이다 1 김동렬 2019-10-01 3847
4574 민중노선과 엘리트노선 1 김동렬 2019-09-27 4413
» 프로와 아마추어 1 김동렬 2019-09-27 4629
4572 세상은 구조다. 3 김동렬 2019-09-25 3399
4571 세상은 변화다 1 김동렬 2019-09-24 3543
4570 근원을 사유하는 기쁨 2 김동렬 2019-09-20 4109
4569 우주의 근원을 이해하라 2 김동렬 2019-09-18 39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