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식이 내용에 앞선다. 전체는 부분의 합보다 크다. 이런 이야기를 필자만 하는 것은 아니다. 검색해보면 이곳저곳에서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구조론은 이 문제에 보다 체계적으로 접근하고 있다는 점이 각별하다. 내용이 형식보다 중요한 것은 인간사회의 일이고 자연에서는 언제나 형식이 중요하다. 당연한 일이다. 인간이 형식을 부정하는 것은 형식에 속임수가 있기 때문인데 자연에는 속임수가 없기 때문이다. 형식을 망쳐놓은 것은 인간의 소행이다. 인간이 자의적으로 개입하여 형식을 망쳐놓고 형식을 믿을 수 없다고 말한다면 고약한 거다. 인간을 믿을 수 없다고 해야 바른 말이다. 자연이 근본이고 인간은 그것을 차용한다. 자연의 근본을 먼저 알아야 한다. 인간은 약자가 강자를 이기는데 흥미를 느끼지만 자연은 언제나 강자가 약자를 이긴다. 드라마의 주인공은 늘 약자이지만 강자를 넉넉히 이긴다. 드라마를 보고 와서 아 세상은 원래 약자가 강자를 이기는구나 하고 착각한다. 그럴 리가 없잖아. 작가들이 책팔아 먹으려고 속이는 거다. 인간은 형식을 외부에 의존한다. 남녀가 만나도 맞선을 보거나 소개팅을 하거나 중매를 하거나 제 3자의 개입이 있다. 그냥 개인적으로 만나는 일은 드물다. 동호회에서 만나도 동호회의 회칙이 있고 나이트클럽에서 만나도 그바닥의 에티켓이 있고 규칙이 있다. 형식이 없는 듯해도 살펴보면 다 형식이 작동하고 있다. 초등학생이 입학을 하거나 소년이 군입대를 하거나 간에 형식은 주변에서 정해준다. 사회자가 행사를 진행한다. 결혼을 해도 결혼식장이 있고 주례가 있다. 외부에서 형식을 제공해준다. 그러므로 인간에게는 대략 형식이 중요하지 않다. 그러나 자연에서는 형식을 본인이 스스로 개척해야 한다. 그래서 자연은 진짜다. 인간은 형식을 외부에 의존하므로 형식을 속인다. 서울대 졸업장을 내밀면 다들 꺼벅 죽는다. 그러나 인간이 만들어낸 거짓 형식이다. 자연에 무슨 졸업장이 있겠는가? 졸업장은 내가 만든 물건이 아니고 사실은 인쇄소가 만든 물건이다. 인간은 거짓된 형식을 만들어놓고 거짓된 형식을 믿을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자연은 그런거 없다. 자연에는 껍데기가 썩었는데 속살이 멀쩡한 경우는 없다. 껍질에 벌레가 먹었다면 속도 상했다고 봐야 한다. 인간은 반대다. 명품양복을 입었다고 속에 개념이 들어찬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인간의 옷이 형식인가? 아니다. 진짜 형식은 DNA다. DNA가 망했으면 인간은 확실히 망한 것이다. 똥개와 잡종개를 교배했더니 명견이 탄생하는 일은 단연코 없다. 특히 경주마라면 아버지의 유전자가 거의 백퍼센트다. 자연은 형식이 거의 결정한다. 문제는 인간도 어떤 분야의 첨단에 서면 자연과 정확하게 같아진다는 점이다. 처음 발명한 새로운 상품이라면 형식이 중요하다. 아이폰이 처음 탄생했을 때의 일이다. 자판을 치는게 아니고 손가락으로 터치한다. 형식을 바꾼 것이다. 난리가 났다. 형식이 아이폰의 백퍼센트다. 내용? 내용은 갤럭시가 아이폰을 모방할 때나 되어서 나오는 이야기다. 아류가 나오고 모방제품이 나오면 내용이 중요해진다. 형식을 속이기 때문이다. 첫 데뷔는 형식이 중요하다. 안철수가 정치해도 그렇다. 평소라면 실실 웃기만 해도 저 양반이 소탈한 사람이구나 하지만 TV토론에 나와서 그러고 있으면 저 양반 머리가 텅 비었구나 하고 들통이 나는 것이다. 정치가 그렇고 예술이 그렇다. 정치와 예술은 항상 새로운 일을 벌이기 때문에 형식이 중요해지는 것이다. 스포츠도 정상의 경지에 이르면 형식이 중요하게 된다. 야구는 폼을 바꾸어야 하고 축구는 포메이션을 바꿔야 한다. 마이너리그로 내려가면 아니다. 놀란 라이언 폼으로 던진다고 놀란 라이언 실력이 된 것은 아니다. 그런데 말이다. 놀란 라이언 폼으로 던지면 형식이 놀란 라이언과 같은가? 놀란 라이언과 똑같은 신체 똑 같은 폼으로 던지면 놀란 라이언 구속이 나온다. 이건 확실하다. 형식이 같으면 내용도 같다. 박찬호가 놀란 라이언 폼으로 던졌다고 해서 형식이 같은 건 아니다. 신체가 다르고 근력이 다른데 어찌 형식이 같겠는가? 그냥 폼만 따라한 거다. 내용으로 따져야 한다. 최근 까다로와진 청문회 절차 때문에 장관을 뽑으려 해도 나서는 사람이 없다고 한다. 형식에 걸린다. 앞으로는 국회의원 출신이 아니면 장관을 할 수 없게 된다. 그러므로 국회의원 정원을 늘려야 한다. 형식을 바꿔야 답을 찾을 수 있다. 시민단체 출신은 장관을 제대로 못한다. 대학교수도 마찬가지다. 왜? 주변에서 안 도와주기 때문이다. 혼자 고립되면 물 먹는다. 고립을 해소하도록 실권을 주면 아주 장벽을 쌓는다. 굉장히 위험해진다. 조선시대도 과거제도와 성균관 유생을 거치지 않고 천거제로 벼슬을 주려고 했지만 실패했다. 고립된다. 이는 생존본능의 문제이고 호르몬 문제라서 해결이 안 된다. 노무현의 고생과 같다. 본능적으로 주변에서 괴롭힌다. 국회의원은 평등한 동료가 있으므로 다르다. 상대적으로 더 도움을 받는다. 이건 개개인의 인성의 문제가 아니고 도덕의 문제가 아니고 인간의 본질문제다. 아무리 교육을 받아도 안 되는건 안 되는 거다. 반드시 파벌문제 생긴다. 좋은 사람을 적재적소에 안배하겠다는 생각은 굉장히 위험하다. 급조된 팀은 예기치 못한 소통문제로 틀어진다. 이상은 현실과 다르다. 내용은 형식에 깨진다. 실력이 딸리고 부적절해도 원만한 팀을 이루는 것이 중요하다. 오랫동안 같은 당에서 동지로 활동해서 소통이 잘 되는 사람을 써야 한다. 갑자기 팀을 꾸리면 안 되고 미리 팀을 짜놓고 있어야 한다. 형식의 문제를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탕평책은 백퍼센트 망하는 정책이다. 헐리우드 영화도 탕평 때문에 망하고 있다. 흑인에 아시아계까지 숫자 맞춰 나온다. 페미니즘 영향으로 과거라면 남자가 맡던 악역을 여자가 맡아서 여자 악당이 많아졌다. 어색해졌다. 여배우를 쓰라고 압박이 들어오니까 감독이 생각없이 남자역할을 여배우에게 돌린 것이다. 하루이틀에 해결 안 된다. 이번 경찰인사도 무리한 탕평 때문에 항명파동이 나왔다. 기수 고려하고 지역안배 고려하고 여성 고려하고 이것저것 따지다보면 일이 진행되지 않는다. 대개 형식문제에 무너진다. 우리가 내용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은 이런 문제에 부닥쳐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예술가도 아니고 정치인도 아니고 정상에 오른 스포츠스타도 아니고 스티브 잡스도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내용만 챙겨도 살아갈 수 있다. 주변에서 돕기 때문이다. 형식을 해결해주는 상부구조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리의 세계는 봐주는 거 없다. 처절하게 깨진다. 모방하거나 뒤따라가거나 보호받는 위치에 선 사람은 내용만 챙겨도 된다. 그러나 냉혹한 자연의 현실에 부닥치게 되면 철저하게 형식이 우선이다. 어느 분야든 정상에 도달하면 냉혹한 자연의 현실 앞에 알몸뚱이로 내던져진다. 형식으로 승부해야 한다. 동물은 냄새만 달라도 적으로 간주한다. 프로토콜을 맞추지 않으면 안 된다. 만약 내용이 중요하다면 당신은 마이너리그에 머무르고 있는 것이며 혹은 B급세계에 몸담은 것이며 누군가의 졸병신세가 된 것이다. 혹은 배우는 학생이나 어린이인 것이며 집단의 리더는 아닌 것이다. 요리를 해도 대중음식은 맛만 좋으면 되지만 프로셰프의 세계로 가면 그렇지 않다. 음악을 해도 그렇고 그림을 그려도 그렇고 정상의 세계로 가면 형식이 중요해진다. 나는 내용만 좋으면 되는뎅? 하는 식의 항변이라면 어설픈 자기소개가 되는 거다. 그건 네가 노는 물이 그래서 그렇고. 플랫폼에서 거의 결정된다. 전쟁은 포진상태에서 이미 승부가 결정되어 있다. 18세기 영국군의 씬레드라인과 라인배틀을 붙으면 무조건 진다. 형식에서 승부는 정해져 있다. 영국군과 싸우려면 저격수를 양성하고 게릴라전을 벌여야 한다. 야전에서의 회전은 무조건 지게 되어 있다. 바둑에서 어떤 형태가 이기는지는 확률로 정해져 있다. 운으로 이기고 꼼수로 이긴다면 하수바둑이다. 손흥민 존에 들어가면 골은 정해졌다. 그것이 고수의 세계요 자연의 세계요 예술의 세계요 정치의 세계요 첨단의 세계요 프로의 세계다. 물론 하수의 뒷골목은 그런거 없다. 더 높은 세계를 욕망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인간의 형식은 뻘짓이고 자연의 형식은 진짜다. 형식은 에너지의 입구다. 출력에 대해 입력이고, 결과에 대해 원인이고, 종결에 대해 시작이고, 꼬리에 대해 머리이고, 부분에 대해 전체다. 인간은 첫 단추가 잘못되어도 중간에 수습할 수 있지만 자연은 첫 기세에 밀리면 끝까지 밀린다. 곰도 고양이에게 밀리면 도망가더라. |
많은 영감을 주는 말씀이네요.
그간에 김동렬님 말씀으로 형식이 중요한거는 진즉에 알았지만
형식이 왜 중요한지 더 깊게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자연의 형식이라는 것이
수학으로 보면 '함수'와 비슷한거 같습니다. )
무튼
자연을 통해 배우고 익혀
내 분야에서의 새로운 형식을
만들어내고 싶어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