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여기에서의 말한 것은 신이라기 보다는
니체식의 초인(超人)인 것 같은데
이것만 보더라도 한자문화권에서는
니체 처럼 "신은 죽었다"라고 말할 필요조차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공자가 "괴력난신"을 언급하지 않았던 시절부터
신은 이미 뒷방 늙은이 신세였기 때문이었겠지요.
삼국연의의 등장인물인 관우는 초인에 가까운 완벽한 인간으로 묘사되는데
그는 후세사람들에게 단순히 영웅으로 대접받는게 아니라
복과 재물을 가져다 주는 신으로 모셔지고 있는 걸 보면
뭔가 아이러니 하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니체는 신에게 얽매이지 않는 '초인'이라는 것을 제시했지만
정작 신에 얽매이지 않았던 중국 문명에서
관우 부터 모택동에 이르기까지 역사 상 무수히 실존했던
비범한 인물들을 신으로 승격시키고 숭배하는 관습이 있는 것을 보면
역시 인간에게는
스스로 운명을 개척해 나가는 '초인'이 되고 싶기 보다는
'신'에 정신적으로 의지하고 싶어하는 구석이
확실이 강한 것 같습니다.
이것은 아마도 김동렬 선생이 말한
인간의 두 가지 본성
'세계의 중심에 뛰어들어 의미를 찾고 싶어하는 의지'와
'노숙자가 되고 싶어하는 본능'
에서 후자가 더 강하다는 증거가 아닐 까 싶습니다.
김동렬
중요한건 의사결정입니다.
인류가 하나의 단일체라는 관점에서의 의사결정이 바른 것입니다.
니체의 초인은 강자와 약자로 나누는
이분법적 상대론적 사고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상대성에 기초한 의사결정은 언제나 실패라는 거죠.
신이 있느냐, 누가 신이냐, 이런 말이라면 바보같은 소리고
인류가 단일체라는 전제 하에서
절대성에 근거한 의사결정이 진실한 것입니다.
절대성에 근거한다 함은
누가 결정하든 그것은 나의 결정이 아니라 인류의 결정이라는 거죠.
인용한 영화에서는 결정권이 있느냐만 다룰 뿐
그것이 나의 결정이 아니라 인류의 결정이라는 시야는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