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은 권력이다 도대체 노무현이 뭐지? 왜 이렇게 말들이 많은 거야? 전두환은 통금을 해제했고, 노태우는 북방정책을 실시했고, 김영삼은 금융실명제를 실시했고, 김대중은 햇볕정책을 실시했는데 노무현이 한 게 뭐 있다고 이렇게 시끄러운 거야? 당신이라면 이 물음에 뭐라고 답할 것인가? 우리에게 노무현은 무엇인가? ‘노무현이란 이름은 반칙과 특권이 없는 세상, 상식과 원칙이 통하는 세상의 상징이 되었다.’ 신문기사에서 발췌한 말이다. 무난한 답변이다. 그런데 이렇게 문장이 길면 가짜다. 반칙과 특권이니 상식과 원칙이니 하는 말은 전술적 레토릭이다. 진보, 보수를 아우르기 위한 말이다. 노무현은 진보와 보수가 양쪽에서 칼질을 해서 죽였다. 그래서 노빠들은 진보든 보수든 어느 한쪽이 노무현을 독점하려는 기동을 가만 놔두지 않는다. 그런 거 빼고 진짜 노무현은 무엇인가? 누구나 알고 있다. 막상 표현하지는 못한다. 노무현은 권력이다. 그런데 이 말을 차마 못한다. 노무현은 우리에게 마이크를 주었다. 그리고 우리는 말이 많아졌다. 집단의 의사결정에 시민이 노골적으로 참여하기 시작한 거다. 노무현의 의미는 여야 권력게임에 시민을 선수로 끌어들인데 있다. 노무현의 참여정치다. 팟캐스트에서 어떤 바보가 했다는 말인데, ‘국민이 아무도 정치에 관심을 갖지 않는 것이야말로 가장 좋은 정치가 아니겠는가? 위정자가 정말 정치를 잘한다면 국민이 정치에 신경쓸 이유가 없지 않느냐?’ 배웠다는 사람 중에도 이런 잠꼬대 같은 개소리 하는 사람이 있다. 이들은 여전히 잠들어 있는 시민이다. 이제는 깨어나야 한다. 그리고 조직해야 한다.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으로 권력을 창출한다. 인간은 밥만 먹고 사는 존재가 아니라 권력을 먹고 사는 존재다. 정치의 본질은 권력의 복제다. 청와대의 권력구조를 가정에서 복제한다. 청와대가 독재하면 가부장들도 독재한다. 청와대가 지역차별인사를 하면 기업들도 지역차별 인사를 한다. 교회의 권력, 사학의 권력, 재벌의 권력, 조중동과 한경오의 권력은 모두 청와대 권력을 복제하고 있다. 우리는 착각한다. 차별만 하지 않으면 된다고. 천만의 말씀이다. 양성평등 문제만 해도 그렇다. 대통령이 정치를 잘하면 양성평등이 실현되나? 국민 개개인이 깨어나 나서지 않으면 양성평등은 절대로 불가능하다. 대통령이 정치를 잘하면 성소수자 문제가 해결되고 인종차별이 사라지나? 천만의 말씀. 국민 모두가 나서주지 않으면 안 된다. 양성평등은 여성과 남성이 온전히 동등한 권력을 가질 때 해결된다. 제도적인 차별을 하지 않아도 이미 태생적으로 차별되어 있다. 무엇인가? 차별금지로는 절대 차별을 막을 수 없고 오직 대항권력으로 차별을 막을 수 있다. 대항행동을 하지 않으면 무조건 차별하는게 맞다.
◎ 틀린 생각 – 차별하지 않으면 차별은 사라진다. 대통령 혼자 잘해서 되는 게 절대로 아니다. 노자의 무위가 참 많은 사람을 버려놓았다. 박근혜는 지난 4년 동안 노자의 무위를 잘도 실천했다. 그러자 나라가 망가졌다. 노자를 죽여야 나라가 산다. 아직도 노자를 팔아먹고 설치는 강신주 부류 사이비를 매우 타격해야 한다. 한다리 건너 전해들었지만 박자세 박문호 교수에 의하면 세포는 최대한 표면적을 넓히려고 한다고 한다. 인체는 부피를 중심으로 하는 입체가 아니라 얇은 층들이 겹쳐져 있으며 세포들은 최대한 많은 작은 방을 만들어서 거기서 사건을 일으킬 확률을 높이려고 한다고. 뭐든 어떤 둘의 만남으로 일이 시작되는데 그 만남의 공간이 필요하고 그것은 작은 방이며 작은 방을 최대한 많이 만들려면 표면적을 최대한 넓혀야 한다는 것이 박문호 교수 말이다. 구조론과 통한다. 구조론은 의사결정권자 숫자의 최대화로 상호작용 총량을 늘리려 한다. 서양이 흥하고 동양이 망한 이유는 서양은 임금이 많고 동양은 임금의 숫자가 적었기 때문이다. 일본이 흥한 이유는 일본은 마을마다 촌주 혹은 이장이 있었는데 조선과 중국은 고을 원님과 백성 사이에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라는게 구조론의 견해다. 왕의 숫자가 적었다. 공산주의가 망하는 이유는 정은이 혼자 의사결정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가 흥하는 이유는 중산층들이 모두 의사결정에 나서기 때문이다. 의사결정권자 숫자는 뇌세포 숫자다. 대한민국에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숫자가 1천만 명이라면 대한민국 뇌세포 숫자는 일천만이다. 대한민국이라는 바깥뇌를 구성하는 뇌세포 숫자가 1천만 개인데 북한은 뇌세포가 달랑 한 개다. 지난 4년간 한국은 뇌세포가 최순실 하나였다. 박근혜는 죽은 세포다. 최대다수의 의사결정참여로 집단지능을 건설하는게 구조론의 정답이다. 그러려면 표면적을 늘려야 한다. 왜 노무현인가? 노무현은 정치에 관심없는 시민을 끌어들여 대한민국의 뇌세포 숫자를 늘리고 대한민국이라는 뇌의 표면적을 최대한 넓혔다. 대한민국이라는 뇌에 더 많은 주름들을 만들었으니 그 주름의 이름은 네티즌이라고도 하고 SNS라고도 하고 팟캐스트라고도 한다. 자연이나 생명이나 차이가 없다. 박문호 교수에 의하면 인간은 질소를 이용해 다이너마이트를 터뜨리고, 생명은 인을 이용해 다이너마이트를 터뜨려 에너지를 얻는데 인을 이용하면 폭발이 느리게 일어나 속도조절이 가능하다고. 에너지를 쓰는건 생명이나 자연이나 같다. 생명의 작동원리는 물리법칙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광물이나 생물이나 유사하다. 이건 박자세 박문호 교수 이야기고, 구조론은 수학과 물리학과 사회학을 하나로 통합한다. 수학은 효율성을 따른다. 다른 점은 이익의 효율성이 아니라 의사결정에서의 효율이라는 점이다. 수학은 언제나 지름길을 찾는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가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가장 빠른 길은 하나다. 그게 수학이다. 구조론은 의사결정에 있어서의 최소경로를 찾는다. 그 방법은 산술급수가 아니라 기하급수적으로 찾는 방법이다. 알파고의 방법을 쓰는 것이다. 1만 개의 콩알 속에서 팥알 한 개를 찾으려면 어떻게 할까? 콩알을 하나씩 대조하면 된다. 단, 연산을 1만 번 수행해야 한다. 1만 명의 인원을 투입하면 된다. 단번에 팥알을 찾을 수 있다. 문제는 1만 명이라는 막대한 인원을 어떻게 동원하는가이다. 그게 기술적으로 쉽지가 않다. 노무현은 그것을 해냈다. 납작하게 해야 한다. 자원의 질을 균일화시켜야 한다. 계 내부가 불균일하면 많은 인원을 투입할 수 없다. 군복을 입어도 같은 군복을 입어야 한다. 해병대만 별도의 군복을 입으면 불균일해져서 망한다. 대규모의 인원투입이 불가능해지는 것이다. 부자도 없고, 가난뱅이도 없고, 엘리트도 없고, 노숙자도 없이, 성차별도 없고, 인종차별도 없이 계 내부가 완전균일해야 일만 명을 동시에 투입할 수 있다. 그것이 납작하게 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인원동원에 시간이 걸리고 비용이 들지만 익숙해지면 빠르게 일을 처리해낸다. 인간사회의 목적은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에 있는 것이 아니라 최대다수 최대권력에 따른 최적의사결정에 있다. 권력이라고 하면 곧 정치권력을 연상하겠지만 구조론의 권력은 다르다. 구조론의 권력은 일의 기승전결에서 기起에 서는 것, 곧 일의 주도권을 잡는 것을 말한다. 자신이 설계하고 계획하고 추진하는 것이 권력이다. 농부가 봄에 파종할 때 가을의 수확을 예측한다. 예측대로 되는게 권력이다. 통제가능성이다. 많은 수확을 기대하면 많은 씨앗을 뿌려야 한다. 더 많은 씨앗을 뿌렸는데 더 적은 수확을 얻었다면 권력이 깨져버린 것이다. 통제에 실패했다. 설거지를 하든 빨래를 하든 예측대로 되어야 한다. 자연인이 산속에 혼자 살아도 자신의 계획대로 진행되면 권력이 있다. 인간이 원하는 것은 직접 의사결정에 참여하고 예측대로 일을 진행하고 그 일의 기승전결에서 기에 섬으로써 존엄성을 얻는 것이다. 그럴 때 인간은 흥분한다. 뇌는 호르몬을 분비한다. 후끈 달아오른다. 몸에서 열이 나서 새벽 1시에 마을 한 바퀴 돌고와야 한다. 그것이 인간의 진짜다. 노무현은 국민참여정치를 시도했다. 진짜 민주주의를 시도했다. 노무현이 시민을 깨어나게 하자 1600만이 촛불을 들었다. 기어이 세상을 바꾸었다. 이 순간 한국은 70억 인류 중에서 가장 앞서 있다. 이것이 진짜다. 한국이 하면 세계가 따라온다. 이것이 노무현이다. 그러려면? 최대한 많은 작은 방을 만들어야 한다. 조중동한경오가 독점한 큰 방을 타파하고 팟캐스트와 SNS가 차지해야 한다. 납작하게 만들어서 표면적을 최대한 넓혀야 한다. 소나무와 같다. 고목나무가 굵지만 속은 죽어있다. 나무의 표면만 살아있다. 인체도 마찬가지다. 인체 조직들은 신경계든 혈관계든 림프계든 납작하게 퍼져 있다. 이들은 하나의 방향을 바라보고 효율적으로 전개되어 있다. 노무현은 큰 넘을 누르고 작은 넘을 일으켜 대한민국을 납작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많은 방을 두었다. 운명적인 만남은 그 작은 방에서 일어난다. 뭔가 좋은 일이 일어날 확률을 높였다. 한국은 재벌이라는 큰 방, 대형교회라는 큰 방, 서울대라는 큰 방에 의존하고 있었다. 노무현이 네티즌이라는 작은 방, 팟캐스트라는 작은 방, SNS라는 작은 방, 개인주의라는 작은 방, 도시재생이라는 작은 방을 설계했다. 큰 방에서 의미있는 만남이 일어나지 않는다. 확률이 낮다. 연애를 한다해도 넓은 공터에서 사귀기보다 작은 카페에서 사귈 확률이 높다. 도원결의는 세 명이 적당하다. 네 사람을 넘어가면 결의형제는 불가능하다. 데이트는 두 명이 적당하다. 세 명이서 데이트를 하면 그게 중매결혼이다. 작가는 혼자서 작은 방에서 글을 쓴다. 두 명이면 이미 창의는 사라지고 고된 노동만 남는다. 많은 열린 작은 방이 필요하다. 노무현은 재벌을 누르고 시민을 일으켰다. 강자를 누르고 약자를 도왔다. 그러자 대한민국이 납작해졌다. 위아래 높이가 균일해지자 그만큼 표면적이 넓어졌다. 표면적이 넓혀지자 많은 작은 방이 생겨났다. 작은 방의 숫자는 의사결정권자 숫자다. 그대로 뇌세포 숫자가 된다. 뇌세포가 많아지자 사람들이 똑똑해졌다. 노무현은 대한민국이라는 집단지능의 아이큐를 높였다. 조중동한경오를 누르고 시민을 일으켜세워 더 균일하고 더 납작한 층들을 만들어 더 많은 뇌세포를 그곳에 투입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의사결정 속도가 세계최고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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