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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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16195 vote 0 2011.06.30 (15:42:04)

 

너희가 625를 아는가?

 

625의 의미를 제대로 짚어주는 사람을 필자는 아직 보지 못했다. 대개 남침이니 북침이니 하며 수준이하의 논의를 하고 있더라. ‘너희가 먼저 도발했지 않느냐?’는 식이다. ‘너희’가 어딨냐? 당시는 해방직후라서 남남으로 완전히 갈라선 것이 아니고 같은 한 덩어리였다. 본래 하나인 것을 억지로 둘로 쪼개놓으니 복원력이 작동하여 뭉치려는 힘이 강했고 그 때문에 전쟁에너지는 포화상태였다.

 

4.3으로 이미 전쟁은 발발된 것. 카다피나 탈레반의 예에서 보듯이 자기 국민을 죽이는 정부는 존립할 자격이 없다. 당나라도 연개소문이 자기 국민을 죽인다는 구실로 침략해 왔다. 4.3으로 북은 빌미를 얻었다. 그런데 남은 남대로 북의 도발을 유도할 심산이었다. 6개월 전부터 첩보는 들어왔지만 북한 출신 이승만, 역시 북한 출신 채병덕은 개성에서 아침먹고, 평양에서 점심먹고, 신의주에서 저녁먹을 생각만 하고 있었다.

 

북한 출신에다 외국에 오래 있었기 때문에 남에 지지기반이 없었던 것이 이승만의 큰 약점이었다. 그는 중국의 공산화로 인하여 초조해져 있었다. 김구 선생 역시 남에 정치적 기반이 없었기 때문에 정부수립에 적극 참여할 의지가 없었다.

 

이승만은 휴전선에서의 분쟁을 활용하여 미국의 무기지원을 얻을 셈이었고 김일성은 분쟁에서 밀리는 모양새를 취함으로써 남의 오판을 유도할 셈이었다. 북이 의도적으로 약한 모습을 보이자 중국의 공산화로 초조해진 이승만과 풋내기 친일파 채병덕은 진짜 평양에서 점심을 먹을 수 있다는 착각에 빠지게 되었다.

 

미국은 미국대로 이승만에게 무기를 주면 북진할 것을 염려하고 있었다. 한국은 논이 많아서 북한 탱크가 논에 빠져서 움직이 못할 것이니 걱정할 필요없다는 말도 나왔다. 미국과 이승만은 서로 불신하고 있었던 거다. 이게 문제. 더구나 장개석이 옆에서 삽질하는 바람에 한국까지 덤태기를 쓴 거.

 

지금 기준으로 625를 보면 곤란하다. 이념을 앞세워도 안 된다. 그건 결과론이다. 해방당시 미국은 한국을 일본의 일부로 보고 있었고, 일본은 미국의 적국이었다. 미국 입장에서 한국은 적지였다. 미군은 일본군의 무장해제를 위해 인천에 상륙하면서 환영하러 나온 한국인을 향해 발포해 버렸다. 적으로 본 것이다. 한국이 미국의 적이 아니라는 근거는 임정인데 미국은 임정을 인정하지 않았다.

 

625가 일어난 이유 중의 하나는 미국이 한국을 괄시한 것이고, 그 이유는 한국을 지배했던 일본이 미국의 적이었기 때문이다. 카쓰라-테프트 밀약으로 조선을 일본에 넘겨준 당사자가 미국이니. 더 큰 이유는 미국이 중국을 버렸기 때문이다. 만약 중국이 공산화 되지 않았다면 장개석이 대륙을 지배했을 것이고 당연히 백범이 한국의 대통령이 되었을 것이다.

 

어쨌든 결과적으로 미국은 일본을 용서하게 되는데 그 이유는 소련의 약진 때문이다. 미국의 지원에 힘입어 일본경제가 57년부터 살아났는데 그 덕에 한국경제도 살아난 것이다. 그 과정에서 친일파 박정희가 나타난 것이고.

 

무슨 뜻인가? 이차대전때 미국은 철천지 원수 일본을 아주 밟아놓을 생각이었고 살려줄 생각은 전혀 없었다. ‘미쳤나? 적을 왜 살려줘?’ 그런데 소련이 득세하는 바람에 소련을 막기 위해 일본과 한국을 키워야 했던 것이다. 냉전의 혜택을 서독과 일본이 본 것이고, 그 연장선 상에서 한국에 친일파가 다시 득세하게 되었다.

 

이러한 전개는 한국 입장에서 매우 엿같은 것이다. 그 중심에 장개석이 있다. 대륙이 공산화 되지만 않았어도 한국에서 625가 터지지 않았을 것이다. 공산진영과 서구진영이 대결하는 최전선이 중국과 소련 사이의 만주 일대여야 하는데, 장개석이 멍청한 짓을 하는 바람에 엉뚱하게 한반도가 불타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왜 장개석은 졌을까? 물론 멍청하기 때문이다. 근데 멍청하다는 것은 무엇일까? 중일전쟁에서 미국은 중국을 지원했는데 중국에 공군이 없었으므로 미국은 중국인을 훈련시켜서 비행사로 만들려고 했다. 그러나 실패했다. 중국인은 도무지 멍청해서 조종사가 될 수 없었던 것이다.

 

왜 중국인들은 멍청할까? 왜 훈련을 시켜줘도 중국인은 비행사가 못되는 것일까? 결국 미국 용병들이 돈 받고 버마전선에 투입되어 일본군과 싸웠다. 왜 중국인들은 못난 찌질이인가? 요즘 중국은 잘 하고 있는데 말이다.

 

정답 – 전투기 조종사 모집하는데 중국인들이 자기집 늙은 하인들을 데려왔기 때문이다. 이건 뭐 구한말 서양인이 테니스 치는 것을 보고 조선 양반들이 ‘그런 힘든 일은 하인들 시키지 왜 그러셔?’ 하는 풍경이다. 중국인들은 중일전쟁 중에도 꽌시를 앞세우고 개인 인맥 위주로 움직였던 것이다. 모든 것이 개인간에 알음알음으로 전해졌고 공적 시스템은 존재하지 않았다.

 

비유로 말하면 예컨대 이런 거다. 미군 장교가 중국군 장교를 만나기로 했는데, 약속장소에 늦게 나타난 중국군 장교가 거만하게 가마를 타고 와서, 하인에게 이래라 저래라 잡심부름 시키고 있으면 미군 장교는 돌아버릴 것이다. 권총을 빼서 쏴버리고 싶을 것. 한 술 더 떠서 기생을 스무명이나 부르고, 풀코스 중국요리로 상다리가 부러지게 차려놓고 일단 ‘밥부터 먹자’는 식으로 나오면 이건 뭐 말이 안 통하는 거다.

 

결론적으로 미군과 중군은 소통이 되지 않았다. 이승만과 미국도 소통되지 않았다. 그래서 북한 전차가 남한 논에 빠져 못 간다는 헛소리가 나온 것이다.

 

미국이 물자를 지원해도 그냥 사라져 버린다. 미군.. “어제 보낸 물자 어디갔죠?” 중군.. “여봐라. 게 아무도 없느냐? 어제 보낸 물자 어디로 갔느냐?” 중군 졸개 1.. “여봐라 게 아무도 없느냐? 어제 보낸 물자 어디로 갔느냐고 나리께서 묻고 있지 않느냐?” 중군 졸개 2.. “여봐라 게 아무도 없느냐? 어제 보낸 물자 어디로 갔느냐고 나리께서 묻고 있지 않느냐고 어른께서 전달해오지 않느냐?” 중국군 졸개 3 “여봐라......”. 이렇게 7단계를 계속 반복하고 있으면 어떨까? 이건 뭐 도저히 답이 안 나오는 거다. 패죽일 수도 없고.

 

맥아더가 한국에 와서 제일 먼저 한 일은 34살 먹은 풋내기 친일파 채병덕 참모총장 겸, 육해공군 총사련관을 자른 것이었다. 왜 그를 잘랐을까? 무능해서 자른게 아니다. 도무지 말이 안 통해서 자른 것이다. 위에 비유로 이야기한 중군의 내부사정과도 비슷하다. 말이 통해야 뭐든 해볼 수 있는 거다.

 

맥아더가 한강을 지키고 있던 병사에게 물었다.

 

맥 : “넌 언제까지 그 호 속에 있을 것인가?”
국군 : “옛! 각하께서도 군인이고 저도 군인입니다. 아시다시피 군인은 다만 명령을 다를 뿐입니다. 직속상관으로부터 철수하라는 명령이 있기 전까지 저는 여기에 계속 서 있을 것입니다.”
맥 : “그럼 명령이 없을 땐 어떻게 할 것인가?”
국군 : “그렇다면 저는 죽는 순간까지 여기를 지킬것입니다.”
맥 : “오 장하다 자네말고 딴 병사들도 그런가?”
국군 : “예 그렇습니다.”
맥 : “아 참으로 훌륭하구나. 지금 그대의 소원이 무엇인가?”
국군 : “각하! 우리는 지금 맨주먹으로 싸우고 있습니다. 북한놈들의 전차와 대포를 까부술 수 있게 무기와 탄약을 주십시오.”

 

인터넷 검색에서 발견한 걸 다듬었는데, 실제로 맥아더와 병사 사이에 이런 대화가 있었다면 맥아더는 그냥 한국을 포기했을 것이다. 중국을 포기했듯이. 이런 머저리들을 위해 미국이 왜 귀한 자기 피를 낭비해? 말도 안 되는 거다. 이건 뭐 장교가 가마타고 와서 기생 부르고 뻘짓하는 비유와 무엇이 다른가?

 

졸병이 맥아더에게 ‘무기내놔라 탄약내놔라’ 하는 판인데 무슨 소통을 해? 이건 말이 안 통하는 거다. 패죽일 수도 없고. 일개 졸병이 맥아더 원수 앞에서 조건을 걸고 협상을 하고 흥정을 하자고 한다면 더 이상 말을 할 필요가 없다.

 

“니가 이렇게 하면 나는 이렇게 한다.” <- 구조론의 대칭성 원리 활용. 이건 아닌 거다. 패죽여야 한다.

 

“각하도 군인이고 저도 군인이고?” <- 어쭈! 이것봐라. 맥아더 앞에서 아주 일장연설을 해라 연설을. 이건 미쳐도 오지게 미친 거다.

 

실제 맥아더가 보려고 한 것은 국군의 군기가 엄정한가 이런게 아니다. 그런건 쇼로 얼마든지 위장할 수 있다. 맥아더가 온다는데 어떤 병사가 군기가 바짝 들지 않겠는가? 미국이 중국을 포기한 것은 도무지 말이 안 통해서다. 영어를 못 알아들어서 말이 안 통한게 아니다. 중국군이 부패해서 그런 것도 아니다. 군기가 엉망이어서 그런 것도 아니다. 장개석이 멍청해서 그런 것도 아니다.

 

“각하도 군인이고 저도 군인이고..” <- 이런 미친 놈들 때문이다. “전차와 대포만 주면 한 번 싸워볼텐데.” <- 이런 미친 놈들 때문이다.

 

본질은? 근대와 전근대는 개념이 다르다. 이런건 인류학을 배우면 알게 되는 건데 아프리카나 중남미에서 기업 운영해보면 알게 된다. 예컨대 돌쇠가 마님과 뭔가 있었다치자.. 주인이 돌쇠를 추궁한다. 돌쇠가.. ‘마님을 만난 적은 있지만 그 외의 일은 없었는데요?’ 하고 솔직하게 말하면 몇 사람이 죽어 나간다.

 

만난 적 없다고 딱 잡아떼야 하는 것이다. 무슨 일이 있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하인은 절대 정직하면 안 된다. 정직이 피바람을 부른다. 하인은 당연히 주인을 속여야 하며, 어떻든 넘으면 안 되는 금을 넘지 말아야 한다. 하인과 주인이 같은 공간에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피를 부르는 것이다.

 

이런 봉건 시스템에 익숙한 사람과는 소통이 안 된다. 짐작이지만 예의 웹검색에 나타난 맥아더와 국군 병사의 대화는 누군가 날조한 내용이 틀림없을 것이고, 실제로 맥아더가 본 것은 군말없이 시키면 시키는대로 하느냐다. 가라면 가고, 서라면 서고, 오라면 오고. 이것만 되어도 전쟁에서 이길 수 있다.

 

문제는 위 이야기를 날조한 멍청이가 바로 전근대의 봉건꼴통이라는 거. 이런 꼴통들이 아직도 한국에 쫙 깔려 있다는 거. 이런 거나 날조하고 있다는 거.

 

“가!”
“저 말입니까?”
“가!”
“지금 말이에요?”
“가! ”
“여기서 말이에요?”
“가!”
“돌아올 때는요?”
“가!”
“근데 어디까지요?”
“가!”
“근데요. 왜 가는데요?”

 

이런 놈들을 데리고는 전쟁을 할 수 없다. 즉결처분 외에 답이 없다. 미국이 중국을 포기한 이유는 위와 같다. ‘무기와 탄약을 주면’ 싸우겠다는 놈들, ‘각하도 군인이고 저도 군인이고’ 하는 꼴통과 무슨 손발을 맞추겠는가? 무기와 탄약을 요구한 자는 친일파 채병덕이다. 맥아더가 바로 잘랐다. 싸워야 무기와 탄약을 주는 거지. 안 싸우는데 왜 주냐? 팔아먹게? 그런거 중국에서 많이 봤다.

 

채병덕은 당시 미국과 한국의 관계를 줄건 주고 받을건 받고 거래하는 관계로 본 것이다. 이러면 전쟁이 되지를 않는다. 외교는 되겠지만.

 

징기스칸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딴지일보에도 연재하고 있고 다음에 연재되는 허영만 만화 ‘말무사’에도 있다. 왜 징기스칸은 강했는가? 처음부터 강하지 않았다. 징기스칸은 25살에 칸이 되었지만 본격적으로 두각을 나타낸 것은 35살 전후로 타타르를 토벌한 이후다.

 

자무카와의 13익의 전투가 유명한데 부족장들이 각자 자기부대를 이끌고 마구잡이로 싸운다. 근데 이런 식으로 전투를 치르면 실제 싸우는 병사는 얼마 되지 않는다. 유기적으로 협력하지 않고 서로 눈치를 보기 때문이다.

 

토요토미 잔당과 도쿠가와 세력이 격돌한 일본 전국시대의 세키가하라 전투가 유명한데 동군 10만, 서군 8만, 도합 18만명이 들판에 모여 회전을 벌였지만 실제로 전투를 치른 병사는 몇 천명에서 시작되어, 절정에 달했을 때도 몇 만명에 지나지 않았고 나머지는 눈치를 보고 있었다. 이기는 쪽에 붙으려고. 결국 싸움의 승패는 전투에 의해서가 아니라 유명한 4명의 배신에 의해 일어났다.

 

징기스칸이 강해진 것은 믿을 수 없는 족장들을 제거하고 자신의 직속부하인 ‘사준 사구’를 키웠기 때문이다. 사준 사구는 징기스칸이 직접 픽업한 8명의 심복들인데 이들은 모두 징기스칸만큼이나 나이가 어렸으므로 이들이 성장하는데 10년이 걸린 것이고, 이들이 나이를 먹어 일개 부대를 책임질 정도로 원숙해졌을 때 징기스칸의 정복이 본궤도에 오른 것이다. 그 이전에는 줄곧 고난의 행군이었다. 징기스칸은 타타르를 정복하며 10진법 체제로 부대를 재편한 후에 비로소 세계를 정복할 수 있었다. 봉건 부족시스템을 해체한 것이다.

 

이런 점은 여포나 조조도 마찬가지다. 삼국지연의에 등장하는 영웅, 호걸들이 대개 연합군을 편성하고 있었던 데 비해 여포나 조조는 직속부하들을 데리고 있었고 그 때문에 강했던 것이다. 여포가 맹장으로 직접 창칼을 휘둘렀다는 이야기는 만화에나 나오는 거고 지휘관은 그저 지휘할 뿐이다. 여포는 장료, 고순 외에도 뛰어난 맹장들을 다수 거느렸는데 이들 맹장들이 다들 젊었다. 이름만 높을 뿐 실전능력 없는 늙은 장수들을 긁어모아 동맹군을 이룬 다른 영주들과 달랐던 것이다. 실제로 삼국지에서 조조와 대등하게 싸운 장수는 여포와 마초 뿐이다.

 

원소나 원술, 유표 등은 대세력을 형성하여 일종의 동맹군을 거느리고 있었던 거다. 그러므로 주군은 부하의 배신을 염려하여 처자를 인질로 잡거나 식량을 통제하거나 하는 것이며 조조는 그 약점을 찾아내어 찌른다.

 

구한말 의병들도 연합군을 편성하여 일본군과 싸우고자 했지만 양반들과 평민 의병장 사이에 의견이 통일되지 않아 실패했다. 김일성이 북한을 집어먹은 것도 상대적으로 직속부하의 수가 많았기 때문이다.

 

똘똘 뭉친 소수가 느슨한 동맹을 이룬 다수를 격파하고 정복에 성공한 예는 많다. 숫자로 말하면 국공내전에 참여한 연안파가 압도적이었지만 그들은 제대로 편제되어 있지 않았다. ‘가!’ 하면 가는게 아니고 ‘저말입니까?’ 하고 되묻는 자들이었으며 ‘가!’ 하면 가주는 부하를 김일성이 많이 가졌던 것이다.

 

모택동 역시 마찬가지다. 모택동은 특히 외곽으로 삥 돌았는데 소수민족들은 어느 한 편에 올인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모택동이 소수민족 덕을 본 것이다. 특히 독립군의 후예인 조선인의 힘을 얻어 중국 전역을 정복할 수 있었다.

 

장개석 부하들은 거의 분열되어 있었다. 이런 분열은 ‘향당’이라고 해서 명나라시절부터 있었다. 중국의 거의 모든 시골마을은 서로 원수진 마을이 있고, 원수로 되어 있는 성씨가 장개석편에 붙으면, 그 반대편 성씨는 모택동편에 붙는 식으로 반대로 돌기 때문에 장개석 군대는 근대적 편제가 불가능했다.

 

향당간의 전투는 성씨 위주로 진행되는데 몇 십만명의 대군이 격돌하기도 했다고 한다. 태평천국의 난도 향당의 대결이 한 원인이 되었다. 태평천국군이 향당의 복수에너지를 흡수하여 짧은 시간에 크게 세력을 길렀지만 끝내 향당의 분열습성을 극복하지는 못했던 것이다.

 

손문의 신해혁명 자체가 실패였다. 손문은 근대를 옳게 이해하지 못했다. 민주적인 편제를 도입할 능력이 없었고 청나라 봉건시스템을 그대로 들여왔다. 청나라 관료들은 만주족만 빼고 그대로 중화민국의 관료가 되었다. 달라진 것은 전혀 없었다. 중앙정부에서 지역의 말단까지 내려가는 직속개념의 명령전달경로 자체가 없었다. 장개석군은 태평천국군과 다르지 않았다.

 

군>군단>사단>연대>대대>중대>소대>병으로 명령이 내려가는 것이 아니라 왕이 개인적으로 믿을만한 심복을 보내 현지에서 병사를 모집하여 전쟁을 하는 시스템이었다. 임진왜란때도 선조임금이 신립을 내려보내서 ‘현지에서 되는대로 병사를 모아봐라’고 하는 판에, 현지의 병사들이 생전 듣도 보도 못한 신립장군 말을 들을 리가 없으니 탄금대에 배수진을 치는 방법 외에는 전투를 하도록 만들 방법이 없었다. 전투경험 없는 병사에게 전쟁을 시키는 자체가 어불성설.

 

진관체제나 제승방략체제 하에서는 상관에서 부하로 이어지는 수직적 명령전달체계 자체가 없었다. 직속개념 자체가 없는 오합지졸은 오직 이기는 전쟁만 하려고 한다. 그러므로 장개석은 병사들에게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을 주어야 했고, 반드시 이긴다는 확신을 주려면 무조건 병사를 많이 모아 숫적 우세를 과시해야 한다. 보급은 없는데 병사만 많으니 개판이 될 밖에.

 

모택동군 역시 단지 직속부대가 강했을 뿐 뒤에 항복해서 들어온 부대들은 말을 듣지 않았기 때문에 문화혁명을 겪고 나서야 약간의 근대화가 되었다. 북한은 아직도 개인 인맥 위주로 돌아가는 봉건시스템이다. 중국 역시 꽌시 어쩌고 하고 있다. 이게 다 봉건주의다. 중국은 근대화 되었는가? 필자는 회의적이다.

 

‘가!’ 하면 가는 나라인가? 아니면 ‘저 말입니까?’ ‘근데 왜요?’ 하고 되묻는 나라인가? 한국은 625를 겪고 나서야 약간의 근대화가 되었다. ‘가!’ 하면 가는 시스템이 된 것이다. 그러나 당시 한국정부의 상층부는 그렇지 않았다. 맥아더가 찾아와도 조건을 걸고 흥정을 하려고 했다. 어떻게든 미국을 속이려 했다. 실제로 이승만은 미국을 여러번 속였다. 그거 잘했다고 박수치는 사람도 많다. 봉건 영주처럼 행세한 것이다. 아프간에서는 지금도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본질은 의사결정이다. 근대와 전근대의 차이는 명령이 말단까지 곧장 전달되는가 아니면 명령이 전해지는 각 단위마다 의사결정을 새로 하는가다. 이게 안 되면 아무 것도 안 된다. 아프리카 가서 사업해보면 이런거 느껴질 거다. 당사자와 계약 다 끝냈는데 엉뚱한 사람이 나타나서 “쟤 우리집 하인인뎅?” 하고 원점으로 되돌린다. 첨부터 다시 10단계를 거치며 계속 새로 결정을 내려야 한다.

 

한국도 그런거 있다. 접대 어쩌구 하며 음성적 통로를 통해 스킨십을 해야 일이 추진된다. 봉건과 근대 사이에는 큰 벽이 있으며 그 벽을 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한국은 625를 겪으며 부산에서 평양까지 왔다갔다 하는 중에 그것을 얻었고, 중국은 문화혁명을 통해 단일한 의사결정 시스템을 만들었지만 여전히 문제가 있다. 물론 많은 한국의 봉건인들은 여전히 전라도 경상도 타령하며 단일한 의사결정시스템을 부인하고 ‘너희가 이렇게 나오면 우리는 이런 식으로 응수한다’는 마인드를 가지고 있다. ‘우리가 남이가’ 하는 말이 거기서 나온 거.

 

진리가 직속이다. ‘진리’의 결을 따라가는 마인드를 얻지 않으면 안 된다. 상대가 뭐라하든 일단 반대로 돌면서 사태를 교착시켜 놓고, 시간을 벌어 그 사이에 잔대가리를 굴리며, 찔러볼 거 다 찔러보고, 쑤셔볼 거 다 쑤셔보고 난 다음에 현안으로 들어가겠다는 자들과는 아무런 일도 할 수 없다. 일단 반대로 돌며 찔러볼 거 다 찔러보려는 자들 때문에 노무현 대통령이 희생된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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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필 이미지 [레벨:16]노매드

2011.06.30 (17:06:22)

6,25 당시 국방라인

 

국방부장관  신성모 : 군 경력도  없는 것이 영어를 잘한다고 이승만에게 발탁. 점심은 평양 저녁은 신의주 발언의 주인공.

육군참모총장  채병덕 : 친일파. 꼴통 짓으로 군을 엉망으로 만들어 놓아, 개전 초기 참패 야기. 전쟁 발발 3일만에 잘리고 좌천되어 그해 하동전투에서 전사.

1사단장 백선엽 : 역시 친일파. 개전 초기 담당인 서부 전선 붕괴로 패전 책임자인데, 전쟁 영웅으로 둔갑. 아직까지 활개치고 있음.

 

6,25 전쟁은 탱크를 앞세운 북한의 기습으로 초기에 패전할 수 밖에 없었다는 말은 사실과 다릅니다. 당시 군 지휘관들 중 친일파들은 요직인 서부전선에 집중되어 완전히 말아 먹은 반면, 춘천을 비롯한 동부 전선은 대비를 잘해 뚫리지 않았습니다. 서울이 함락되자 할 수 없이 후퇴한 거죠. 북한이 서울을 점령하고 사흘동안 진격을 멈추고 주저한 것이 아직도 역사속 미스테리로 남아 있는데, 동부 전선에서 차질이 생겼기 때문이라는 설이 있습니다.

 

당시 춘천을 방어하던 6사단 7연대장은 호남 출신 임부택 중령이었는데, 6,25 동안 많은 공을 세웁니다. 그 유명한 압록강 물 떠서 보낸 부대이기도 합니다. 박정희 이후 영남 정권에서 소장 밖에 승진 못하고 푸대접 받게 됩니다.

 

롬멜, 몽고메리 등 남의 나라 전쟁 지휘관 이름은 알고 있지만, 자기 나라 전쟁의 주요 지휘관 이름은 잘들 모르고 있는 것이 역시 미스테리.

프로필 이미지 [레벨:20]아란도

2011.06.30 (17:38:43)

알려고 한적도 없었던 것 같고, 알려주지도 않았던 것 같고...역사책에 그런 것은 안나오니까...ㅠㅠ

알아야 한다는 생각 자체를 안하고 있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워낙에 6.25를 마치 자신들 소유물인 것처럼 하는 사람들 때문에 정작 그 본질을 보지 못하고, 또한 거기서 일어난 전투들에 대해서도 이념으로 분리시켜져서 알고자 하는 노력 그 자체가 피곤하다고 여겨졌던 것도 같구요.

[레벨:4]당당

2011.07.14 (20:13:09)

6.25 당시의 춘천전투 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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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사단장: 김종오(충북 청주)-대장예편

우익  2연대: 함병선(평남 대동)-중장예편
좌익  7연대: 임부택(전남 나주)-소장예편
예비 19연대: 민병권(경남 거창)-중장예편

임부택은 출세를 못한게 아닙니다.

[레벨:12]김대성

2011.06.30 (18:00:25)

전송됨 : 페이스북

 의미는 변화에 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11.06.30 (18:02:57)

이승만, 채병덕, 백선엽 다 북쪽 출신인데 남쪽 병사 데리고 전쟁하기에는 구조적으로 무리였다고 봐야 합니다. 물론 전쟁을 계속하다보면 신뢰가 쌓여서 시스템이 돌아가게 되지만 초반에는 그렇지 않고 그냥 붕괴됩니다. 그때는 박정희도 빨갱이였던 판에 자기 부하도 못 믿죠. 


프로필 이미지 [레벨:16]노매드

2011.06.30 (18:25:43)

그 당시 북쪽 출신들은 친일파가 많았고 남쪽에서 친일파를 중용하다 보니, 지휘부엔 북쪽 출신들이 기용됐다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요?

 

남한 정부수립 당시 중간 지배층에는 친일파가 득세한 반면, 내각에는 친일파가 한 명도 없었습니다. 정부 수립 당시에 국민 정서도 그렇고 이승만 자신도 일본을 싫어 했으니 장관들 만큼은 친일파를 일체 기용할 수 없었습니다. 반대로 북한은 실용주의적 사고로 내각 일부에 친일파를 기용했지요. 이 역시도 잘 알려져 있지 않은데 조갑제옹이 짚어 준 사실입니다. (물론 그는 이 사실을 가지고 이승만 정권을 친일이라고 매도하는 것은 잘못이라는 주장을 하는 것이지요.)

 

최고위층은 비 친일파, 중간층은 친일파, 국민들은 반일. 이러니 호흡이 잘 맞을리가 없었겠죠.

[레벨:7]꼬레아

2011.06.30 (23:50:45)

 

본문 내용 중 멍청한 중국군 장교와 관련해 다음을 옮겨봅니다

 

<김삼웅의 인물열전 블로그> 의 <장준하 평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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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도착한지 두 시간이 넘어서야 우리는 이곳 사령관이 부른다는 전달을 받고 사령관실로 안내되었다. 정작 우리가 놀란 것은 이곳의 일이다. 사령관이라고 하는 사람은 처음 만나는 우리를 런닝셔츠와 팬티바람으로 불러들인 것이다. 그보다 더 가관인 것은 꼭 손녀같이 보이는 십 육칠세 계집아이를 무릎에 올려놓고 있는 그 태도였다. … 열 여섯을 넘지 않았을 그 여자는 그의 다섯째 첩이라는 사실을 뒤늦게나마 알고 고소를 금치 못했다. (주석 9)

http://blog.ohmynews.com/kimsamwoong/228541

 

 

장준하가 또 놀라운 사실은 중앙군의 기막힌 가마행렬이었다.
이동행렬 속에는 50여 대의 가마가 있었고 남루한 군복의 중국군인이 메고 가는 가마에는 사단장의 가족이 타고 있다는 것이다. 5억이 넘는 인구의 중국이 수십만 명 일군에게 쫓기게 되는 현실은, 이같은 중국군 지도부의 부패ㆍ타락에 기인한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중국 중앙군에는 우수한 부대도 적지 않았지만, 이 같은 엉망인 부대도 많았다.

후방도 아닌 전방지대에 사단장이라는 지휘관은 수십 명의 처첩을 거느리고 다니고, 박격포를 메고가야 할 그 어깨엔 그 대신 지휘관의 처첩들의 가마가 올라 앉는가 하면, 정규군의 모습이 아닌, 이 미련한 중국군, 일군에게 밀리우면서 또 홍군과 맞붙어 싸우며 떠다니는 유랑의 군대, 그런가 하면 일군은 ‘점과 선’ 만을 차지하고, 타협도 해가면서 대륙을 들쑤셔놓은 그 약삭빠른 허세의 군대다. 이들의 사이에서 어부지리를 얻는 공산군만이 진실로 공간과 인간을 지배하고 있다. (주석 1)

 
http://blog.ohmynews.com/kimsamwoong/228904

 

 

프로필 이미지 [레벨:16]노매드

2011.07.01 (13:31:25)

봉건 -> 근대 -> 현대

 

아직 근대화도 완전히 되지 못했다면,  현대화는 언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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