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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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23262 vote 1 2019.11.04 (14:32:09)

 
    유시민의 가능성


    ‘50부터는 인생관을 바꿔야 산다.’ 사이토 다카시가 쓴 책 타이틀이다. 대중에게 아부하는 3류 처세술 책을 쓰는 모양인데 내용은 관심 없고 제목은 확실히 와닿는다. 나이 50이면 인생의 도전자에서 방어자로 포지션이 바뀐다. 바뀐 환경에 적응해야 한다.


    유시민이 대통령이 되려면 70살은 되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과거 백바지 사건 때다. 한 번 스탠스가 꼬이면 회복하기 어렵다. 유시민은 대기만성이 아니라 조기완성형 인물이다. 그는 흠잡을 데 없이 완성되어 있다. 단 너무 일찍 꽃망울을 터뜨렸다.


    아직 봄이 오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평양감사도 본인이 싫으면 그만이다. 본인은 이 정도에 만족하는지 모르지만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려면 인생관을 바꿔야 한다. 도전자 모드에서 방어자모드로 갈아타야 한다. 환경이 바뀌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작가에 논객으로 사는 것도 방법이지만 세상이 그를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으니. 유시민은 노무현을 이해하지 못했다. 구조론적 관점으로 보면 엘리트 출신은 대중의 지도자가 될 수 없다. 정치의 본질은 권력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행복을 원하지 않는다.


    인간은 명성이나 출세나 돈이나 미인이나 쾌락이나 이상을 탐하는 존재가 아니다. 인간은 권력을 탐한다. 정확히는 권력 그 자체가 아니라 권력구조 안에서의 역할이다. 집단의 중심과 긴밀해지려는 것이다. 사회와 겉돌지 않고 어색해지지 않는 것이다.


    집단의 중심에 자리를 잡으면 긴밀해진다. 모든 정보가 자신을 통과해 간다. 그럴 때 안정감을 느낀다. 출세든 금전이든 명성이든 이상이든 권력으로 가는 징검다리에 불과하다. 엘리트는 대중에게 행복을 줄지언정 권력을 쥐어주지는 않으려고 한다.


    민중이 권력을 쥐면 폭주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엘리트는 민중을 믿지 못한다. 그런 비뚤어진 마음을 들키는 순간 정치생명은 끝장나고 만다. 엘리트가 민중을 이해하려면 한통속이 되어야 한다. 민중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그런데 그것은 불가능하다.


    그 과정에 엘리트의 역할을 잃기 때문이다. 유시민이 논객노릇을 포기하고 작가노릇을 포기해야 민중과 하나가 될 수 있다. 포기할 수 있을까? 포기할 필요가 있을까? 잘나가고 있는데? 근본은 사회 안에서 역할의 문제다. 주어진 역할을 바꿀 수 있는가?


    상대를 꺾는 것은 정치가 아니다. 교차로에 서 있는 신호등처럼 교통정리 하여 막힌 병목을 해소하는 것이 정치다. 정치는 다스리는 것이며 다스림은 자신이 옳다고 믿는 신념을 실현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의 이해관계를 조율하고 중재하는 것이다.


    집단 내부의 트러블을 완화하는 것이다. 트러블을 일으키는 것은 환경변화다. 환경변화는 첫째, 경제발전, 둘째, 인간이동, 셋째, 천재지변의 형태로 일어난다. 종교의 포교로 인한 인간의 이동이 대표적이다. 항해술의 발달로 인한 대규모 인구이동도 있다.


    그럴 때 마찰이 일어난다. 정치의 다스림이 소용된다. 전쟁으로 인한 이동도 있고, 산업화와 식민지 개척으로 인한 인구이동도 있다. 인간의 물리적 이동에 따른 물리적 마찰을 해소하는 것이 정치의 첫 번째 과제다. 경제의 성장도 많은 마찰을 일으킨다.


    신산업과 구산업이 충돌하고 도시민과 농민이 마찰한다. 지식의 보급에 의한 신인류의 등장도 중요하다. 교육받은 젊은 세대와 무식한 기성세대의 충돌이다. 구세대가 마초짓을 했는데 왜 신세대가 덤터기를 써야 하느냐는 젊은 남자들의 항의도 있다.


    천재지변으로 인한 환경변화도 있다. 지진, 쓰나미, 온난화, 기후변화도 중요한 해결과제다. 이 모든 것들은 통제가능성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이것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자동차의 핸들과 같은 정밀제어의 문제다. 옳은 것은 선택하면 된다.


    그런데 핸들은 풀어준 만큼 되감아 줘야 한다. 동물적 균형감각의 문제다. 학교에서 배우지 못한다. 엘리트가 빠지는 함정이 거기에 있다. 그들은 OX 시험문제로 착각한다. 정답을 찍기만 하면 되는 줄 안다. 그런데 예상하지 못한 후방효과는 늘 나타난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좋은 일을 하면 칭찬받고 나쁜 일 하면 비난을 받는 것이다. 그런데 좋은 일 하고 정권을 빼앗긴 예는 역사에 무수히 많다. 상황이 통제되지 않기 때문이다. 일이 이상하게 흘러가 버린다. 물에 빠진 사람을 건져주는 것은 좋은 일이다.


    건져준 다음은? 손을 뗄 수 없다. 한 번 잠들어 있는 욕망을 깨웠으면 끝까지 책임져야 한다. 물에 빠진 사람은 자신을 구해준 사람을 물에 빠뜨린다. 왜? 손닿을 곳에 있으니까. 이것이 통제가능성의 문제다. 나는 전혀 다치지 않고 남을 도울 수 있을까?


    이는 역량의 문제이지 선악의 문제가 아니다. 선악은 잘 판단하는데 역량이 부족하여 일을 벌여놓고 뒷감당 못 하는 것이 진보의 고질병이다. 복지를 하려면 재원조달이 어렵고 일본을 손보려니 이재용 손을 빌려야 할 판이다. 일이 이상하게 돌아간다.


    미군을 쫓아내려면 북한부터 해결해야 한다. 만만치 않다. 통일은 절대선이지만 통일을 하겠다고 말하는 순간 을이 된다. 아쉬운 처지가 된다. 북한은 배짱을 튕긴다. 통일하려면 통일하겠다는 말을 꺼내지 말고 북한이 먼저 고개 숙이게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이런 일이 5년 임기 안에 해결될까? 문재인의 5년 임기 안에 북한을 향해 절대 통일이라는 말을 꺼내지 않고 북한이 먼저 숙이고 통일의 길로 나오도록 김정은을 길들일 수 있을까? 뭐든 쉽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전혀 불가능한 목표도 아니다.


    개인의 주관적 신념에 따른 도덕적 이상을 근거로 정치를 주장하는 것은 교육과 문자의 보급으로 인한 지적 혁신인데 이 또한 다스려야 할 일부일 뿐이다. 인간은 이상적인 목표로 가는 게 아니라 집단의 에너지를 통제가능한 방향으로 수렴하는 것이다.


    이상적인 정치란 사람들을 광장에 불러모으는 수단에 불과하다. 이상주의는 권력의 창출시도에 해당하지 그 권력의 최종적인 도달지점은 아니다. 이상적인 정치에 도달해 인간이 모두 만족하여 에덴동산처럼 자유롭게 사는 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는다.


    정치의 궁극적 도달점은 만인이 적당한 권력을 갖고 있으면서 타인과의 마찰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남자든 여자든 빈자든 부자든 강자든 약자든 적절한 정도의 통제권을 가지면서도 갈등하지 말아야 한다. 상대의 횡포에 맞대응할 수단을 가져야 한다.


    그것은 모순과 갈등이 없는 아름다운 사회가 아니라 갈등이 있지만 기름칠이 되어 주먹으로 싸우지 않고 세련되게 엿먹이는 것이다. 인간은 결국 인간을 엿먹인다. 등치고 배만지는 게 인간이다. 웃으면서 등쳐먹는 게 인간이다. 세련되게 해먹을 뿐이다.


    막힌 길을 풀어내는 교통정리가 진정한 정치다. 왜 도로가 막히느냐 하면 매년 신차가 도로에 쏟아지기 때문이다. 정치를 잘할수록 정치시장에 더 많은 이슈가 공급된다. 예전에는 문제 되지 않던 것들이 중요하게 다뤄진다. 더 깐깐해지고 더 피곤해진다.


    관념진보는 막연히 좋은 것이고 과학진보는 생산력 변화와 환경변화를 반영하는 형태로 시스템을 업그레이드하는 것이다. 변화된 환경에 맞는 통제가능성을 끌어내는 것이다. 아무리 선진국이 되어도 문제는 생겨나기 마련이다. 세련된 정도가 다르다.


    보수는 변화를 거부하거나 혹은 물리적으로 난폭하게 해결한다. 변화는 인간의 의도에 따른 것이 아니라 자연법칙이므로 피해갈 수 없다. 진보가 과학이므로 결국 진보가 이기게 되어 있다. 옳기 때문에 이기는 게 아니라 자연법칙이기 때문에 이긴다.


    자연은 에너지에 의해 지배되며 그 에너지가 스스로 진화하는 것이 진보로 나타나는 것이다. 단 그 에너지는 하나의 문제를 해결하면서 동시에 다섯 가지 새로운 문제를 만들어낸다. 그러므로 정치를 잘할수록 더 많은 피곤한 문제를 맞닥뜨리게 된다.


    50이면 인생관을 바꾸어야 한다. 유시민이 인생관을 바꿀 리가 없다. 그러나 세상이 그를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적응하다 보면 인생관이 바뀌어져 있을 수 있다. 이젠 도전자의 삶이 아니라 방어전을 치르는 챔피언의 삶으로 바꾸어야 산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13]kilian

2019.11.05 (04:33:42)

"정치의 궁극적 도달점은 만인이 적당한 권력을 갖고 있으면서 타인과의 마찰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http://gujoron.com/xe/1138513

[레벨:11]토마스

2019.11.05 (12:27:54)


구조론에 와서 읽은 내용중 이해못하는 것도 있고 동의못하는 것도 있지만 200% 동의하는 부분은 인간은 궁극적으로 권력을 탐한다는 부분입니다.  그것도 그냥 뒷방 늙은이로서의 권력이 아니라 권력구도안에서 주도하는 역할을 탐한다 이건 정말 200% 동의하고 살면서 계속 느끼고 있습니다.


드라마를 보면 나름 권력을 가진 인물(부자집 시어머니나 노인)들은 방에 혼자 처박혀서 보료 위에 앉아서 드나드는 식구들을 말로 제어하는데 실제 삶에서는 전혀 그렇지가 않죠.  그렇게 뒷방 노인네 짓을 하는게 아니라 앞에 나서서 직접 행동으로 진두지휘를 하는데 드라마는 늘 비현실적인 권력만을 다루더군요. (보료위에 앉아서 외출도 안하고 방에 쳐박혀서 보고만 받는 노인은 못봤습니다. 사사건건 나서서 개입하고 쫓아다니고 그러지)


두 명만 있어도 거기서 권력이 생성되고 아파트 재개발, 회사, 친목모임, 동창회, 동호회 등등에서 한 번도 수평적으로 돌아가는 것을 못봤습니다.  누군가 권력자가 있고, 주도자가 있고, 의사결정 라인이 있지 전원 합의체와 공동운영으로 돌아가는 경우는 3인 모임에서조차 없더군요.


성폭행, 가부장제, 학교폭력 등등이 모두 그런 욕망에서 나오고, 인간이 권력을 알고 탐하는 시기는 제 생각에 3-4살 정도부터라고 봅니다. 아기때는 귀여운 외모가 권력, 학창시절에는 주먹과 학교성적이 권력, 어른이 되어서는 돈이 권력, 돈을 탐한 뒤에는 명예와 지위가 권력....  살면서 권력에 늘 도취된 자가 권력을 못 가진자의 생각을 이해하기는 정말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엘리트가 민중을 절대 이해못하는 것도 그런 것 같고.


부자가 돈과 명예를 탐한다고 진보를 자처하는 사람들이 욕하지만 진보를 자처하는 사람들은 지식의 권력에 대해서 정말 너무 오만하더군요.  예전에 꽤 친한 급진보 지인이 있었는데 그 사람과 대화를 하면 분명 한국말로 이야기를 하는데 50%는 못 알아듣겠습니다 . 문자, 어려운 용어, 외래어 등등을 마구 남용하는데 진짜 못알아 듣겠어요. 태극기 부대 노인과 대화하면 100% 뭔 이야기인지 알아듣겠는데.  검소한 척 하는 진보지만 실제로는 지식에 대한 사치스러움이 하늘에 달하고 이런 사람들이 못난 사람이나 머리나쁜 사회적 약자들을 참으로 무시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진보가 세상을 바꾸려면 대중에게 잘 먹히는 정책이나 전략을 추구해야 할텐데 그런 것 잘하는 사람이 좋은 전략가라는생각을 많이 했고, 유시민, 김어준 같은 사람들이 전형적인 그런 부류 같습니다. 선동능력도 상당히 있고.. 지루하고 재미없는 진보는 앞에 나서서 이끌며 안된다는 생각이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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