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슬러 윤강철과 PD 김태호
늘 하는 말이지만 이 글 역시 대한민국의 좀 아는 상위 0.00001프로를 위한 글이다. 모르고 오해하는 일 없기 바란다. 누가 잘했고 못했고 시시비비를 가리는 글이 아니라, ‘지성이란 어떤 것인가’ 하는 점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며, 예를 들어 설명하기 위하여 대한민국에서 흔히 일어나는 전형적인 사건의 예로 김태호와 윤강철의 인터넷 조우를 끌어댄 것이다. ‘지성’에다 방점을 찍어야 한다. 말하자면 이 사건은 무한도전 사건도 아니고, 프로레슬링 사건도 아니고, 인터넷 사건인 것이다. 왕자와 거지가 만나도 인터넷에서는 일대일이다. 적어도 이 글에서는 그렇다. 바로 그 지점에서 조망하고자 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김태호 비판이 되겠지만, 필자의 의도가 김태호 비판에 있는 것은 아니다. 책임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은 언행이 무거워야 하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사과하고 싶어도 공식적으로 사과하지 못하는 때가 많다. 그것이 근거로 남아서 나중에 다른 일의 빌미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윤강철은 경솔한 행동으로 프로레슬링 챔피언의 위상을 일당 20만원짜리 알바로 전락시켜 버린 책임이 있다. 윤강철은 근거를 남겨버렸다. 그렇다. 대한민국에서 프로레슬링 챔피언은 일당 20만원짜리로 대접을 받는 거다. 그게 오해든, 실수든, 작전이든, 술수든 이유불문하고 그렇다. 과정을 무시하고, 내막을 무시하고 그렇다. 그래서 세상에 허다한 사건이 일어나는 것이다. 오해는 풀면 되고, 실수는 수습하면 되는데 이건 수습이 불가하다. 근거가 남았기 때문이다. 오해로 일어난 사적인 사건이 대중의 동정심에 호소하기 위하여 피해자인 척 하는 윤강철의 술책에 의해 공적인 표준으로 발달하여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사태를 이렇게 만든 사람은 윤강철이고 조연은 본의 아니게 말려든 김태호다. 썩 좋지 않은 그림이다. 김태호는 이러한 점에 대해 고려가 있어야 했다. 정치인이라면 김태호는 윤강철에게 사과를 해야 한다. 누구 잘못이든 상관없이 책임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 무조건 사과를 해야 한다. 유명환 장관 모르게 부하직원이 아부하기 위하여 개인적으로 공작을 했더라도 유명환 장관이 물러나야 한다. 그게 이 사회가 작동하는 법칙이다. 그러나 김태호 역시 막강한 MBC에 밥줄을 달고 사는 월급쟁이라 임의로 사과할 수 없다. 김태호의 명성이 높아서 그러할 뿐 굳이 책임을 따지자면 MBC 사장이 책임을 져야 한다.
결론적으로 여러 가지 불합리가 있었지만 그것이 PD 김태호의 잘못은 아니며, 필자의 의도는 시시비비를 가리려는 것이 아니라 ‘지성의 시선’은 어떠한 것이어야 하는가를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이 글은 김태호가 지성인인가 그렇지 않은가를 논하는 것이 아니다. 전혀 아니다. 오해 없기 바란다.
팩트로 보면 윤강철이 어거지로 김태호에게 엉긴 것이다. 한마디로 찌질하게 군 것이다. 비루한 짓이다. 윤강철에게는 ‘야 너 참 없어보인다.’ 이 한마디로 핀잔을 주어 간단히 제압할 수 있다. 챔피언이 그야말로 일당 20만원짜리 짓을 한 것이다. 자초한 일이다. 그러나 중요한건 지성의 시선이다. 어떠한 시선으로 보는가이다. 존엄으로 보아야 한다. 존엄으로 보면 이 사건이야말로 우리 사회의 온갖 모순이 정교하게 짜맞추어진 하나의 퍼즐임을 알 수가 있다. 그 퍼즐 함께 풀어보기다. 문제의 해결에 도전하기다.
간단히 정리하면 돈 있는 MBC가 돈 없는 프로레슬러 울게 만든 일이다. 누구 잘못이라기 보다는 구조적인 모순이며 우리 사회에서 항상 일어나는 일이다. 그러나 MBC는 거대조직이고 윤강철은 노숙 직전까지 간 힘없는 개인이다. 김태호는 아마추어니 엔터테인먼트니 동우회니 하는 용어로 교묘하게 피해가지만 무도 멤버들은 명백히 돈 받고 방송출연을 했고 1년간 그 출연료를 다 합치면 못해도 억대가 넘을텐데, 아마추어 간판 달고 억대 프로레슬링을 노숙하는 진짜 프로레슬러 앞에서 한 것이다. 돈이 오가면 프로다. 예능 연기자 출연료도 돈이다. 프로레슬러가 텃세를 부리는 바운더리 안에서 프로레슬링을 한 것이다.
동호인 운운은 말장난에 불과하다. 사회 어디가나 텃세가 있고, 기득권이 있고, 선점권이 있는데 그걸 힘있는 MBC가 무시한 것이다. 어저께 방송에서도 ‘뜨거운 형제들’을 촬영한다며 트럭 야채장사로 분장하여 아주머니들께 채소를 싼 값에 주기도 하고 공짜로도 나눠주곤 하더라. 근처 채소가게 울고간다. 이런 부분까지 세심하게 배려해야 한다. 왜? 강자니까. 그래서 선행이란 참으로 어려운 것이다.
잠깐 옆길로 빠져서.. ‘오래된 미래-라다크로부터 배운다’의 저자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 여사의 글 한 토막을 인용하겠다.
“한 마을에서 카메라, 사탕과자, 펜으로 무장한 여행자 무리가 실제로 마을을 공격하다시피 하는 것을 보았다. 초록, 빨강, 파랑으로 현란하게 차려입은 그들이 순진한 사람들의 얼굴에 한마디 말도 없이 카메라를 들이대고는 또 다음번의 피해자를 향해 가는 것이었다.”
이와 유사한 이야기 필자도 과거 여러번 했었다만, 여행자들이 가난한 오지 마을의 어린이들에게 사탕을 던져주는 일이 얼마나 잔인한 인간파괴 행동인지 아는 사람은 적다. 여행자들은 선행을 한답시고 사탕과자를 주었겠지만 그 순수한 아이는 그만 타락하여 속임수를 쓰는 삐끼가 되고, 소매치기가 되고, 관광객에게 바가지를 씌우는 비열한 장사꾼이 되고 마는 것이다. 그게 비열한 삐끼 책임이지 왜 선의로 사탕을 준 내 책임이냐고 되묻는다면 그런 사람과는 지성을 논할 수 없을 것이다. 세상의 이치는 주는 사람이 갑이고 받는 사람이 을이 되는 것이다. 줌으로써 갑이 된 자체로 악이다. 졸지에 상대방을 을로 만들어버린 것이며 상대방의 존엄을 깔아뭉갠 것이다. 참된 여행자라면 주는 것 없이 고맙게 받고만 와야 한다. 자신을 을로 만들고 상대방을 갑으로 만들어야 한다. 호지 여사는 라다크의 어린이들이 쥐어주는 때가 꼬질꼬질한 살구를 웃으면서 받음으로써 친구가 되었고 그들은 친구를 얻었다. 그 차이다.
본론으로 돌아와서.. 이 사건이 꼬인 것은 처음 세 명의 레슬러가 강화도 펜션에 왔을 때, 김태호 PD가 챔피언과 직접 대화하고 합당한 배려를 했어야 하는데 담당작가에게 시켜놓고 쳐다보지도 않고 무시한데서 시작된 거다. 물론 윤강철이 스스로 챔피언임을 밝히지도 않았고, 김태호가 챔피언 알바를 필요로 한 것도 아니므로 김태호의 잘못은 아니지만 사건은 항상 이런 식으로 일어나는 것이다. 리더는 모든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
무엇인가? 아마존의 눈물 촬영 때도 독립PD와 마찰이 있었다. 아마존의 눈물 팀은 정승희가 제안하는 불법적인 야매촬영(!)을 거부하고 브라질 정부와 협의해서 더 많은 돈과 시간을 들이고 완성도를 높였다. 김태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왜? 국내에 프로레슬링 단체가 한 둘 있는 것도 아니고, 그 사람들 끼어들어 감놔라 배놔라 하면 배가 산으로 갈 것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김태호는 공식 루트를 쓰지 않고 편의를 추구했으며, 거기에 따른 리스크가 이러한 형태로 나타난 것이다. 세상 일이 다 그렇다. 공식적인 방법으로 갔다가 진행이 안 되어 주저앉는 위험이 있고, 반대로 편법으로 갔다가는 이와 같이 엉뚱한 데서 태클 들어오는 리스크가 있다. 모두 감수해야 한다. 왜 태클이냐고 항변하면 안 된다. 원래 태클 들어온다. 시골에서 가게를 해도 처음에는 다들 축하하고 도와주는데 조금 있으면 지신밟기 명목으로 꽹까리 치며 돈 뜯어려는 주민들부터 문앞에서 목탁 두드리는 땡초스님에 동네양아치까지 별의별 괴롭힘이 다 들어온다. 그들은 반대로 생각한다. 원래 우리 구역인데 개업집이라서 그동안 봐준 거라고 믿는다. 이런 삥 뜯으려는 무리는 싹쓸어버려야 한다고 믿으면 전두환 식이다. 지성이라면 그들까지 포용하고 가야 한다. 그들 비루한 자들의 권리도 인정해야 한다.
본질은 텃세다. 안봤으면 몰라도 MBC라는 먹잇감을 봤는데, 삼촌 바지주머니에 든 눈깔사탕을 봐버린 아이가 되었는데, 아마추어 동호인에 불과한 손스타가 먹는 것을 노숙하는 챔피언이 배가 아프지 않을 리 없다. (노숙이라는 표현이 과하다 싶지만 윤강철 본인의 글에 나오는 거다.) 강자의 텃세는 나쁘지만 약자의 텃세는 때로 정당하다. 노동자가 노조를 만드는 것도, 에디슨이 특허권을 앞세우는 것도 조폭이 자릿세를 뜯는 것도 본질은 똑같은 텃세다. 노동자가 조직하여 텃세를 부리면 망할 귀족노조가 되고, 에디슨이 협잡하여 부하직원의 아이디어를 제 이름으로 특허를 내어 횡포를 부리면 정당한 거고 그런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세상이 그러한 원리로 돌아간다는 사실이다. 모든 텃세가 정당한 것도 아니고 모든 기득권이 정당한 것도 아니다. 지성이라면 그러한 사정에 대한 고려가 있어야 한다는 거다.
돈 있는 사람이 자기돈으로 시골 와서 놀고가면 옆에서 김매기 하는 농민은 서럽다. 농민 입장 헤아려서 보이지 않는 데서 놀아야 한다. 윤강철이 두서없는 이야기를 했지만 본질은 강화도까지 찾아간 것은 프로레슬러로 한계상황에 몰려서 어떻게 MBC 힘을 빌려보려고 매달리는 심정으로 찾아간 것이며, 그 추운날 가오(!) 세우려고 옷도 안 입고 새벽까지 기다리며 버텼는데, 그거 배려 안하고 몰라보고 무시했냐 그런 거다. 물론 김태호 PD가 그러한 내막을 알 일이 없으니 잘못은 아니지만, 애초에 사단이 난 것이 윤강철이 김태호 PD에게 섭섭해서 그러한 것이 아니라, -섭섭한 척 하는 것은 쇼다. 세상을 몰라도 유분수지. 일설에 의하면 윤강철은 방송에 여러번 토막출연해 봐서 잘 안다고- 대중의 동정심을 구해서 센세이션을 일으켜 보려고 의도적으로 사건을 만들어낸 것이니 그러한 가능성에 대해 김태호의 대비가 있어야 했다는 거다.
윤강철은 김태호가 직접 ‘어이구 챔피언께서 어려운 걸음을 해주셨군요.’ 하고 특석으로 모셔서 ‘앞으로 다른 굵직한 사업도 같이 합시다.’ 하고 제안해주길 기대한 것이다. ‘우리 힘을 합쳐서 한국의 프로레슬링 한번 살려봅시다’ 하는 제안을 받기를 기대한 것이다. 그래서 담당작가에게 멕시코로 레슬링 유학간 이야기도 하고 안해도 되는 별의별 이야기를 다 한 것이다. 김태호 귀에 들어가라고. 물론 김태호 입장으로 말하면 그런 사람이 한 둘이 아니고 피식! 그 모든 기대는 윤강철 혼자 망상이므로 윤강철 잘못이지만 이 글을 읽을 자격이 있는 대한민국 상위 0.00001퍼센트의 리더라면 그런 점까지 헤아려야 한다. 늘 하는 말이지만 속이면 속아주는 것이 지성의 시선이다.
지하철에서 여성 장애인이 노약자 칸에 앉았는데 어떤 노인이 호통을 치더라. 왜 젊은 여자가 뻔뻔하게 노인자리에 앉았느냐고. 그 장애인 울면서 일어나더라. 노인이 되려 호통을 치더라. ‘장애인이면 장애인이라고 말을 해야지. 난 몰랐잖아.’ 몰랐어도 사과해야 한다. 알았건 몰랐건 장애인 설움은 그대로 남는다. 모든 책임은 담당작가가 아니라 김태호에게 있으며 김태호가 사과해야 한다. 물론 이런 식의 사과요구는 정치인에게나 하는 것이며, 일개 PD에 불과한 불쌍한 직장인 김태호씨에게 요구할 일은 아니다. 사과를 하려면 MBC 사장이 해야 한다. 그러나 김태호의 명성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유명세라는 말이 그래서 있다.
VIP 초대권 한 장으로 입막음? 이게 우롱하는 거다. 김연아 선수였어도 초대권 한장으로 때웠겠는가? 김연아와 윤강철은 레벨이 다르다고? 그게 설움주는 거다. 자본주의 룰로 말하면 세계최고 김연아와 노숙레슬러 윤강철은 하늘과 땅의 차이지만 존엄으로 말하면 동등하다. 그 본질을 아는 것이 지성이다.
김태호는 윤강철에게 사과하는 것이 맞다. 윤강철 2년간 접는다 했다. 대한민국에서 이런 식으로 엉기는 자를 해결하는 방식은 피식 웃어주는 것이지만, 지성의 관점에서 논하자면 김태호는 본의아니게 윤강철 2년을 죽인 것이며(이건 감정의 흐름을 이어가기 위한 필자의 과장된 표현이다.), 이는 착한 여행자가 사탕과자로 타락시켜 순수한 오지의 어린이를 야비한 삐끼로 만든 것과 본질에서 같은 일이며, 김태호가 사과하는게 맞고 윤강철이 그래도 김태호의 사과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김태호가 2년간 접는다고 선언하는게 맞다.(물론 현실에서 굳이 그럴 필요까지야 없겠지만 글에는 글의 논리가 있다.) 그게 존엄이다. 윤강철 잘못도 있다고? 모든 책임은 강자가 지는게 맞다. 왜? 그래야만 문제가 해결되기 때문이다. 약자는 문제해결 능력이 없어서 자기 잘못도 책임지지 못한다. 그러니까 약자지.
대한민국에서 먹히는 권세의 논리, 돈의 논리, 강자의 논리, 힘의 논리로 보면 거지가 왕자에게 엉긴 격이라 윤강철이 벌레처럼 씹히는게 맞지만, 인간의 존엄 관점에서 보면 김태호가 비는게 맞다. 오해 오해 하는데 이 사건은 결코 오해로 일어난게 아니다. 윤강철이 죽을 위기에 몰려서 자신이 살려고 MBC를 이용하려는 의도에서 일어난 것이며, 그 빌미를 준 것은 MBC다. 윤강철은 김일선수 추모대회 참여 등 이전에도 이것저것 해서 언론을 제법 탄 사람이다. 명백히 의도된 행동이다. 그것이 윤강철의 의도된 공작이고, 술수이고, 행패이고, 야료이고, 진상짓이고, 찐따이기 때문에 그 의도를 받아들여야 한다. 죽어가는 거지 앞에서 부자가 아들 돌잔치를 화려하게 하는데 조화를 주지 생화를 주겠는가? 돌 던지고 침 뱉는게 인간정서다.
김태호는 잘못한 것이 없다. 윤강철은 잘못을 저질렀다. 그러나 세상의 많은 일들이 잘못 때문에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누구는 엉성하게 흉내만 내고 수억 출연료를 받고, 누구는 멕시코까지 가서 8년간 고생하고도 20만원 받는 사회의 구조적인 모순 그 자체 때문에 일어난다. 그래서 의도가 있는 것이며, 이 사건은 잘잘못의 문제가 아니고 의도의 문제이며, 인간의 행위는 의도를 가지고 가는 것이며, 그 의도를 존중하지 않으면 안 된다. 지성이라면 말이다. 아마존의 눈물에 엉겨보려 한 정승희 PD의 의도 역시 마찬가지다. 거대방송국의 횡포에 신음하는 독립PD의 설움을 알리겠다는 의도가 살아있으면 이와 유사한 일은 반복된다. 사실은 어떻게 엉겨서 자기 존재를 알리려는 정승희의 치사한 언론플레이에 불과할지라도 그 의도는 존중해야 한다.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 문제를 해결하려면 말이다.
민주화 투쟁을 생각하자. 전두환의 악행 때문에 투쟁을 한 것은 아니다. 그것은 필요충분조건이 아니다. 명백히 집권의도를 가지고 투쟁을 한 것이다. 민주화 세력의 집권의도 때문에 그 많은 희생이 있었다. 그 의도가 역사의 진보하는 방향성과 맞아졌기 때문에 전두환의 악이 부각된 것이다. 알아야 한다. 전두환이 하도 못된 짓을 일삼아서 참다참다 못해 일어섰다면 결코 명예가 아니다. 전두환의 악행과 상관없이, 대한민국의 민주화라는 의도아래 우리가 일어섰다면 명예다. 전두환이 잘못했기 때문에 민주화세력이 옳은 것이 아니고, 민주화세력이 집권의 야심을 가지고 역사의 진보하는 흐름에 편승했기 때문에 옳은 것이다. 의도가 있어야 선이다. 독재타도의 명분은 명백히 민주화의 의도를 가지고 만들어 내는 것이다. 역사의 에너지가 가는 흐름을 따라가는 것이다.
오해? 어디서 많이 듣던 소리다. 세상의 많은 사건은 오해로 포장된 의도 때문에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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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같은 자부심을 가져야 하고
모든 불안하고 초조한, 쫓기는, 거슬리는,
질곡의 상황에서 벗어나 유유자적해져야 합니다.
그러나 일상의 반복되는 삶 안에서 해야 할 일은 산더미고
온갖 복잡한 인간관계 안에서 그런 유유자적함은 얻기 어렵지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지성의 시선'을 획득하는 것이며
적어도 일생에 한번 쯤은 '지성의 결단'을 내려야 합니다.
평소에 그러하지 못하다 할지라도 어떤 큰 무대에 올랐을 때는 그러해야 합니다.
'지금이 그때이다' 하고 알아채야 합니다.
그리고 그 운명의 순간은 부지불식간에 도적같이 찾아오므로 미리 연습해두어야 합니다.
연습중이오. 운명의 여신은 예고없이 방문하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