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영의 것은 정동영에게
‘정동영의 것은 정동영에게’ ≪- 이건 2009년 3월에 쓴 필자의 글 제목이다. 옛날 제목을 재탕해 먹는 데는 이유가 있다. 정세균은 가고, 이제 손학규 아니면 정동영이란다. 남의 당 일에 감놔라 배놔라 할 일은 아니겠으나, 정치판 구조로 논한다면 지금 그 당의 실세가 나와주는 것이 좋다.
지자체 선거로 해서 필자가 잠시 민주당을 긍정적으로 보긴 했으나 이제 선거도 끝났고 하니, 다시 본래의 포지션으로 돌아가서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동영이의 것은 동영이에게’ 원칙에 따라, 민주당은 동영당의 본래면목을 회복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 그래야 이야기가 된다.
정세균체제는 민주당의 목에 칼이 들어와서 만들어진 비상체제고, 이제 지자체를 이겨서 한 숨을 돌렸으니 정상체제로 돌아와야 한다. 실세가 나서야 하는 것이다. 김대중 대통령 없는 상황에서 민주당은 누구의 것인가? 정동영의 것이다. 이건 마치 왕조시대에 세자가 어려 정치를 못하니, 세균대원군으로 대리청정을 하다가 다시 장성한 세자 동영군에게 통치권을 돌려주는 것과 같다. 민주당 수준이 딱 그 수준이다. 알잖는가?
정동영이 요즘 대오각성했다는 소문도 있다. 그 말을 믿을 필요는 없지만 믿는 척 할 필요는 있다. 그게 정치이기 때문이다. 정치는 신뢰다. 신뢰란 것은 믿지 않아도 믿어주는 것이다. 믿음을 투자하는 것이다.
정동영이 대오각성했다니 믿어줄란다. 어차피 우리당 사람도 아니고, 우리 식구도 아니고, 남의 집 일이니 신사적으로 나가는 것이 맞다. 그쪽에서 누구를 세우든, 어떤 쇼를 하든 그쪽의 결정을 존중하는 것이 맞다.
하여간 서프라이즈 일각에서 ‘차악으로 손학규가 옳다’거나 ‘손학규도 안 된다’거나 하는 논의들은 우스운 거다. 왜냐하면 논쟁의 당사자들은 내가 아는 한 민주당원이 아니기 때문이다. 민주당원이라면 그런 말 해도 된다.
그 당에 애정도 없으면서 남의 당 일에 오지랖 넓게 왜 나서냐 말이다. 그게 오히려 정동영을 돕는거 아닌가 말이다. 북한이 이명박을 치면 그게 이명박을 돕는 거다. 마찬가지로 서프라이즈가 정동영을 치면 그게 정동영을 돕는 거다.
한나라당은 적이니까 치는게 맞지만, 민주당은 잠재적 우군이다. 민주당을 해꼬지 할 필요도 없고 도와줄 이유도 없다. 중요한 건 결정적인 시기에 거래가 되느냐다. 죽일놈이든 살릴놈이든 거래가 되는 인물이 나서야 한다. 그 당의 실세가 나서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이야기가 된다. 누가 민주당의 실세냐다.
간단하다. 지금 상황이 꼬인 이유는 호남정치인 중에 유시민급이 없기 때문이다. 한나라당 유력후보를 박근혜로 봤을 때, 박근혜가 본선경쟁력이 없다는건 천하가 다 아는 거고, 박근혜 잡을 인물은 유시민 뿐인데, 문제는 2년 후 유시민이 링 위로 올라가보지도 못한다는데 있다.
유시민의 포지션이 안 좋은 거다.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호남정치인을 키워서 유시민과 대등하게 경쟁하는 거다. 그 과정에서 신뢰를 쌓는 거다. 그 문제는 그때가서 여론조사를 하든 뭐를 하든 어떻게 단일화를 하면 되겠지 하는 막연한 생각은 곤란하다. 정치판을 보면 항상 ‘그때가서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안이한 생각을 하는 쪽이 꼭 지더라. 미리 대비해야 한다.
전에도 말했지만 단일화쇼 안 된다. 쇼이기 때문이다. 쇼는 궁할 때 한번 하는 거지 두 번 하는 거 아니다. 이미 2002년에 정몽준 배신쇼로 볼거 다 보여줬다. 정몽준이 판을 깬 데서 보듯이 진정성 없는 쇼는 두 번 성공할 수 없다.
2년 후 여론조사로 유시민이 이겨도, 호남민중이 승복 안 한다. 왜냐하면 유시민이 뜨면 영남쪽 한나라당 지지자가 대거 유시민쪽으로 돌아서는데 그걸 호남민중은 인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적의 표로 아군을 친다는게 말이나 되나?
유시민이 단일화 게임에서 한나라당과 이쪽에 양다리를 걸친 중도표로 어떻게 민주당쪽 대표를 이기려고 한다는게 유시민의 결정적인 아킬레스건이다. 2002년에 노무현 찍고 2007년에 이명박 찍은 영남표 상당수 있다. 이거 배신이며 이 배신자들 표로 어떻게 하려는 그 자체를 호남민중은 용납할 수 없는 것이다. 이거 인정해야 한다. 그러므로 이제는 다른 방법을 써야 한다. 단일화 꽁수 말고 본실력으로 가야 한다.
유시민이 호남민중의 불신을 받는 것이 뭐 ‘싸가지가 없다’니 ‘이미지가 안 좋다’니 이런 것이 아니다. 그건 표면이고 본질은 경상도표를 대거 끌어오는 그 자체에 대한 원초적인 두려움이다. 호남이 쪽수가 딸리는 거다. 호남정치인은 고생고생해서 겨우 올라가야 하는데, 영남정치인은 뭐 어떻게 하루아침에 영남표 반을 뚝 잘라오고 이런 게임의 규칙 자체가 공정하지 않다고 보기 때문이다. ‘영남후보라야 승산이 있다’는 판구조 자체를 거부하는 거다. ‘호남후보는 쪽수가 딸리므로 안 된다’는 원초적인 진입장벽 자체를 거부하는 거다.
이것이 필자가 까놓고 말하고자 하는 불편한 진실이다. 유시민은 단지 영남후보라는 이유만으로 정치입문 시점부터 바로 대선후보로 뜬 그 자체를 용납할 수가 없는 거다. 때문에 호남입장에서는 공동정권 수준의 고도의 안전장치를 필요로 하는 것이며 이거 인정해야 한다. 그렇다. 답은 개혁표와 호남표의 공동정권 수립에 있고 그게 되려면 지금부터 준비해야 한다.
호남인물이 떠주어야 한다. 천정배, 정동영, 송영길이 있는데, 천정배는 정동영 바짓가랑이에 숨었으니 자동탈락이고, 정동영은 대오각성했다고 하니 아직 야심이 있고, 송영길은 차차기를 노릴 것인데, 대세로 보면 유시민과 송영길의 대결구도로 가는 것이고, 그 중간고리로 정동영이 있는 것이다.
정치란 컨셉이 중요하다. 과거 40대기수론 같은 거다. 바람이 훅 부는 거다. 박근혜가 뜬 것은 김대중 대통령 덕분이다. 김대중과 박정희가 라이벌이므로 박정희의 딸 박근혜가 덩달아 뜬 것이다. 그러나 김대중 대통령의 서거로 해서 김박시대도 끝났고, 3김시대도 끝났고, 3김정치 2라운드도 끝났다.
김대중 대통령 없는 박근혜는 존재감이 없다. 한나라당은 아직도 박근혜를 밀고 있지만 조중동을 위시하여 그 방계세력은 박근혜를 버린지 오래다. 한나라당의 실세는 한나라당 정치인이 아니고 조중동과 그 주변 떨거지다.
본질에서 박근혜는 이미 끝난 거다. 그러므로 유시민 대 박근혜는 유시민 승이다. 문제는 단일화 여론조사 따위로 노무현-정몽준 방식을 재현하겠다는 망상을 버려야 한다는 데 있다. 지금 개혁세력과 호남세력 사이에 신뢰가 쌓이지 않으면 2년 후는 없다. 유시민은 링 위에 올라가보지도 못한다.
그때가서 어떻게 유시민쪽으로 단일화 하면 되겠지.. 하는 생각은 그야말로 감나무 밑에서 홍시가 떨어져 입으로 쏙 들어가주길 바라는 한심한 생각이다. 그게 아전인수다. 전에도 말했지만 단일화쇼는 깨졌다고 봐야 한다. 이번 보선패배가 증명하고 있다. 단일화를 포기해야 오히려 단일화가 된다.
지금부터 신뢰를 쌓아야 하며 그 방법은 호남에서 가장 못난 인물을 내더라도 김대중 대통령급으로 존중해주는 것이다. ‘우리는 유시민이 있는데 너희는 왜 유시민급 인물을 키우지 못하느냐? 인물 못 키운 너희 호남 책임이다’ 이런 식으로 가면 안 된다. 그건 불신이기 때문이다. 호남에서 허수아비를 들고 와도 ‘김대중 대통령급의 좋은 인물이군요.’ 이렇게 말해야 한다.
호남의 판단은 호남이 하는 거고, 우리는 무조건 존중하는 수 밖에 없다. 어쨌든 호남인물이 커야 개혁세력이 사는데, 지금 이쪽의 생각은 송영길이 커주면 좋겠다거나, 여차하면 송영길을 밀어주겠다는 식인데, 이건 송영길죽이기 밖에 안 된다. 그건 뭐 김정일이 남한선거에 개입해서 누굴 지지한다고 말하는 것처럼 터무니 없는 거다. 누가 한국에서 김정일 깡패 지지받아 당선되겠나? 남의 손 타면 안 되는 거다.
유시민과 송영길의 연대는 곧 송영길의 죽음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송영길을 쓰겠다면 송영길을 키워야 하고, 송영길을 키우려면 송영길을 쳐야 한다. 이건 당연한 수순이다.
유시민 대 박근혜로 가면 유시민의 승리가 되겠지만, 그럴 가능성은 낮다고 본다. 또 그렇게 되기를 기대하면 오히려 그렇게 안 된다. 정치라는게 그렇다. 항상 기대를 배신하는 쪽으로 간다. 오히려 그럴 기대를 하지 않아야 그렇게 된다.
이명박은 알 수 없는 인물이다. 집요한 박근혜 죽이기 시도에 이유가 있다. 오세훈, 김문수, 김태호, 이재오들을 움직여서 젊은 컨셉으로 가면 이쪽에서도 유시민, 송영길의 젊은 컨셉으로 맞받아치고 그 경우 김대중 대통령을 상기시키는 박근혜는 구시대 인물로 몰려서 한 방에 가는 수가 있다.
그러므로 여론조사 단일화로 유시민을 세운 다음, 박근혜와 대적하여 이긴다는 망상은 버리는게 좋다. 지금부터 개혁세력과 호남세력을 확실하게 분리하고 신사적으로 경쟁하며 서로간에 신뢰를 쌓아가는 것이 좋다. 정동영의 모든 거짓말을 믿어주는 데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이게 냉정하게 현실을 직시하는 것이다.
하여간 남의 당 일이고 어떤 결정을 하든 그쪽의 결정을 존중하는게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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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를 대등하게 만들어야 대등하게 대화를 할 수 있구나... 상대의 수준을 끌어 올려야 비로서 말이 통한다는 거...
그렇게 만들며 가야되고, 또한 판단할 시기가 오면 판단해야 하는 것인가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