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도 훨씬 더 된 일이지만 우연히 음성 꽃동네 앞을 지나가 본 적이 있다. 저녁 6시쯤, 직장인들이 퇴근할 무렵이었다. 근처의 들판에 점점이 흩어져 있던 백여명의 농민들이 일제히 꽃동네로 이동하는 중이었다. 그 장면은 내게 엄청난 충격으로 다가왔다. 거대한 강제노동 수용소를 연상시켰기 때문이다.
농민들은 너른 벌판에 점점이 흩어져 일하다가 특정한 시간에 맞추어 일제히 꽃동네 쪽으로 발길을 옮기고 있었다. 그들은 논밭에서 나와 아스팔트가 깔린 도로위에서 합류하였지만 사람들의 행렬은 형성되지 않았다. 그들은 서로 마주쳐도 눈빛을 교환하지 않았고 동료의 곁으로 다가가지도 않았다. 그 발걸음은 매우 느렸다.
농민들은 다른 농민들과 10미터 혹은 20미터의 간격을 두고 호미나 괭이를 들고 뒷짐을 진채 매우 느린 걸음으로 터벅터벅 꽃동네를 향하여 걸어가고 있었다. 그 어떤 농민도 다른 농민과 대화하지 않았다. 가까이 다가가지도 않았다. 나는 처음 그곳이 꽃동네 앞이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 충격적인 사람들의 행렬을 보고 도무지 이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싶어서 알아보니 바로 그곳이 꽃동네였던 것이다. 물론 나는 그 내부의 화려하다는 시설을 둘러본 것이 아니다. 석양무렵 저녁놀은 참으로 아름다운데 벌판에 점점이 흩어진 농민들이 긴 그림자를 하나씩 남기며, 매우 느린걸음으로 터벅터벅 걸어가는 모습이 학교에서 배운 공산주의 사회의 강제노동 수용소를 연상시켰기 때문이다.
물론 그들은 대부분 노인들이다. 젊은이들이라면 당연히 여럿이 모여 어깨동무를 하고 콧노래를 부르며 씩씩하게 걸어갔을 것이다. 아무리 그렇다고는 해도 그 느린 걸음과 핏기없는 얼굴과 초점없는 눈동자와 기이한 침묵이 나는 이해되지 않았다. 왜 그들은 아무도 말하지 않는 것일까? 그들은 왜 동료들의 곁으로 다가가지 않는 것일까? 왜 그들은 로봇처럼 느리게 걷고 있는 것일까? 왜 그들은 좀 더 남아서 마무리 일을 하는 사람도 없고, 좀 더 일찍 일을 끝마치고 들어가는 사람도 없이 같은 시간에 같은 방향으로 일제히 모여드는 것일까?
아무래도 부자연스러운 광경이었다. 농삿일이라는 것은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일의 연속이다. 아무때나 쉬어도 되고, 더 일찍 끝내도 되고, 더 늦게 마쳐도 된다. 그런데 그들은 정시에 퇴근하는 도시의 샐러리맨처럼 같은 시간에 일제히 같은 방향으로 걸어갔던 것이다. 그 저녁놀이 너무 아름답고 그 그림자들이 너무 길어서 그 광경이 내겐 어떤 두려움으로 다가왔다. 나는 가던 길을 멈추고 30분 이상 그곳에서 지켜보았다.
그 인상적인 장면이 내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는 이상 나는 꽃동네에 대하여 호의적인 생각을 가질 수 없을 것이다. 꽃동네 뿐 아니라 어떤 복지시설이라도 마찬가지다. 완벽한 개인의 자유가 없이 농촌공동체운동은 성공하기 어렵다. 오웅진신부를 비난하자는 것이 아니다. 아마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 사람들이 꽃동네를 떠나 다른 곳에서 행복해진다는 보장도 없다. 그러나 그 사람들의 얼굴표정에서 행복을 발견하지 못한 것은 실로 유감이다.
농민들은 너른 벌판에 점점이 흩어져 일하다가 특정한 시간에 맞추어 일제히 꽃동네 쪽으로 발길을 옮기고 있었다. 그들은 논밭에서 나와 아스팔트가 깔린 도로위에서 합류하였지만 사람들의 행렬은 형성되지 않았다. 그들은 서로 마주쳐도 눈빛을 교환하지 않았고 동료의 곁으로 다가가지도 않았다. 그 발걸음은 매우 느렸다.
농민들은 다른 농민들과 10미터 혹은 20미터의 간격을 두고 호미나 괭이를 들고 뒷짐을 진채 매우 느린 걸음으로 터벅터벅 꽃동네를 향하여 걸어가고 있었다. 그 어떤 농민도 다른 농민과 대화하지 않았다. 가까이 다가가지도 않았다. 나는 처음 그곳이 꽃동네 앞이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 충격적인 사람들의 행렬을 보고 도무지 이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싶어서 알아보니 바로 그곳이 꽃동네였던 것이다. 물론 나는 그 내부의 화려하다는 시설을 둘러본 것이 아니다. 석양무렵 저녁놀은 참으로 아름다운데 벌판에 점점이 흩어진 농민들이 긴 그림자를 하나씩 남기며, 매우 느린걸음으로 터벅터벅 걸어가는 모습이 학교에서 배운 공산주의 사회의 강제노동 수용소를 연상시켰기 때문이다.
물론 그들은 대부분 노인들이다. 젊은이들이라면 당연히 여럿이 모여 어깨동무를 하고 콧노래를 부르며 씩씩하게 걸어갔을 것이다. 아무리 그렇다고는 해도 그 느린 걸음과 핏기없는 얼굴과 초점없는 눈동자와 기이한 침묵이 나는 이해되지 않았다. 왜 그들은 아무도 말하지 않는 것일까? 그들은 왜 동료들의 곁으로 다가가지 않는 것일까? 왜 그들은 로봇처럼 느리게 걷고 있는 것일까? 왜 그들은 좀 더 남아서 마무리 일을 하는 사람도 없고, 좀 더 일찍 일을 끝마치고 들어가는 사람도 없이 같은 시간에 같은 방향으로 일제히 모여드는 것일까?
아무래도 부자연스러운 광경이었다. 농삿일이라는 것은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일의 연속이다. 아무때나 쉬어도 되고, 더 일찍 끝내도 되고, 더 늦게 마쳐도 된다. 그런데 그들은 정시에 퇴근하는 도시의 샐러리맨처럼 같은 시간에 일제히 같은 방향으로 걸어갔던 것이다. 그 저녁놀이 너무 아름답고 그 그림자들이 너무 길어서 그 광경이 내겐 어떤 두려움으로 다가왔다. 나는 가던 길을 멈추고 30분 이상 그곳에서 지켜보았다.
그 인상적인 장면이 내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는 이상 나는 꽃동네에 대하여 호의적인 생각을 가질 수 없을 것이다. 꽃동네 뿐 아니라 어떤 복지시설이라도 마찬가지다. 완벽한 개인의 자유가 없이 농촌공동체운동은 성공하기 어렵다. 오웅진신부를 비난하자는 것이 아니다. 아마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 사람들이 꽃동네를 떠나 다른 곳에서 행복해진다는 보장도 없다. 그러나 그 사람들의 얼굴표정에서 행복을 발견하지 못한 것은 실로 유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