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스물네 살 남성, 심한 허리 디스크로 공부를 할 수 없어서 대학진학을 못했다고. 심할 때는 침대에 누워 자는 것도 못할 정도. 장애를 이겨낸 사람들처럼 고통을 이겨내려면 어떻게 하지요? 이에 대한 강신주 답변은 장애를 극복하려고 하지 말고 받아들여라. 다리가 두 개인 사람도 있고 하나인 사람도 있는 법. 장애인이 정상인과 같이 경쟁할 필요는 없다. 패럴림픽에서 휠체어 타고 달리는 모습 보기 싫다. 몸에 맞춰서 살아라. 장애를 특권으로 여기고 주위사람에게 도움을 청하라. 장애를 극복한다며 고집피우지 말고 공부가 힘들면 그만두고 다른 것을 찾아보라. 공부는 나중 몸이 만들어진 후에 하면 된다. 최악의 답변은 아닌데 내담자가 원하는 답변은 아니다. 내담자는 장애극복을 원한다. 엉뚱한 답변이다. 정상인이라는 표현을 쓰면 안 된다. 강신주의 경솔한 발언이다. 내담자는 장애인이 아니라 환자이며 수술을 하든가 디스크 치료를 받는게 우선이다. 고통을 극복해 보기로 마음 먹었으면 그쪽으로 결이 만들어진다. 그쪽으로 계속 가보는 것도 방법이다. 인간은 도전하는 존재다. 길이 있으면 가는 거다. 고통이라는 것은 뇌가 만들어진 환상에 불과하다. 고통은 육체가 느끼는게 아니라 뇌가 느낀다. 그것은 화학적 전기신호다. 고통을 극복하는 훈련을 해야 한다. 물론 극심한 고통은 극복할 수 없다. 고통이 호흡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고통이 문제인 것이 아니라 고통을 참으려 하면 이를 악물고 호흡을 멈추게 되는데 숨을 쉬지 않아서 문제가 되는 것이다. 숨을 쉬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고통을 일종의 그림으로 여기고 창 밖의 풍경을 감상한다는 마음으로 고통을 즐겨야 한다. 심한 고통이면 치료를 받거나 일을 중단하는 수밖에 없다. 심하지 않으면 고통과 대결해봐야 한다. 장애라면 받아들여야 한다. 오체불만족으로 유명한 일본의 오토타케 히로타다도 있다. 그는 세상과 정면대결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세상을 향한 싸움걸기다. 장애인을 불행한 자로 보고 동정하려는 일반인의 마음에 숨은 권력의지를 그는 꿰뚫어본 것이다. 그는 역으로 권력의지를 작동시켰다. 사람들이 박근혜 찍은 것은 박근혜를 동정받아야 할 약자로 보고 그 약자를 지배하려는 권력의지를 작동시킨 것이다. 박빠들은 약한 박근혜에게 투표함으로써 강자가 되어 박근혜의 운명을 지배했다고 믿고 쾌감을 느낀다. 마찬가지로 일반인들은 오토타케 히로타다를 동정하며 쾌감을 느낀다. 남에게 도움받는 쾌감보다 남에게 베풀어주는 쾌감이 더 크다. 오토타케는 그러한 일반의 시선에 대해 반역을 저질렀다. 니들이 나를 불쌍하게 보고 동정하면서 쾌감을 누리겠다고? 권력의지를 발동시켜 남의 장애를 동정하며 즐기겠다고? 어림없지. 거꾸로 내가 너희를 갖고 놀 것이다. 내가 권력자다. 이런거 아니겠는가? 세상과 대결하는 즐거움을 누려야 한다. 어떻든 게임의 규칙은 자신이 정한다. 내 잘못이 아닌 불가항력적 요소라면 받아들여야 한다. 혹은 그것을 역으로 이용해야 한다. 장애를 자랑하고 과시하며 장애를 무기로 오히려 일반인을 제압해야 한다.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고 숨는 행동은 좋지 않다. 피해를 줘야 한다. 그러나 내담자는 그냥 환자일 뿐이다. 강신주는 엉뚱한 대답을 한 것이다. 병은 치료하면 된다. 고통을 즐길 수 있어야 한다.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이면 다른 방법으로 대응해야 한다. 어쨌든 타인이 정한 게임의 룰에 내가 맞춰갈 필요는 없다. 평판공격을 무서워할 필요는 없다. 적극적으로 타인을 불편하게 만들어야 한다. 성소수자들이 그것을 실천하고 있다. 남녀 화장실 모두 쓸 수 있는 양성애자 빼고 3퍼센트에 불과한 소수자를 위해 전국의 화장실을 모두 뜯어고치게 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장애인들은 요구하여 계단의 턱을 없애도록 할 수 있다. 극소수의 장애인 때문에 모두가 불편하게 된다. 그렇게 하는게 진보다. 그것이 우리 역사의 도전과 응전인 것이다. 단 한명을 위해 모두가 30분씩 기다려야 한다. 그 한명은 조금도 미안해 하지 않는다. 왜? 그 한 명은 아기이기 때문이다. 아기는 신이다. 단 한 명의 아이를 위해 10만 명의 어른이 30분씩 손해를 봐도 즐거울 수 있어야 문명인이다. 우리가 사회를 그렇게 만들어가는 것이며 이것으로 후진국을 엿먹이고 수탈하는 것이다. 이런 데서 지면 평생 남의 나라 호구노릇 하며 돈을 가져다 바치게 되는 거다. 일본은 반대로 지나치게 집단에 폐를 끼치는 것을 두려워하는데 그게 이지메를 낳는다. 일본의 경쟁력을 상당부분 갉아먹고 있다. 물론 한국인들처럼 지하철에서 남의 등을 마구 떠미는 것은 더 고약하다. 정당한 사유가 있으면 폐를 끼쳐도 된다. 어린이는 지하철에서 떠들어도 된다. 노키즈존을 너무 강조하면 안 된다. 적절히 균형을 찾아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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