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는 담론, 명제, 주어, 명사, 동사가 있다. 담론이라는 말은 필자가 갖다붙인 말이니 검색할 필요없다. 다른 용어도 마찬가지다. 담론은 조건문 + 반복문의 형태로 조직된다. 에너지를 태우고 방향성이 있다. 대칭과 호응으로 조직해 간다.
조건문 "이게 이렇게 하면 저게 저렇게 된다.”
여기서 사건이 두 개다. 조건문이 큰 울타리를 가지며 반복문은 구체적이다.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느냐 하면 이야기를 복제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배가 고프면 밥을 먹게 된다.’ 이렇게 조건문을 깔아놓고 어제는 배가 고파서 밥을 먹었다.
이런 식으로 문장을 반복적으로 복제해낸다는 말이다. 여기서 에너지와 방향성이 있다. 에너지는 구체적인 사건의 주체를 태우는 것이며 방향성은 보다 세밀화된다는 것이다. 처음 큰 틀을 정했다가 점점 세부사항을 묘사하며 잘아진다. 그 방향으로 진행된다. 그림을 그려도 초반에 윤곽을 그리고 다음 세부를 그리는게 방향성이다. "둘이 먹다가 하나가 죽어도 모르는 떡이 있다. 어제 내가 그 떡을 먹어봤더니 졸라리 맛있더라." 이렇게 담론을 던지면 ‘어? 나도 저번에 그 떡을 먹어봤는데 과연 맛있긴 맛있더구만.” 하고 이야기를 이어갈 수 있다. 기승전결로 가면서 이야기가 계속 불어나는 구조가 된다. 언어는 사건을 전달하며 무언가 전달하려면 반드시 포대기가 있어야 하고 그 포대기에 알맹이를 싸서 전한다. 완전한 언어는 반드시 그것을 싸서 전달하는 포장지가 있어야 한다. 그런거 없이 그냥 마구잡이로 ‘나 어제 떡먹었는데 맛있대.’ 이러면 하지말라는 자기소개다. 누가 물어봤냐고? 어색하잖아. ‘나 어제 나이키 신발 샀어.’ 이러면 안 된다. ‘요즘 나이키가 유행이지. 안그래?’ ‘어 그래. 나이키 좋지.’ ‘그래서 나도 나이키 하나 샀어.’ 이렇게 가야 하는 것이다. 이를 담론으로 조직하면 이렇다. ‘요즘 트렌드를 좀 안다는 애들은 나이키를 사서 신더라고.’ 이를 조건문으로 놓고 반복문이 들어가준다. ‘그래서 나도 어저께 나이키를 하나 사서 자랑질 하려고 그래. 너도 나이키 한 번 신어보는게 어때? 우리 나이키 신는 애들끼리 한 번 뭉쳐볼까. 하여간 푸마 신고 자랑하는 애들은 찐따라고. 이런 식으로 계속 연결하여 가는 것이다. 명제는 여기서 한 부분을 떼어낸다. 요즘 트렌드를 좀 안다는 애들은(전제) 나이키를 사서 신더라.(진술) 이건 한 개의 사건이다. 한 개의 사건 안에 전제와 진술이 있으면 명제다. 전제로 사건 하나를 만들고 진술로 사건 하나를 만들어 사건이 둘이면 담론이다. 담론은 새끼를 친다. 명제는 판단을 한다. 그냥 문장은 ‘요즘 애들은 나이키를 신는다.’로 완결된다. 이게 맞는 말인지 허튼 소리인지 판단할 수 없다. 논리학에서는 참이냐 거짓이냐를 따지는데 구조론에서는 그저 대칭이 맞는지만을 본다. 포지션만 보는 것이다. ‘요즘 트렌드를 아는 잘 나가는 애들은 새로 나온 나이키 에어맥스를 신는다.’ 이렇게 전제와 진술로 조직해주면 대칭과 호응이 맞아지는 것이다. 대칭은 공간적으로 짝을 짓는 것이고 호응은 시간적으로 짝을 짓는 것이다. 트렌드를 안다는 부분과 나이키 에어맥스가 공간 대칭이다. ‘나도 앞으로 돈 생기면 나이키 에어맥스를 사야지.’ 이러면 시간적인 연결이다. 이렇게 문장을 만들어간다.
"내가 이렇게 해봤더니 과연 저렇게 되더라."
명제는 내부에 이렇듯 전제 A면 진술 B다로 대칭구조가 있는 것이며 진술은 여기서 앞부분을 떼어내고 뒷부분만 남긴다.
"저렇게 되더라."
이렇게 되는데 주어가 생략되었다고 보고 찾아주면
"그게 저렇게 되더라."
이렇게 되면 판단이 불가능하다. 참거짓의 문제가 아니다. 논리학은 참이냐 거짓이냐를 따지는데 구조론에서는 상대방이 호응할 수 있느냐다. 이때 상대방은 ‘그래서 어쩌라고?’ 이러거나 ‘누가 물어봤니?’ 혹은 ‘응 그래.’ 말을 이어갈 수 없다.
"그게 저렇게 되더라." “응. 그래.”
아 썰렁해. 이러면 안 되잖아.
"내가 그 떡을 먹어봤더니 졸라리 맛있더라." “아 나한테도 한 입 주지. 다먹었니?” "어젯밤에 바람이 세게 불었는데 과연 촛불이 꺼지더라." “아 불조심 해야겠네.” 명제가 안 되면 상대방이 맞장구쳐줄 수가 없다. 이야기를 복제하여 계속 이어갈 수 없다. 여기서 다시 주어와 술어를 나누고 술어에서 다시 명사와 동사를 찾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는 동사만 남는다. 실제로는 고도로 함축되어 있기 때문에 그 생략된 부분을 다 찾았다 치고 말하는 것이다.
|
글로도 이렇게 간단히 표현해 주실수 있슴에 놀랍습니다.
그림으로 그려서 써주셔도 이해가 될라 말라 될라 말라 하는데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