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전에 PPT로 만든 것을 누군가가 원고로 만들어 게재한 것인데, 검색하다가 우연히 발견했습니다.
아마도 제가 승낙한 것 같은데, 게재된 것은 처음 보는군요~
[ 농자(農者)의 탈핵론 ]
오염된 흙에서 유기농은 없다
이원영
작년 가을에 스무 평 남짓한 필자의 텃밭에서 흥미로운 사건이 벌어졌다. 게으른 주인 탓에 잡초가 무성한 텃밭 한쪽에서 김장배추가 옹기종기 자라고 있었는데, 그 배추에 벌레 먹은 구멍이 잘 보이지 않는 것이다. 배추란 놈은 잎 자체에 양분이 많아서인지 배추벌레가 득세하기 십상이고, 그것들을 일일이 잡아주지 않거나 농약을 치지 않으면 으레껏 배추에는 벌레가 먹은 구멍이 나기 마련이다. 왜 그런가 자세히 살펴보니 거미들이 우글거리면서 배추벌레가 낳은 알들을 몽땅 먹어치우고 있는 것이었다. 거미들은 어디에서 왔을까?
흙은 생명이다
짚이는 데가 있다. 여름 무렵 짓궂은 비 때문에 배추모종들이 녹아내려서 별수 없이 토종 씨를 구해서 직파를 했다. 들깨가 자라던 텃밭자리에 섞어짓기를 한 것이다. 직파하기 전에 부드러운 흙을 만들어야 하는데, 잡초가 무성한 이랑을 삽으로 뒤엎지 않고 꾀를 내었다. 낫으로 잡초들 밑둥을 바싹 잘라내어 그 자리에 덮어둔 것이다. 일주일쯤 지나자 말라서 삭아버린 잡초이자 건초 아래가 희한하게도 부드러운 맨흙으로 바뀌어 있다. 흙 속에서 잘린 잡초 뿌리가 오그라들기도 하고, 자라나던 잡초새싹들이 녹아버린 것이다. 삭은 ‘건초’를 걷어내고 씨를 뿌린 후 다시 덮어 주었다. 그런 후 일주일, 촉촉해진 흙에서 싹이 자라나고 있었다. 그 이후로는, 평소에 화장실의 수도물 아낄 겸 집에서 모아서 푹 삭힌 오줌을 물과 섞어서 간간이 뿌려주었다.
곰삭은 건초들이 뒤덮여 있어서 늘 촉촉하게 흙이 살아 있어선지 굵기가 손가락만 한 지렁이들이 눈에 띈다. 깨알같은 보일락말락 하는 흙벌레들도 우글거린다. 그걸 먹으러 거미가 몰려든 것이다. 거미들이 속삭이는 소리가 들린다. “이 밭에 오면 먹을 게 많아!”
지금 농업은 석유로 짓는다. 석유로 짓는 ‘공업’이나 다름없다. 귀농한 이들은 자연친화적으로 농사를 짓고 싶어 하지만 그게 잘 안 된다. 가령 종묘상에서 사온 채소모종은 비닐하우스에서 기른 것이고, 그 비닐은 석유제품이다. 하우스에서는 난방을 해야 빨리 자라므로 석유로 불을 땐다. 노지에서도 제초제를 뿌리지 않으려고 비닐을 밭에 씌운다. 비료와 농약은 모두 석유로 만들어진다. 석유로 움직이는 콤바인으로 수확을 한 후에, 석유건조기가 있는 곡물저장고로 옮긴다. 그리고 소비자에게는 석유로 날라진다.
그러다 보니 흙도 엉망이다. 봄이면 흙을 잘게 썬답시고 ‘로타리’를 치느라 살아 있던 지렁이들이 갈갈이 찢어진다. 지렁이라는 ‘자연농부‘를 죽이고서 농사를 시작하는 것이다. 제초제가 뿌려진 봄철 개울에는 남아나는 생물들이 없다. 갈수록 흙이 피폐해지고 토양오염이 심각해진다. 이는 바다오염으로 이어진다. 적조로 양식피해가 크고 치어들이 살기 힘든 이유다. 바다가 오염되면 인류도 없다.
하지만 석유가 없었던 시절은 어떠했을까? 불과 백 년 만에 석유 중독이 되었지만 인류는 수천 년 동안 석유 없이 잘도 생존해왔다. 그 비결은 전통농법이다. 대륙에 따라 농사방식은 약간 차이가 있지만 예외 없는 원칙은 흙을 소중하게 다룬다는 것이다. 흙의 침식을 막고, 흙에 자연스럽게 미생물과 양분을 머금을 수 있는 방법으로 농사를 지어왔다. 흙은 지구의 살갗이다. 얇은 깊이지만 수십억 년에 걸쳐 만들어졌다. 핵발전의 가장 치명적인 문제는 바로 이 흙이 몇 십만 년이나 오염되는 점이다. 인류가 상상할 수 없는 기간 동안.
생물은 다양성이 존중되는 환경에서 건강하게 자란다. 그리고 진화한다. 그게 섞어짓기다. 혼작으로 지으면 작물마다 흙에서 필요로 하는 양분이 다르기 때문에 흙이 비옥도를 유지할 수 있다. 가령 재배가 까다로운 고추는, 잡초를 막는답시고 흙에다 비닐을 씌우면 흙심이 약해져서 병에 걸린다. 흙을 건강하게 만들어 두었다가 열무나 들깨와 함께 심고 볏짚이나 건초를 덮어주는 식으로 관리하면 병에 걸려도 이겨내고 늦가을까지 풋고추도 생산해낸다. 상추와 마늘의 조합처럼 다른 작물들도 다양한 혼작 방식이 있다. 단작보다는 잡초와 함께 기르는 게 건강하다. 혼작을 하게 되면 자연스레 돌려짓기로 가게 된다. 한 자리를 고집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식의 순환적이고 생태적인 방식으로는 대량생산이 어렵다. 돈을 목적으로 하는 기계로는 접근이 안 된다.
짓는 만큼 안다
텃밭에 가서 자라나는 이런 저런 식물을 관찰하자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아는 분은 아시겠지만 스무 평 정도를 자연순환식으로 짓자면 고도의 방정식을 풀어야 한다. 월동상추와 마늘을 심을 자리는 어딘가, 보리와 밀을 심을 것인가 말 것인가, 돌려심기를 유난히 배려해주어야 하는 고추나 가지나 감자는 어느 자리에 심을 것인가 등을 내년 봄에 심을 작물과 견주어서 미리부터 정해 두어야 한다. 게다가 봄철에 나는 잡초는 그대로 조리해 먹으면 보약이라는 것이다. 자생초라는 이름으로 불려주기를 원하는 잡초. 그게 버려지는 것에서 몸에 좋은 먹거리로 바뀐다는 것은 농사에 대한 발상을 완전히 바꾸기를 요구한다.
미국교도소에서 죄수들이 텃밭농사를 하면서 재범률이 현저히 줄더라는 얘기는 우리 청소년들의 정서함양과도 연결된다. 그렇다. 사람은 누구나 농사짓기를 좋아한다. 자연순환의 흐름을 거스르지 않고 그 틈에서 이(利)를 찾아내는 것이 지혜다. 농사가 아니라 농업이라는 경제 행위로만 바라본다면, 그 순간 농사가 갖는 본래의 가치를 잃어버리는 듯하다. 생계를 농사에 의지한다는 농민이 아니라, 삶의 일부를 농사와 함께 한다는 이가 농자(農者)다. 농자의 농사는 경제 행위인 농업과는 다르다. 국민 모두가 농민은 될 수 없지만 농자는 될 수 있다. 호미 들고 단 한 평을 지어도 농자다. 취미활동이라고만 치부할 수 없다. 잘 먹고 잘 살기 위한 생존행위이자 노력이 들어가고 땀을 흘려야 하는 일이다. 생산하는 과정과 결과는 경제적 가치로 가늠할 수 없는 삶을 창조한다.
식별하는 눈이 생긴다. 혹자는 미술세계를 일컬어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다. 농사도 예술이다. “짓는 만큼 안다”고 할 만하다. 모르고는 그냥 먹었지만 알면 달라진다. 자신이 느낀 맛과 향을 찾게 마련이다. 농산물의 가치를 알게 된다. 가치를 알아주는 것, 이것은 생산과 소비를 함께 한다는 ‘생비자(生費者)’인 농자의 본령이다. 자신이 지은 농산물이 올바로 평가받는 것, 그것은 ‘농민의 결’이다. 농업이 본 궤도에 오른다. 농자가 많아질수록 좋다. 농자일지라도 먹을거리의 태반은 농민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다. ‘제대로 짓는 농민의 자부심’을 알아주는 얼마나 귀한 이들인가.
길은 가까이 있다
입안에 들어가는 순간 몸이 반응한다. 맛과 향이 다르다. 머리보다 몸이 먼저 느낀다. 필자 텃밭의 그 김장배추는 4월 말이 되도록 싱싱한 맛이 씹힌다. 소위 상품화된 ‘유기농자재’를 써서 지은 배추, 겨울나기가 무섭게 물러 터지고 시어 터지는 시중 배추와는 비교가 안 된다. 성분을 알 수 없는 ‘유기농자재’로 키운 ‘유기농산물’과는 전혀 다르다. <녹색평론>을 펴내는 김종철 선생이 생태적 농사라는 뜻으로 강조한 ‘유기농’의 이름과는 매우 다른 유기농산물이 시장에서 판을 치고 있다. “멍석 깔아놓으면 거지가 먼저 지나간다”고 했던가?
지금 삶은 병들어 있다. 중독되었다. 소위 석유에 의한 ‘녹색혁명’이 지속가능한 생산 양식을 파괴하고, 후손들의 생태적 자산을 약탈하고 있는 바탕에는 욕망으로 점철된 ‘현대적’ 생활양식의 확산이 깔려 있다. ‘마약에 중독된 생활’이자 지구를 병들게 하고 인간을 파괴하는 삶이다.
후쿠시마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원전의 정체는, ‘편리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마약’에 중독된 부모세대가 자식세대에게 희생을 강요케 하는 악마적 존재다. 탈핵은 양심의 문제요, 인간존엄의 문제다. 살아가는 방식, 생존하는 방식에 대한 근본적인 각성이 필요하다.
치료하는 길은 가까이 있다. 손쉬운 치유수단이면서 동시에 목표가 되는 길이 농자로서의 삶과 생태농이다. 내가 누는 똥과 오줌이 흙을 통해서 다시 생명을 주는 일을 하다니! 자연과의 교감은 그동안 겪지 못했던, 농자로 사는 재미다. 매년 매순간 태양과 바람과 흙으로 이루어지는 거대한 우주적 향연이다. 이 ‘결’이야말로 세상을 바꾸는 힘이 아닐까. 탈핵은 물론이고.
↘ 이원영 님은 수원대학교 도시및부동산개발학과 교수로 일합니다. 2004년부터 수원대 캠퍼스에 천 평 남짓한 자연생태농장을 만들고 서른 팀이 함께 텃밭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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