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정돌이 세 조각으로 깨져 있다. 김대성이 석불사를 건축할 당시부터 깨졌다고 한다.
깨진 천정돌 무게만 20톤이라고. 두께는 1미터.
천장의 돔에 수십개의 돌못을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 저걸 왜 저렇게 해놨지? 필요없는 거다.
돌못 밑에는 잡석을 고였다.
잡석들 사이에 틈이 많으므로 무게에 의해 잡석이 미세하게 가라앉는다.
잡석의 중량이 돌못에 전달되고 돌못에 실린 하중이 다시 천정돌에 집중된다.
돌못이 지렛대 역할을 하므로 하중이 가중되어 천정돌이 깨지는건 당연하다.
왜 깨진 천정돌을 수리하지 못했을까? 당시로는 수리할 기술이 없었다고 봐야 한다.
돌못의 무게가 천정돌이 집중되는 구조이므로 천정돌을 넣을 수는 있는데 뺄 수는 없다.
천정돌 무게 20톤, 지렛대 원리로 인하여 천정돌에 집중되는
주변 돌못과 잡석의 무게 300톤 이상, 당시 기술로는 해체불가.
본존불의 이마 부분에 있든 구부정한 돌은 원래 없는 건데
왜정때 일본인들이 야매로 붙였다는 설이 있다.
한국의 건축물에는 아치가 거의 없다.
성문에 사용되는 홍예나 전국의 몇 안 되는 돌다리가 전부다.
성문의 홍예도 앞뒤부분만 돌로 하고 그 사이는 나무로 천장을 얹은 것이 많다. 왜?
구조론을 몰라서 아치의 원리가 이해되지 않으므로 불안해서다.
석굴암의 돌못도 괜히 불안해서 저렇게 해놓은 것인데 그 때문에 망했다.
원리를 모르면 반드시 이렇게 된다.
경험적, 실용적인 사고는 매우 위험하다. 반드시 원리를 알고 가야 한다.
아니면 불안해서 반드시 이런 뻘짓을 하게 된다.
파르테논 신전에는 아치가 없다.
서구인들도 제대로 된 돔지붕을 만든 역사가 그리 오래지 않다.
로마의 가장 오래된 돔지붕인 판테온.
콘크리트로 돔을 만들고 천정부분에만 돌을 쓴듯.
천정문제를 해결하지 못해서 가운데를 그냥 뚫어놓았다.
실내의 공기가 천정으로 빠져나가므로 비가 들이치지 않는다고.
한국의 돔건물은 석굴암이 유일하다. 원리를 모르니까 포기한 거다.
믿기 어렵소.
원이든 포물선이든 아무 차이 없소.
석굴암 돔지붕의 돌못은 다른 신라 건축물에도 유사한 것이 많소.
저 돌못을 쓴 이유는 단지 건축할 줄 몰라서라고 봅니다.
석굴암 뿐만 아니라 돌못을 사용한 신라 건축물은 다 상태가 안좋소.
세번째 사진은 이마 부분에 채광창이 있는데
구조적으로 저기에 채광창이 들어갈 수 없습니다.
매우 어색한 디자인입니다.
근데 석굴암 주변에 채광창으로 쓰인 것으로 추정되는 돌이 굴러다닙니다.
그래서 저런 채광창이 일부에 의해 주장되고 있는데 지금 복원한 것은 채광창을 없앤 걸로 압니다.
만약 김대성이 당시에 채광창을 넣었다면 깨졌을 것입니다.
근데 실제로 돔 앞부분이 무너졌으므로 당시에 채광창을 넣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근데 구조적으로 잘못된 설계죠.
만안교 : 정조가 아버지인 사도세자의 능을 참배하러 갈때 행렬의 편의를 위해 만들었다는 홍예석교
'원만' 이란 말 그대로 둥그스럼하게 돔을 만들려면 원과 포물선일 때의 차에 해당하는 무게를 비공식적(?) 아님 땜빵으로 보충해 줘야 함다. 그게 바로 엑스트라로 끼워 넣은 돌멩이. 편법을 쓴게요. 그러나, 그래서 얻은건 물리법칙에 딱 멎눈 아치를 포기헌 대신 둥근 천정의 공간 '원만한' 공간. 소위 종교적인(?) 평안함이오. - 비록 구조론적으론 만족할만 한곤 아니지만, 그게 그당시 사람들이 원한것. 이제부턴 몰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