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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김동렬*
read 9934 vote 0 2012.10.21 (20:52:57)


    삶의 인과법칙은 무엇인가?

 

    누군가 길에서 금덩이를 한 조각 주웠다면 어떨까? 그 주변 어딘가에 금광이 있다. 반드시 있다. 찾지 못했을 뿐 그것은 있다. 금광이 없어도 금맥은 있다.  파묻혀 있다. 그것을 찾아내면 된다.

 

    과학의 시대에 종교가 존재하는 이유는 대체재가 없기 때문이다. 종교는 삶의 정답을 말하고 있지만 틀린 답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찾아야 할 삶의 금맥은 어딘가에 분명히 존재하여 있는 것이다.

 

    과학은 외면하고 있다. 답하기를 포기했다. 구조론은 답하고 있다. 그것은 우리 주변에 있다. 단지 발견되지 않았을 뿐이다. 왜인가? 인과법칙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수요와 공급의 법칙이 작동한다.

 

    인간의 본성 안에 수요가 있으므로 종교라는 형태로 공급된다. 수요가 끊어지지 않는 한 공급은 중단되지 않는다. 종교를 비판해봤자 헛일이다. 대체재를 제시해야 한다. 구조론이 그 대체재다.

 

    종교는 건조한 인간의 삶을 풍성하게 할 목적으로 존재한다. 종교가 틀린 이유는 삶을 풍성하게 살찌우지 못하기 때문이다. 과학의 실패는 이러한 종교의 모순을 정면으로 치지 못하는 데 있다.

 

    뼈대없이 집을 지으니 풍성하지 못하고, 화음 없이 음악을 지으니 단조로움을 피할 수 없다. 뽕짝은 단조롭다. ‘그래도 나는 뽕짝이 좋아.’ 하고 고집 피워봐야 갑은 못 된다. 을이나 될 뿐이다.

 

    주도권을 잡지 못한다. 관계를 맺지 못한다. 좁은 한국바닥 안에서 만족하지 말고 넓은 세계로 나가 경쟁해야 한다. 그러려면 소아병적인 고집을 버리고 ‘탈뽕짝’해야 한다. 거침없이 나아가야 한다.

 

    구조는 질, 입자, 힘, 운동, 량의 다섯 뼈대를 제시한다. 비로소 집을 지을 수 있게 되었다. 풍성하게 살찌울 수 있다. 반드시 이 순서대로 가야 한다. 갑이 되려면 말이다. 관계를 맺으려면 말이다.

 

    이는 존재의 문법이다. 이를 연역하면 관계의 문법이 도출된다. 구조의 뼈대를 마음에 대면 ‘정신, 의식, 의도, 생각, 감정’이다. 마음이 일하면 각각 ‘존엄, 자유, 사랑, 성취, 행복’으로 나타난다.

 

    그런데 인간은 역주행한다. 존엄을 내버려둔채 행복을 꾀한다. 원인 없이 결과를 꾀한다. 파종 없이 추수를 원한다. 취직없이 월급을 바랜다. 사지도 않은 복권의 당첨을 꿈 꾼다. 이는 잘못이다.

 

    왜인가? 단조롭기 때문이다. 행복을 원하면 행복을 얻을 수 있다. 술꾼은 한 잔이 행복이요, 애연가는 돗대가 행복이요, 이 강도는 거짓말이 행복이다. 그들은 5분만에 행복해질 수 있지만 단조롭다.

 

    행복이되 풍성하지 못한 행복이다. 혼자 야동보며 자위를 해도 약간의 만족을 얻을 수 있지만 그것은 단조로운 행복이다. 이는 인간의 마음이 진정으로 원한 바가 아니다. 마음의 결을 바라보라.

 

    마음에도 마음이 있다. 마음이 진정으로 원하는건 행복이 아니다. 존엄이다. 마음은 결과가 아닌 원인을 원한다. 마음은 단지 한 잔의 술을 원하는게 아니라 걸맞는 대칭의 짝짓기를 원하는 거다.

 

    하루의 고된 노동과 퇴근 후의 한잔 술이 짝지어져야 의미가 있다. 공초 오상순이라도 한 편의 시를 쓰고 난 다음에 한 대의 돗대를 물어야 짝이 맞다. 원인이 결과와 맞아떨어져야 행복이다.

 

    천상병이 비록 친구에게 천원짜리 지폐 한 장을 구걸하더라도 한 편의 시를 써서 사회에 되돌려줘야 원인과 결과가 멋지게 맞아떨어진다. 이외수가 트윗대왕이라도 소설이 제때 나와줘야 걸맞다.

 

    그것이 존엄이다. 존엄은 원인과 결과가 맞아떨어지게 하고, 파종과 추수가 맞아떨어지게 하고, 마음의 결대로 기승전결이 맞아지기를 원한다. 인과율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행복은 마약과 같다.

 

    자신이 왕이라고 믿는 정신병자는 행복하지만 그 안에 인과율은 없다. 결이 없다. 기승전결이 없다. 그것은 헛된 거다. 마약복용과 같고 자위행위와 같다. 내부에서 인과법칙이 작동해야 진짜다.

 

    무엇이 다른가? 풍성해진다. 왜인가? 기승전결의 절차를 밟기 때문이다. 원인의 존엄과 결과의 행복 사이에 기승전결이라는 일의 진행과정이 들어가기 때문에 풍성하다. 그것이 스타일이다.

 

    종교는 거짓이지만 그것을 만들어준다. 원죄라는 원인과 십자가 대속이라는 결과를 매치시켰다. 뭔가 아귀가 맞는 듯 하다. 그래도 뭔가 조금은 허전하고 어색하지 않느냐고? 걱정 붙들어매셔.

 

    예수의 재림이라는 애프터 서비스가 대기하고 있으니깐. 그렇다. 아담의 원죄로 출발≫십자가 대속≫기도와 찬양≫예수의 재림으로 끝내기! 이 정도면 기승전결이 결대로 착착 맞아떨어진 셈이다.

 

    어쨌든 포지션은 채웠다. 그렇게 연결시키면 스타일이다. 인생의 기승전결을 완성시켜야 스타일이다. 인생 안에 원죄≫대속≫기도≫재림이라는 기승전결 구조가 인과법칙대로 작동해야 진짜다.

 

    ‘난 그냥 내 꼴리는대로 살어.’ 이건 스타일 아니다. ‘난 담배가 좋아.’ 이건 스타일 아니다. ‘나는 한 편의 시를 쓸 때 한 갑의 담배를 태우지.’ 이건 스타일이다. ‘난 마티니 마셔.’ 이건 아니다.

 

    ‘난 정육점에서 돼지고기를 썰더라도 쉴 때는 마티니 한 잔을 하지.’ 이거 스타일이다. 딱 주성치 스타일이다. 스타일을 획득해야 존엄에 이른다. 대칭구조를 이루어야 스타일은 획득된다.

 

    기승전결이 작동해야 스타일은 도달된다. 원인과 결과가 맞아떨어져야 진짜다. 그 구조를 보는 눈을 얻어야 한다. 그러려면 내부에 소실점이 있어야 한다. 소실점으로 한 줄에 꿰어야 한다.

 

    그것이 자유다. 소실점을 중심으로 시 한편과 담배 한 갑이 대칭되어야 한다. 그것이 사랑이다. 스타일 안에 소실점 있고, 소실점 안에 대칭이 있고 대칭 안에 방향성이 있어야 한다.

 

    그 방향성은 성취다. 최후에는 순수성이다. 순수성은 행복이다. 그 행복이 진짜다. 인과법칙에 맞게 기승전결의 연결과정을 거쳐온 행복이라야 진짜다. 백화점에서 돈 주고 산 행복은 가짜다.

 

    ◎ 존엄 – 자유 – 사랑 – 성취 - 행복
    ◎ 스타일-소실점-대칭성-방향성-순수성

 

    ‘스타일-소실점-대칭-방향-순수’라는 용어는 무시해도 좋다. 용어는 필자가 적당히 맞추어 본 것이며 지금도 고민 중이다. 본질은 구조다. 기승전결의 구조, 인과율을 성립시키는 구조다.

 

    순수는 독립이다. 독립해야 타자와 관계를 맺을 수 있다. 장미가 가시를 숨기고 있다면 순수하지 않다. 만화든 소설이든 주인공이 악당인 경우 작가는 주인공을 순수한 인물로 설정한다.

 

    악당이지만 순수하다? 그 말은 변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지금은 악당이지만 나중에 착해질 것을 관객은 안다. 불순하다는 것은 배후에 누가 있다는 의미고 따라서 변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순수는 관계맺기의 출발이다. 다른 의도가 없어야 관계를 맺을 수 있다. 순수성 다음은 방향성이다. 방향은 움직이는 방향이다. 식물처럼 붙박이로 고착되어 있다면 관계를 맺을 수 없다.

 

    방향성은 팀플레이를 가능하게 한다. 방향은 원대한 방향이고 원대한 길을 가다보면 사람을 만나서 팀플레이를 하게 된다. 그러므로 첫째는 순수해야 하고 둘째는 반드시 팀에 들어야 한다.

 

    영화가 시작되면 관객은 주인공이 우리편이라 여긴다. 이미 팀플레이가 시작된 것이다. 진리라는 팀, 역사라는 팀, 진보라는 팀, 자연이라는 팀에 들어야 한다. 단독 드리블은 곤란하다.

 

    왜? 이미 관객과 짝을 지었기 때문이다. 이미 독자가 응원하기 때문이다. 이미 팀이 작동하는 판인데 이를 외면한다면 배신이다. 진리에 반하고, 역사에 반하고, 진보에 반하면 곤란하다.

 

    팀을 이룰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럴 때 관계는 단절된다. 그렇다면 결별이 맞다. 그렇다면 강퇴가 맞다. 세상의 편에 서지 않으면 결코 함께할 수 없다. 첫째는 순수성이고 다음은 방향성이다.

 

    셋째는 대칭성이다. 대칭성은 곧 이중성이다. 이는 캐릭터를 의미한다. 한 사람의 인격 안에 강과 약, 고와 저, 완과 급, 장과 단, 천재와 바보의 모순되는 이중성이 있어야 캐릭터가 된다.

 

    정준하처럼 덩치는 큰데 어벙하거나, 노홍철처럼 까불인데 음치거나, 정형돈처럼 과묵한데 존재감이거나, 박명수처럼 버럭인데 착하거나, 김어준처럼 졸라인데 지적인 면모의 이중성을 얻어야 한다.

 

    싸이처럼 막가는데 쿨하거나, 김기덕처럼 초졸인데 천재거나, 노무현처럼 꼴통인데 순수하거나 그러한 이중성은 반드시 있어야 한다. 다만 길은 그 이중성을 획득하지 못해서 고전 중이다.

 

    이중성은 인간의 본질이므로 반드시 갖추어야 한다. 그러한 ‘약한 고리’ 없이 외골수로 편향된 사람과는 함께할 수 없다. 그 이중성의 극성이 N극에서 S극으로 바뀔 때가 바로 약한 고리다.

 

    그 부분이 소실점이다. 안철수의 소실점은 순수다. 그래서 여의도식 정치에 적응을 못하고 샌님처럼 뒤로 뺀다. 그런데 안철수는 그 부분을 감추려 한다. 그 민감한 부분이야말로 장점인줄 모르고.

 

    약한 고리는 개인에게는 치명적인 급소이지만 도리어 조직을 견고하게 만든다. 국민은 안철수가 일찍 창당하고 출마해서 그러한 약점 때문에 고전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한다. 왜? 도와주려고.

 

    안철수는 자신의 급소를 감춤으로써 도와주려는 국민을 머쓱하게 만들었다. 모든 인간에게는 이중성이 있다. 오히려 그것을 선전하여 자신의 고유한 캐릭터로 삼아야 한다. 무한도전의 7인처럼.

 

    극단적인 채식주의자라거나, 혹은 극단적인 명품주의자라거나, 또는 극단적인 귀족취향이라거나, 혹은 극단적인 시골주의자라거나 하는 식으로 한 곳에 편벽되게 치우쳐 있으면 대화가 어렵다.

 

    벌레가 무섭다는 이유로 잔디밭을 걷지 못하겠다고 하거나, 혹은 뱀이 무섭다고 산길을 못가겠다고 하면 곤란한 거다. 극복해야 한다. 자신의 그러한 약점을 오히려 장점으로 삼아야 한다.

 

    벌레가 무서우므로 함께 가달라거나, 혹은 뱀이 무서우므로 앞장서달라거나 해야 캐릭터가 맞다. 도시적인 이미지라면 오히려 시골의 멋을 알아야 한다. 명품족이면 오히려 빈털터리여야 맞다.

 

    부자인데 명품족이면 유치한 거다. 꼭 그렇게 부티를 내야 하겠느냐 말이다. 그래서야 세상과 관계를 맺을 수 있겠느냐 말이다. 제대로 된 미식가라면 당연히 짜장면도 먹을 수 있어야 한다.

 

    ‘난 입맛이 까다로운 미식가라서 된장국은 못먹겠어.’ 이러면 자격없다. ‘나는 원체 귀족이라서 싸구려 옷은 못입겠어.’ 이런 식이면 스타일이 죽는다. 왜? 타인과 관계를 맺을 수 없으니까.

 

    자신의 한계를 설정해놓고 전면에 내세우는 사람은 친구가 될 수 없다. 왜? 그것이 심리적 방어기제이기 때문이다. 박근혜나 안철수처럼 도전없이 방어만 하고 변명만 하겠다는 식이면 곤란하다.

 

    그 경우는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거다. 궂은 일에도 과감하게 뛰어들어야 한다. 우아하게 폼만 잡겠다는 식은 곤란하다. 노무현의 야성과 문재인의 품격이 한 인물의 캐릭터 안에 공존해야 한다.

 

    그 부분이 약한 고리가 되고 급소가 되고 소실점이 된다. 지적인 인간은 동시에 야성적이어야 하고 세련된 사람은 동시에 투박해야 한다. 그 모순되는 두 대칭 사이에서 극적 반전이 일어난다.

 

    순수, 방향, 대칭 다음은 소실점이다. 소실점은 그렇게 대칭되는 전체를 한 줄에 꿰어내는 센터다. 콤파스의 축이다. 관계의 두 촉수가 맞닿는 부분이다. 소실점은 밖으로 노출되어 있어야 한다.

 

    타인이 끼어들어 도움을 줄 수 있는 구조여야 한다. 김기덕 감독은 학력의 결핍이 소실점이다. 약한 고리다. 이때 보통이라면 어떤가? 다른 어떤 주류에 곁가지로 꼽살이끼어 기생하는 전략이다.

 

    독립하지 못한 자의 기생전략이다. 약점있는 사람은 아웃사이더가 되어 변방에 포지셔닝하고 구색을 맞춰주며 주류를 위해 봉사한다. 종속된다. 주인공의 다양성을 보완해주는 풍각쟁이가 된다.

 

    개그맨이 되고 딴따라가 되고 괴짜가 되어야 한다. 주류가 ‘에헴’ 하고 폼 잡으면 아웃사이더는 옆에서 분위기 띄우는 역할이다. 이창동이 가운데서 헛기침을 하면 김기덕은 옆에서 이방 행세다.

 

    그래야 보기 좋은 가짜다. 봉준호나 박찬욱이 상석에 앉고 김기덕은 말석에서 ‘아따 형님. 제가 한곡조 뽑겠습니다요.’ 하고 김흥국 말투로 떠들어야 한다. 그런데 김기덕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김기덕은 개그맨 역할로 분위기 띄우며 주류에 구색을 맞추어 주기는 커녕 정면으로 주류를 쳐버렸다. 약점을 거꾸로 강점으로 이용한 것이다. 그의 학력부재는 그가 세상과 싸우는 무기다.

 

    싸이의 또라이기질은 그가 세상과 싸우는 무기다. 약한 부분을 가다듬어 칼날처럼 예리하게 날을 세운다. 그 부분은 약하므로 부러진다. 그러므로 좌절한다. 그러나 도전을 멈추지 않는다.

 

    그럴 때 돕는 자가 있다. 팀이 꾸려지고 시스템이 작동한다. 김성근 감독은 고집이 약점이다. 그래서 팀은 더 강해진다. 커피잔의 손잡이는 밖으로 돌출되어 있어야 한다. 그래야 쥘 수 있다.

 

    안철수는 자신의 손잡이를 은폐했다. 커피잔의 손잡이를 커피잔 안에 집어넣은 격이다. 일이 틀어지는 것은 당연지사다. 안철수는 여의도식 정치를 못하는 단점을 거꾸로 이용할 수 있었다.

 

    일찍 창당하고 출마했으면 그 단점이 낱낱이 들추어 졌겠지만 대신 국민이 돕는다. 사람이 약지 못해서 정치를 잘 못한다는 점을 드러내야 한다. 그런데 타이밍 정치를 썩 잘해서 망했다.

 

    장비와 관우와 조운은 싸움을 썩 잘 했다. 반면 유비는 싸움을 제대로 못해서 왕이 되었다. 당삼장은 약하다. 그래서 손오공과 저팔계와 사오정이 보호한다. 팀플레이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노무현의 약점은 타협이 안 되는 ‘꼴통’ 이미지였다. 감추지 않았다. 노무현이 약한 고리를 드러내자 국민이 도와주러 달려왔다. 유시민이 앞장섰다. 가장 약한 자가 시대의 전위에 선다.

 

    가장 예민하고 섬세한 자가 탄광 속의 카나리아처럼 시대의 질병을 알아챈다. 그 사람이 시대의 의사다. 약한 자는 아기다. 가족은 아기 중심으로 사고하고 행동한다. 그래서 가족은 유지된다.

 

    마지막은 스타일이다. 순수-방향-대칭-소실점-스타일이다. 그러나 반대다. 실제로는 스타일이 맨 앞에 온다. 스타일은 자기다움이다. 인간이 자기다움을 드러낼 때 비로소 소실점이 찾아진다.

 

    김기덕 감독이 김기덕답게 행동했기에 그의 약한 고리인 학력부재가 드러난 것이다. 만약 김기덕 감독이 공장 일을 계속했거나 해병대에서 직업군인을 계속했다면 오늘날의 김기덕 감독은 없다.

 

    노무현이 노무현답게 행동했기 때문에 그의 약점인 꼴통기질이 드러났다. 만약 노무현이 세상과 타협하였다면, 이인제를 따라 순응했다면, 청문회에서 튀는 행동을 하지 않고 잘 처세했다면?

 

    스타일은 자기다움이다. 자기다움을 드러냄으로써 약한고리인 소실점이 부각된다. 처세를 잘 하여 자신의 본질을 감추면 안철수처럼 성공하지만 소실점은 은폐된다. 그래서 안철수를 돕지 않는다.

 

    자기다움을 얻으면 소실점이 드러나고 팀플레이가 이루어지며 그럴 때 대칭은 얻어진다. 대칭은 이중성이다. 노무현의 천재이며 바보인 이중성은 팀플레이에 의해 자연히 노출된 것이다.

 

    혼자 고립되면 이중성은 감추어진다. 싸이는 잘 노는 애고, 김어준은 졸라-씨바고, 노무현은 그냥 외톨이고 김기덕은 그냥 괴짜다. 그런데 팀플레이를 하다보니 그들의 진정한 면모가 드러난다.

 

    싸이의 지적인 면모, 김어준의 세련된 면모, 노무현의 상식과 원칙, 김기덕의 스승기질이 드러난 것이다. 자기다움-약한고리-팀플레이 과정에서의 이중성 노출이 되면 반드시 흐름을 타야 한다.

 

    혼자는 못 가고 강물의 흐름을 타고가야 한다. 세상의 진보라는 흐름, 시대정신의 흐름, 스마트폰의 등장이라는 흐름을 타게 된다. 이것이 방향성이다. 맨 마지막이 순수다. 왜 순수인가?

 

    실은 세상이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인물이 주인공이 아니라 진리가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최후의 승자는 대한민국이기 때문이다. 진정한 승자는 역사이고 진리이고 진보이고 신이기 때문이다.

 

    자신에게 돌아올 몫은 없다. 그래서 순수다. 참된 이에게는 별도로 보상이 필요없다. 참되다는 그 자체로 보상은 이미 충분하다. 노무현다움이 노무현에게는 가장 큰 보상이다. 이미 챙겼다.

 

    김기덕다움이 김기덕에게 가장 큰 보상이다. 싸이다움이 싸이에게 가장 큰 보상이다. 김어준다움이 김어준에게 큰 보상이다. 예수다움이 가장 큰 보상이었기에 예수는 그 언덕에서 당당했다.

 

    안철수다움이야말로 안철수에게 가장 큰 보상일텐데 그걸 팔아서 대통령 포지션을 사려고 든다. 자기다움을 잃을 때 영혼은 이미 죽은 것이다. 그래서 소크라테스는 그 길로 곧장 갔던 것이다.

 

    언어에 어순이 중요하듯이 관계의 문법은 순서가 중요하다. 순수-방향-대칭-소실점-스타일으로 가는 듯 보이지만 이는 착시현상이고 실제로는 스타일-소실점-대칭성-방향성-순수성으로 간다.

 

    겉보기에 ‘순수 -≫ 스타일’로 가는 듯이 보이는 이유는 관계의 밀도 때문이다. 낯선 사람을 만나면 당장에 그의 스타일을 알 수 없다. 길에서 우연히 노무현을 만나도 그의 스타일은 모른다.

 

    스타일은 심지어 자기 자신도 모른다. 그래서 뒤에 오는 것이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그냥 살았다. 국가는 없다. 그런데 외부에서 침략자들이 쳐들어온다. 쟤네들 뭐지? 왜구야. 뭐? 왜구라고?

 

    그렇다면 왜놈이네. 그렇다면 왜국이네. 그런데 우린 뭐지? 아하! 한국이네. 이렇게 된다. 외국의 침략을 당하여 외국의 존재를 먼저 알고 그 다음에 거기에 대칭시켜 자기네 나라의 존재를 안다.

 

    자기 스타일은 남의 스타일과 마찰한 다음에 안다. 돈 키호테는 풍차에 대가리를 박고 난 다음에 깨닫는다. 자기도 모르기 때문에 스타일이 나중에 찾아진다. 그러므로 세상과 충돌해야 한다.

 

    세상을 향한 싸움걸기를 멈추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 자신의 정체성이 드러난다. 순수가 먼저 포착되고 스타일이 나중 확인되지만 실제로는 스타일이 제일 먼저 작동하고 순수는 나중에 움직인다.

 

    그러므로 주인공은 불순해 보인다. 피에타가 끝나야 이강도의 순수성이 확인된다. 노무현의 죽음을 봐야 당신의 순수를 안다. 안철수가 감동을 남기고 물러서는 모습을 봐야 그의 순수가 입증된다.

 

    ◎ 스타일 – 자기다움을 양식화하여 세상과 마찰한다. 
    ◎ 소실점 – 조직의 약한 고리를 보호하는 팀플레이를 한다.
    ◎ 대칭성 – 서로 모순되는 이중성을 가진 캐릭터를 획득한다. 
    ◎ 방향성 – 세상의 흐름을 타고 나아가며 부단히 변신한다. 
    ◎ 순수성 – 최후에는 모든 성과를 공동체에 되돌린다.

 

    이는 관계맺기의 문법이다. 이 순서대로 가야 제대로 된 관계는 만들어진다. 김어준은 스타일을 앞세웠고 안철수는 순수를 앞세웠다. 노무현은 스타일을 앞세웠고 그의 순수는 국민이 발견했다.

 

    순수장사 하는 자 치고 사기꾼 아닌 자 없다. 맨 앞에 와야 하는 것은 절대로 스타일이다. 자기다움이다. 그리고 그 안에는 소실점도 대칭성도 방향성도 순수성도 다 갖추어져 있어야 한다.

 

    이로써 얻은 것은 관계의 밀도다. 밀도 높은 관계로 얻는 것은 삶의 풍성함이다. 우리는 서로 더 깊은 관계를 맺고 더 풍성한 삶을 얻는다. 기승전결이 맞고 인과법칙이 맞는 삶을 살게 된다.

 

    봄의 파종이 가을의 수확으로 연결되는 삶을 살게 된다. 아귀가 맞고, 조리가 맞고, 결대로 착착 들어맞는 삶을 얻게 된다. 인생의 부조리를 극복할 수 있다. 그것이 찾아야 할 삶의 정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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