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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김동렬*
read 10170 vote 0 2012.10.21 (21:05:45)


    의미를 버리고 관계를 얻어라

 

    ‘비우라’는 말은 선가(禪家)에서 늘 하는 이야기다. 그런데 무엇을 비워야 하고 대신 무엇을 얻어야 하는지를 말해주는 사람은 없다. 정답 - 의미를 비우고 관계를 얻어야 한다.

 

    의미는 목적, 계획, 의도, 행복, 이유 따위다. 그것은 나의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다. 나의 마음이 하나의 그릇이라면 그 그릇에 가득히 채워지는 것이다. 반면 관계는 밖으로 통하는 것이다. 인생의 답은 안이 아니라 바깥에 있다. 그것으로 얻어지는 것은 존엄이다.

 

    컵의 손잡이는 컵의 바깥에 있어야 한다. 인생의 슬픔은 컵 안쪽에 채워진 내용물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컵 바깥의 손잡이가 부실하기 때문이다. 세상의 중심과 내가 연결되는 접촉점이 불안하기 때문이다.

 

    TV 화면이 잘 안 나오는 것은 안테나가 부실하기 때문이다. 삶의 안테나에 문제가 있다. 인간으로 살면서 삶의 그릇에 행복의 빵을 얼마나 채웠느냐가 중요한게 아니고, 그런데 과연 내가 인간은 인간이냐가 중요하다.

 

    인간대접을 받을 자격이 있느냐다. 짐승과 인간의 차이는 그 대접받는 정도의 차이다. 인간은 인간관계 안에서만 인간일 수 있다. 인간이 삶에서 추구하는 모든 것은 자신이 온전한 하나의 인간이라는 전제 하에서만 기능한다.

 

    그런데 그 전제가 죽는다. 과연 내가 인간인지가 불명하다. 왜? 추구하기 때문이다. 기능하기 때문이다. 역할하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비교되고, 경쟁되고, 심사받고, 평가되고, 처분되기 때문이다.

 

    타자에 의해 휘둘리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추구함을 버리고 잃어버린 전제를 회복해야 한다. 무엇이 다른가? 과정이 다르다. 전제를 회복할때 비로소 삶의 기승전결 구조가 작동된다. 삶의 인과법칙이 맞아떨어진다.

 

    맛있는 음식을 먹는게 중요한게 아니고 그 음식을 얻기까지의 스토리가 중요하다. 그 스토리가 살아난다. 탄생이 삶의 원인이라면 결과는 죽음인가? 천만에. 죽음은 허무다. 죽음은 삶의 결과가 아니다. 삶의 실패다.

 

    죽음으로는 삶의 기승전결이 맞아떨어지지 않고 삶의 인과법칙이 성립되지 않는다. 낳음이 결과여야 한다. 관계의 복원으로 그것은 가능하다. 고장난 안테나를 수리하여 방송국과의 관계를 회복할 때 TV는 시청자를 낳을 수 있다.

 

    답은 인과법칙에 있다. 삶의 결과가 죽음이라면 TV의 결과는 고장인가? 아니다. TV의 원인은 방송국이다. TV의 결과는 시청자여야 한다. 그러므로 관계를 회복해야 한다. 안테나를 수리해야 한다. 방송을 중계해야 한다.

 

    운명적으로 선택의 기로에 서게된다면 그대는 의미를 선택하겠는가 아니면 관계를 선택하겠는가? 피에타의 이강도는 행복이라는 의미를 버리고 엄마와 아들의 관계 그 자체를 선택했다. 언제라도 관계가 답이다. 그리고 그 관계는 바꿀 수 있다.

 

    무엇인가? 당신이라면 천국행의 의미를 선택하겠는가 아니면 신과 인간의 관계 그 자체를 선택하겠는가? 신이 당신을 천국으로 보내준다면, 신과 인간의 관계는 주종관계가 된다. 신과의 진실한 관계가 차단된다. 이미 그대의 존엄은 훼손되었다. 그 선택의 순간에 그대는 신을 잃었다.

 

    만약 신이 인간을 구원한다면 인간은 이미 구원을 잃었다. 예수는 신과 인간의 관계를 주인과 노예의 주종관계가 아니라 아버지와 아들의 부자관계로 격상시켰다. 그러다가 죽었다. 부족하다. 신과 인간의 관계는 대등한 친구관계여야 한다. 의미를 버리고 관계를 취하라. 그것이 깨달음의 정답이다.

 

    컵이 하나 있다. 그 컵이 컵의 용도로 적절하게 사용된다면 의미가 있다. 사용되었므로 버려진다. 그 컵이 아직 컵의 용도로 사용되지 않았기에 앞으로 사용될 가능성을 남겨두는 것이 관계다.

 

    ###

 

    피에타는 레옹을 연상시킨다. 레옹의 삶은 의미가 배제된 삶이다. 그는 단순한 살인기계에 불과하다. 레옹이 아끼는 화분의 식물처럼. 피에타의 이강도 역시 그러하다. 사랑도, 성취도, 행복도, 목표도, 계획도 모두 버렸을 때 관계가 일어난다. 그것이 선가에서 노상 말하는 비움의 진정한 의미다.

 

    정답은 있다. 조사의 선문답에도 정답이 있다. 고정된 정답이 없을 뿐이다. ‘병 안의 새’를 꺼낼 수는 없지만, 병 안의 새를 꺼낼 수 없다면 그것을 꺼낼 수 없는 경계가 있다. 그 경계 안쪽에 정답이 없다면 경계 바깥쪽이 정답이다. 의미에 정답이 없으면 관계가 정답이다.

 

    인간은 누구나 죽는다. 영생은 없다. 그렇다면 인생의 정답은 없다. 그러므로 정답이 있다. 죽음이 정답을 부정하므로 낳음이 정답이다. 안으로 채울 정답이 없으므로 그 반대편에서 바깥으로의 관계가 정답이다.

 

    삶은 죽음으로 종결하지만 낳음의 배달은 영원하다. 개인의 삶에 정답이 없으므로 팀의 건설이 정답이다. 의미가 정답이 아니면 관계가 정답이다. 단지 그 정답에 이름이 없을 뿐이다.

 

    정답은 원인과 결과, 작용과 반작용이 대칭을 이루는 것이다. 삶과 죽음은 대칭이 아니다. 그래서 부조리다. 삶과 낳음이 대칭을 이룬다. 낳음은 안쪽의 의미가 아닌 바깥쪽의 관계에서 얻어진다. 바깥과의 상호작용에 대응하는 것이 스타일이다. 그렇게 정답은 있다. 그 정답을 얻고 난 다음 그것을 다양한 환경에 응용하는 것이 다양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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