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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김동렬*
read 9774 vote 0 2012.10.21 (21:12:30)

 언어에는 문법이 있다. 관계에도 문법이 있다. 언어의 문법은 배우지 않는다. 그냥 안다. 관계의 문법도 그냥 안다. 그런데 그렇지 않다. 필자는 그냥 아는데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있더라.

 

    문제없다. 신통하게도 잘 살고 있다. 모르지만 조금은 눈치로 안다는 말이다. 깨달음의 본질은 그냥 아는 거다. 그 점에 주의하기 바란다.

 

    깨달음이란 ‘아하 그렇구나!’ 하고 감탄하는 거다. 그건 ‘아 그거 원래 알던건데?’ 하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그게 눈치다.모르지만 눈치 주면 알고, 모르지만 분위기 띄워주면 알고, 모르지만 긴장하면 정신차려서 안다.

 

    모르지만 정신차리면 알기 때문에 임제의 할, 덕산의 방이 소용되었던 거다. 숭산의 굴밤도 마찬가지고.

 

    깨달음은 관계의 문법이다. 나는 누구에게 배우지 않았다. 그냥 알았다. 물론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설명할 수 있게 된 것은 나중이다. 그러나 본질에서는 아기가 문법을 배우지 않고도 말을 하듯이, 특별히 깨달으려 하지 않고도 원래 깨달아서 태어났다.

 

    아기가 문법을 전혀 배우지 않는 것은 아니다. 무의식적으로 배운다. 깨달음도 자연과 예술을 접하면서 그 레벨이 높아진다. 본질에서는 그냥 안다. 눈치로 알고, 분위기로 알고, 정신차려서 안다.

 

    그것은 센스다. 딱 느낌이 온다. 아닌 것 같다는 느낌이 들면 아닌 거다. 몸으로 반응한다. 몸의 반응에 민감한 사람이 깨닫는다. 사람들이 깨닫지 못하는 이유는 몸의 반응에 주목하지 않고 머리를 쥐어짜서 깨달으려 하기 때문이다.

 

    꼬마 싸이 황민우 군은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았는데도 두 살때부터 몸이 먼저 반응했다고 한다. 그냥 안다. 리듬을 타고 박자를 맞출 줄 안다. 그러나 황민우 군도 열 살이 넘으면 슬럼프가 온다.

 

    아역배우가 잘하다가도 중학생이 되면 갑자기 연기를 못하는 이유는 호르몬의 변화로 몸의 반응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어린이는 항상 흥분해 있기 때문에 몸의 반응에 의해 자동으로 연기가 되지만 중학생이 되면 호르몬 변화로 몸의 반응성이 떨어져서 이성적으로 사고하므로 연기가 안 된다. 연기를 전문적으로 배워서 감정 잡는 방법을 알면 다시 연기실력이 는다.

 

    연기의 정답은 감정잡기다. 깨달음의 정답도 감정잡기다. 스타일의 정답도 감정잡기다. 싸이의 강남스타일을 머리로 배우려 하지 말고 싸이의 감정 속으로 들어가면 저절로 강남스타일이 복제된다.

 

    시의 문법도 감정을 잡는데 본의가 있다. 시는 운을 기본으로 하지만 그 운은 감정에서 나온 거다.

 

    시의 구조는 첫째 소재, 둘째 반복, 셋째 대칭, 넷째 반전, 다섯째 감탄이다. 모든 시에는 반드시 이 다섯가지가 들어있다. 처음에는 어떤 소재를 제시하고 다음 무언가 반복하여 라임을 준다. 그리고 대칭을 시켜 긴장을 준다. 다음 비틀어서 시야를 넓힌다.

 

그때 인간은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대칭을 넘어 토대의 공유를 보여주는 것이다. 다음 감탄하여 에너지를 넣어준다. 물론 이 순서를 기계적으로 지킬 필요는 없다. 연역과 귀납의 모순에 의해 순서가 바뀌기 때문이다. 어쨌든 그 안에 구조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이러한 형식이 쉽게 드러나는 것이 시조다.

 

    오백년 도읍지를(순수)
    필마로 돌아드니(활동)
    산천은 의구한데 인걸은 간데없네(대칭)
    태평연월이 꿈이런가(방향)
    어즈버+하여라(창조)

 

    순수는 그냥 소재고 활동은 주로 패턴의 반복이다. 시조는 4.4조를 기본으로 하므로 반복성이 기본으로 깔려 있다. 시조의 중핵은 대칭이다. 여기까지가 초장과 중장이다. 시조는 대개 자연을 이야기하다가 갑자기 인간사회로 방향을 트는 반전을 보여주는데 그것이 방향성이다. 종장에는 항상 감탄사가 들어가는데 그것이 창조성이다. 연역원리에 따라 질이 선행해야 하므로 창조성은 리듬감의 형태로 전체를 관통하고 있다는데 주의해야 한다.

 

    나보기가 역겨워(순수성) 
    가실 때에는(활동성)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대칭성)
    (중략)
    죽어도 흘리오리다(창조성) 아니눈물(방향성) .

 

    순서대로 갈 이유는 없다. 원래는 연역되므로 창조-방향-대칭-활동-순수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창조는 전체를 관통하는 정서여야 한다. BGM과 같다. 바닥에 깔아주는 정서, 혹은 리듬감이다. 방향성의 소실점은 자연에서 인간에게로 되돌림 혹은 공유되는 토대의 발견, 전체를 한 줄에 꿰기, 공간에서 시간으로의 전환이다. 주로 반전의 형식으로 연출된다.

 

    옛 우물에 개구리 뛰어드는 물소리(바쇼의 하이쿠)
    옛 우물(순수성) 
    개구리(동과 정의 대칭성) 
    뛰어드는(활동성) 
    물소리(방향성)
    퐁당-퐁당이라고도 하는데 전체를 관통하는 느낌이다.(창조성)

 

    松松栢栢岩岩廻 水水山山處處奇 
    송송백백암암회 수수산산처처기 (김삿갓)
    송(순수)
    송송(활동)
    송송백백(대칭)
    암암회(방향)
    시각적인 리듬감(창조)

 

    ◎ 순수는 소재의 제시, 정적인 공간.
    ◎ 활동은 동적인 반복, 라임, 운율.
    ◎ 대칭은 반대편에서 마주보는 대칭구조
    ◎ 방향은 주로 인간사회로 되돌림, 이념제시, 쇼킹한 반전
    ◎ 창조는 주로 감탄사, 감정조절, 에너지 투입.

 

    반드시 순수, 활동, 대칭, 방향, 창조의 순서대로 갈 필요는 없지만 대략 이 순서대로 간다. 구조론은 연역이므로 원래의 순서는 반대다. 다만 인간의 언어는 인식이므로, 연역을 뒤집어 진술된다. 원래는 연역이므로 창조는 전체에 관통해야 한다. 그러므로 창조는 없어도 잘 살펴보면 숨어 있다.

 

    산에는
    꽃 피네 꽃이 피네
    갈 봄 여름없이 꽃이 피네
    산에 산에 피는 꽃은 저만치 혼자서 피어 있네
    산에서 우는 작은 새여 꽃이 좋아 산에서 사노라네
    산에는 꽃 지네 꽃이 지네 갈 봄 여름없이 꽃이 지네.(산유화 김소월)
    산, 꽃 (순수)
    꽃이 피네(활동)
    꽃이 지네(대칭)
    혼자서 피어 있네(방향)
    작은 새여(창조)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 (정현종)
    섬(순수성)
    사람들 사이(활동성)
    섬이 있다, 가고 싶다.(대칭성) 
    그 섬에(그 섬이 그 섬이 아니므로 방향전환, 방향성)
    가고 싶다.(감정이 실렸으므로 창조성)

 

    연탄재 함부로 차지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하략-안도현)
    연탄재(순수성)
    함부로(활동성) 
    차지마라(대칭성. 기존의 행동에 대립각을 세움)
    사람이었느냐(방향성. 연탄재를 사람에 비유.)
    뜨거운(창조성. 감정을 태움.)

 

    물론 딱 이것이 활동성이다 저것이 대칭성이다 하고 고착시켜 지정할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연역원리에 따라 전반에 깔리기 때문이다. 활동성은 여러 곳에 있고 대칭 역시 여러곳에 있다. 그러나 전체적인 대칭은 대개 하나다.

 

    정치적인 슬로건도 마찬가지다.

 

    못살겠다 갈아보자.


    이 문장의 주어는 생략되어 있다. 순수성은 생략된 채로 숨어 있다. 활동성은 전체가 다 활동성이다. 또 갈아보자며 기존의 행동에 대립각을 세웠으므로 대칭성이 있다. 또 못살겠다는 여야의 교착된 이념대결에서 민중의 삶으로 방향을 전환한다는 점에서 방향성이다. 그리고 이 슬로건에는 대단한 분노가 실려있다. 창조성이다.

 

    경제다 이 밥통아.(It's the economy, stupid.)


    ‘경제다’는 것은 ‘전쟁이다’ 하는 공화당에 대한 대칭성이다. 정치에서 경제로 관심을 돌린다는 점에서 방향성이다. 이 밥통아 하는건 대단한 분노의 감정이 실렸다는 점에서 창조성이다. 일부 생략되었지만 있을 건 다 있다.

 

    시의 형식은 에너지를 태우는데 있다. 그냥 ‘쥐새끼 씨박놈아!’ 하면 감정의 표출일 뿐 시가 아니다. 시는 아트다. 예술적으로 감정을 실어야 한다. 그 방법은 뒤통수를 치는 것이다. 즉 방향전환이다. 반전이다. 대개 자연을 노래하다가 갑자기 인간사회의 비유로 방향을 튼다. 이때 독자의 카타르시스를 끌어내려면 미리 충분한 긴장을 주어야 한다. 그 방법은 반복과 대칭이다.

 

    어떤 소재를 제시한 다음 반복하여 주목을 끌고, 대칭하여 긴장을 태우고, 방향을 틀어 정신이 번쩍 들게 하고, 마지막으로 감정을 실으면 시가 된다. 정형시든 자유시든 산문시든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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