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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김동렬*
read 9381 vote 0 2012.10.21 (20:51:00)


         깨달음은 정답이 있다. 깨달음의 정답은 스타일이다. 스타일은 타자와 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준비된 상태다. 그 첫 번째 조건은 독립성이다. 독립되어 있어야 타자와 관계를 맺을 수 있다.

 

    만약 다른 어떤 것에 빌붙어 있다면 관계맺기는 불능이다. 이성에게 프로포즈를 했는데 ‘엄마한테 물어볼께!’ 하면 곤란하다. 독립되어 있어야 하며 그 독립은 전방위적인 독립이어야 한다.

 

    식물처럼 붙박혀 있어도 곤란하고, 강물에 떠내려가도 곤란하다. 고착되지도 말고 배회하지도 말아야 한다. 언제 어디서든 연락을 받을 수 있는 상태라야 한다. 그 조건의 갖춤이 완전성이다.

 

    깨달음은 관계의 깨달음이다. 관계는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는다. 더 깊은 관계, 더 높은 관계로 올라서야 한다. 나의 전부로 너의 전부를 끌어내는 관계가 되어야 한다. 여기에 방향성이 있다.

 

    두 사람이 관계를 맺으려면 둘은 고착되어 있지도 말아야 하고 허공에 떠서 부유하지도 말아야 한다. 나란히 한 방향으로 나아갈 때만 관계를 맺을 수 있다. 그러려면 소실점이 있어야 한다.

 

    비행기의 공중급유와 같다. 멈춰도 안 되고 움직여도 안 되며 나란히 한 방향으로 움직이며 보조를 맞추어야 한다. 식물이 꽃가루받이를 해도 그러하고 악단이 장단을 맞추어도 그러하다.

 

    관계의 촉수가 맞닿는 부분은 취약하다. 조직의 약한 고리다. 약한 고리가 소실점이다. 약한고리를 보호하는 형태로 관계는 발전한다. 그 방향성이 현대성이다. 현대성의 획득이 스타일이다.

 

    깨달음은 완전성의 깨달음이다. 혼자서는 불완전하다. 왜냐하면 완전은 소통의 완전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완전성은 팀플레이여야 한다. 소실점과 방향성이 제시될 때 팀플레이는 가능하다.

 

    관계맺기의 지점은 취약하다. 방해자가 없어야 한다. 그러므로 디자인은 심플해야 한다. 아이폰 디자인은 일본의 젠 스타일이 반영되어 있다. 여기에 현대성이 있다. 현대성이 방향성이다.

 

    그냥 아이폰의 디자인이 좋다는게 아니다. 좋은 디자인은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문제는 거추장스럽다는 점이다. 그렇게 되면 관계맺기가 어렵다. 스마트폰은 손으로 쥘 수 있어야 한다.

 

    주머니에 넣을 수도 있어야 하고 귀에도 대야 하고 눈으로도 보아야 한다. 스마트폰은 손과 주머니와 눈과 귀와 관계를 맺는다. 디자인 할수록 관계는 방해된다. 디자인은 심플해야 한다.

 

    스마트폰에서 나올 수 있는 디자인은 하나 뿐이다. 아이폰이 정답이다. 다양성? 개코나. 그런거 없다. 젓가락 디자인은 하나 뿐이다. 젓가락은 손가락의 연장이므로 손가락과 닮아야 한다.

 

    젓가락이 굴러가면 곤란하므로 모가 나야 한다. 너무 각져도 쥐기에 불편하다. 장식이 있으면 세척이 곤란하므로 좋지 않다. 이런 저런 조건을 모두 충족시키다보면 나올 디자인이 뻔하다.

 

    숟가락의 날은 입술과 닿으므로 입술의 곡선과 같아야 한다. 숟가락 디자인은 하나 뿐이다. 스타일의 정답은 하나 뿐이다. 다양성? 착각이다. 그건 디자인을 모르는 사람이 하는 소리다.

 

    스타일이 정해지면 다 바뀐다. 집도 옷도 차도 거기에 연동시켜서 다 바뀌어야 한다. 어떤 스타일이어야 하는가? 마땅히 현대성이어야 한다. 정답은 이미 나왔고 그 외에는 모두 가짜다.

 

    현대 자동차 포니의 디자인에도 일본의 젠 스타일이 은연중에 반영되어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적다. 스타워즈 영화가 일본의 젠 스타일을 반영했으며 당시 세계적으로 일본붐이었다.

 

    선 하나 각 하나가 그냥 나오는게 아니고 반드시 족보가 있다. 지금 일본에 가서 베끼려 해도 되지 않는다. 일본문화의 어떤 핵심적 요소를 발췌하여 서구에서 재구성한 것이기 때문이다.

 

    라즈니쉬 부류가 가짜인 이유는 스타일을 못 만들기 때문이다. 히피붐도 그러한데 히피스타일은 현대성이 없다. 전혀 없지는 않지만 21세기의 방향성과 맞지 않다. 히피는 갈라파고스다.

 

    한국에도 난타, 농악, 풍물, 마당놀이, 개량한복 같은 것이 있지만 그 스타일은 대개 히피, 라즈니쉬 계열이라 미완성이다. 불완전하다. 굳이 족보를 따지자면 도교계열에 가깝이다. 가짜다.

 

    정답은 선비다. 한국 스타일은 선비 스타일이며 일본의 젠 스타일과 유사하면서도 다르다. 젠 스타일은 선종불교에서 나왔고 성리학은 선종불교의 영향을 받았으므로 유사한 데가 있다.

 

    중국은 근본 도교스타일인데 최악이다. 스타일 파괴다. 스타일의 의미는 그 안에 긴장을 불러 일으키는 지점이 있어야 한다는 거다. 시퍼렇게 날이 서 있어야 한다. 엣지가 있어야 한다.

 

    심플해야 하고 일관되어야 하고 일목요연해야 한다. 까뮈의 이방인과, 이상의 날개와 김기덕의 피에타가 연결되는 지점이 있다. 그 안에 스타일이 있고 보편성이 있다. 시퍼렇게 날이 서 있다.

 

    선비 스타일을 잘 보여주는 건축이 병산서원이다. 병산서원은 정면에 절벽이 있다. 서로 대칭되어 마주보고 있다. 건물의 배치도 대칭구조로 되어 있다. 피에타 역시 계속 대칭구조를 따라간다.

 

    그냥 대칭은 아니고 둘이 하나의 토대를 공유해야 한다. 열려 있으면서 닫혀 있어야 하고, 떨어져 있으면서 붙어 있어야 한다. 연못도 사각형으로 되어 있다. 일본의 젠 스타일과 다르다.

 

    일본식 정원은 빼꼭하게 차 있다. 대칭구조가 불명하다. 일본식 정원은 기능적이다. 까뮈의 이방인은 기능의 부정에서 시작한다. 어머니가 죽었으므로 울어야 한다는 것은 기능적 사고다.

 

    뫼르쏘는 죽음이며 기능의 부정이고 목적의 부정이다. 젠스타일은 하나하나 기능과 목적이 있고 필요가 있으므로 불완전하다. 기능지향적 디자인에서 관계지향적 디자인으로 바꾸어야 한다.

 

    문은 열려있어도 안 되고 닫혀있어도 안 되며 반쯤 열려있어야 한다. 열려있으면 손님을 초대하는 기능이요 닫혀 있으면 도둑을 차단하는 기능이므로 좋지 않다. 자체의 기능이 없어야 한다.

 

    꽃병에 꽃이 꽂혀 있으면 장식적인 기능이 되므로 좋지 않다. 꽃병에는 꽃이 꽂혀있지 않아야 한다. 물론 젠 스타일도 상당히 관계지향적이다. 모든 스타일은 본질에서 관계지향이기 때문이다.

 

    다만 젠 스타일은 관계가 고착되어 있다. 주인과 손님의 관계로 정해져 있는 것이다. 관계의 고착은 관계의 발전을 가로막는다. 관계의 방향성이 약하다. 상대적으로 현대성이 결핍되어 있다.

 

    아이폰은 최고의 디자인이지만 기능적 디자인이다. 그러므로 더 나아갈 여지가 있다. 가구의 배치나 집의 형태가 기능적이고 효율적이면 좋지 않다. 쓸모있는 것은 실상 매우 쓸모없는 것이다.

 

    까뮈가 아랍인을 이유없이 쏘아버린 이후, 살바드로 달 리가 달을 자른 이후 모든 쓸모있는 것은 쓸모없어졌다. 젠 스타일은 원래 다도에서 나온 것인데 다도의 명인은 봉건영주의 비서 격이였다.

 

    봉건영주는 다도의 명인을 시켜 손님을 초대하게 한 다음 행동거지를 살피게 한다. 다도의 명인은 손님이 편안하게 담소를 즐길 수 있도록 여러 가지 세팅을 해 두는데 다 이유가 있다.

 

    사소한 동작에도 숨은 신호가 있고 접시 하나, 과자 한 쪽이라도 역할이 있다. 헛기침 신호를 보냈는데 못 알아보면 당장 첩보가 날아간다. “쟤는 아냐.” 인사추천 명단에서 배제되는 것이다.

 

    그러나 대개 쓸데없는 거다. 꽃병에는 꽃이 하나 정도 꽂혀 있어야 하며 너무 많으면 안 된다는 식이다. 이런 시시콜콜한 것들은 고도의 긴장을 유발하며 손님으로 하여금 긴장하게 한다.

 

    어쨌든 젠 스타일의 출발점인 다도가 손님을 초대하여 관찰함으로써 관계맺기를 시도한다는 점에서는 점수를 줄 수 있다. 그러나 살펴보면 그것이 우리나라 과거시험의 변종임을 알 수 있다.

 

    선비스타일은 지속적으로 대칭을 이루면서 관계맺기를 시도한다. 공간은 닫혀 있으면서 열려 있다. 기능과 장식은 최대한 배제되어 있다. 요즘 시크하다는 말이 유행인데 잘못 알려져 있다.

 

    원래는 가난한 프랑스 예술가의 푸근한 니트웨어 같은 것인데 빨래나 다림질을 안 해도 된다는 장점이 있다. 한국에서는 시큰둥한 도시적 이미지로 되어 있는데 원래 선비 스타일이 그러하다.

 

    선비는 야단스럽지 않고 시큰둥한 사람이다. 한국의 건축이나 옷이나 가구나 인테리어나 패션은 모두 시큰둥한 스타일이다. 꽃병에는 꽃이 꽂혀 있지 않는게 한국식 스타일이다. 물론 아는 사람만 아는 거다.

 

    꽃을 꽂을 수 있다는 가능성에 점수를 주는 거다. 거기에 방향성이 있다. 무엇을 꽉 채우거나, 알록달록하게 해서 주의를 끌거나, 손에 꼭 맞거나, 입에 사르르 녹거나 한 것은 정답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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