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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김동렬*
read 8124 vote 0 2012.10.21 (18:21:13)


존재가 의식을 규정한다.

 

음대진학을 위한 실기시험 심사위원들은 3초 안에 판정한다. 악기에 따라 다르겠지만 피아노라면 그렇다. 이에 학부모들이 항의를 해서 1분 30초쯤 억지로 들어주게 되었다. 아니 듣는척 하고 있다.

 

3초만에 판정하면 입시부정이라고 학부모들이 우겨서다. 연주는 들어보지도 않고 연주자 이름을 알아채서 점수를 매겼다는 거다. 근데 3초 안에 판정된다. 3초 이상 들어줄 실력자는 다섯손가락 안이다.

 

등수를 매기기 위해 조금 더 들어줄 뿐 기본적으로 음에다 자기만의 칼라를 넣을 줄 아느냐 모르느냐에 따라 결정되어 있는 것이다. 필자는 논객의 글을 대개 30초 안에 판단하곤 한다. 볼것있냐?

 

딱 하나만 본다. 관점이 있느냐다. 관점이 없으면 애초에 들어줄 필요가 없다. 보나마나 정해진 각본대로 자기네 진영논리를 읊조릴 뿐이다. 그냥 관점이 아니고 관점의 상대성이다. 포지션 잡기다.

 

씨름을 하려면 샅바를 잡아야 한다. 근데 99퍼센트의 선수들은 샅바를 안 잡는다. 무조건 탈락이다. 샅바를 잡아야 씨름이 되고 포지션을 차지해야 선수가 되고 관점을 잡아야 논객이 된다.

 

전국 노래자랑에서 노래를 시작하자마자 땡을 치는 것과 같다. 출발부터 잘못되었다. 근데 대개는 출발을 못한다. 어떻게든 출발만 성공하면 일사천리로 가는건데 첫단추부터 못 꿰는 것이다.

 

수험생의 90퍼센트는 출발 자체를 못한다. 연주자가 못되는 것이다. 음에다 자기 칼라를 못 입히고 그냥 건반만 누르는 거다. 원초적인 미달이다. 고수가 레슨을 시켜주면 어떻게 흉내는 살짝 낸다.

 

논객이라면 먼저 관점을 발견하고 그 관점의 상대성이라는 장(場) 안에서 절대성을 발견하고 그 절대성을 연역하여 자기 관점을 일으켜 세우고 비로소 그 관점에 비추어 논지를 전개해야 한다.

 

글은 그냥 쓰는게 아니고 실루엣처럼 멀리 관점이라는 라이트를 켜두고 거기에 사실을 대입하여 스크린에 비추어지는 실루엣을 따라 선을 그어서 이야기를 마치 베를 짜듯이 조직해 내는 것이다.

 

이런 구조 없이 그냥 조낸 떠드는 밥통들 이야기는 들어줄 필요가 없다. 마찬가지로 연주자가 되려면 이러한 절차가 필요한 거다. 레슨 받아서 대략 치는 것은 흉내에 불과하고 자기연주 아니다.

 

이러한 법칙은 소설가든 시인이든 화가이든 마찬가지다. 자기스타일을 완성해야 한다. 그 스타일은 그냥 스타일이 아니고 반드시 라이트와 소재와 스크린과 실루엣이 세트로 갖추어져야 한다.

 

왜 스타일인가? 불변하기 때문이다. 왜 불변하는가? 스크린에 비추어진 실루엣은 변해도 라이트와 스크린의 간격은 같기 때문이다. 두보가 천편의 시를 읊어도 일관되게 관통하는 정신이 있다.

 

이백이 백편의 노래를 해도 처음부터 끝까지 한 줄에 꿰어져 연결되는게 있다. 그것이 없으면 작가가 아니다. 김기덕 감독이 스무편의 영화를 만들어도 한 편의 영화인 거다. 주인공들은 아직 그곳에 있다.

 

모든 김기덕 영화는 끝이 없다. 해안선의 장동건은 아직 그곳에서 그러고 있고, 한강의 조재현은 아직 그곳에 있고, 나쁜남자의 한기도 그곳에 있고, 파란대문의 새장여인숙도 여전히 그곳에 있다.

 

봄여름가을겨울 그리고 또 봄이기 때문에 끝나지 않는 것이다. 대부분의 극은 문제와 해결의 대칭구조로 되어 있다. 이때 문제를 해결하려면 문제를 일으킨 원인제공자가 악당이어야 한다.

 

권선징악으로 가니 수준이 떨어진다. 세르반테스의 돈 키호테 이후 캐릭터 드라마가 나와서 다양한 인물유형이 하나의 팀을 편성할 뿐 이렇다할 악당이 없다. 그러므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므로 영화가 끝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주인공을 죽인다. 파이란의 강재를 죽이고 똥파리의 상훈이도 죽인다. 단지 머저리 감독이 결말의 방법을 못찾았다는 이유만으로 죽는다.

 

김기덕은 하나의 형을 만들고 그 형태가 반복된다는 사실을 보여주면서 이야기를 끝낸다. 봄여름가을겨울에서 다시 봄이 반복되므로 이야기는 끝나야 하는 것이다. 한 사이클이 완성되었으므로.

 

◎ 존재가 의식을 규정한다.

 

구조론은 이거 하나만 철저하게 알면 된다. ‘존재가 의식을 규정한다.’ 이 명제의 핵심은 인과율이다. 대부분 인과율을 틀린다. 아이큐 195라도 틀리고, 박사라도 틀리고, 천재라도 틀리고 다들 틀린다.

 

왜냐? 관점의 상대성 때문이다. 빛 속에서는 빛을 못 보고, 어둠 속에서만 빛을 볼 수 있다. 낮에는 보지 못하고 밤에만 별을 볼 수 있듯이. 항상 반대쪽을 봐야 진상이 보인다는게 관점의 상대성이다.

 

이건 특별히 훈련해야 한다. 대부분 자신이 관점의 장 안에 들어와 있다는 사실조차 자각하지 못한다. 인과율만 적용할줄 알아도 게임 끝이다. 원인이 무엇이고 결과는 무엇인지 1초만에 판단한다.

 

패턴이 있기 때문이다. 스타일이 있기 때문이다. 필자가 논객의 글을 30초만에 판단하듯이 (실제로는 3초 안에 판단, 30초 읽어줬다면 알만한 인물) 1초만에 판단해야 진짜다. 중요한건 방향이다.

 

어느 쪽을 보고 있는지만 보고 판단하는 것이다. 별은 빛이다. 별빛을 보려면 빛이 아닌 어둠쪽을 봐야 한다. 빛쪽을 보고 별빛을 봤다면 거짓말이다. 눈동자의 방향만 보고 판단해야 진짜다.

 

방향성은 포지션으로 나타난다. 대개 포지션만 보면 판단이 된다. 그 사람의 입에서 튀어나오는 언어는 볼 것이 없다. 강준만이 손학규 옹호한답시고 지어낸 궤변을 내 귀로 들어주랴? 말 되나?

 

리더의 포지션은 맨 앞이 아니라 맨 뒤다. 양치기 개는 맨 뒤에서 양떼를 몬다. 포지션만 보면 그 사람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알 수 있다. 강준만은 앞에서 양떼를 몰고 있으므로 가짜다.

 

상대성이론은 사실 절대성 이론이다. 광속의 절대성에 의해 위치와 시간의 상대성이 성립하는 것이다. 축 1의 절대성에 의해 대칭 2의 상대성이 성립하는 것이다. 이 구조가 있는지만 본다.

 

존재가 의식을 규정한다는 명제는 어떤 관문을 넘으면 일사천리로 전개가 되지만 그게 안 되면 절대로 안 된다는 거다. 자기스타일을 만들기 전까지는 아무리 이야기를 잘 해도 작가가 아니다.

 

애초에 출발을 잘해야 된다. 출발을 하려면 무엇보다 세팅을 해야 한다. 세팅은 여러 요소가 하나의 지점에 맞물리는 거다. 이게 첫 단추다. 시작이 반이 아니라 전부다. 첫 단추가 전체를 결정한다.

 

그러므로 인간들의 99퍼센트는 인과율을 잘못 적용한다. 좀 해내는 사람들도 반복하여 하다보니 우연히 하나가 들어맞게 되고 그 성공한 것을 복제하는 것일 뿐 창의하라고 하면 대개 못한다.

 

1초만에 가능한 것을 평생 해도 못한다. 반면 구조론을 알면 남들이 평생 해도 못하는 것을 1초만에 해낼 수 있다. 구조론 역시 스타일이다. 지금은 구조론이 어렵지만 스타일이 완성되면 쉽다.

 

<원인측> 대 <결과측>
전체 ↔ 부분
상부구조 ↔ 하부구조
에너지의 입력측 ↔ 출력측 
그릇 ↔ 물 
자리 ↔ 임자
결정 ↔ 집행
존재 ↔ 의식
형식 ↔ 내용 
질 ↔ 양
복잡 ↔ 단순
시작 ↔ 끝
머리 ↔ 꼬리 
존엄 ↔ 행복
어미 ↔ 새끼
바운더리 ↔ 구조물
시스템 ↔ 개체
세력 ↔ 개인
메커니즘 ↔ 사실
장(場) ↔ 요소

 

무조건 큰 놈이 원인이고 작은 놈은 결과다. 왼쪽이 큰 놈이고 오른쪽이 작은 놈이다. 방향성이 있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간다. 조금 더 세밀하게 들어가자면 극한의 법칙을 적용하면 된다.

 

중복과 혼잡을 배제하기다. 대개 주변을 돌아보면 원인이 결과를 낳고, 그 결과가 다시 원인을 낳고, 다시 원인이 결과를 낳고 이걸 백번 쯤 반복하다보니 헷갈려서 뭐가 원인인지 종잡을 수 없다.

 

이 경우 수학수업때 약분을 하듯이, 중간의 반복을 상쇄하고 맨 앞대가리와 맨 꽁무니만 보면 된다. 최소화 시키는 거다. 살을 제거하고 뼈대만 보는 거다. 원인은 절대로 하나다. 왼쪽이 정답이다.

 

죽어도 원인은 하나라고 확신해야 한다. 둘 다 원인이라든가, 상호작용을 한다거나, 경우에 따라 다르다는 식으로 얼버무리면 곤란하다. 반드시 상부구조가 있고 그곳에 원인제공자 한 넘이 있다.

 

◎ 방향성은 절대로 하나다.

 

대개 순환의 오류에 빠진다. 아비가 자식을 낳고 그 자식이 다시 아비를 낳고? 이런 식의 오류다. 틀렸다. 자식이 자라서 아비되는 건데 그건 애초의 그 아비와 다르다. 애초의 아비는 이미 할애비다.

 

아비가 자식을 낳을 뿐, 자식이 아비를 낳는 일은 없다. 자식이 아비된다고 해서 역전된 것은 아니다. 그래도 자식은 자식이다. 증손자를 봤다 해도 누군가의 자식이라는 사실은 절대로 불변이다.

 

문제는 이러한 구조론의 진리가 우리의 통념과 어긋난다는데 있다. 구조론은 냉철하게 말한다. 개천에서 용 안 난다고. 용천에서 용 난다면 실망한다. 개천에서 용나야 하는거 아냐? 계급차별하냐?

 

◎ 용천에서 용난다. 
◎ 용 나는 곳이 용천이다.

 

그렇다. 구조론은 인간차별한다. 새누리떼는 여기서 인간대접 못 받는다. 아주 벌레취급을 해 준다. 차별해도 되냐고? 정당한 분별이다. 개천에서 용이 났다면 사실은 그곳이 용천이었다는 증거다.

 

무엇인가? 양반의 자식이 양반되고 상놈의 자식은 상놈된다. 콩심은데 콩나고 팥심은데 팥난다. 다만 그게 상놈이라고 믿은게 착각이다. 겉보기등급에 홀리지 말라. 알고보면 그 사람이 양반이다.

 

양반이라고 간판을 단 놈이 상놈이다. 이게 구조론이다. 양반 속에 상놈있고, 상놈 속에 양반있다. 뒤섞여 있는 것은 아니다. 진상을 보면 양반은 양반, 상놈은 상놈으로 확실히 구분되어 있다.

 

단 그것은 과거완료형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이다. 로열제리를 먹는 벌이 여왕벌이다. 아무 벌이라도 상관없다. 로열제리를 먹으면 그 벌이 여왕벌이다. 일벌은 아무리 노력해도 여왕벌이 될 수 없다.

 

구조론으로 보면 깨달아서 태어난다. 노력해서 깨닫는거 없다. 이미 태어나 버렸다고? 거듭 나면 된다. 가능하다. 상부구조가 있으니까. 관계가 바뀌면 자궁이 바뀌고 거기서 깨달아 태어난다.

 

열심히 수행을 해서 깨닫는게 아니고, 누구라도 총을 쥐면 깨달음이다. 총은 그냥 나눠준다. 구조론은 공짜다. 근데 어렵다고? 우리가 스타일을 만들지 않아서 그렇다. 세팅이 덜 되어 있다.

 

구조론 스타일이 보급되면 초딩도 1초만에 깨닫는다. 구조론은 총은 완성되어 있는데 아직 사격술이 보급이 안 된거다. 총은 혼자 쏠 수 있지만 사격술은 혼자 되는게 아니다. 사격은 팀플레이다.

 

◎ 구조론은 총이다. 총을 습득하면 누구나 깨달을 수 있다.
◎ 총은 있는데 사격술이 없다. 스타일은 우리가 만들어야 한다.

 

조총도 구스타프 아돌프의 밀집사격술과 오다 노부나가의 3단계 사격술이 실전에서 완성되는 데는 짧게는 오십여년, 길게는 수 백년 걸렸다. 그래도 약점이 있어서 구스타프 아돌프도 진 적이 있다.

 

메메드 2세가 비잔티움을 때려부술 때 쏜 우르반 대포는 하루에 7발 밖에 못 쐈다. 대포가 중요한 역할을 하긴 했지만 실제로는 압도적인 군사력으로 이긴 거다. 8만명 대 7600명의 싸움이었다.

 

근데 말이다. 한 번 방향이 정해졌고 그쪽으로 계속 갔다. 메메드 2세가 콘스탄티노플 성채를 때려부순지 불과 100년 후에 돈 키호테는 세상의 웃음거리가 되었다. 시대가 완전히 바뀐 것이다.

 

돈 키호테가 기사도 이야기를 너무 읽어서 맛이 갔다고 되어 있지만 사실은 중세의 기사가 사라진 것이 그 직전의 일이었던 것이다. 물정 모르는 산초 판사가 홀려서 나귀타고 따라갈만 했다.

 

1453년 5월 29 콘스탄티노플 함락 - 1547년 9월 29일 세르반테스 탄생. 근데 아직도 세상 바뀐 줄 모르고 풍차를 향해 돌진하는 박근혜들 있다. 우르반의 대포소리가 봉건시대를 끝장낸 것이다.

 

◎ 구조론 - 원래 왕자로 태어나야 한다.
◎ 보통생각 - 열심히 일해서 왕자까지 올라가야 한다.

 

구조론은 원래 왕자로 태어나야 한다는 거다. 그런데 이렇게 말하면 화를 낼 것이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라. 왕자가 뭐지? 졸개를 거느리면 왕자다. 팔로워를 3천명 거느리면 트위터 왕자다.

 

아니라고? 어느 네티즌이 박원순 시장에게 위험한 공중전화부스에 대해 제보했더니 바로 응답이 왔다고 한다. 말끔이 해결되었다고. 왕자대접을 받은 거다. 원래 박원순과 끈을 가져야 한다.

 

그 끈은 왕자만의 끈이다. 말하자면 빽이다. 근데 말이다. 이제 트위터리안은 모두 박원순 빽을 가졌다. 억울한 일은 트위터로 제보하면 박시장이 해결해준다. 이런 식이다. 메커니즘이 그렇다.

 

왕자라는 단어에 집착하지 말라. 초기세팅이 안 되면 절대로 안 된다는 본질을 수용하라. 첫 단추를 못 꿰면 시인이 될 수 없고, 작가도 될 수 없고, 피아니스트가 될 수 없다. 노력해도 안 된다.

 

가끔 어떤 것을 천 번만 반복하면, 혹은 몇 만 시간 반복해주면 근육에 길이 나서 뭐가 된다는 식으로 말하는 사람 있는데 대개 헛소리다. 그것도 될 사람만 되는 거다. 이런 내용의 책이 있다고.

 

원래부터 트위터를 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조중동 보는 밥통들은 절대 못한다. 그들은 태생부터 왕자가 아니다. 세팅이 안 되어 있다. 소통의 시스템 안에 들어와 있는 진보적 네티즌만이 왕자다.

 

무기를 갖추는 순간, 시스템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누구나 왕자다. 새로 태어난다. 존재가 바뀐다. 왜? 상부구조가 있으니깐. 자궁이 있으니깐. 존재가 고정되어 있다는 편견을 깨부수라.

 

◎ 존재를 바꾸라. 관계를 맺으면 존재가 바뀐다.

 

열심히 해서 성공하던 시대는 지났다. 성공해놓고 열심히 하는 시대가 되었다. 물론 한국은 아직 멀었지만. 미국만 해도 멋진 아이디어만 있으면 성공할 수 있다. 일단 성공해놓고 일을 시작한다.

 

미국은 아이디어를 제시하는 순간 이미 성공한 거다. 게임끝. 그 아이디어는 모두 끈에서 나온다. 그 끈이 통속적인 권력의 끈, 인맥의 끈은 아니다. 신과의 소통, 자연과의 소통에서 나온다.

 

시대정신과의 민감한 상호작용에서 나온다. 자연의 깊은 신음소리를 들어낼 수 있는 민감한 촉수야말로 그대의 진정한 끈이다. 이들 여러 자원을 하나의 지점에 연결해야 진짜배기 반응이 온다.

 

◎ 노력해야 창의한다 X
◎ 창의해야 노력한다 O

 

거대한 방향전환이다. 구조론의 방향성은 기존의 일반화된 사회적 통념, 윤리, 상식, 모럴, 관습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그 때문에 여러분은 돈을 벌 수 있다. 보통사람들과 반대로 하면 된다.

 

다들 잘못된 방식으로 사고하므로 그것을 역이용하면 된다. 천재도 연역을 못하고, 박사도 인과율을 거꾸로 적용하고, 아이큐 195도 관점의 장이 없으므로 여러분은 이 허점을 파고들 수 있다.

 

◎ 관점의 장이 없으면 천재라도 무조건 틀린다.
◎ 간혹 맞는 경우도 알아서 맞는게 아니고 학습된 경험을 갖다댄 거다.
◎ 경험한 적이 없는 새로운 상황을 만나면 반드시 삑사리를 낸다.
◎ 이러한 허점을 이용하면 크게 성공할 수 있다.

 

경마장을 예로 들겠다. 경마꾼들 중의 20퍼센트는 개념없이 아무 말이나 베팅한다. 좀 아는 꾼들도 베팅하는 여러 조합 중에 한 두 개는 집중해서 판단하고 나머지는 그냥 피아노를 쳐버린다.

 

주로 복승식을 하므로 관심을 둔 한 마리를 대가리로 놓고 나머지 조합을 모두 사버리는 거다. 단승식을 해야 진짜 경마가 되는데 그러려면 말의 수준이 높아야 한다. 모두 명마여야 한다.

 

한국은 다 똥말이므로 단승식이 안 된다. 복승식을 하니 엉터리 베팅이 된다. 그러므로 대략 30퍼센트가 눈먼 돈이다. 집중하면 이 눈먼 돈을 딸 수 있다. 단지 합리적인 베팅만 해도 승산있다.

 

그런데 왜 안되냐구? 세금 때문이다. 각종 세금과 상금, 경비 등의 명목으로 국가와 경마장이 가져가는 돈이 대략 25퍼센트다. 점심값과 교통비를 포함하면 30퍼센트는 떼놓고 생각해야 한다.

 

무엇인가? 경마장에 눈먼 돈이 30퍼센트 있는데, 경마를 아무리 열심히 해도 이래저래 떼이는 돈이 30퍼센트 되므로 더하고 빼면 꽝이라는 거다. 완벽하게 해도 돈을 딸 수 없는 구조다.

 

그런데 말이다. 더하고 빼고 30퍼센트에서 승률을 1퍼센트만 올리면? 경마장 돈을 쓸어담을 수 있다. 물론 현실적으로는 배팅액수 제한이 있기 때문에 불가능하지만. 말하자면 그렇다는 거다.

 

1퍼센트 모아서 언제 성공하냐 싶지만 바둑기사도 1퍼센트씩 모아서 반집승을 얻어낸다. 딱 반집만 이기면 되는데 무리할거 있나? 50퍼센트, 60퍼센트 하려니 어렵지 딱 1퍼센트만 올리자면 쉽다.

 

사회 어느 분야든 대개 1퍼센트 싸움이다. 간발의 차이로 승부가 난다. 구조론을 공부해서 승률을 1퍼센트만 올려도 성공한다. 물론 현장에서는 성공과 실패가 교차하겠지만 확률로 보면 그렇다.

 

구조론은 확률로 말한다. 설사 예측이 빗나가도 확률범위 안으로 갔으면 맞은 거다. 구조론은 장기전이기 때문이다. 지든 이기든 상대의 대응을 끌어내어 데이터를 축적함으로써 확률을 올릴 수 있다.

 

전투에서 승패가 중요하지 않다. 지든 이기든 전투경험을 쌓았으므로 전체 전쟁의 승률은 조금 올라간 거다. 적의 위치와 전력을 확인했으므로 대책을 세울 수 있다. 전투를 져도 전쟁은 이겨낸다.

 

방향성이 중요하다. 보통사람의 귀납적 사고를 버리고 구조론의 연역적 사고로 방향을 바꾸기만 해도 성공할 수 있다. 일단 확률이 올라간다. 근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확률을 못믿는다.

 

1퍼센트 확률을 모아서 언제 백퍼센트 만드느냐는 식이다. 그래서 방향성이다. 방향성은 자투리 확률이 모아지는 방향으로 기동하는 거다. 방향이 틀리면 확률이 수렴되지 않고 확산되어 실패다.

 

◎ 구조론은 확률을 수렴하고 일반은 확률이 확산된다.

 

인터넷 사업을 해도 ‘질, 입자, 힘, 운동, 량’ 중에서 보통 쉽게 아이디어를 낼 수 있는 양의 사업을 한다. 질쪽으로 갈수록 아이디어 내기 어렵고 양쪽으로 갈수록 아이디어 내기 쉽기 때문이다.

 

질은 세팅이고 세팅은 여러 자원을 하나의 축에 꿰어야 하므로 그만큼 하방경직성이 생겨서 아이디어 창안이 안 된다. 반면 양은 전체가 한 줄에 연동되지 않고 낱낱이 쪼개져 있으므로 쉽다.

 

이걸 변조하고 저걸 바꾸어도 양은 탈이 안 난다. 그러므로 일제히 그쪽으로 달려간다. 대개 반짝반짝 하는 아이디어로 판매업을 한다. 이때 슬쩍 방향을 바꾸어 반대쪽으로 가면 성공이 보장된다.

 

양의 방법은 쉽게 성공하지만 좀 되겠다 싶으면 포털사이트가 뺏어간다. 결국 남 좋은 일 시킨다. 중간에서 착취를 당한다. 갑이 되어야 한다. 질의 포지션에 서야 갑이 되어 타자를 지배하게 된다.

 

일단 많은 회원을 유치하고 그 다수를 컨트롤하는 기초기술을 축적하는 것이다. 그냥 기술 아니고 애초에 다수를 상대하는 기초를 획득해야 한다. 이 경우 많은 실패를 해도 나중에 자산이 된다.

 

이 방법은 먼저 자원을 획득하고 다음 기술로 그 자원을 묶어내는 방식이므로 시간이 걸린다. 오래 못 버티면 힘들어지는 거다. 그래도 그 방향으로 가야 성공한다. 모든 실패가 자산이 된다.

 

인류는 70억이다. 우리는 70억짜리 프로젝트를 하고 있다. 이 방향으로 가야 한다. 70억이라는 자원을 모두 활용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제작한다. 시행착오도 있겠지만 조금씩 확률을 올려간다.

 

대부분 쉬운 목표를 세운다. 좁은 범위에 집중하는 거다. 적은 숫자를 컨트롤하는 기술을 정밀하게 만들려고 한다. 이 경우 기초기술이라도 헛된 거다. 극소수의 부자들만 상대하는 전문점 된다.

 

100명의 세계적인 부자에게 100억원씩 받기보다, 70억 전세계인에게 1원씩 받는게 낫다. 100억원 지출은 한번이지만 1원지출은 계속되기 때문이다. 1원씩 받아도 매일 1원씩 받으면 큰 돈이 된다.

 

바운더리를 넓게 잡는게 질이다. 첫 한 걸음을 내딛더라도 인류를 대표하는 한 걸음이어야 한다. 닐 암스트롱처럼. 가장 높은 곳에서 시작하여 가장 큰 낙차를 바라보아야 한다. 신의 눈높이로.

 

절대주의냐 상대주의냐다. 구조론은 절대주의다. 상대주의로 가면 어떤 행동을 하든 반드시 상대방의 대응행동을 불러 일으키므로 성과가 상쇄된다. 앞으로 남고 뒤로 밑지는 장사가 되는 거다.

 

구조론은 기승전결의 기에 서므로 절대다. 상대의 대응행동이 불가능하다. 아버지가 자식에게 물려주면 그것을 자식은 손자에게 물려준다. 아버지에게 맞서 대응하지 않고 손자에게로 연속한다.

 

김기덕이 영화가 그렇듯이 한 방향으로 배달하는 것이다. 이것이 절대주의다. 기에 설때만 그것은 가능하다. 반면 대부분의 권선징악 영화들은 악의 원인제공자가 선의 주인공이 마주보고 있다.

 

관점의 장(場)이 제시되어야 하며 그 장(場) 안에서 빛을 찾으려면 그림자쪽을 보는 관점의 상대성이 적용되어야 한다. 날개가 대칭되어 마주보고 상대성을 이루므로 축은 절대성을 획득한다.

 

◎ 관점의 장은 절대적이다.
◎ 절대성은 한 방향을 바라보며 사이클이 반복된다.
◎ 관점의 장 안에서 선과 악은 상대적이다.
◎ 상대성은 마주보며 상쇄한다. 
◎ 절대성은 사이클이 있으므로 낳고 상대성은 마주보고 상쇄된다.

 

상대성의 딜렘마는 주인공이 멋지게 악당을 해치우려면 악당이 똑똑해야 하고 이 때문에 주인공은 찌질하고 악당은 멋잇게 되어 망하는 구조다. 연가시도 주인공과 정부가 멍청해서 재미반감이다.

 

◎ 마주보는 상대성의 딜렘마 – 주인공은 찌질하고 악당은 영리하다. 
◎ 일방정렬 절대성의 통쾌함 – 주인공은 고수이고 악당은 하수이다.

 

인간은 99퍼센트 인과율을 거꾸로 적용한다. 귀납적 사고에 빠진다. 존재로 의식을 규정하는게 아니라 의식으로 존재를 규정하려 한다. 이 경우 선과 악이 구조 안에서 대칭되어 교착되고 만다.

 

어떤 하나의 구조가 바람의 세기에 따라 선도되고 악도 되는게 정답이다. 미풍이 불때는 동네깡패 하다가 강풍을 만나면 나라를 구하는 애국자가 되는게 정답이다. 선악은 바람의 세기가 만든다.

 

구조론은 차별한다. 양반은 양반이고 상놈은 상놈이다. 그러나 오해하지 말라. 누구는 양반이고 누구는 상놈이라고 찍는 것이 귀납이다. 구조는 누구든 우연히 양반 포지션에 서면 양반이라는 거다.

 

양반 상놈이 따로 있는게 아니고 바람이 정한다. 누구든 바람을 타서 양반역할을 하면 양반이고 바람에 굴복하여 명박짓을 하면 상놈이다. 그 상황에서 관계를 도출하게 되며 바로 그것이 존재다.

 

존재가 고정되어 있다고 착각하는 것이 귀납적 사고다. 존재는 존재의 자궁인 상부구조에서 관계맺기에 따라 바로바로 도출된다. 강준만은 원래 양반이었지만 바람을 타지 못해서 상놈이 되었다.

 

강준만이 양반이었을 때는 양떼의 뒤에 포지셔닝했고, 상놈이 된 지금은 양떼를 앞에서 이끌고 있다. 이 경우 양떼는 무조건 반대로 튼다. 축이 높으면 반대로 가는 오뚝이의 원리 때문이다.

 

존재는 상부구조의 관계맺기에 의하여 즉석에서 도출된다. 왜인가?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은 주로 반복되는 것이다. 같은 일이 반복된다. 그런데 구조론에서 다루는 일은 항상 새로운 일이다.

 

반복되는 것은 안 쳐준다. 그것은 복제된 것이기 때문이다. 구조의 자궁은 즉석에서 조달된다. 갑자기 만들어지는 것이며 구조론이 그것을 분석한다. 시골에는 지역 커뮤니티가 만들어져 있다.

 

그 커뮤니티는 오랜 세월의 관습이 축적되어 이루어지는 거다. 인터넷에서는 즉석에서 관계가 생성된다. 면발과 해물이 만나는 순간 짬뽕이 탄생하는 것이다. 그 순간에 창조된다. 그게 진짜다.

 

반복적인 사고에서 벗어나 창의적인 사고를 해야 한다. 경험에 의존하지 말고 즉석에서 포지션을 조합해야 한다. 시뮬레이션을 해야 한다. 주로 정치, 예술, 패션분야에서 즉석요리가 만들어진다.

 

증권시장에서는 대선주라는 것이 갑자기 생겼다. 원래 없었다. 박근혜주, 안철수주, 문재인주는 들어봤는데 김두관주는 금시초문이다. 근데 갑자기 김두관주라는 것이 발생했다. 이런게 진짜다.

 

반복되는 것은 남들도 다 알고 있다. 그곳에서는 승부가 안 난다. 일등주를 잡아라는 말은 널리 알려진 증권가 격언이다. 남들이 다 샀다. 이제는 황소 등에 붙어가는 이등주를 잡아야 한다.

 

일등주냐 이등주냐의 구분은 구조론만이 할 수 있다. 그냥 2등 한다고 2등주는 아니다. 남이 자리 깔아놓으면 잽싸게 뛰어드는 회사가 2등주다. 2등주는 의사결정단계를 생략하므로 빠르다.

 

1등주는 반드시 장인의 딜렘마에 빠진다. 장인은 완벽주의를 주장하며 시행착오를 두려워 한다. 그런데 이러한 리스크 부담은 원래 1등주에만 있다. 뒤따라 가는 얌체는 원래 리스크를 피한다.

 

그렇다. 구조론의 방향성은 사회 일반의 통념과 다르다. 권선징악의 대칭논리와 다르다. 서로 마주보지 않고 한 방향으로 연속된다. 그러므로 맨 앞에 오는 기관차만 문제삼고 뒤는 봐준다.

 

기관차만 리스크 부담을 떠안고 뒤에 가는 객차는 편하게 묻어간다. 기관차만 잘 만들면 된다는게 구조론이다. 기관차가 객차를 규정한다. 형식이 내용을 규정한다. 자궁을 잘 세팅하면 된다.

 

인간들의 99퍼센트는 애초에 관점의 장이 없으므로 절대성의 축과 상대성의 대칭을 장악하지 못한다. 그들은 마주보고 교착된다. 그들은 빛에서 빛을 찾고 어둠에서 어둠을 찾다가 실패한다.

 

빛에서 어둠을 찾고 어둠에서 빛을 찾아야 한다. 반대쪽을 봐야 진상이 보인다. 심사위원들이 99퍼센트를 3초 안에 탈락시키듯이 99퍼센트는 3초 안에 오발탄을 쏜다. 틀릴 넘은 시작부터 틀린다.

 

그런데도 그러한 허점이 잘 보이지 않는 이유는 인간들이 대개 반복되는 행동을 하기 때문이다. 선배들에게 얻은 메뉴얼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현장에 투입해 놓으면 바로 허당임을 들킨다.

 

구조론은 진짜다. 구조론은 총이다. 총은 존재다. 총만으로는 부족하고 사격술을 완성해야 한다. 혼자서는 안 되고 함께해야 한다. 스타일을 만들어야 한다. 세팅만 되면 세상은 바로 바뀐다.

 

물론 그래도 적들은 반격한다. 한 동안은 일진일퇴의 공방이 벌어진다. 그러나 가능성만 보여줘도 성공이다. 작가는 완성된 희곡이 아닌 세 페이지 짜리 시놉만 보여주면 헐리우드에서 전화온다.

 

헐리우드에는 환상적인 작가팀이 뒤를 받치고 있으므로 시나리오를 완성해 놓으면 더 화를 낸다. 다 뜯어고쳐야 하기 때문이다. 시드니의 오페라 하우스를 세부적으로 상세히 설계하면 안 된다.

 

어차피 재시공해야 한다. 실제로 스케치 한 장으로 설계공모에서 우승했다. 기특한 아이디어 하나만으로 성공한 거다. 그래야 진짜다. 어차피 집단지능으로 승부보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한국은 헐리우드에 있다는 환상의 작가팀이 없기 때문에 아이디어만 들고 가면 당연히 퇴짜 맞는다. 당장 촬영 들어갈 수 있는 완성된 시나리오를 요구한다. 그건 한국이 후진해서 그런 거다.

 

아이디어만으로 성공해야 진짜고, 성공해놓고 노력해야 진짜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허접한 베끼기 혹은 중국식 짝퉁이다. 존재가 먼저다. 이것이 방향이다. 사이클이 반복되며 뒷사이클이 앞사이클을 밀어올린다.

 

왜 강준만은 틀렸는가? 앞에 서서 대중과 마주보기 때문이다. 마주보면 교착된다. 교착되면 상쇄된다. 설사 소기의 성과를 올리더라도 결국 무효가 된다. 대중과 같은 방향을 보아야 한다. 뒤에 서야 한다.

 

이런건 1초 안에 판단된다. 그래야 정답이다. 3초 이상 듣고 있으면 심사위원 자격이 실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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