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론은 진화론이다. 동시에 창조론이다. 모든 아이디어와 예술과 기계와 장치와 조직과 시스템을 창조하는데 구조론이 사용된다. 하느님이 세상을 창조해도 구조론을 쓸 수 밖에 없다.
한편으로 구조론은 진화론이다. 왜냐하면 모든 존재는 에너지에 의해서만 의미를 획득하고 독립적인 존재로 완성되며 그 에너지는 상부구조에 의존하고 그 방법으로 망라되기 때문이다.
무엇인가? 창조나 진화의 단위가 되는 구분기준 곧 종은 없다는 이야기다. 그것은 인간의 관념이다. 생명이 처음 출현한 후각자도생한게 아니고 지구생명 전체가 하나의 생태계를 이루어 진화해온 것이다.
진화의 주체는 종이 아니라 생태계 전체다. 그러므로 창조해도 종이 아닌 생태계가 창조된 것이다. 만약 종이 창조되었다면 애프터 서비스가 따라야 한다. 창조론은 창조후 신종출현 방지론이 되어야 한다.
창조론은 이론적 완결성이 없다. 그러므로 론이 아니다. 진화론 역시 종의 진화가 아닌 생태계 진화가 기준으로 되어야 하며 이에 구조론의 상호작용론이 응답하고 있는 것이다.
필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직관이다. 세네카가 말한 에트루리아인의 사고방식이 창조론과 유사하다는 말씀. 그리고 보수꼴통의 사고방식 역시 창조론과 유사하다. 현재진행 개념이 없다.
전체가 아닌 파편화된 부분으로본다는 거. 생각할거 없다. 세상 모든 머저리들은 에트루리아인의 사고에. 빠져 있다. 패턴이 같다. 이천 년 전에 세네카는 이미 구조론적인 사고를 했던 것이다.
연역으로 말하면 메커니즘이 없으면 무조건 가짜다. 현재진행이 없으면 가짜다. 전체가 아니면 가짜다. 특정 시공간의 지점을 찍으면 가짜다. 예컨대 언제 어디서 깨달았다면 가짜다.
연역이 안 되면 가짜다. 하부구조 없고 다음 단계가 없으면 가짜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를 직관적으로 안다. 반응하기 때문이다. 물론 반응하도록 게임을 팽팽하게 긴장시키는 것은 우리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