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미와 가치와 미학은 조각난 부스러기의 불완전한 존재가 짝을 만나고 톱니처럼 맞물려 스스로를 완성함으로써 더 큰 세계로 나아가는 과정이다.
진정 그것은 사랑이다. 사랑은 사이에 있다. 자유는 떠남과 만남 사이에 있고 사랑은 만남과 소통 사이에 있다. 사이에서 이어간다.
모든 팔팔하게 살아있는 것은 어떤 것과 다른 것의 사이에 있다. 그래서 위태롭다. 위태롭게 이어간다. 이어가며 흐름을 만든다. 그 흐름은 증폭된다.
깨달음은 자유를 낳고 자유는 사랑을 낳고 사랑은 소통을 낳고 소통은 기쁨은 낳고 그 기쁨은 증폭된다. 울림과 떨림으로 증폭된다. 그리고 전파된다.
기쁨이 전파될 때 부분과 전체는 통한다. 한 사람의 온전한 깨달음이 온 세상의 깨달음이 되고 한 사람의 온전한 사랑이 온 세상의 사랑이 된다.
한 남녀가 온전한 사랑을 이루는데 성공했다면 인류는 성공이다. 한 사회가 이상적인 공동체를 이루는데 성공했다면 21세기는 성공이다.
한 사람이 온전한 깨달음을 이루었다면 문명은 성공이다. 하나가 구원될 때 모두가 구원된다. 부분과 전체는 서로 통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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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단의 지식체계는 스승과 제자가 전수하고 전수받는 구조다. 레포트와 논문과 리뷰로 지식을 축적하는 시스템이 정해져 있다. 역할이 나누어져 있다.
깨달음의 체계는 소통의 체계다. 강단의 지식체계와는 진리와 대면하는 지점이 다르다. 스승도 제자도 필요하지 않다. 전수가 아니라 소통이다.
지식이 절대성의 세계라면 깨달음은 상대성의 세계다. 소통은 상대가 있는 게임이다. 그러므로 다른 방법을 사용한다. 완전히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
깨달음의 체계에는 거쳐가는 중간단계가 없다. 중간에서 거간하는 중간상인이 없고 브로커가 없고 중매쟁이가 없고 스승이 없고 선배가 없고 고참이 없다.
깨달음은 사이의 문제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그 사이에 가짜가 끼어들 여지가 없다. 깨달음의 체계는 온전한 하나가 온 세상과 바로 통한다.
선배되고 고참되고 스승되면 진짜가 아니다. 선배로 후배에 얽매이고 고참으로 신참에 붙잡히고 스승으로 제자에 구속되는 즉 참 자유가 아니다.
무대 위의 연주자와 객석의 청중 사이에는 아무 것도 없어야 한다. 전람회에 전시된 작품과 관람객의 눈 사이에는 그 어떤 방해물도 없어야 한다.
스승도 없고 선배도 없고 고참도 없어야 한다. 박사도 없고 교수도 없고 해설자도 없어야 한다. 끼어드는 모든 것이 소통의 방해자가 될 뿐이다.
완성된 종은 소리를 낸다. 완성된 꽃은 향기를 낸다. 모든 완성된 것에는 아우라가 있다. 자유의 소리과 사랑의 향기와 기쁨의 아우라가 있다.
중간에 끼어드는 모든 것은 그 소리와 향기와 아우라의 울림과 떨림을 차단하는 방해자가 될 뿐이다. 그 자유와 사랑과 기쁨의 증폭을 방해할 뿐이다.
한 거룩한 깨달음이 온전한 자유에 다다르면 그 자유는 사랑으로 소통으로 기쁨으로 이어진다. 그 기쁨은 증폭되어 온 세상에 전파된다. 바로 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