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록
read 4655 vote 0 2004.08.04 (17:58:10)

범속한 인간이 있다. 이는 논외다.
고상한 척 하는 인간이 있다. 이들이 속물이다.
고상한 인간이 있다. 우리가 도달하여야 할 모범이다.

상승하려는 노력을 멈추어서 안된다.
모든 성벽을 허물고 하나의 큰 그릇을 취하는 것이다.
모든 울타리를 허물고 최후에 남는 커다란 울타리 안에서 하나되는 것이다.

소인은 라이벌과 대결하는 사람이다.
속물은 자신에게 콤플렉스를 준 대상과 승부하는 사람이다.
천하인은 신과 대결하는 사람이다.

신 앞에서의 단독자이다.
독립적인 개인으로 우뚝서야 한다.

답은 미학에 있다.
미추를 구분하는 눈을 얻을 때 인간은 상승한다.
그곳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깨달아야 한다.

요즘은 웰빙이라고 한다.
참된 삶이어야 한다.
무엇이 참된 삶인가?

최고의 가치는
최고의 사람과 친구가 되는 것이다.

최고의 사람은?
미추를 구분할 수 있는 사람이다.

미추를 구분한다는 뜻은?
미(美)는 통하는 것이요 추(醜)는 막히는 것이다.

막힘없이 두루 통하는 사람이 있다.
오직 신과 대결하는 사람이 있다.
세계시민이 있다.
천하인이 있다.
보편인이 있다.

이런 이야기 하면 웃는 사람 많다. 그래서? 미추를 구분하는 눈을 얻었다 치고? 그래서? 깨달았다손 치고. 그걸 어떻게 증명할 수 있지? 그래봤자 자기만족에 불과하지 않은가?

선(禪)이니 화두니 깨달음이니 그것이 다 변형된 형태의 나르시시즘에 불과한 것 아닌가? 내가 남보다 낫다는 혼자만의 착각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깨달은 것으로 학회지에 논문이라도 발표할 셈인가? 제자를 모집해서 사이비 교단이라도 만들 셈인가? 그것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다는 말인가?

다른거 없다.
우리는 상승하기를 원한다.
우리에겐 상승해야할 목표가 있다.
상승할 수 있다.

상승의 증거는 하나 뿐이다.
그것은 상승한 사람과 친구가 되는 것이다.

깨달은 사람은 깨달은 사람을 알아본다.
자연히 친구가 된다.

우리가 다산을 높이 평가하는 이유는 그가 초의의 친구였기 때문이다. 또 우리가 초의를 높이 평가하는 것은 그가 추사의 친구였기 때문이다. 또 우리가 추사를 높이 평가하는 것은 그가 그 모두의 친구였기 때문이다.

추사는 대안목이었다. 그와 친구가 된다는 것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모두에게 영광이었다. 100명의 제자를 둔다한들 한 사람의 참된 친구를 얻지 못하면 의미없다.

라즈니쉬나 숭산 따위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그들에게는 참된 친구가 없기 때문이다. 스승이 되는 즉 친구를 잃는다. 친구를 얻으려면 스승의 위치에서 내려와야 한다.

신과 친구가 되지 않으면 안된다. 역사와 친구가 되지 않으면 안된다. 진리와 친구가 되지 않으면 안된다. 문명과 친구가 되지 않으면 안된다.

친구가 된다는 뜻은? 한 편이 된다는 뜻이다. 역사의 편에 서지 않으면 안된다. 진리의 편에 서지 않으면 안된다. 사회적 약자의 편에 서지 않으면 안된다. 문명과 그 진보의 편에 서지 않으면 안된다. 언제라도 신의 편에 설 수 있어야 한다.

그럴 수 있는 사람이 천하인이다.

의존적인 부족민에서 벗어나, 그 차단되고 폐쇄된 부족의 동굴에서 떨치고 일어나 독립적인 개인으로 우뚝 설 수 있어야 한다.

당신이 그 막히고 차단된 동굴을 떠나지 않는 한, 편견의 동굴, 고정관념의 동굴, 혈연과 지연과 학벌의 동굴, 계급과 성별과 인종으로 칸칸이 막히고 차단된 그 동굴을 떠나지 않는 한 신과 친구가 될 수 없다.

교양을 익혀야 한다. 교양은 곧 미학에 관한 교양이다. 미학을 알아야 한다.

미학은 서로 다른 둘이 서로 간섭하는 문제에 관한 것이다. 인간이 혹은 자연이 어떤 사태에 개입하고자 할 때 미학의 문제가 성립한다.

젓가락 두 짝이 만나 한 쌍을 이루므로써 비로소 제 구실을 하듯 본래 불완전했던 둘이 만나 하나를 이루므로써 질적인 비약을 일으키는 경우가 있다.

자연이 아름다운 이유는? 별개의 둘이 있다. 그 중 하나가 다른 하나에 개입한다. 이때 받아들여지지 않는 부분은? 제거된다. 그렇게 제거되고 남은 부분은? 아름다울 수 밖에 없다.

왜 꽃이 아름다운가? 벌과 나비를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혹은 암술이 수술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서로 마찰하는 부분이 제거되었기 때문이다.

개입함에 있어서 불필요한 부분이 제거되고 남은 것이 미(美)다. 자연이 아름다운 이유는? 비와 바람과 서리와 이슬이 마찰하면서 불필요한 부분을 하나씩 제거했기 때문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도 마찬가지다. 너와 내가 만남에 있어서 불필요한 장애들은 제거되어야 한다. 무엇이 제거되어야 할 장애물인가? 편견과 고정관념과 온갖 차별의 표지들이 그 장애물이다.

예컨대 이런 거다. 어떤 사람이 남의 집을 방문한다 치자. 문이 열려져 있는 집에 불쑥 들어갈 수는 없다. 도둑으로 오인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문이 닫혀져야 한다.

닫혀진 문에 초인종을 눌러야 한다. 무슨 뜻인가? 상대방이 완전한 상태이어야 비로소 개입할 수 있다는 의미다.

교양은 무엇인가? 자신에 대한 타인의 개입을 허용하기 위해 본인이 스스로 완전한 모습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곧 타인에 대한 배려다.

만약 타인이 불완전한 상태에 있다면 그가 완전해질 때 까지 개입을 멈추고 기다려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또한 배려다.

왜 미학이어야 하는가? 그것이 인간의 본성이기 때문이다. 만약 당신이 지나가면서 우연히 어떤 대상을 목격하게 되었다 치자. 그 대상이 100의 완전에 미달하는 99의 상태라 치자.

단지 1이 부족해서 제대로 된 대접을 받지 못하는 그 장면을 목격한다면 당신은 그 1을 채워주고 싶은 참을 수 없는 욕망을 느끼게 된다.

당신은 사막에서 물을 찾듯이 지독한 갈증을 느끼게 된다. 그것이 인간이다. 신이 인간에게 두 손을 준 이유는 그러한 방법으로 타인에 개입하라는 뜻이다.

미학이란 무엇인가? 부당한 개입, 불필요한 간섭을 억제하고 완전한 개입, 순조로운 간여, 자연스러운 동화를 얻어내자는 것이다.

격식이 없이, 부담이 없이, 놀래키지 않고 자연스럽게 다가서기 위해서는 훈련이 필요하다. 마침내 그 어떤 것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경지가 있다.

신과 역사와 문명과 진리와 사회와 친구가 될 수 있다.
당신은 충분히 갈증을 느끼고 있다.

난 그런거 다 필요없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난 이렇게 살다 죽을래 하는 사람도 더러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식으로는 고립을 피할 수 없다. 동물원에 갖힌 오소리처럼 철책의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왔다갔다 하기를 반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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