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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7670 vote 0 2009.04.10 (11:26:20)

저는 할 이야기를 다 했으니까 지금 이야기는 자기만족을 위한 사족이 되겠지만 원래 내 글은 시작도 끝도 없이 계속 되는 글이기 때문에 읍내리님이 읽든 말든 하여간 계속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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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도 원래 네덜란드 북쪽 어둡고 습한 탄광촌에서 칙칙한 그림을 그리다가 -읍내리님과 비슷한 논리로- 철학자들이 모여서 밤새 노가리 깐다는 파리의 까페로 찾아간 것이다. 동생 테오에게 뜯은 몇 푼 가지고.

고흐가 파리행을 하지 않았다면 그냥 그렇게 끝났을 것이다. 읍내리님의 말씀은 파리행을 거부하는 고흐로 보인다. 까마득한 옛날부터 있었던 B급 문화와 상상력은 그냥 B급문화일 뿐이다. 누구도 관심갖지 않는.

빌게이츠가 찢어진 셔츠를 입고 돌아다니면서 최근에 그것이 주목된 것이다. 막걸리는 옛날부터 있었지만 일본에 수출된 것은 최근이다. 10년 전이라면 수출해도 팔리지 않는다. 왜? 문화가 다르니까.

명품가방이 상징하는 고급문화에는 ‘인격적인 수양을 닦은 사람만이 리더가 될 수 있다’는 철학이 반영되어 있다. 스티브 잡스의 텁수록한 수염과 청바지는 거기에 대해 ‘조까~!’ 한 방을 날려주는 것이다.

스티브 잡스는 인격적인 수양을 전혀 닦지 않은 사람이다. B급 문화의 부각은 스티브 잡스의 낮은 학력과 절대적인 관계가 있고 미셸 오바마의 여왕에 대한 무례는 그런 점에서 명백히 정치적 함의를 가진다.

딴지일보, 김어준, B급문화.. 명백히 정치적 의미가 있다. 그러나 거기서 끝났다. 더 이상의 세력화에는 실패한 것이다. 왜? 고흐가 파리행을 택하지 않았기 때문에. 추사가 옹방강을 면회하지 않았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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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내가 좋아서 그린다는 것은 무의미. 말리지 않는다. 새도 저가 좋아서 노래하고 여우도 저가 좋아서 굴을 파고 쥐도 저가 좋아서 삽질한다. 이 여인은 아마 핑크빛을 좋아하는 거다. 저가 좋아서 그런다는데 누가 말리랴.

그러나 이 여인이 핑크빛에 묻혀 사는 동안은 철학자와 대화할 기회를 얻지 못할 것이고 계속 핑크빛에 묻혀 살다가 그렇게 갈 것이다. 이 외에도 다양하다. 온 몸에 문신을 한 자도 있고 나체로 걸어다니는 자도 있다.

혀를 뱀처럼 두 갈래로 자른 이도 있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금속링을 끼웠는데 혓바닥에도 촘촘하게 끼웠다. 혓바탁에 백태가 하얗게 낀 것이 그리 건강해 보이지는 않더라. 다 제멋이 아니겠는가?

유비삼형제도 제갈량을 만나기 전에는 빛을 보지 못했다. 그냥 변방의 떠돌이 유협에 불과한 거다. 제갈량을 얻음으로써 명성이나 얻어 세력가에게 고용되려는 낭인이 아니라 독립적인 세력의 중심이 된 것이다.

유비가 제갈량을 얻었다는 것은 그저 머리 좋은 젊은 참모 한 사람을 얻은 것이 아니라, 낙양성이 불타자 강남으로 도피해 온 중원의 지식인 집단 전체의 지지를 끌어낸 것이다. 제갈량은 상징에 불과하다.

제갈량을 얻음으로써 여포, 동탁, 공손찬 등 한 칼 한다는 북방 무인세력과 원소, 원술, 조조, 손권 등 뿌리 깊은 귀족세력의 2각구도 밖에 지식인의 지지를 받는 제 3의 새로운 세력을 형성한 것이다.

여기서 중원에 난입한 북방무인세력이냐 뿌리깊은 귀족세력이냐 새로 떠오르는 지식세력이냐 하는 본질을 눈여겨 봐야 한다. 그냥 조조냐 원소냐 손권이냐 유비냐 하는 인물평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유비가 제갈양을 얻기 전에는 누구도 유비그룹을 세력으로 보지 않았다. ‘저 인간은 왜 여포에 붙었다가 조조에 붙었다가 원소에 붙었다가 간에 붙었다가 쓸개에 붙었다가 왔다리갔다리 하며 헛갈리냐?’ 이 정도였다.

그냥 호걸이네 의협이네 영웅이네 하며 조조를 비난하고 원소를 비웃어봤자 공허할 뿐이다. 대의와 명분을 따르지 않으면 안 된다. 한 뼘의 그림을 그리더라도 그 사람의 속에 품은 이상주의를 꺼내보이는 것이어야 한다.

사실 추사는 그림을 그리지 못한다. 내가 그리지 못하듯이. 그의 세한도를 쳐주는 것은 ‘그림은 똑 이렇게 그리렸다’ 하는 그의 네세운 바 이데올로기를 평가해주는 것이다. 깃발의 의미.

제갈량을 거부한 유비, 옹방강을 만나지 않은 추사, 추사없는 선비문화, 다산없는 초의, 졸라없는 세잔, 파리로 가지 않은 고흐, 혼자 놀던 김어준. 대통령 부인이 아닌 미셸의 여왕에 대한 무례. 아이폰 없는 스티브잡스.

그냥 B급일 뿐이다. 조앤 롤링이 억만권 책을 팔아도 노벨문학상은 없는 이문열이다. 꿰지 못한 구슬은 의미가 없다. 태평양 깊은 바다속에는 100조개의 꿰지못한 진주가 잠들어 있지만 의미없다.

약탈되어 남의 나라 박물관 지하창고에 50년째 잠들어 있는 우리 문화재가 슬프듯이. 앤디 워홀을 만나지 못한 바스키아는 그냥 거리의 낙서쟁이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은 예술이 아니다.

예술은 재능만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다. 좋다거나 즐겁다는 동물적 욕구의 충족만으로도 가능하지 않다. 세상을 바꾸는 디자인에 참여할 때, 21세기 문명의 리모델링에 참여할 때 한정해서 예술인 것이다.

세상을 바꾸는 기획에 참여하지 않고 그냥 ‘나는 이게 좋아’ 하는 것은 의미없다. ‘누가 물어봤냐고?’ 하는 대답을 들을 뿐이다. ‘나는 이게 좋아’가 아니라 ‘나는 이 깃발을 들고 쳐들어 간다’여야 한다.

‘용력을 과시하는 시골용사’에 그치지 말고 거침없이 중앙으로 쳐들어가야 할 것이다. 중앙에는 날고 긴다 하는 자가 지천으로 깔렸다. 그들과 적절히 동맹을 맺어야 할 것이다.

백화제방을 담아낼 수 있는 큰 정원, 백가쟁명을 담을 수 있는 큰 그릇을 이룰 때 까지. 그 정원이 없으면 백화도 꽃답지 못하고 그 그릇을 얻기 전에는 백가도 어수선할 뿐이다. 체계와 세력으로 가지 않으면 안 된다.

http://gujoro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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