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인 글입니다)
구조론은 자연에서 수학을 유도하는 과정을 해명하고 있다. 세상의 모든 존재는 ‘유도된 존재’이다. 막연히 그냥 존재하는 것은 없다. ‘원래부터 그렇다’는 따위는 없다. 모든 존재는 특정한 유도과정을 거쳐 그로부터 전개된 존재이다.
수학이라면 대수와 기하가 있다. 대수와 기하가 통한다는 사실은 진작에 알려졌다. 그렇다면 대수와 기하 둘 중 어느 쪽이 먼저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기하가 대수를 유도한다. 대수는 기하의 유도에 의해 전개되었다.
그렇다면 기하는 무엇이 유도하는가? 구조론이 유도한다. 기하란 무엇일까? 간단히 말하면 콤파스다. compass의 com은 한 몸으로 ‘합쳐진’ 것이고 pass는 ‘발’이다. 두 발을 하나의 몸에 합쳐놓은 것이 콤파스다.
합쳐진다는 것은 곧 맞물려 있다는 것이다. 작용 반작용에 따른 대칭과 평형의 원리를 성립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구조론이며 구조론이 유도하여 성립시킨 콤파스를 사용하여 평면의 종이 위에 전개해 놓은 것이 기하다.
도형은 자와 콤파스로 작도된다. 자는 콤파스의 두 발 중 하나를 별도로 분리하여 발췌한 것이다. 대수는 그 자에 새겨진 눈금이다. 인간이 수(數)를 인식하는 것은 그렇게 콤파스와 자를 거쳐 유도된 결과물로서의 수를 인식한 것이다.
우리가 사과 하나를 앞에 놓고 수(數) 1을 인식할 때 그 사과와 당신의 마음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콤파스가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그 콤파스의 한 발은 사과 한 개를 가리키고 나머지 한 발은 당신의 마음 속의 1을 가리킨다.
대수는 기하로 부터 유도되어 산술의 덧셈과 뺄셈으로 전개된다. 모든 수(數)는 콤파스의 한쪽 발이 가리키는 수이며, 우리가 마음으로 인식하는 수와 그 수가 가리키는 자연의 사물 사이에 보이지 않는 콤파스가 있다.
대수는 귀납이고 기하는 연역이다. 기하는 전체에서 부분을 보고 대수는 부분에서 전체를 본다. 기하는 콤파스 전체로부터 콤파스의 한쪽 발에 그려진 눈금의 부분을 보고 대수는 눈금의 부분에서 콤파스 전체를 본다.
대수는 1+1에서 2를 보고 기하는 2에서 1+1을 본다. 1+1이 콤파스의 두 발이면 2는 두 발을 통제하는 한몸이다. 전체에서 부분을 보는 것이 연역이고 부분에서 전체를 보는 것이 귀납이다. 자연의 질서에서는 연역이 먼저다.
연역과 귀납, 기하와 대수는 이렇듯 접근하는 방향이 다르다. 모든 존재는 유도된 존재이므로 유도과정을 따라 규명해야 한다. 유도과정으로 보면 기하가 대수를 유도한다. 그리고 기하는 구조가 유도한다.
기하의 본질은 마주보는 두 각이 X자로 맞물려 있음이다. 콤파스의 두 발은 하나의 꼭지점에 의해 서로 맞물려 있다. 그 맞물림이 구조다. 구조론은 기하를 유도하는 절차다. 자연에서 콤파스를 어떻게 얻어낼 것인가다.
대수는 눈금자이고 기하는 콤파스다. 수(數)는 자(尺)의 눈금에서 유도된다. 자는 콤파스의 두 발에서 유도된다. 자(尺)의 눈금 하나를 떼낸 것이 수(數)다. 콤파스의 다리 하나를 떼낸 것이 자(尺)다.
마찬가지로 천칭저울의 두 팔 중 하나를 떼내면 그것이 콤파스다. 구조는 저울에서 콤파스를 유도하는 과정을 규명한다. 구조론의 최종적인 완성은 그 저울의 축이 움직이는 것이다. 파동의 이동을 통해 이를 알아낼 수 있다.
파동이 움직여도 계의 평형은 무너지지 않는다. 축이 움직여서 운동으로 힘의 불균형을 보상하기 때문이다. 이 원리를 통해 정보를 전달할 수 있다. 이 원리의 일부를 발췌한 것이 저울이고 다시 저울의 일부를 발췌한 것이 콤파스다.
● 파동의 원리≫저울의 원리≫콤파스의 원리≫눈금자의 원리≫수(數)
콤파스를 원을 그리는 도구로만 여긴다면 착각이다. 콤파스의 본질은 자를 만드는 것이다. 건축가는 눈금자를 쓰지 않는다. 눈금자나 연필달린 콤파스는 초등학생을 위한 편의일 뿐 원래 자에는 눈금이 없고 콤파스엔 연필이 없다.
목수는 콤파스를 이용하여 땅바닥에 작도하여 자를 생산한다. 동일한 크기의 눈금을 복제하는 것이다. 눈금자에 새겨진 눈금은 편의로 미리 복제해 놓은 것이고 콤파스의 원래 용도는 동일한 크기의 눈금을 필요에 따라 복제하는 것이다.
눈금자의 눈금들은 크기가 같다. 왜 같은가? 콤파스의 두 발이 하나의 몸에 의해 통제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정보가 복제된다. 콤파스는 정보전달과 복제의 수단인 것이다.
콤파스의 복제기능은 저울기능의 일부다. 저울은 계량하여 동일한 물리량을 반복적으로 생산한다. 그러한 저울기능 중에서 선(線)과 각(角)에 적용되는 길이와 너비만을 따로 발췌하여 복제하는 것이 콤파스다.
물리공간은 선과 각을 넘어 입체와 공간이 있고 이는 저울을 통해서 복제할 수 있다. 그러므로 자가 콤파스의 한쪽 발을 따로 빼낸 것이듯이 콤파스는 천칭저울의 한쪽 팔을 별도로 분리해낸 것이다.
콤파스는 두 자를 동시에 통제하는 것이고 저울은 두 콤파스를 동시에 통제하는 것이다. 두 저울을 동시에 통제하는 것은 파동이다. 그러므로 파동은 정보를 전달한다.
천칭저울은 불완전하다. 자연에서 파동에 의한 정보의 전달은 저울의 축이 움직이는 형태로 일어나기 때문이다. 저울이 한쪽으로 기울어도 파동의 진행에 의해 힘의 불균형이 보상되므로 정보는 그대로 보존된다.
‘정보보존의 법칙’이 파동의 법칙이며 이러한 정보의 보존 원리에서 일부를 발췌하여 우리는 작도하고 대수하는 것이다. 축이 움직이는 저울이 정보를 보존하는 법칙이 자연에서는 파동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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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칭저울의 축은 움직이지 않는다. 한쪽이 더 무거우면 저울의 평형은 무너진다. 저울의 평형이 무너지므로 별도로 계산하지 않으면 왼쪽과 오른쪽의 비를 알아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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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울이 오른쪽으로 기울지만 호수의 수면 위에서 파동의 진행은 저울의 축을 움직여서 운동으로 힘의 기울기를 보상한다. 이 경우 왼쪽과 오른쪽의 비를 바로 알아낼 수 있다.
파동은 호수의 수면을 중심으로 수면의 위와 아래에 각각 하나씩의 저울이 있는 것으로 설명할 수 있다. 눈에 보이는 파고가 수면 위의 저울이라면 파심을 중심으로 성립되는 수면 하의 파랑이 수면 아래의 저울 역할을 한다.
이때 저울이 한쪽으로 기울어도 계의 평형은 무너지지 않는다. 대신 저울의 축이 지속적으로 운동해야 한다. 지렛대의 긴 팔이 받침점의 좌우에 걸린 힘의 차이를 보상하듯이 파동의 진행이 계의 불균형을 보상하여 정보를 보존하는 것이다.
천칭저울은 고정된 정보만 전달할 수 있다. 무게가 30키로그램으로 고정되어 있다면 30키로그램이라는 고정된 정보만 전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파동은 증가하거나 감소하는 등 움직이는 정보도 전달할 수 있다.
천칭저울의 두 접시 사이에서 계의 평형이 무너져도 중심의 이동이 이를 보상하므로 정보의 손실이 방지된다. 이 원리로 빛의 굴절을 비롯한 파동의 여러 성질을 설명할 수 있다. 평형의 붕괴가 반작용에 의해 복원된 것이 파동이다.
구조론은 자연에서 수학을 유도하는 과정을 해명하고 있다. 세상의 모든 존재는 ‘유도된 존재’이다. 막연히 그냥 존재하는 것은 없다. ‘원래부터 그렇다’는 따위는 없다. 모든 존재는 특정한 유도과정을 거쳐 그로부터 전개된 존재이다.
수학이라면 대수와 기하가 있다. 대수와 기하가 통한다는 사실은 진작에 알려졌다. 그렇다면 대수와 기하 둘 중 어느 쪽이 먼저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기하가 대수를 유도한다. 대수는 기하의 유도에 의해 전개되었다.
그렇다면 기하는 무엇이 유도하는가? 구조론이 유도한다. 기하란 무엇일까? 간단히 말하면 콤파스다. compass의 com은 한 몸으로 ‘합쳐진’ 것이고 pass는 ‘발’이다. 두 발을 하나의 몸에 합쳐놓은 것이 콤파스다.
합쳐진다는 것은 곧 맞물려 있다는 것이다. 작용 반작용에 따른 대칭과 평형의 원리를 성립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구조론이며 구조론이 유도하여 성립시킨 콤파스를 사용하여 평면의 종이 위에 전개해 놓은 것이 기하다.
도형은 자와 콤파스로 작도된다. 자는 콤파스의 두 발 중 하나를 별도로 분리하여 발췌한 것이다. 대수는 그 자에 새겨진 눈금이다. 인간이 수(數)를 인식하는 것은 그렇게 콤파스와 자를 거쳐 유도된 결과물로서의 수를 인식한 것이다.
우리가 사과 하나를 앞에 놓고 수(數) 1을 인식할 때 그 사과와 당신의 마음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콤파스가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그 콤파스의 한 발은 사과 한 개를 가리키고 나머지 한 발은 당신의 마음 속의 1을 가리킨다.
대수는 기하로 부터 유도되어 산술의 덧셈과 뺄셈으로 전개된다. 모든 수(數)는 콤파스의 한쪽 발이 가리키는 수이며, 우리가 마음으로 인식하는 수와 그 수가 가리키는 자연의 사물 사이에 보이지 않는 콤파스가 있다.
대수는 귀납이고 기하는 연역이다. 기하는 전체에서 부분을 보고 대수는 부분에서 전체를 본다. 기하는 콤파스 전체로부터 콤파스의 한쪽 발에 그려진 눈금의 부분을 보고 대수는 눈금의 부분에서 콤파스 전체를 본다.
대수는 1+1에서 2를 보고 기하는 2에서 1+1을 본다. 1+1이 콤파스의 두 발이면 2는 두 발을 통제하는 한몸이다. 전체에서 부분을 보는 것이 연역이고 부분에서 전체를 보는 것이 귀납이다. 자연의 질서에서는 연역이 먼저다.
연역과 귀납, 기하와 대수는 이렇듯 접근하는 방향이 다르다. 모든 존재는 유도된 존재이므로 유도과정을 따라 규명해야 한다. 유도과정으로 보면 기하가 대수를 유도한다. 그리고 기하는 구조가 유도한다.
기하의 본질은 마주보는 두 각이 X자로 맞물려 있음이다. 콤파스의 두 발은 하나의 꼭지점에 의해 서로 맞물려 있다. 그 맞물림이 구조다. 구조론은 기하를 유도하는 절차다. 자연에서 콤파스를 어떻게 얻어낼 것인가다.
대수는 눈금자이고 기하는 콤파스다. 수(數)는 자(尺)의 눈금에서 유도된다. 자는 콤파스의 두 발에서 유도된다. 자(尺)의 눈금 하나를 떼낸 것이 수(數)다. 콤파스의 다리 하나를 떼낸 것이 자(尺)다.
마찬가지로 천칭저울의 두 팔 중 하나를 떼내면 그것이 콤파스다. 구조는 저울에서 콤파스를 유도하는 과정을 규명한다. 구조론의 최종적인 완성은 그 저울의 축이 움직이는 것이다. 파동의 이동을 통해 이를 알아낼 수 있다.
파동이 움직여도 계의 평형은 무너지지 않는다. 축이 움직여서 운동으로 힘의 불균형을 보상하기 때문이다. 이 원리를 통해 정보를 전달할 수 있다. 이 원리의 일부를 발췌한 것이 저울이고 다시 저울의 일부를 발췌한 것이 콤파스다.
● 파동의 원리≫저울의 원리≫콤파스의 원리≫눈금자의 원리≫수(數)
콤파스를 원을 그리는 도구로만 여긴다면 착각이다. 콤파스의 본질은 자를 만드는 것이다. 건축가는 눈금자를 쓰지 않는다. 눈금자나 연필달린 콤파스는 초등학생을 위한 편의일 뿐 원래 자에는 눈금이 없고 콤파스엔 연필이 없다.
목수는 콤파스를 이용하여 땅바닥에 작도하여 자를 생산한다. 동일한 크기의 눈금을 복제하는 것이다. 눈금자에 새겨진 눈금은 편의로 미리 복제해 놓은 것이고 콤파스의 원래 용도는 동일한 크기의 눈금을 필요에 따라 복제하는 것이다.
눈금자의 눈금들은 크기가 같다. 왜 같은가? 콤파스의 두 발이 하나의 몸에 의해 통제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정보가 복제된다. 콤파스는 정보전달과 복제의 수단인 것이다.
콤파스의 복제기능은 저울기능의 일부다. 저울은 계량하여 동일한 물리량을 반복적으로 생산한다. 그러한 저울기능 중에서 선(線)과 각(角)에 적용되는 길이와 너비만을 따로 발췌하여 복제하는 것이 콤파스다.
물리공간은 선과 각을 넘어 입체와 공간이 있고 이는 저울을 통해서 복제할 수 있다. 그러므로 자가 콤파스의 한쪽 발을 따로 빼낸 것이듯이 콤파스는 천칭저울의 한쪽 팔을 별도로 분리해낸 것이다.
콤파스는 두 자를 동시에 통제하는 것이고 저울은 두 콤파스를 동시에 통제하는 것이다. 두 저울을 동시에 통제하는 것은 파동이다. 그러므로 파동은 정보를 전달한다.
천칭저울은 불완전하다. 자연에서 파동에 의한 정보의 전달은 저울의 축이 움직이는 형태로 일어나기 때문이다. 저울이 한쪽으로 기울어도 파동의 진행에 의해 힘의 불균형이 보상되므로 정보는 그대로 보존된다.
‘정보보존의 법칙’이 파동의 법칙이며 이러한 정보의 보존 원리에서 일부를 발췌하여 우리는 작도하고 대수하는 것이다. 축이 움직이는 저울이 정보를 보존하는 법칙이 자연에서는 파동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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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칭저울의 축은 움직이지 않는다. 한쪽이 더 무거우면 저울의 평형은 무너진다. 저울의 평형이 무너지므로 별도로 계산하지 않으면 왼쪽과 오른쪽의 비를 알아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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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울이 오른쪽으로 기울지만 호수의 수면 위에서 파동의 진행은 저울의 축을 움직여서 운동으로 힘의 기울기를 보상한다. 이 경우 왼쪽과 오른쪽의 비를 바로 알아낼 수 있다.
파동은 호수의 수면을 중심으로 수면의 위와 아래에 각각 하나씩의 저울이 있는 것으로 설명할 수 있다. 눈에 보이는 파고가 수면 위의 저울이라면 파심을 중심으로 성립되는 수면 하의 파랑이 수면 아래의 저울 역할을 한다.
이때 저울이 한쪽으로 기울어도 계의 평형은 무너지지 않는다. 대신 저울의 축이 지속적으로 운동해야 한다. 지렛대의 긴 팔이 받침점의 좌우에 걸린 힘의 차이를 보상하듯이 파동의 진행이 계의 불균형을 보상하여 정보를 보존하는 것이다.
천칭저울은 고정된 정보만 전달할 수 있다. 무게가 30키로그램으로 고정되어 있다면 30키로그램이라는 고정된 정보만 전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파동은 증가하거나 감소하는 등 움직이는 정보도 전달할 수 있다.
천칭저울의 두 접시 사이에서 계의 평형이 무너져도 중심의 이동이 이를 보상하므로 정보의 손실이 방지된다. 이 원리로 빛의 굴절을 비롯한 파동의 여러 성질을 설명할 수 있다. 평형의 붕괴가 반작용에 의해 복원된 것이 파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