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읽기
아직까지 계속되고 있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체제논쟁은 실로 무의미하다. 닫힌계는 사회주의가 옳고 열린계는 자본주의가 옳다. 어떤 일의 초기 단계는 사회주의가 옳고 완성단계는 자본주의가 옳다.

시장의 형태로 볼때

● 닫힌계 - 사회주의
● 열린계 - 자본주의

경쟁의 형태로 볼때

● 초기단계 - 보호무역의 사회주의 방법
● 완숙단계 - 자유경쟁의 자본주의 방법

이 법칙을 기계적으로 적용해서 안 된다. 가치로 보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자본주의는 힘을 숭배하고 사회주의는 미를 지향하는 측면이 있다. 초기 단계에는 힘이 문제를 해결하고 완숙단계에는 미가 문제를 해결한다.

가치의 지향으로 볼때

● 남성의 힘으로 해결 - 초기 단계의 자본주의적이며 남성적 가치
● 여성의 미(美)로 해결 - 완숙 단계의 사회주의적이고 여성적 가치

이렇듯 시장의 형태에 따라서 닫힌 시장이냐 열린 시장이냐가 결정된다. 경쟁의 형태에 따라서 초기단계냐 완숙단계냐에 따라 보호무역이냐 자유경쟁이냐가 결정된다. 그런데 가치의 지향에 따라서는 또 역전된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가 지난 200년간 대결하고도 아직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이러한 복잡성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분명히 말하면 둘 중 어느 하나를 선택할 문제가 아니다.

어린이와 소년의 단계에는 사회주의가 적용되어야 한다. 어린이는 학교에서 보호받아야 한다. 교실에서의 무자비한 성적경쟁은 인간을 황폐화 시킨다.

그러나 같은 교실에서도 학년이 올라갈수록 점점 자본주의로 룰이 바뀌어진다. 유치원에서는 모두가 사회주의다. 고3이 되면 자본주의로 변한다. 마찬가지로 대학에서도 신입생은 사회주의를 채택해야하고 취업을 앞둔 졸업반은 자본주의를 채택해야 한다.

시장에서도 마찬가지다. IT벤처의 초기 단계에서는 국가에서 기간망을 지원하는 방법으로 강력한 사회주의를 해야 한다. 초기 단계의 벤처붐은 국가에서 전략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그러나 그 지원이 계속되어서는 안 된다. 지원이 무한정 계속되면 경쟁력 없는 업체가 승리하고 경쟁력 있는 업체가 도태되는 부작용이 일어나는 것이다. 스타트라인에 도달하는 과정은 사회주의여야 하지만 출발점에 선 다음에는 본격적인 경쟁이 시작되어야 한다.

어차피 도태될 기업을 가능한한 빨리 도태시키는 것이 시장을 키우는 전략이 되는 것이다. 이처럼 시장환경에 따라 자본주의의 방법과 사회주의의 방법이 적절히 선택되고 적용되어야 하는 것이다.

예컨대 농업은 토지증가의 전망이 없다는 점에서 닫힌경제가 적용되고 있다. 이 경우 사회주의의 방법이 적용되어야 한다. 그러나 농업 또한 일면에서 생산성 증가의 가능성이 열려있다면 그 부분은 자본주의의 방법이 적용되어야 한다.

아무리 꽁꽁 닫혀있는 분야라 해도 잘 살펴보면 어느 한쪽은 열려있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어떤 한가지 논리와 방법의 일방적이고 절대적인 적용은 절대 실패로 연결된다. 시장은 언제라도 변하기 때문이다.

공자는 관료주의를 매개로 한 개입주의를 주장하고 노자는 관료주의를 반대하는 점에서 불개입을 주장한다. 초기 단계에서는 공자가 통제경제의 사회주의고 노자가 자유경쟁의 자본주의다. 이 지점에서 노자의 무위자연은 정글에서의 무한경쟁으로 치닫기 십상이다.

그러나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역전된다. 힘으로 해결하는 공자의 인위가 자본주의가 되고 미(美)의 조화로움과 자연스러움을 지향하는 도교주의가 사회주의가 된다. 방법과 가치가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 유교주의 - 방법은 사회주의나 가치는 자본주의다.
● 도교주의 - 방법은 자본주의나 가치는 사회주의다.

오자병법을 남긴 오기의 예가 그렇다. 그는 노자의 제자였던 증자에게서 유가를 배웠다. 실제로 그의 병법은 유가적인 인간미가 넘친다.

그는 다리에 종기가 난 부하의 상처에 난 고름을 입으로 빨아주기도 했다. 그 소식을 듣고 그 병사의 부모는 통곡하였다고 한다. 그 병사는 오기장군의 은혜를 갚기 위하여 목숨을 걸고 싸우다가 죽을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 병사는 혼전 중에 오기를 구하기 위하여 목숨을 던지고 싸우다 전사했다고 한다.

오자병법에서 ‘공이 있는 자를 포상함은 물론이고 공이 없는 자도 격려하라’, 전사자의 집에는 사람을 보내 부모를 위로하고 상금을 내려 국가가 잊지 않고 있다는 뜻을 표하라‘ 고 기록하고 있다.

이는 사회주의적 가치다. 인간미가 넘치는 유교주의의 정수로 보여진다. 그러나 이는 실상 인간심리를 수단으로 이용한 점에서 하나의 방편에 불과했다. 오기는 승리지상주의자였다.

삼국지연의의 조조와 유비를 비교해도 그렇다. 조조는 법가의 전통을 이어받고 유비는 유가의 전통을 이어받는 듯이 보여진다. 법가는 본바탕의 철학을 버리고 말단의 방법론으로 특화한 유가의 한 갈래로 볼 수 있다.

그런데 가치의 지향으로 보면 조조야 말로 어느 면에서 유가의 본질을 꿰뚫은 사람이다. 그는 가치와 방법이 다른 유교의 이중성을 잘 알고 있었다. 반면 유비는 도교적인 유연함을 추구하는 사람이다.

실제로 한 고조 유방은 유생을 경멸한 점에서 도교주의적인 철학의 소유자이기도 했다. 그는 숙손통을 비롯하여 역이기, 육고, 후성 등 많은 유생을 거느렸으나 전쟁 중에는 그들을 중용하지 않았다.

● 가치에 있어서는 도교가 원리주의다.
● 방법에 있어서는 유교가 원리주의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지식계급과 민중의 가치가 충돌하는 예가 심심찮게 관찰되고 있는 사실도 그러하다. 원래 민중은 도교적 성향이고 지식인은 유교적 성향을 보인다. 지식인은 방법에 집착하고 민중은 가치에 집착한다.

숙손통(叔孫通)은 학문이 뛰어나다 하여 진나라 말기에 2세 황제의 부름을 받고 임금의 대궐에 들어갔다. 그해 진승의 반란이 일어났는데 황제가 30명의 유생들을 소집해 놓고 대책을 물었다.

유생들이 일제히 답하길 모반이 일어났으니 군대를 일으켜 반란군을 토벌해야 한다고 말했다. 숙손통이 황제의 얼굴을 보니 낯빛이 불편해 보였다. 이에 황제의 심기를 알아챈 숙손통이 아첨하여 말했다.

"지금 천하는 통일되어 한 집안과 같이 되었소. 위로는 훌륭한 군주가 계시고 아래로는 법령이 잘 시행되고 있어 천하가 태평한데 어찌 감히 모반하는 자가 있겠소? 이는 다만 좀도둑의 소란일 뿐이니 입에 담아 논할 일도 못되오. 관리들이 그들을 잡아들여 다스릴 터이니 조금도 걱정할 일이 아니오."

2세 황제는 이 말을 듣고 유생들의 의견을 물어 모반이 일어났다고 말한 자는 모두 처형하고 좀도둑이라고 말한 자는 살려주었다. 숙손통에게는 옷과 비단을 하사하고 박사의 벼슬을 내렸다.

궁에서 나온 후, 다른 유생들이 일제히 숙손통을 비난하여 따져물었다.

"당신은 어찌 그리 아첨을 잘하오?"

숙손통은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당신들은 모르겠지만 하마터면 범의 이빨에 물려 죽을 뻔했소."

그는 그날로 변장고 도주하여 초패왕 항우를 섬기다가 유방이 팽성으로 진격해 오자 항복하여 유방을 섬기게 되었다. 그는 유생이지만 그의 비굴한 아첨과 임금을 세 번이나 바꾼 현란한 변신은 오히려 도교사상에 가깝다 할 것이다.  

도교적인 실용주의적 통치술을 구사하던 유방이 초패왕 항우를 꺾고 황제가 되었을 때 고향 패현에서부터 고락을 같이했던 유방의 장군들은 여전히 황제를 친구처럼 대하였다고 한다.

술에 취하여 궁녀를 희롱하고 궁전에서 칼을 휘둘러 궁궐 기둥에 칼자국을 남기는 등 군신간의 질서가 말이 아니었다. 이때 화려한 궁중의례를 제정하여 황제의 권위를 높인 사람이 숙손통이다.

이에 유방은 ‘내 오늘에야 비로소 황제가 존귀함을 알겠다’고 말하며 크게 기뻐하였다고 한다.

‘참으로 곧은 길은 굽어보이며 길은 원래 꾸불꾸불한 것이다’라는 말은 사마천의 사기에서 숙손통을 평가하여 남긴 말이다. 숙손통은 도교의 가치를 지향하면서도 유가의 방법론을 자유자재로 구사한 사람이라 하겠다.

오늘날 대부분의 중국인들은 숙손통을 처세의 모범으로 삼고 있다. 안으로는 도교의 가치를 지향하면서 겉으로는 유가의 방법론을 훈련하고 있는 것이다. 유교는 처세의 수단일 뿐 중국인들은 본질에서 도교주의자라 하겠다.

오늘날 사회주의적 가치와 자본주의적 방법이 서로 경쟁하며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고 있는 이유는 가치와 방법의 이중성에 따른 이러한 모순 때문이다.

어느 분야든 맹아기에는 사회주의로 시작하여 완숙기에는 자본주의로 경쟁하고 노년기에는 다시 사회주의로 완성하는 것이 맞다. 가치는 사회주의로 가되 방법은 자본주의로 가는 것이 맞다.

가치는 도교주의로 가되 방법은 유가로 훈련하는 것이 맞다.


List of Articles
No.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1549 줄기파동 중간점검 김동렬 2006-02-07 13709
1548 강한 자가 최후의 증언자가 된다. 김동렬 2006-02-06 12044
1547 학문과 예술 김동렬 2006-02-04 16339
» 학문의 역사 -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김동렬 2006-02-03 19079
1545 이어지는 학문의 역사 김동렬 2006-02-03 15539
1544 성숙한 시민사회로 가기 위하여 김동렬 2006-02-03 12941
1543 정동영은 행운아인가? 김동렬 2006-02-02 13641
1542 백남준의 유혹 1 김동렬 2006-02-01 13497
1541 두관이 형 거기서 머해? 김동렬 2006-02-01 16198
1540 예술은 유혹이다 김동렬 2006-01-31 14282
1539 스크린 쿼터 문제에 대하여 김동렬 2006-01-27 15106
1538 당신은 무엇을 믿는가? 김동렬 2006-01-26 11978
1537 학문의 역사 - 쫓겨다니는 문명, 매혹당하는 문명 김동렬 2006-01-25 20006
1536 왕의 남자 대 글래디에이터 김동렬 2006-01-25 13484
1535 황란 제 2라운드 김동렬 2006-01-25 12363
1534 정동영과 김근태의 양극화 해법 김동렬 2006-01-24 13761
1533 학문의 역사 - 서구의 남성성과 동양의 여성성 김동렬 2006-01-23 17113
1532 스톡홀름 증후군이라고? 김동렬 2006-01-23 14081
1531 조직의 김근태 세력의 정동영 김동렬 2006-01-23 14346
1530 철이 든다는 것에 대하여 김동렬 2006-01-21 146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