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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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5515 vote 0 2009.03.17 (14:17:44)

불교의 여러 개념들이 일정부분 구조론과 유사한 아이디어를 가진 것은 사실이지만 기본적으로 논리가 없습니다. 논(論)이라는 것은 하나에서 둘을 꺼내는 것이고 이(理)라는 것은 둘을 하나 속에 집어넣는 것입니다.

하나와 둘에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서양에서는 그것이 삼단논법과 인과율로 세팅되어 있습니다. 서양과 동양의 차이는 논리학의 유무에 있습니다. 논리가 없으면 그 어떤 주장도 과학성을 잃게 되는 거지요.

논리의 의미는 체계의 형성에 있는데 언어가 논리를 획득하면 다른 언어와 결합하여 점차 가지를 쳐서 뻗어나갈 수 있게 됩니다. 그렇게 뻗어나가서 형태를 얻은 것이 체계입니다.

논리는 하나의 씨앗이고 체계는 큰 나무와 같지요. 결정적으로 불교 뿐 아니라 동양사상은 대부분 논리가 없어서 매우 세련된 개념들이 연관을 맺지 못하니 체계로 발전하지 못하고 고립된 채 혼재하고 있습니다.

예컨대 유교 음양론과 오행론은 완전히 다른 체계를 가지는데 서로 어떤 관계인지가 불명한 채 뒤죽박죽으로 섞입니다. 불교는 인과율에서 시작하는데 그 점이 명석하게 제시되어 있지 않습니다.

4성제≫팔정도≫12연기로 전개되어 나가는데 우선 출발점 1이 불명할 뿐 아니라 12 다음에는 16이 오는건지 24가 오는건지 거기서 끝인지, 왜 거기서 끝나는지에 대한 해명이 없습니다.

불교개념들을 억지로 구조론에 때려맞출 수 있겠지만 큰 의미는 없습니다. 우선 론(論)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되는데 제가 쓰는 론은 구조론, 존재론, 인식론, 세부이론 할 것없이 하나의 방정식을 의미합니다.

공식이 하나 있으면 하나의 논리입니다. 그것은 ‘A면 B다’의 형태로 구조화 됩니다. 이런 론이 하나 있으면 하나의 학이 성립할 수 있습니다. 진화론이든 자본론이든 무슨 론이든 반드시 그게 있습니다.

서양철학의 인식론은 충분히 개념화 되어 있지 않습니다. 단어만 있지 실상 내용이 없습니다. 말하자면 학문의 형태로 발달되어 있지 않은 맹아단계라고 말할 수 있지요. 존재론 역시 마찬가지.

어쨌든 저의 인식론, 존재론은 암기해야 하는 하나의 공식을 의미합니다. 그게 있어야 보편성을 얻어 이론으로 인정됩니다. ‘사과가 왜 떨어지지?’ ‘그야 무거우니까 떨어지는 거지.’ 이런 식으로는 론이 아닙니다.

지식이 그냥 지식인 것과 론으로 발전하는 것은 전혀 차원이 다릅니다. 만유인력은 그 안에 하나의 방정식이 들어 있습니다. ‘A면 B다’로 반복되는 규칙성이 존재하며 이는 보편적으로 응용됩니다.

###

1) 동렬님의 구조론에서 존재론과 인식론이 나오는데.... 구조론에서 나오는 인식론과 서양철학의 인식론은 같은 의미인가요.다른 의미인가요.?

≫≫≫ 출발점은 같지만 콘텐츠가 다릅니다. 서양철학의 인식론은 질문만 있고 답은 없습니다. 잡다한 아이디어들의 모음에 지나지 않습니다. 체계에 도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구조론의 인식론 개념은 확실한 방정식이 있습니다.

2) 보통 인식의 영역은 마음에서 기인한다고 하는데... 구조론에서 마음을 (心) 우리말의 마음과 한자의 마음 심은 뜻이 조금 다르다고 하셨는데.... 구체적으로 마음과 마음 심이 뜻하는 바가 무엇인지요?

≫≫≫ 우리말 마음은 속에 머금는다는 뜻이고 심은 그 머금은 심을 의미합니다. 연필심과 같은 심이 있다는 거지요. 심은 센터 혹은 코어를 의미합니다. 이심전심은 센터에서 센터로 연결된다는 의미입니다.

이 둘이 뜻하는 바가 다른데 왜 마음으로 그냥 해석이 되는 가에 대해서... 그 뜻하는 의미가 다르다면 한문 경전이 이미하는 바도 조금은 다르게 해석이 되는 것일까요...?

≫≫≫ 한문경전의 거의 대부분 잘못 해석되어 있습니다. 우선 우리가 배우는 천자문이 한문을 잘못 번역하고 있습니다. 중고교 한자수업에서 가르치는 한자 의미가 거의 잘못 가르치고 있는 겁니다.

예컨대 by는 19가지 의미로 우리말 번역되는데 그것을 하나의 뜻으로 고정시켜 버리는 식입니다. 들어맞을 확률은 19분의 1이지요. 갑골문자나 설문해자를 풀어서 어원을 규명해 보면 완전히 다른 뜻이 되어버립니다.

그러니 도올이 노자를 해석한다는 것은 뭐 거의 잘못 해석한다는 뜻이 되지요. 누가 해석해도 거의 잘못 해석됩니다. 한국에 한자를 좀 아는 전문가는 단 한명도 없는데 그 이유는 중국에도 없기 때문입니다.

중국의 고증학도 낱낱이 들여다보면 대략 엉터리인데 앞에서 언급한 설문해자 따위도 대략 엉터리입니다. 그러니 엉터리에 엉터리를 더하여 엉터리의 탑을 쌓는 격이지요. 끝없는 엉터리의 수렁입니다.

그러니 이바닥은 대략 아무나 제멋대로 아는척 해도 되는 세계지요. 그게 틀렸다는 심증은 가지만 어차피 반박할 확실한 물증도 없고. 그러니 농담따먹기 세상이 되어서 재야연구가 운운하며 제멋대로 놀아나는 판입니다.

뿐만 아니라 서양철학도 거의 엉터리 번역입니다. 보통 일본을 거쳐 이중번역으로 들어오는데 그 과정에 얼마나 왜곡되겠습니까? 양주동이 타고르의 시를 번역하면 실상 번역이 아니라 새로 시를 지은 겁니다.

그걸 가지고 타고르가 코리아를 동방의 등불이라 예언했다니 어쨌다니 논쟁한다는 것은 거의 코디미에 코미디를 더하는 수준입니다. 제대로 번역할 수 있는 전문가는 없는 편입니다. 대략 눈치로 때려잡는 거지요.

마음을 구조론 형식으로 설명하여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구조론 책 본문에 단편적으로 언급되어 있는데 방대한 내용이라 나중 시간나면 따로 설명드리겠습니다. 마음은 정신≫의식≫의지≫의사≫감정으로 세팅되어 있습니다. 이 구조는 컴퓨터의 구조나 자동차의 구조나 모든 구조가 같습니다.

그러므로 특별히 정신의 구조를 논할 필요없이 구조론의 구조 그 자체를 알면 됩니다. 질≫입자≫힘≫운동≫량의 전개되는 메커니즘 그 자체를 이해해야 하는 거지요. 이들 사이의 방정식 말입니다.

3) 그리고 불교에서는 색.수.상.행.식 - 오온으로 존재를 설명하는데.... 이 부분도 구조론으로 설명이 가능한지에 대해서도 여쭙습니다.

≫≫≫ 일단 논리가 없기 때문에 평가할 가치가 없습니다. 억지로 체계처럼 꾸며놨는데 체계가 아니지요. 체계가 아니라는 것은 다른 학자가 다른 개념들을 이와 연관시켜 풀어낼 수 있는 개방형 구조가 아니라는 겁니다.

어떤 주장이 단지 그 분야에만 적용되는 폐쇄형 구조라면 그건 가짜입니다. 예컨대 기독교의 창조론은 하느님의 창조에만 적용되고 과학자나 발명가의 창조에는 적용이 안됩니다.

과학자가 ‘빛이 있으라’ 해서 빛이 생겨납니까? 과학자가 아담의 갈비뼈를 취해서 이브를 만들어 낼 수 있습니까? 이런 식으로 폐쇄형 구조를 갖춘 것은 체계처럼 꾸며놔도 체계가 아니지요.

체계처럼 꾸민다는 것은 1이 2를 낳고 2가 4를 낳고 하면서 점점 늘어나는 구조입니다. 모든 체계는 이런 늘어나는 구조가 있어야 다른 지식들을 거기에 올려태울 수 있습니다. 그러지 못하면 가짜지요.

창세기에도 보면 처음 아무 것도 없었는데 비로소 하늘과 땅이 생기고 사람이 생기고 하며 숫자가 점점 늘어나는 개방형 구조를 가지고 있는듯이 포장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개방형 구조가 아니지요.

논리와 체계를 얻으면 개방형 구조가 되는데 불교의 잡다한 주장들은 줏어섬기기 열거형으로 되어있어서 체계가 없지요. 그 이유는 그 당시는 종이가 없어서 기록되지 않고 암송되었기 때문입니다.

암송되는 것은 대부분 공식, 혹은 방정식 형태로 구성될 수 없으므로 체계를 갖추지 못합니다. ‘A면 B다’의 논리구조를 세팅하지 못하기 때문에 한계가 있지요. 암송구조는 대략 체계가 없으므로 평할 수 없습니다.

4) 불교에서 12연기 부분의 명색은 명과색으로서 명(수.상.행.식) = 정신 ㅡ  느낌, 마음, 심리현상.

색 = 파생물질-안.이.비.설.신.의 +대상 = 안식,이식,비식,설식,신식,의식 이런식으로 12연기에 대한 설명과 존재를 해체하여 바라보는 관점은 연역적인 설명인지, 귀납적인 설명인지에 대해서도 설명하여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설명을 살펴보면 존재는 오온의 집합이다.라고 전제하여 놓고 그 오온을 다시 해체하여 그 기능들에 대해서 해부하여 들어가다보면 존재의 구성형태가 드러나게 되고, 그 구성 형태들의 모습은 오온에서 기인된 것임을 알고 오온의 최종단위인 법의 단위 색.수.상.행.식만이 있음으로 존재는 무아라고 규명을 합니다.

이렇게 존재 자체를 해체하는 것을 보면 귀납법 같은데, 반면에 마음을 해체하는 것이 아니고 존재를 해체하는 것이고 보면은 조금 헷깔리기도 합니다. 수행은 마음을 제어하는 것이기에 귀납이라고 생각은 해봅니다만은...

    

≫≫≫ 일단 분류가 안 되어 있는데 이는 간지를 구분하지 않았다는 의미입니다. 집합과 원소의 차이를 무시하고 섞어놓았다는 말입니다.

불교에 존재론이니 인식론이 할 것은 일단 없지만 인식론은 원래 귀납법이니 이런 전개는 귀납구조로 볼 수 있습니다. 보통 이것저것 줏어섬기기 나열식으로 가다가 다시 아니고 아니고 아니고 아니며 아니다 하는 패턴이 있습니다.

말하자면 귀납구조로 진열해놓고 그것을 부정하는 패턴인데 이는 존재론에 도달하는 방법입니다. 그러나 정작 그 도달된 존재론의 세계는 설명하지 않고 넘어갑니다. 존재 곧 제 1원인에 도달하면 이야기를 끝내버리는 거지요.

구조론은 수학으로 치면 1을 설명하고 끝냅니다. 2와 3과 그 이후에 오는 숫자는 1에 연동되어 결정되므로 볼 것이 없지요. 그런데 1을 설명하고 다시 2를 설명하기를 반복한다면 미련한 짓이지요.

어떤 꼬마가 ‘나는 백까지 셀 수 있어.’ 그러면 또 어떤 천재가 나타나서 ‘어쭈 겨우 백이냐. 나는 무려 백만까지도 셀 수 있어.’ 그러면서 백만을 세어보이고 있다면 굴밤을 멕여야지요. 미련한 짓.

그 1의 완성이 중요한데 존재론과 인식론이 수미일관하여 서로 만나서 대칭의 ┣ ┫를 이루어 하나의 동그라미를 완성하므로 이것이 하나의 인자가 되어 세상모두를 건설합니다.

불교의 교설에는 그러한 구조가 없이 그냥 마구잡이 줏어섬기기로 가다가 황당하게 끝내는데 괜히 잡다하여 많을 뿐 같은 패턴을 반복하는 것이며 그것은 인식론을 부정하는 것입니다.

구조론으로 보면 마음의 구조와 물질의 구조는 완전히 닮아 있으므로 별도로 논할 것이 없습니다. 본질은 존재론의 발견입니다. 인식론이 가짜라는 것은 누구나 직관으로 알 수 있습니다.

그럼 존재론으로 나아가야 하는데 그냥 공(空), 무(無), 허(虛), 멸(滅) 따위의 단어 속으로 숨어버리지요. 그런데 고집멸도 사성제는 어느 의미에서 존재론적 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볼 여지가 있지요. 이것이 큰 영감을 주는 것.

사성제는 내부적으로 완결된 이야기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귀납적 구조로 가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끝없이 커지는데 헤겔의 변증법은 정반합에서 끝나듯이 사성제는 딱 끝이 나는 그런 점이 있습니다.

8정도나 12연기도 어떻게 끝을 내보려고 노력한 흔적이 보입니다. 색즉시공 공즉시색 하는 순환논리의 오류도 어떻게 끝을 내보려고 노력한 흔적이지요. 끝이 나야 발이 지면에 닿아서 완전하다는 느낌을 주니까.

‘존재론은 끝이 난다. 대신 너무 단순해서 설명이 부족한 느낌이다. 인식론은 끝이 없다. 끝이 없으면 뒤가 허전해서 가짜라는 느낌이 든다. 그러므로 인식론을 끝없이 주워섬기다가 너무 양이 많아져서 헛갈리기 시작하면 어물쩡 중단하고 아니고 아니며 아니로다 초식을 구사하여 그것을 부정하여 다시 존재론으로 환원시키려 한다. 그러다가 잘 안되면 머리가 꼬리를 물고 제자리서 뱅글뱅글 도는 순환논리 초식을 구사하여 도망친다.’ 이런 패턴입니다.

http://gujoron.com


프로필 이미지 [레벨:20]아란도

2009.03.17 (18:41:06)


설명 감사드립니다.^^()

불교에는 오온,12연기,중도,사성제 팔정도,사념처의 수행관 등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체계가 있다고 생각했었고...
방정식처럼 대입이 가능한다고 여겼습니다.
(다만,불교는 무엇을 대입하는 방정식 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불교가 얘기하고 있는 그 원리에 대한 것이 진리다.로 규정되어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그러나 저는 불교의 체계는 하나의 커다란 방정식..대입이 가능한 체계라고 생각을 해 보았던 것이구요.?)
그래서 그러한 것을 구조론 형식으로 풀어보려고 하니....구조론의 5단계의 형식으로 맞추기가 애매했습니다.
그리고 불교를 존재론으로 볼 것인가,인식론으로 볼 것인가....하는 부분도 매매했었고....
...그래서 질문을 드렸었습니다.

불교는 존재 자체를 있다 없다로 규정하지 않고 유.무를 여읜 중도의 입장에서 설명을 하기에 존재론이나 인식론으로 설명이 안되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구요. 단지 진리만이 법칙으로 확립되어 있다라고 하기에 불교에서 말하는 진리에 대한 규명도 구조론으로 풀어낼 수 있을까... 하고 그것을 구조론에 대입해보니..그 접점이 애매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었습니다.


이렇게 설명을 들으니..궁금한 부분이 생깁니다.

불교는 철학이고 어느정도 학문으로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그리고 종교로도 자리를 잡았습니다.
불교에 대한 자신의 견해 및 해석을 논문이나 자기의 생각을 통해서 다시 세상에 내놓기도 합니다.
그리고 불교는 무엇인가를 대입하여 풀어내는 것이 아니라 불교가 주장하고 있는 그 자체의 의미만으로 존재와 세상을 풀어내는 시도라는 생각도 듭니다.

그렇다면 불교는 논리를 획득할 수 없는 것일까요...?
불교는 인식론과 존재론을 왔다갔다 하면서 존재론으로 가서  직관으로 마무리가 되는데...
불경 내용을 통털어 불교의 하나의 흐름과 틀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생각도 드는데...
불교가 설명하는 것은  애초에 성립이 안 된다는 말씀이신지요.?
아니면 불경의 체계나 설명 방식이 논리가 성립이 안되고 규명을 정확하게 하고 있지 못한다는 말씀이신지요?

불교가 이론을 획득하려면 정확한 논리와 방정식의 체계를 완성하면 되는 것인지요.?

불교가 인식론으로 확장하다가 아니다,아니고..부정을 통하여 존재론으로 회귀하여 직관으로 귀결되는데...
불교에서의 12연기를 보면 유전연기에서  연역하는 듯 하지만 순환하고,순환하지만 존재의 한 사이클을 나름대로 규정하고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환멸연기 부분은 역으로 귀납하는 듯 하지만 무엇이 소멸하면 무엇이 소멸하고의 형태로 맞물리며 끝단을 내놓다고 생각됩니다.
그러니까. 불경의 구조는....
원리(진리) 존재로 - 존재는 몸과 마음으로 - 마음에서 다시 존재로 - 존재에서 진리로 -진리에서 해탈로....
이렇게 연역하고 귀납하고 반복적인 형태가 나타납니다.
원리에서 존재까지는 연역하지만 ,마음에서 존재로 가는 과정은 귀납하고 , 존재에서 다시 연역한다.
라고 할 수도 있다고 생각됩니다.

그렇다면 불교가 논리적이지 못한 것은 구전된 것을 암송하여 기록하여 전해온 것이기에 그렇다고 하셨는데...
불경의 내용을 요즘에 맞게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그 연결점이 부족한 부분들은 과학적인 검증에 의해 논리적으로 설명해 놓으면
되는 것일까요...?

물론 불교를 구존론으로 푸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고 하셨지만....
불교를 설명하고 풀어내다 보면 뭔가 설명 되어지는 부분에서 조금 미진하다라는 느낌이 있어서...그런 미진한 느낌을
조금 보완을 해주면 좋지 않을까 라는 생각에 자꾸 머물게 됩니다.
아마도 그것은 불경이 우리나라 말로 기록된 것이 아니기에 더 그렇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들구요.

구조론을 읽으면서 ^^^교재같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세상에 얽혀서 정리되지 못하는 어떠한 것들...등등에 있어서 구조론은 구조론 방식으로 설명하기에 굳이 불교,혹은 어떤 종교,
철학을 자체를 다시 구조론으로 설명을 해야할 필요는 없을지라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구조론은 독자적으로 구조론의 형식이 있으므로 구조론에 맞게 세상을 해석하면 되는 것이겠지요.
맞나요..^^;....

감사합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09.03.17 (18:57:56)


짧게 답하면
불교는 직관과 논리가 섞여 있어서 기존의 것을 그대로 체계화 할 수 없습니다.

만약 한다면 석가를 깨부셔야 하는데 그렇게 하는 사람이 없지요.
또 그것을 한다한들 과학이 되지 불교가 되지는 않습니다.

한가지 강조할 점은 그것이 매우 고급한 수준이고
그 중핵은 석가 자신도 조리있게 설명하지 못했으며

후세에 쓸데없이 설명을 더하여 난삽해진 부분이 많다는 겁니다.
석가나 금강경을 만든 사람이 구조론을 배운다면 쉽게 이해하지 않을까 합니다.

발상법이 유사한데가 있으니까.
프로필 이미지 [레벨:20]아란도

2009.03.17 (20:03:27)


...그렇군요...후대의 사람들은  불경의 형태를 손댈 수가 없는 거군요...그러면 다른 것이 되니까....
설명하고 주석달고 보조는 할 수 있어도 원본의 형태를 손 댈 수는 없는 거겠지요.
붓다가 얘기한 그대로에서 벗어나면 안되므로....
^^;..저작권 침해의 소지 문제가 발생하게 되네요.ㅋㅋ.^^

무엇인가 새롭게 나타난다면 그것을 만들어 내고 발견해 내는 사람 자체의 사고에서만 수정,다듬어짐이 가능하다는 말씀이신 것이겠지요...?
그리고 그 테두리 안에서 보완이 가능할 뿐인 것이겠지요.
그래서 불교는 계속 불교의 형태를 유지하고 불교의 설명 방식으로만 설명이 가능하다는 것인가 봅니다.

말씀 감사드리고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좋은 나날들 되세요.^^()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09.03.17 (22:11:03)

동영상 강의에 관련내용을 넣었습니다.
나중에 까페에 올릴테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20]아란도

2009.03.18 (05:29:24)


네..알겠습니다.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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