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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다수의 인간이 일반인공지능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는데 아직도 과학자들이 인간을 기계와 다른, 특별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걸 보면 납득되는 측면이 있습니다. 특별하긴 개뿔. 인간이 기계와 다른 것은 딱 한가지임다. 인간은 다른 인간들에 종속되어 있다는 거죠. 즉 시스템 속의 인간입니다. 물론 기계도 시스템 속의 기계이긴 하지만 이런 걸 두고는 헷갈리지 않는게, 이때는 인간이 시스템이니깐.
제가 이제부터 딱 답을 알려드립니다. 언제 인류가 멸망할 지. 어떤 미친놈이 "시스템 속의 인공지능을 만들었습니다"라고 말하면, 아 시발 옷 됐구나라고 생각하면 되는 겁니다. 튜링 테스트나, 그걸 비판하는 중국어 방이나, 슈뢰딩거의 고양이나 다 같은 구조입니다. 중요한 건 객관적 관찰자 혹은 판단의 기준입니다. 튜링 테스트와 별개로 튜링 문제라는 게 있는데, 이게 순환논증의 오류를 졸라리 헷갈리게 기술한 겁니다.
그냥 결정문제라고 하면 간단한 걸, 굳이 정지문제라고 말해서 사람 헷갈리게 하고 있는 거. 순환논증의 오류는 결정장애의 문제입니다. 니가 결정할 수 없는 건 결정할 수 있는 기준을 찾지 못 했기 때문입니다. 튜링의 정지문제는, 어떤 둘 만으로는 문제가 구성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며, 그러므로 제3의 판단 기준이 필요하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즉, 정지문제는 결정할 수 있는가?를 묻는 거고, 좀더 명확히 말하자면 결정할 수 있는 구조가 성립했는가?를 묻는 겁니다. 그럼 결정할 수 있는 구조는 무엇인가요? 당연히 어떤 둘이 하나에 묶여있는 상황입니다. 바로 트리 상황인 거. 그래서 튜링완전에 꼭 등장하는 게 제어문(조건문, 반복문)입니다. 쉽지 않나요? 선택할 수 있어야 선택할 수 있다. 선택할 수 없으면 선택할 수 없는 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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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튜링의 정지문제를 비유로 쉽게 설명해줘.
지피티:
튜링의 정지 문제(Halting Problem)는 이렇게 비유할 수 있습니다:
비유:
한 도서관에는 무수히 많은 책들이 있습니다. 어떤 책은 끝까지 읽으면 끝나고, 어떤 책은 무한히 이어져 끝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어떤 친구가 와서 이렇게 물어봅니다:
"이 책이 끝까지 읽을 수 있는 책인지, 아니면 끝나지 않는 책인지 알려줄 수 있어?"
너는 생각합니다. "내가 책을 다 읽어봐야 알겠지…" 하지만 친구는 모든 책을 빠르게 확인하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너는 기계를 만들기로 합니다.
'끝나는 책 감별기'라는 기계인데, 어떤 책을 주면 이 책이 끝나는지 아닌지를 알려주는 기계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서 발생합니다.
어떤 책에는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이 기계가 '끝나지 않는다'라고 판단하면 바로 끝내고, '끝난다'라고 판단하면 무한히 반복해라."
즉, 이 책은 '끝나는 책 감별기'의 동작을 참조하고, 결과에 따라 행동을 바꿉니다.
그래서 너는 곧 깨닫게 됩니다. '끝나는 책 감별기'를 만들 수 없다는 사실을.
결론:
정지 문제는 어떤 프로그램(혹은 책)이 멈출지, 멈추지 않을지 모든 경우를 미리 예측하는 것이 불가능함을 의미합니다.
왜냐하면 어떤 프로그램은 자신이 멈출지, 멈추지 않을지에 대한 판단에 따라 행동을 바꾸는 '자기 참조'적인 구조를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즉, 어떤 프로그램이 정지할지 안할지를 판별하는 일반적인 기계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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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피티가 이따구로 설명하는 이유는 수학자들이 그따구로 설명했기 때문. 그냥 중이 제 머릴 못 깎는다고 하면 간단할 것을. 이 문제를 이해 못 해서 괴로워 하는 인간이 80억명쯤 되는 게 재밌는 거죠. 역사적으로 따지면 1000억명쯤 될듯. 제논의 역설에 낚인 인간이 한둘이냐고요. 튜링이 뜬 것이나, 비트겐슈타인이 뜬 것이나 게임이론이 뜬 게 모두다 같은 이유. 다만 공통점은 답을 하지 못하고 문제만 제기했다는 거. 문제만 제기해도 위인전에 나오고 노벨상을 받다니.
일반인공지능도 이와 같습니다. 언어모델 들한테 일을 시켜보면 둘 중 하나인데, 사용자에게 아첨을 하거나 사용자를 무시하거나 둘 중 하나입니다. 이 놈들은 합을 못 합니다. 당연한 거죠. 단일 구조니깐. 내부에서 경쟁을 시켜야 하는데 그런 게 없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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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 패러독스네요.
결과로 원인을 바꾸는 문제.
순환의 오류
자기실현적 예언.
시간 여행자: 실례합니다. 혹시 올해가 XXXX년이 맞나요?
과거인: 아니요, 올해는 191X년인데요.
시간 여행자: 이런, 실수로 1차 세계 대전 시기로 와버렸군.
과거인: 1차...? 2차도 있나요?
과거인은 미래인의 천기누설을 듣고
조만간 2차대전이 일어난다고 떠들었는데 그 때문에 2차대전이 일어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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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오. 그 생각은 못 했군요.
근데 사실 쌍둥이의 역설도 어떤 측면에서는 비슷합니다.
하긴 역설이 그렇지 않은 게 있겠습니까만.
쌍둥이의 역설은 특수상대성이론에서 나오는 사고실험으로, 시간 지연(time dilation) 효과를 극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간단히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1. 상황 설정: 동일한 나이의 쌍둥이가 있다. 한 쌍둥이는 지구에 남아있고, 다른 쌍둥이는 빛에 가까운 속도로 우주여행을 갔다가 돌아온다. 두 쌍둥이는 다시 만나 비교해 본다.
2. 결과: 우주여행을 다녀온 쌍둥이가 지구에 남은 쌍둥이보다 더 젊다. 이는 특수상대성이론의 시간 지연 효과 때문인데,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쌍둥이의 시간은 더 천천히 흐른다.
3. 왜 '역설'인가? 특수상대성이론의 기본 원리에 따르면, 관성계는 대등하며, 빠르게 움직이는 관성계에서 보면 상대방이 느리게 흐르는 것처럼 보인다. 따라서 처음에는 '누가 늙었는가?'에 대한 질문에서 서로가 서로의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것처럼 보일 수 있으므로, 대칭적인 상황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제로는 두 쌍둥이가 다시 만나면 반드시 우주여행을 다녀온 쪽이 더 젊다. 이 비대칭성은 무엇에서 오는가? 쌍둥이의 역설은 사실 비대칭적 상황이다. 우주여행을 다녀온 쪽은 왕복 중에 가속과 감속(즉, 관성계의 변화)을 경험한다. 지구에 남은 쌍둥이는 단일한 관성계에 계속 머물러 있다. 따라서 가속과 감속 과정이 시간 지연 효과를 결정짓는 핵심이다.
즉, '역설'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처음에는 두 관성계가 대칭적이므로 '서로의 시간이 느리다'고 주장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쌍둥이가 다시 만났을 때 반드시 한쪽이 더 늙어있는 비대칭적 결과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이 결과는 특수상대성이론의 시간 지연 공식을 적용하면 정확하게 계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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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이 쌍둥이의 역설은 플랫폼에 서있는 사람과 기차를 타고 빠르게 이동하는 사람이 있을 때,
서로는 상대가 빠르게 앞으로(뒤로) 움직인다고 느낀다면 둘은 똑같은 건가에서 의문이 시작합니다.
사실 이러면 똑같아 보이지만, 근데도 다른 게 있다는 게 아인슈타인의 설명.
근데 좀 쉽게 설명을 해야제, "속도로 보면 대칭이지만, 가속도로 보면 비대칭"이라는 말을 좀 해달라고.
즉, 물리학의 기준은 가속이 되어야 한다는 말을 이렇게 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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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tGPT의 말:
쌍둥이의 역설은 특수상대성이론의 시간 지연 효과를 설명하는 사례지만, 이를 완전히 이해하려면 가속도에 대한 아인슈타인의 통찰, 특히 일반상대성이론과의 연결을 봐야 한다.
아인슈타인이 가속도와 관련해 주장한 핵심은 다음과 같다.
첫째, 등가원리이다. 아인슈타인은 중력과 가속 운동은 구별할 수 없다는 생각을 했다. 즉, 가속된 로켓 안에 있는 사람은 중력을 받는 것과 같은 효과를 경험한다. 이 등가원리는 중력의 본질을 새롭게 설명하는 중요한 출발점이 되었다.
둘째, 가속도와 중력장의 관계이다. 특수상대성이론은 기본적으로 가속이 없는 관성계에 대해 적용된다. 그러나 현실의 세계는 중력장, 즉 가속 효과가 존재한다. 아인슈타인은 이를 포함하여 일반상대성이론으로 이론을 확장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중력장이 단순한 힘이 아니라 시공간의 곡률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가속 운동은 단순한 속도 변화가 아니라 시공간의 기하학적 특성에서 비롯되는 현상이라는 점이다.
셋째, 쌍둥이의 역설과의 연관이다. 쌍둥이의 역설에서 한 쌍둥이는 빠른 속도로 이동하며 왕복하는 과정에서 가속과 감속을 경험한다. 이는 단순히 속도의 변화만 있는 것이 아니라 시공간 경로의 차이를 만들어낸다. 일반상대성이론의 관점에서 보면 가속은 시공간의 곡률 효과처럼 작용하여 두 쌍둥이의 시간 흐름에 차이를 만든다.
정리하면, 아인슈타인이 가속도에 대해 주장한 핵심은 다음과 같다. 가속 운동은 중력장과 구별되지 않으며, 중력장은 시공간의 곡률로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시공간의 곡률은 시간의 흐름에 영향을 준다. 쌍둥이의 역설은 이 관점에서도 해석할 수 있으며, 이는 일반상대성이론의 핵심 원리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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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결국 가속도라는 건 속도와는 "차원"이 다르다는 걸 말하는 게 아닌가?
ChatGPT의 말:
맞다. 정확한 지적이다. 가속도는 단순히 속도의 변화량이 아니라, 속도 변화의 "변화율"이라는 점에서 속도와는 차원이 다른 개념이다.
정리하면:
- 속도는 단위 시간당 위치 변화량이다.
- 위치(거리)의 1차 미분값이다. 즉, 위치를 시간에 따라 미분하면 속도가 된다.
- 가속도는 단위 시간당 속도의 변화량이다.
- 속도의 1차 미분값, 즉 위치의 2차 미분값이다.
이렇게 보면:
- 속도는 "어느 방향으로 얼마나 빠르게 움직이는가"를 나타내는 1차적인 변화를 설명한다.
- 가속도는 "그 속도가 시간에 따라 어떻게 변하고 있는가"를 나타내는 2차적인 변화를 설명한다.
결국, 가속도는 속도의 시간 변화율이고, 속도는 위치의 시간 변화율이므로, 서로 다른 차원의 개념이다.
가속도가 중요한 이유는, 단순히 상대적인 움직임만 보는 속도와 달리, 운동 상태를 변화시키는 원인(힘)과 직접 연결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뉴턴의 운동 법칙 F=ma에서 알 수 있듯이, 힘은 질량과 가속도의 곱이다. 즉, 가속도는 힘의 효과를 나타내는 물리량이다.
그래서 쌍둥이의 역설도 단순히 속도 차이가 아니라, 가속도를 포함한 전체 경로(즉, 비관성계로의 진입과 이탈)에 의해 시간의 흐름 차이가 생긴다고 해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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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은 물리학을 제대로 배우지 않은 것. 미분(나눗셈) 두번하면 차원이 나오므로 경제학도 미적분으로 설명해야 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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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등가원리를 추적하는 패턴인식을 못하는듯.
모든 역설은 구조가 같습니다.
원인과 결과의 바꿔치기.
이건 옛날 이야기에 무수히 나옵니다.
1. 점쟁이가 예언을 한다.
2. 점쟁이의 예언이 빗나가게 하려고 어떤 행동을 한다.
3. 그 행동 때문에 도리어 예언이 적중된다.
4. 개기지 말고 순순히 점쟁이에게 재물을 바쳐라.
원인->결과의 단순논리를 갖고 있으므로
결과로 원인을 되치기 하면 무한루프에 빠지는데
원인->결정->결과로 가면 무한루프를 피할 수 있습니다.
결과를 보고 원인을 바꾸는 조치는 할 수 없게 해야 한다는 거.
답안지를 제출하면 끝인데
밤중에 교무실 열쇠 따고 들어가서 답안지를 교체하는 컨닝범죄입니다.
현실에서는 비용의 문제-엔트로피 비가역성-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데
가상세계는 돈 걱정이 없으니 무한꼼수 발생.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만 자기로 자기를 결정할 수 없다는 말인듯.
학자들은 당연한 상식을 어렵게 표현하는 재주가 있는듯.
1. 다이아몬드 칼로 세상의 모든 물체를 자를 수 있다.
2. 그럼 다이아몬드를 잘라봐라.
이런 문제는 구석기 시절부터 논의된 거 같은데.
다이아몬드로 다이아몬드를 자를 수 있지만 자르는 자신도 잘린다는 말이므로 논리적으로는 오류.
1. 유태인은 자살하지 않는다.
2. 마사다 요새의 유태인은 서로를 죽여준다.
3. 마지막 한 명은 누가 죽이느냐?
이런 이야기는 무수하게 많습니다.
왜 비유로 간단히 설명해주지 않고 골때리는 수학문제 뒤로 숨느냐고. 쉽게 가자고.
마사다 요새 최후의 유태인은 자살했습니다.
계율을 어긴 거지요.
심판은 누가 심판하느냐?
감시인은 누가 감시하느냐?
정부가 파산하면 어쩌냐?
이런 문제는 골때리게 많습니다. 영화에도 많이 나오고.
인생을 살아오면서 무수히 부딪히는 문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