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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 13760 vote 0 2004.08.11 (20:29:26)

어제 했던 시스템 이야기 더 하지요. 많은 사람들이 시스템을 과신하고 있습니다. 시스템은 양날의 칼과 같습니다. 시스템에 의존하다가 시스템에 버그가 나서 망하는 경우가 많다는 말이지요.
 
앙코르 왕조의 멸망 원인은?
12세기 캄보디아 정글 속에 거대한 사원 앙코르와트를 건축했던 앙코르왕조가 200년도 못버티고 망해버린 이유는 무엇일까요?
 
앙코르왕조는 정글을 개척하여 거미줄 같이 정교한 수로를 구축했습니다. 왕조는 번영했고 인구는 늘어났습니다. 세계 7대 불가사의로도 불리는 거대한 사원과 왕궁이 잇따라 건축되었습니다. 그 때가 좋았지요.
 
세월이 흐르면서 수로에 점차 흙이 쌓입니다. 요는 누가 그 흙을 제거할 것인가입니다. 병은 소리없이 침투하는 법. 수로에 문제가 생겼다는 사실을 눈치챘을 때는 이미 늦었습니다. 왕권은 약화되었고 동원할 인력은 없습니다.
 
딜렘마입니다. 수로를 준설하려면 일단 수로를 막아야 합니다. 윈도에 에러가 나면 일단 컴퓨터를 껐다가 다시 켜야 하는 이치와 같지요. 그런데 누가 한 해의 농사를 포기하고 수로를 막는 결단을 내릴 것인가입니다.
 
‘내 논에 물대기’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그들은 수로를 준설하는 것 보다 상대방의 수로를 빼앗는 것이 더 쉽다는 사실을 알아챘습니다. 왕권은 약화되었고 귀족들은 상대방의 수로를 빼앗기 위하여 이전투구를 벌였지요.
 
왕조는 몰락하였고 그 화려했던 문명은 정글 속에 잠들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오랜 세월 완벽하게 잊혀졌습니다.
 
시스템은 버그를 낳습니다. 앙코르 왕조의 수로 문제는 밀레니엄 버그와 비슷합니다. 2000년 이후를 생각하지 않고 두자리 숫자를 사용하다가 탈이 난거지요.
 
수로에는 간선과 지선이 있습니다. 작은 지선은 그냥 준설하면 되지만, 큰 간선은 준설을 대비하여 여유분의 수로를 미리 만들어놓지 않으면 안됩니다. 백업을 해두어야 한다는 말이지요.
 
작은 ‘버그’ 하나가 시스템 전체를 망가뜨립니다. 시스템의 급소이자 취약점이지요.
 
크메르족의 앙코르 왕조 뿐이 아닙니다. 인류 최초의 문명이 들어섰던 유프라테스강과 티그리스강 사이, 비옥한 초생달지역이나 맥시코 정글의 마야문명, 아즈텍문명이 다 비슷한 이유로 망했습니다.  
 
한 때 잘 나가던 대기업이 줄줄이 부도를 내고 문을 닫는 이유는? 공룡정당 한나라당이 죽음의 행진을 벌이고 있는 이유는? 한때 호황을 구가했던 공산주의가 퇴조하게 된 이유는? 다 같습니다.
 
시스템의 핵심은 정보의 쌍방향 소통에 있습니다. 정보전달의 수로에 침전물이 퇴적되어 망합니다. 혈관에 지방이 축적되어 고혈압에 걸리는 이치입니다. 쌍방향 의사소통 체계가 무너진 즉 멸망이지요.
 
시스템을 수리하기 위해서는? 일시적으로 시스템을 정지시키지 않으면 안됩니다. 한 해의 농사를 포기하고 준설의 결단을 내릴 강력한 지도자가 필요합니다. 또 시스템의 정지에 대비한 백업시스템이 구축되어 있어야 합니다.  
 
대통령제를 시행하는 우리나라는 행정수도 이전의 방법으로 백업을 할 수 있지만, 의원내각제의 일본은 도쿄도 인구 3000만으로 동맥경화에 걸린지 오래이나, 30년 동안 수도이전 논의만 하고 결단하지 못하는 차이가 분명 있지요.  
 
시스템은 집인가 자동차인가?
요는 시스템을 우리가 깃들어 사는 ‘집’으로 생각하느냐 아니면 타고 다니는 ‘자동차’로 생각하느냐입니다. 피드백이 없는 기계적 시스템인가 아니면 쌍방향 의사소통이 되는 유기체적 시스템인가입니다.
 
집은 움직이지 않습니다. 자동차는 움직입니다. 그 차이죠. ‘되먹임’ 즉 ‘피드백’이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입니다. 시행착오에 따른 오류시정을 인정하느냐 여부입니다.
 
민노당이 망가지는 이유는? 시스템에 대한 과도한 의존 때문입니다. 그들은 시스템을 깃들어 사는 '집'으로 여깁니다. 집은 한번 지어놓으면 계속 사용하는 것입니다. '운전'개념이 필요하지 않지요.
 
민노당의 시스템에 따르면 권영길 보다 김혜경이 더 높습니다. 그런데 국민들은 권영길은 알아도 김혜경은 모르지요. 문제는 민노당이 김혜경을 국민들에게 알릴 생각이 전혀 없다는데 있습니다.
 
왜? 민노당의 진짜 주인은 권영길도 아니고, 김혜경도 아니고, 평당원들이기 때문이지요. 그렇다면 그 평당원들이 민노당의 주인노릇을 해내는가? 천만에요. 평당원들은 딱 한번만 주인노릇을 합니다.
 
언제? 권영길이나 김혜경 등이 민노당의 주인 행세를 할 경우 그들을 제거하러 나설 때.
 
민노당? 선장이 없습니다. 운전수가 없습니다. 수로에 토사가 퇴적되어도 준설의 결단을 내릴 리더가 없습니다. 누구보다 더 강력하게 시스템을 주장하고 있지만 그 시스템은 버그가 난 시스템입니다.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입니다. 최적의 시스템이라도 최고의 선장을 만나지 않으면 소용 없습니다. 최고의 선장은? 한 해의 농사를 포기하고서라도, 수로의 가동을 중단하고 토사준설의 결단을 내릴 수 있는 사람입니다.
 
최고의 선장에 최고의 시스템
시스템은 원래 좌파들의 관심사인데 좌파에 들지 못하는 지만원 박사도 뜬금없이 시스템운운하고 있군요. (지만원에 박사 완장이라.. 잘도 어울린다. ^^;)
 
지만원이 군인출신이라면 알건데요. 러일전쟁 때 러시아가 깨진 이유는? 시스템이 좋지 않아서가 아니라 대장이 멍청해서입니다. 미드웨이 해전에서 일본이 패배한 이유는? 제로기의 성능이 미군의 버팔로에 못미쳐서가 아니라 지휘관이 멍청해서입니다.
 
성능이 우수했던 일본의 제로기들은 미군의 와일드캣이나 버팔로를 닥치는 대로 사냥하고 있었지요. 그러나 지휘관이 멍청해서 함대를 한곳에 모아놓지 않고 넓은 해역에 흩어놓았기 때문에 운좋게 살아남아 달려든 한 두 대의 미군 급강하폭격기에 의해 각개격파된 거에요.
 
이순신장군이 싸움마다 이긴 이유는? 이순신 한 사람의 재능이 탁월해서가 아닙니다. 왜구를 퇴치하기 위하여 세종대왕이 육성한 조선 수군의 함포와 판옥선 시스템이 우수했기 때문입니다.
 
시스템이 뒷받침 되었다는 말이지요.
 
마찬가지로 원균이 몰락한 이유는? 시스템에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 장수가 멍청해서 진 경우이죠.
 
궁합이 있습니다. 최적의 시스템과 최고의 리더가 만나고서야 역사가 이루어집니다. 조선 수군의 주력인 판옥선과 발달된 함포술 그리고 이순신장군의 만남이 그 상황에서 최고의 궁합이었던 것입니다.
 
왜 한나라당은 패배하는가?
국민의 정부 때 홍삼비리 등 실정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DJ가 노무현으로 백업을 해놓았기 우리는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왜 한나라당은 질 수 밖에 없는가? 위기시 수로의 가동을 중지하고 준설의 결단을 내릴 강력한 지도자가 한나라당에 없기 때문입니다.
 
공룡정당이 동맥경화에 걸린지 오래입니다. 그러나 한나라당에는 강금실도 유시민도 없습니다. 정당개혁의 결단을 내릴 지도자가 없습니다. 영원히 없을 수 밖에 없습니다. 왜?
 
크메르의 귀족들은 한 해의 농사를 포기하고 수로를 준설하는 결단을 내리기 보다는 상대방의 수로를 빼앗는 손쉬운 방법을 택했습니다.
 
동맥경화에 걸려 피가 통하지 않으면? 혈관을 청소하는 대신 혈압을 높이면 됩니다. 간단하죠.
 
한나라당은 위기가 닥칠 때 마다, 조중동 심장이 혈압을 두배로 올리는 방법으로 돌파해 왔습니다. 더 극단적인 수구노선을 택하고, 더 악랄한 지역주의를 선동하는 방법으로, 수로의 바닥의 침전물을 파내는 대신 수로 주위에 둑를 높이 쌓은 것입니다.
 
수로의 둑을 높이면 일시적으로는 물을 공급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방법으로 오래 가지 못합니다. 홍수 한방에 날아가 버립니다.
 
박근혜가 태도를 변경하여 정체성 논쟁을 벌이는 이유는? 또 공약을 위반하여 행정수도이전에 반대하는 이유는? 박근혜가 친일청산에 반대하는 이유는?
 
조중동의 협박에 굴복한 즉, 혈관에 쌓인 지방을 청소하기 보다는 혈압을 두배로 높이는 손쉬운 방법을 택한 거지요? 그 결과는?(시스템 이야기 하려면 끝이 없지만 오늘은 여기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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